소설리스트

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64화 (164/230)

어쩔 수 없네.

페이의 허리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흐앗?!”

깜짝 놀란 페이가 반사적으로 내 몸통에 다리를 휘감으며 매미처럼 달라붙는다.

덕분에 자연스레 내 눈높이까지 올라온 페이의 얼굴.

이건 예상에 없었던 걸까. 빙글빙글 돌아가는 페이의 눈동자에서 당황이 느껴진다.

“어? 어어…?”

“가만히 좀 있어 봐요 페이 선배.”

두리번거리는 페이의 뒤통수를 잡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

“흐븝…!”

조금 건조한 입술. 거친 숨결.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바동거리는 움직임.

슬쩍 혀를 집어넣자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파르르 떨던 페이가 금세 얌전해진다.

어설프게 마중 나온 페이의 혓바닥과 입 안쪽을 구석구석까지 맛본 뒤에야 입술을 떨어뜨렸다.

“히끅!”

어째서인지 딸꾹질을 시작한 페이를 놓아주자, 그대로 스르륵 무너지며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는 페이.

“흐읏…너무 깜짝 놀라서 심장이 멎을 것 같아 후배님…..”

“처음 키스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에요?”

“매일 해도 익숙해지질 않아…후배님이 나한테 먼저 입을 맞춘다고? …후힛.”

음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혼자 헤실대는 페이.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읏차. 카를라 언니랑 엘리샤 양도 어서 와! 일단 저기 앉아있으면 후배님이 부탁한 물건들 가지고 갈게.”

“고마워요 페이 양. 그럼 주인님 먼저 앉아있죠.”

“응.”

잠시 쇼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페이가 방금 막 만든 하늘색 포션과 다른 이런저런 물건들을 아공간 주머니에 챙겨서 돌아왔다.

“벌써 다 만든 거예요 페이 선배? 제가 어제 급하게 말한 거라 어쩌면 시간 안에 못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만들기 어려운 물건들은 아니었거든. 무엇보다 후배님 덕에 얻은 능력의 도움을 많이 받았구.”

“조금 전의 모습을 보니 수류조작과 결정화를 잘 활용하고 계시는 것 같더군요.”

엘리샤의 말에 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전부 섬세한 조작 계열 능력이라 내겐 정말 큰 도움이 되더라고. 특히 결정화 같은 경우에는 가장 귀찮고 오래 걸리는 정수 추출 과정을 거의 생략할 수 있어서 엄청 효율적이야!”

잔뜩 신이 나서 수류 조작과 결정화를 어떤 식으로 써먹었는지 주절주절 설명하는 페이.

음….

내가 이오나 앞에서 저런 식으로 ‘뉴비도 할 수 있다! ~뱀파이어 사냥 편!~’ 을 일장 연설했다는 소리지?

식겁할만했네.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페이를 말렸다.

“자자. 알겠으니까 제가 부탁드린 것부터 먼저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페이 선배?”

“허억! 미, 미안…말하다 보니 기세를 타서 그만.”

“에이. 미안해하실 건 없죠. 다만 오늘 해지기 전에는 들어가서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 아까운 시간을 좀 더 페이 선배랑 의미 있게 쓰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흐헷…알았어. 그럼 우선 언데드 동화 포션부터 어떻게 쓰는지 알려줄게.”

조금 전에 완성된 하늘색 포션을 꺼낸 페이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우선 간단하게 원리를 설명하자면, 전신을 사기死氣로 코팅해서 언데드 특유의 생자 탐지 능력에 혼선을 주는 거야. 사용 방법은 그냥 뿌리면 끝. 다만 혹시라도 마시지는 마. 막 크게 다치거나 그런 건 아닌데 설사가 엄청 심할 거야. 그리고 지속 시간 말인데….”

편협한 찬탈의 특성상 녀석을 따르는 몬스터도 질투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자기보다 잘생기고 예쁜 모든 종족에게 적의를 불태우는 피셔맨과.

자신이 잃어버린 생명의 온기를 질투해, 살아있는 존재를 전부 죽여 차갑게 만들고 싶어 하는 언데드가 있다.

던전이 아닌 지부를 공격하는 것인 만큼, 물 밖에서는 비교적 약해지는 피셔맨보다 언데드를 더 많이 부리더라.

그러니 언데드에 대비한 포션도 몇 가지 챙기는 것이다.

이외에도 편협한 질투의 권능에 대비해 정신을 맑게 해주는 물약, 미리 마셔두면 효과가 오래 가는 해독제, 마비 및 석화 치료제를 준비한 것은 물론.

여차할 때 로브의 투명화 기능을 써먹기 위한 섬광탄과 연막탄까지 하룻밤 만에 넉넉하게 만들어 사용법을 설명해주는 페이.

삼등분하여 카를라와 엘리샤의 아공간 주머니에 나눠 넣었다.

“완벽해요. 진짜 고생 많았어요 페이 선배.”

“흐힛…고마워…그런데 아직 하나 더 남았어.”

“네? 제가 페이 선배에게 부탁드린 건 이게 전부인데….”

“으응. 이번에 말고 저번에 말했던 거 말이야.”

저번이라면…설마?

“감각 연동되는 오나홀을 벌써 만든 건가요?!”

“뭐어?!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어?! 애초에 말한 적도 없잖아!”

까비아깝송.

“흐힛…고마워…그런데 아직 하나 더 남았어.”

“네? 제가 페이 선배에게 부탁드린 건 이게 전부인데….”

“으응. 이번에 말고 저번에 말했던 거 말이야.”

저번이라면…설마?

“감각 연동되는 오나홀을 벌써 만든 건가요?!”

“뭐어?!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어?! 애초에 말한 적도 없잖아!”

까비아깝송.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스태프와 원드를 하나씩 꺼내는 페이.

“이건….”

“맞아. 저번에 말한 대로 마법 무기를 만들어 봤어. 아직 마력 증폭률은 별로지만, 일단 성공은 했으니까 보여주려고. …감각 연동 오나홀이 아니라서 미안하게 됐네!”

“농담이에요 농담. 근데 만들 수 있긴 해요?”

“시간과 예산만 충분하다면야…아니, 그런 것보다 우선은 이것부터 보라니까 후배님!”

“앗, 넹.”

페이가 건넨 스태프와 원드를 살펴보았다. 특이하게도 끝부분에 달린 보석이 나무와 일체화되어있는 형태네.

“그냥 마정석은 연성하기 어려워서, 직접 마력을 뽑아 결정화 시킨 뒤에 다듬어 본 거야. 내 힘을 한번 거친 덕인지 훨씬 다루기 쉬워지는 거 있지?”

“아하? 처음 보는 재질이다 싶었더니 마력 자체를 물질화해서 붙여둔 거였군요?”

슬쩍 마력을 불어넣자, 내 마력에 반응해 반짝이는 결정.

다만 페이가 말한 대로 그 증폭률은 아직 미묘한 수준이다.

딱 초심자를 위한 연습용 스태프 같은 느낌?

그래도 성공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다.

“벌써 성공할 줄은 몰랐네요. 이거 조금만 더 연구하면….”

“응. 증폭률을 높이는 건 물론이고, 각종 마도구도 만들 수 있게 될 거야. …내가 인챈트 쪽도 공부해야 해서 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그 부분은 한번 이리스랑 이야기해보실래요? 페이 선배가 인챈트하기 좋은 그릇을 만들면 이리스가 마법을 새긴다거나 하는 방식도 괜찮을 것 같은데.”

“으음…그러면 내 목표랑 조금 멀어지는 거라….”

“아.”

그러네. 페이는 연금술만으로 완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하는 건데.

이리스랑 분업하면 지금의 체계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겠네.

“그럼 그냥 이리스에게 인챈트를 배워볼 수도 있죠. 아무리 그래도 이것까지 독학해야 한다는 건 아니겠죠 페이 선배?”

장난스레 페이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자, 화들짝 놀라 내 손가락을 붙잡는 페이.

“다, 당연히 아니지! 그랬으면 애초에 아카데미에 들어오지도 않았을걸?”

“좋아요. 그럼 이리스에게는 제가 나중에 말해서 연락용 수정구를 하나 더 받아 올게요.”

내일 이오나와 사교도 지부를 토벌하기 전에, 잠깐 저택에 들러 카를라와 엘리샤에게 입힐 로브와 가면을 받아오려 했는데.

그때 말해두면 되겠지.

쑥쑥 성장하는 페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잠시.

뜬금없이 몸을 베베 꼬기 시작한 페이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후힛. 있잖아 후배님. 나 후배님이 시키는 대로 다 했다? 잘했지? 응?”

“어…뭘 말하시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페이 선배는 언제나 잘해주고 있죠.”

“그래? 그렇지? 그럼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이요? 말해보세요. 어지간한 건 들어드릴 테니까요.”

“지, 진짜? 그럼 방학 때 같이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마을에 가줄 수 있어? 엄마한테 후배님을 소개시켜드리고 싶어서….”

“페이 선배의 어머니라면….”

“응. 아버님이 있는 니다벨리르가 아니라 옛날에 같이 살던 록우드 마을에 무덤이 있거든.”

잠깐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정의로운 광명 교단과 함께 사교도 토벌에 나서기로 한 선약이 있으니, 그 뒤에 다 같이 가죠.”

“와…! 고마워! 후배님!

방방 뛰며 기뻐하는 페이.

덩달아 방방 뛰는 가슴이 무척이나 흐뭇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다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그래서 손으로 잡아서 고정시켜주었다.

“흣!”

“이리 와봐요 페이 선배.”

가슴을 잡힌 채, 끌려온 페이를 내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는 부스스한 머리카락 사이에 숨어있는 페이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아무튼 감각 연동 오나홀을 만들 수는 있다는 거죠?”

“…말했잖아? 시간과 예산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야.”

“시간은 그렇다 치고 예산은 얼마나 있으면 될 것 같나요.”

“으음….”

속닥속닥.

“대충 이 정도?”

“좋네요. 오늘부터 진행하죠.”

꽤 큰 금액이지만, 이 정도면 아주 만족스러운 투자다.

***

다음 날 오전.

아침 일찍부터 저택에 들러 카를라와 엘리샤의 로브를 챙기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도착한 이오나의 연구실.

똑똑.

“교수님. 저희….”

끼이익.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알아서 문이 열린다.

“들어와! 들어와! 다들 깜빡한 건 없지? 화장실은 다녀왔고? 미아 반지는 끼고 있지?”

“이 반지 이름이 미아 반지였어요? 저희가 어린애도 아니고 뭔….”

미아가 되는 걸 방지하는 건지, 미아가 되라는 건지 모르겠잖아.

뭐, 이오나 입장에선 우리 모두 어려 보일 테니 대충 느낌은 알겠지만.

피식 웃는 것도 잠시.

상상도 못 한 네이밍에 뒤늦게 눈치챘는데, 이오나의 복장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

손이 가려질 정도로 헐렁하던 소매는 손목 부근에서 딱 좋게 묶여있었으며, 치마처럼 하반신을 가리던 기장은 허리춤에 묶여 맨다리를 훤히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조금 더 몸을 드러내고 타이트해진 느낌.

꽁꽁 싸매기보다는 편한 움직임을 중시한 듯한 차림새네.

이오나 나름의 전투 모드 같은 건가 보다.

자꾸만 다리 쪽으로 가려는 시선을 가까스로 들어 올리자, 장난스레 웃고 있는 이오나의 모습이 보였다.

“응큼해! 응큼해! 어딜 보는 거야?”

“기동력을 빼앗기 위해서는 우선 다리부터….”

“이, 이오나 교수님은 착한 뱀파이어야!”

슬쩍 농담 좀 던졌을 뿐인데 기겁하며 펄쩍 뛰는 이오나.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자,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이오나.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 이러니 좀 귀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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