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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62화 (162/230)

“안녕! 안녕! 다들 마법 전투 수업 기대했어? 하지만 유감! 오늘은 이론 수업이야!”

“““와아아아——!”””

이론 수업이라는 말에 환호성을 터뜨리는 학생들.

하기야 실제로 고통이 느껴지는 대련이라는 게 좀 빡세긴 하지.

거기에 내일은 주말이니 다들 더 열광하는 걸 수도 있고.

“엣헴 엣헴.”

어째서인지 얼굴을 반쯤 가린 기묘한 포즈로 학생들의 환호를 즐기는 이오나.

“아하?”

이거 내일은 사교도 토벌하러 갈 거니까, 괜히 오늘 힘 빼서 골골대지 말라는 배려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갈채를 즐길 대로 즐긴 이오나가 헐렁한 소매를 팔랑이며 박수를 쳤다.

“그만! 그만! 이론 수업이라도 수업은 수업이야!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니 다들 집중해야 해!”

단숨에 조용해지는 교실.

이오나가 주변의 초롱초롱한 시선을 받으며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다들 막 입학했을 때보다, 지금 훨씬 강해졌다는 거 잘 알고 있지?”

“그야 뭐….”

“네.”

“당연한 일이죠.”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

하기야. 다들 나만큼은 아니어도 입학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굴렀으니 강해질 수밖에.

다만 이오나는 나나 다른 학생들이 뿌듯해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럼 그럼. 강해진 만큼 마법의 성취도 높아졌어?”

“““…….”””

다들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마법사로서는 크게 성장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나야 팍팍 성장했다지만 거의 입학과 동시에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거라 예외적인 상황이다.

다른 학생들은 쓸 수 있는 마법이 몇 개 늘어나고, 마법의 안정성과 위력이 조금 늘어나긴 했으나.

전투 능력이 늘어난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다들 다들. 왜 그런지 궁금할 거야. 마법사의 경지를 나눌 때, 하위 마법사는 개인을 쓰러뜨릴 수 있고, 중위 마법사는 파티를, 상위 마법사는 군대나 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식으로 분류하잖아? 그런데 왜 전투력에 비해 마법 자체의 성취는 좀 뒤떨어지는 걸까?”

알고 있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 부분은 생각 못했는지 허를 찔린 표정이 된 이들도 있다.

나야 카를라에게 미리 배우기도 했고, H&A에서 간단하게 스쳐 지나가는 설정을 보기도 했으니 알고 있는 쪽이지만.

“간단해 간단해! 마법에서 전투를 빼놓을 수는 없지만, 전투가 마법의 전부는 아니거든!”

마법 전투 과목의 교수가 하는 말이라기엔 전투를 폄하하는 것 같은 말투.

이에 학생들이 의아한 기색으로 웅성이자 이오나가 히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야! 진짜야! 신들의 전쟁 이후로 마법의 파괴력과 살상력을 중시하는 문화가 생겼지만…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넓게 봐야 하는 거야! 결과적으로는 그래야 더 강해지는 거고!”

대전쟁 이전부터 살아온 뱀파이어의 말이기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는 내용이다.

잠시 고민하던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교수님. 그럼 살상력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마법을 바라봐야 한다는 뜻인가요?”

“정답! 바로 그거야. 조금 더 정확히는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지금의 마법 체계 분류는 직관적이지만 본질과는 조금 떨어졌거든!”

헐렁한 소매를 걷어 새하얀 손을 드러낸 이오나가 허공에 손가락을 휘저었다.

보글.

작은 거품 소리와 함께 이오나의 손끝에 맺히는 물방울.

“기초 마법인 아쿠아야. 다들 기초 마법이 왜 기초라 불리는 건지 알고 있지?”

알다마다 현상을 일으키는 것 그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기초 마법 아닌가.

“옛날 옛날. 이 아름답고, 우아하며, 고상한 이오나 교수님이 응애응애 울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줄게!”

능숙하게 자기 자신을 찬양한 이오나가 손가락을 한 번 더 휘저었다.

꿀렁.

그러자 작은 물방울이 급격히 몸집을 부풀리며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가 되었다.

하급 마법, 워터 볼.

저대로 던질 수도 있고, 회전을 가미하거나 상대의 얼굴에 고정시켜 익사를 노리는 등.

술자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는 마법이다.

게임에서는 다소 미묘한 성능이었지만, 현실이 된 에우렐리아 대륙에서는 파이어 볼과 더불어 국밥 주문 취급받더라.

“이 마법과 조금 전의 차이가 뭔지 말해볼 사람 있어?”

이오나의 질문에 묘하게 재수 없는 인상의 남학생…빛 속성 마법으로 유명한 빌헬름이 손을 번쩍 들었다.

“크기가 다릅니다. 물의 양이 늘어났다 보니 자연스레 위력이 강해지고, 활용 방법도 다양해졌습니다.”

“으음…얼추 맞는 말이지만 근본적인 이야기는 아니네! 땡! 다른 사람 없어?”

한 차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이내 팔을 크게 교차시켜 X자로 만드는 이오나.

자신 있게 대답했던 빌헬름이 뻘쭘하게 손을 내리자 다른 학생들도 서로 눈치만 보고 쉽사리 손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명가나 유명 마탑 출신이 대부분이 A반에서 한명도 모른다고?

알면서도 틀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쉽사리 손을 못 드는 건가?

고개를 갸웃갸웃 기울이고 있자니, 옆에 있던 엘리샤가 내 허벅지를 콕콕 찔렀다.

이게 이젠 주인을 재촉까지 하네. 뭐, 왜 그러는지는 알 것 같지만.

느릿하게 손을 들자 이오나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얀델 학생! 뭐가 다른 거라고 생각해?”

“그러네요….”

게임에서 봤던 내용. 그리고 이리스에게 원소 조합에 관해 배우며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아쿠아와 달리, 워터 볼에는 유동성이라는 성질이 구현된 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요?”

원소 조합을 배우며 토 나오도록 익힌 각 원소의 성질과 형상.

기초 마법은 현상 그 자체. 그러니까 물이라는 형상을 구현하는 데 그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하급 마법 부터는 여기에 한가지의 성질을 담는다.

지금 이오나가 예시로 선보인 워터 볼의 경우, 부정형이라는 물의 형상에 유동성이라는 성질을 추가한 셈이다.

명확히 정해진 형상도 없고, 끊임없이 흐르기까지 한다?

당연히 여러 방식으로 조작하기 쉬운 마법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크기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아쿠아로 만든 물은 덩어리째 움직일 뿐 흐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잘 풀어서 설명하자 이오나가 검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개박수를 쳤다.

“정답! 정답! 얀델 학생 말대로야! 하급 마법은 기초 마법에 한가지 성질을 더 담는 경지거든! 사람 하나 죽이기에 충분한 살상력을 가져야 하급 마법이라는 구분은 신들의 전쟁 이후에 나온 개념이야!”

그리 말한 이오나가 펼쳤던 손바닥을 꾸욱 쥐자, 허공에 떠오른 워터 볼이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가시가 송송 솟아있는 얼음덩어리.

하급 마법, 아이스 스파이크.

“그럼 그럼! 이건 어떤 성질이 추가된 거라고 생각해?”

“그야 냉기겠죠. 빙계 마법은 결국 수계 마법의 파생이니까요. 물의 차갑다는 성질을 중점적으로 끌어낸 마법이죠.”

“히야아! 누구 제자인지 참 똑똑하네! 얀델 학생 말이 맞아! 그러니까 빙계 마법은 다른 어떤 마법보다 조형이 중요한 마법인 거야. 보통은 형상이 고정되고 내용물인 성질을 바꿔가며 필요한 마법을 부리는 식이거든? 예를 들자면 파이어 볼과 이그니처럼 말이야!”

파이어볼, 이그니.

둘다 화염 속성 하급 마법으로, 파이어 볼은 폭발력에 중점을. 이그니는 고온이라는 부분에 중점을 둔 마법이다.

따라서 이그니는 파이어 볼과 달리 폭발하지 않아 공격 범위도, 충격량 자체도 적지만.

그 대신 파이어 볼로는 녹일 수 없던 철을 녹일 수 있다.

둘다 생긴 건 똑같은 불이지만 하나는 터지고, 다른 하나는 뜨겁게 녹인다고 보면 되겠지.

다른 하급 마법도 대충 비슷한 느낌이다. 형상은 대동소이하고, 성질만 해당 속성의 다른 면모를 가져오는 그런 방식이니까.

그렇다 보니 성질이 냉기로 고정된 빙계 마법은 부정형이라는 형상을 극한까지 활용해야 한다며 조형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이오나.

이후에도 각 속성의 형상과 대표적인 성질 몇 개. 그리고 원소 마법이 아닌 특수한 계열의 마법에도 비슷하게 형상과 성질이 있다는 게 오늘의 수업 내용이었다.

나야 원소 조합을 배우며 기본으로 깔고 간 내용인지만…일부 학생은 정말 모르고 있었는지 메모까지 해가며 열심히 수업을 듣더라.

하지만 오랜만의 재밌는 수업이라도 끝은 찾아오는 법.

“벌써! 벌써! 수업 시간이 다 끝나가네! 그럼 여기서 숙제야! 기초 마법과 하급 마법의 차이가 성질을 담겨있느냐라면…하급과, 중급, 상급, 그리고 대마법의 차이는 뭘까? 그리고 이를 전투에 활용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 주까지 레포트로 정리해 와! 형식은 자유!”

숙제를 내준 이오나가 교탁을 정리하며 덧붙였다.

“아, 참! 얀델 학생은 점심시간에 교수님 연구실로 찾아와! 아주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거든!”

이오나가 핏빛 눈동자를 찡긋거리며 윙크를 날렸다.

그 모습에 A반의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

“…대학원 권유?”

어허. 큰일 날 소리 금지!

“아, 참! 얀델 학생은 점심시간에 교수님 연구실로 찾아와! 아주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거든!”

이오나가 핏빛 눈동자를 찡긋거리며 윙크를 날렸다

그 모습에 A반의 누군가가 작게 중얼거렸다.

“…대학원 권유?”

어허. 큰일 날 소리 금지!

***

점심시간.

조금 끔찍한 오해를 받긴 했지만, 당연히 이오나가 나를 대학원으로 끌어들이려는 건 아니다.

아마 내일 있을 사교도 지부 토벌에 관해 못다 한 이야기가 있어 보충하려는 게 아닐까?

그런 이유로 양옆에 카를라와 엘리샤를 끼고 맘 편히 이오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교수님? 저 불러서 왔는데요.”

“얀델 학생? 들어와! 들어와!”

이오나의 허락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피투성이가 된 이오나와 연구실의 호러틱한 모습이었다.

“이 마도구에 주인 등록을 시키려고 불렀….”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뺘아아아아악!”

나, 카를라, 엘리샤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자 그제야 자신의 몰골을 알아챈 이오나.

“아차! 아차! 씻는 걸 깜빡했네!”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무영창으로 시전된 클린이 이오나 몸과 주변에 묻은 핏물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리고는 안심하라는 듯 양손을 휘저으며 말하기를.

“걱정하지마! 전부 내 피니까!”

“그게 더 위험한 거 아니에요?! 포션 필요하세요? 아니, 뱀파이어니까 수혈팩 가져다드릴까요? …잠깐. 이거 정말 위험한 거 맞아요? 뱀파이어의 재생력을 생각하면….”

인벤토리에서 치유 포션을 꺼내 들다 말고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 섰다.

그 모습이 꽤 재밌었던 걸까. 헐렁한 소매로 자신의 입가를 가리고 키득키득 웃는 이오나.

“얀델 학생은 좀 재밌네! 뱀파이어가 피 좀 흘렸다고 바로 포션부터 꺼내려 드는 거야?”

“…뭐야. 정말 별거 아닌 거예요?”

어째 중간부터 나만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를라와 엘리샤는 잠깐 놀랐을 뿐, 지금은 차분해져 있었다.

“진정하세요 주인님. 갑자기 피 칠갑을 하셔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 뱀파이어는 다른 종족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양의 혈액을 품고 있다고 들었어요.”

“예에. 하물며 그게 평범한 뱀파이어가 아니라 이오나 교수님 정도라면…저 정도 출혈은 바늘에 손가락 좀 찔린 정도겠죠.”

“진짜…?”

H&A에는 뱀파이어가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나온 적이 없어서 그런 자세한 설정 같은 건 모른단 말이다.

“아하하핫! 얀델 학생은 아무도 모르는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들 다 아는 내용은 잘 모르는구나? 하지만 괜찮아! 이 이오나 교수님이 뱀파이어에 대해 하나하나 다 알려줄게! …헉! 이렇게 말하니 어감이 쫌 그렇네!”

혼자 깜짝 놀라 자기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하는 이오나.

뒤이어진 이오나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가 아는 평범한 피는 뱀파이어에겐 마력 같은 일종의 자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혈마법을 주력으로 쓰는 종족이 뱀파이어뿐인 것도 그래서고.

위력은 강하나, 술자의 피를 뽑아 쓰기에 횟수에 제한이 있는 혈마법. 하지만 피가 넘쳐나면 그런 제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지금껏 마법으로 물이나 불을 만들듯, 마법으로 만든 피인 줄 알았지…아니면 다른 사람의 피거나.

H&A에서 나오는 고위 혈마법은 전장 전체를 피로 뒤덮던데, 그걸 어떻게 한 사람의 피라고 생각할 수 있겠냐고.

물론 뱀파이어들에게도 생명의 원천이 되는 부분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심장과 진혈이라 부르는 특수한 피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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