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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55화 (155/230)

이오나가 평소처럼 해맑게. 하지만 어딘가 섬뜩한 분위기로 미소 지었다.

“편협한 찬탈의 추기경. 응시하는 아일라를 찾는 걸 도와줬으면 해.”

“…….”

응시하는 아일라는 스토리 후반부, 아카데미 전면전 이벤트에 이름을 올리는 보스다.

물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실제로 주인공과 싸울 일은 없다. 모델링도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주인공은 추기경급이 아닌 사도급 적들과 연달아 싸우느라 바쁘니까.

그럼 아일라를 쓰러뜨리는 게 누구냐하면…그게 바로 이오나다.

조금 더 정확히는 이오나를 필두로 한 여러 교수와 학생들이긴 한데.

아무튼 이오나가 그 중심에 서 있다는 건 사실이다.

후반부에 컷 신으로 잠깐 등장한다는 이오나의 활약 장면도 그때 나오는 거고.

제작자 이 미친 새끼.

이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대체 H&A 본편에 이런 이야기를 왜 안 집어넣은 거지? 누가 봐도 중요한 내용이잖아!

아니. 아니지.

H&A는 언제나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죽어야 할 이를 살리거나, 묻힐 재능을 개화시켜주는 식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즉, 내 선택으로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에 관한 것들만 보여줬다는 소리.

하지만 이오나와 아일라의 경우는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해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이오나의 이야기를 H&A에서 다루지 않았던 건가?

공략 불가였던 것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완결되는 인물이라 그런 거고?

머릿속에서 마구 솟구치며 조립되는 추측들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다만 당황스러움에 굳어있는 내 모습을 고민 중이라 여긴 걸까.

이오나가 조금 다급한 어조로 내 상념을 끊어냈다.

“나도 나도. 맨입으로 알려달라는 건 아니야. 오늘 얀델 학생이 내 연구실에 침입한 건을 묻어주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 얀델 학생이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줄게!”

“어….”

“이, 이걸로도 부족해? 그럼 얀델 학생 덕분에 중요 정보를 알았다는 식으로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포인트를 몰아줄까? 포인트로 가지고 싶은 게 있는 거지?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그게 말이죠….”

“여기서 더?! 더는 공식적으로 줄 수 있는 게 없는데…아! 주기적으로 혈정 만들어줄까? 아니면…헉! 설마 얀델 학생이야말로 내 몸을 노리는 건….”

“아뇨. 응시하는 아일라의 위치는 저도 모른다고 말하려던 거예요.”

“아….”

허탈하다는 듯이 탄식을 흘리는 이오나.

아직 실망하긴 이른데.

분명 아일라는 H&A 본편에 이름만 언급되는 수준의 보스였다. 위치를 유추할 만한 정보도 없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응시하는 이라는 수식에 걸맞게 마안 여럿을 권능으로 받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찾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결국 아일라는 편협한 찬탈 교단 소속의 추기경이 아닌가.

“편협한 찬탈의 지부를 탈탈 털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어요?”

“…헤?”

입을 쩍 벌린 이오나를 향해 히죽 웃어 보였다.

업적작 찬스네.

이오나와 이런저런 자세한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연구실을 나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 대화가 길어져서인지 이미 해는 저물었지만.

그렇게 예상보다 조금 늦은 귀가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자.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무서워! 늦어서 미안해! 미안하니까 좀 진정해봐!”

동공의 초점은 또 왜 풀려있는데!

“엘리샤! 나 좀 도와줘!”

“아아. 저는 아무것도 안 들린답니다!”

구석에 틀어박혀 길쭉한 귀를 막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엘리샤.

너도 같이 무서워하면 어떻게 해….

일단 카를라를 진정시키려 고개를 내리자.

“헤헤.”

“???”

잠깐 안 본 사이에 다시 멀쩡해진 카를라가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어때요 주인님? 저번에 도서실에서 빌린 책에 나온 여주인공을 따라 해 봤어요!”

“…다음엔 말하고 해줘.”

얀데레 플레이에는 흥미가 있지만, 갑자기 튀어나오면 그건 호러라고.

한숨을 푸욱 내쉬며 카를라의 볼을 꾹꾹 잡아당겼다.

“흐헤헤….”

어째서인지 더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그 모습에 구석에 있던 엘리샤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이쪽을 살펴보았다.

엘리샤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네.

가볍게 손을 까딱이자 쭈뼛거리면서도 다가오는 엘리샤. 그런 엘리샤의 움찔거리는 귀를 콱 붙잡고 속삭여 주었다.

“오늘 자지 압수.”

“…네?”

“감히 주인을 버리고 도망치다니. 이건 벌을 받아야지. 안 그래?”

“그, 그건….”

자기도 찔리긴 하는지 시선을 피하는 엘리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흥! 절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당신. 제가 무슨 당신 자지에 미친 여자인 줄 아나요?”

“아니. 그런데 곧 그렇게 될 거야.”

옆에 카를라를 낀 채로 쇼파에 앉았다. 이어서 내 무릎을 톡톡 두드리며 오랜만에 명령을 내렸다.

“[앉아.]”

“당신 설마…!”

자신의 미래를 직감한 엘리샤의 푸른색 눈동자가 크게 뜨였지만…몸은 착실하게 명령에 따르고 있었다.

꾸욱.

허벅지 위로 전해지는 엘리샤의 엉덩이 감촉.

큼직하면서도 묵직한 감각에 화가 사르르 풀렸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무심하게 엘리샤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히야악!”

가슴을 잡히자, 낮잠 자는 사이에 둥지가 침수된 오리너구리처럼 펄떡이는 엘리샤.

다만 앉으라는 명령 때문인지 하체를 내 허벅지에 딱 붙인 상태를 유지한 터라, 사실상 엉덩이로 내 아랫도리를 문지른 거나 다름없었다.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고 이는 것도 잠시. 옆에 있던 카를라가 내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대며 물었다.

“그런데 주인님. 가신 일은 잘됐어요?”

“아 맞다. 그거 말하려고 앉은 건데 순간 깜빡했네. …나쁜 가슴!”

“흐앗! 왜, 왜 또 제 탓을 하고 그러는 거죠?! 얀델 당신이 만졌으면서!”

유두를 꼬집힌 엘리샤가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했지만…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이오나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

.

.

.

.

“그렇게 된 거야.”

“네? 이오나 교수님의 약점을 알아내려 미행하다 들켜서, 같이 사교도 지부를 습격하기로 했다구요? 그것도 단둘이서?”

“카를라 이거 혹시….”

“응. 이오나 교수님은 프란체스카 클랜의 유일한 생존자셔.”

“일단 몰락했다는 기본 조건은 만족했네요. …아무리 그래도 교수에게까지 손을 댈 줄이야.”

“그러게. 우리 주인님이지만 참….”

얼굴을 맞대고 소곤대는 둘의 대화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굳이 말하자면 교수님이 나한테 손댄 거지!”

“…….”

“…….”

그 말에 서로를 바라보는 카를라와 엘리샤.

무어라 눈빛을 주고받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을 내렸다.

“주인님이 유혹했나 보네.”

“예에. 분명 그랬겠죠.”

너무나도 자연스레 아무튼 내 잘못으로 몰아가는 모습에 기가 찼다.

“나 참. 허 참.”

물론 내가 조금 피해자 행세하긴 했지만!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면 되잖아 같은 소릴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 이오나에게 물리적인 의미로 덮쳐졌지만!

그렇다고 그게 유혹인 건…음….

…어라? 혹시 내가 이오나를 유혹하고 있었던 건가?

순간 떠오른 의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지만…엘리샤의 귀를 가볍게 깨무는 것으로 훌훌 털어냈다.

“꺄흣?! 당신 정말…!”

그도 그럴게 이건 유혹이니 뭐니 하는 말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오나의 복수로 이어지는 진지한 이야기니까.

간략하게 아일라에 관해 설명해 주자 그제야 납득하는 둘.

“이오나 교수님의 사정은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설마 여동생이….”

“대충 어떻게 된 건지는 알겠어요 당신. 그렇다면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 거 아닌가요? 겨우 둘이서 편협한 찬탈의 지부를 부수고 다니겠다뇨. 그러다 정말로 아일라를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내게 가슴을 마구 주물러지면서도 걱정 가득한 잔소리를 하는 엘리샤.

쪼물대는 손을 조금 더 부드럽게 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오나 교수님이 블러드 시프트 마법을 걸어주신다고 하셨으니 실수로 다칠 일은 없을 거야. 목표로 삼은 지부들도 그리 위험한 곳은 아니고.”

“그래도 굳이 둘만 다닐 필요는 없잖아요. 주인님이랑 이오나 교수님이 아일라를 찾아다니듯, 그쪽에서도 두 분을 찾아올 수도 있는 거구요.”

“음…괜찮을 것 같은데.”

H&A 후반부. 이오나는 아일라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뭐, 이를 조금 달리 말하면 전면전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아일라가 이오나를 피해 다녔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이오나가 아카데미 교수로 있다는 사실은 300년간 유명했으니까.

제대로 싸우면 자기가 진다는 걸 알아서 그런 게 분명하다.

아무리 다른 교수와 학생의 지원이 있었다지만, 그건 아일라도 다른 사교도와 몬스터를 동원했으니 쌤쌤이지. 응.

“그런데 아까부터 다들 착각하는 것 같은데…너희를 놔두고 간다고는 한 번도 말한 적 없는데?”

“네? 이오나 교수님이랑 주인님만 움직인다고 하셨잖아요.”

“응. 근데 노예면 나한테 귀속된 거잖아? 내가 있는 곳에 따라가는 게 당연하지. 그 뭐냐. 일심동체? 대충 그런 느낌?”

“아하?”

그제야 한결 편해진 표정의 카를라와 엘리샤.

사실 둘의 걱정과 달리 그리 위험할 것도 없다. 애초에 이오나는 상위 마법사인 동시에 로드급 뱀파이어.

종족 특성상 전투력만큼은 동급의 마법사보다 한 단계 더 뛰어나다.

아직 악신의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 추기경급이 최대 전력인 지금의 사교도가 이오나의 급습을 막는 건 불가능하겠지.

줄줄이 잡히지 않기 위해 지부 간의 연결을 느슨하게 해둔 탓에 정보 교환 속도도 느릴 테고.

아마 이 정도는 카를라와 엘리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리 걱정한 것은…아무래도 실습 던전에서의 전례 때문이겠지.

내가 다음부터는 어딜 가건 카를라를 데리고 다니겠다고 다짐한 것처럼, 카를라와 엘리샤도 떨어져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안한 것이다.

뭐, 이오나는 공식적으로 가르칠 수 없던 둘을 이렇게나마 뭔가 가르쳐줄 수 있게 됐다면서 마냥 좋아했지만.

그저 사교도 박멸밖에 모르는 바보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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