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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53화 (153/230)

철컥-

“흐흥. 흐흐흥~”

얼마 지나지 않아 콧노래를 부르며 연구실에 돌아온 이오나.

로브의 능력으로 기척을 차단하고 있다지만, 이오나 정도의 실력자라면 알아챌 수도 있을 터.

이오나가 조금이라도 수상함을 느끼면 그대로 들킨다는 생각으로 마력에 정신을 집중했다.

무작정 숨긴다고 능사는 아니다. 최대한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주변과 동화된다는 느낌으로 운용해야지.

효과가 있었던 걸까.

다행히 이오나는 내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읏차차….”

하지만 뿌듯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눈앞에 들이밀어 진 뽀오얀 종아리의 자태에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으니까.

몰래 교수의 연구실에 숨어들고, 일기장을 엿본 것도 모자라, 책상 밑에 숨어서 종아리를 훔쳐보는 학생?

이게…맞나?

아닌 것 같은데….

주륵.

식은땀 한줄기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돌겠네.

눈앞에 들이밀어진 뽀오얀 종아리의 자태에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몰래 교수의 연구실에 숨어들고, 일기장을 엿본 데다가, 책상 밑에 숨어서 종아리를 훔쳐보는 학생?

이게…맞나?

아닌 것 같은데….

주륵.

식은땀 한줄기가 등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감각이 묘하게 섬뜩했다.

돌겠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한숨이라도 푹 내쉬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오나의 다리가 생각보다 가깝네. 숨결이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써 참았다.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하며 기척을 숨기는 데 집중했다. 적어도 이러고 있는 동안은 괜찮겠지.

…괜찮겠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냐는 생각에 문득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설마 하루 종일 여기 숨어있어야 하나?

카를라와 엘리샤가 걱정하는 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내가 하루 종일 집중을 유지할 수 있으려나?

불가능하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틈만 드러내도 이오나에게 들키고 말겠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오나라면 나를 퇴학시키지는 않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교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잡을 거라는 사실을 아니까.

하지만 그게 아무런 징계도 없을 거란 뜻은 아니다.

진짜 어떻게 하지 이거.

불안함에 나도 모르게 마력이 흐트러지려는 순간.

사락 사락.

“흐으.”

책장 넘기는 소리와 함께 묘하게 달뜬 신음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잠깐. 이거 설마…?

누군가 뒤통수를 가격한 것 같은 아찔한 느낌.

그러고 보니 이오나의 책상에는 야설이 펼쳐져 있었지.

도서관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직접 피를 빤 지 오래된 탓에 체질이 좀 변했다고 했던가?

뱀파이어들은 아름다운 외모로 이성을 유혹하지만, 정작 본인은 성욕이 거의 없다.

인간 시절의 성욕이 뱀파이어가 되면서 흡혈욕으로 변질됐기 때문인데, 어린 뱀파이어들이 피에 취해 사고를 일으키는 것도 그래서라고 한다.

식욕과 성욕이 합쳐진 만큼 흡혈욕을 제어하기 힘든 거겠지.

그런데 이오나의 말대로 오랜 기간 뱀파이어의 본능을 거부하여 다시 성욕이 돌아왔다면?

지금의 이오나는 제어하기 힘든 성욕을 느끼고 있다는 게 아닐까…?

“하으….”

어째서인지 슬금슬금 책상 밑으로 내려오는 이오나의 손.

그 모습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뽀얀 종아리도, 둥근 무릎도, 살짝 엿보이는 허벅지도, 심지어 나 자신의 양심마저도.

지금 이 순간에는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이오나의 손가락이 핫팬츠에 가까운 짧은 반바지 속으로 파고드는 모습만이 보일 뿐.

그렇게 손가락 한 마디가 바지 안쪽으로 들어갔을 무렵.

“아차! 아차! 팻말 걸어두는 걸 깜빡했잖아!”

그리 외치며 벌떡 일어난 이오나. 의자가 뒤로 주르륵 밀려나는 소리에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

아직 상황 파악은 덜 됐지만, 멀어지는 이오나의 발소리만큼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팻말이라면…그건가.

가끔 예민한 연구를 하거나,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한 교수들은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을 걸고 문을 잠그기도 하던데.

아마 연구실이 다른 학생과 교수들이 오가는 아카데미 내에 위치해있기에 생긴 시스템이겠지.

서로서로 배려하자는 그런 의미에서 말이다.

다만 지금 중요한 건 팻말의 유래가 뭔지, 이오나가 뭘 하려고 팻말을 거느냐가 아니다.

잠깐 문이 열리는 그 틈을 이용해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

오직 그것만이 중요하다.

만약 이대로 문이 잠긴다면 그땐 정말 얄짤 없이 하루 종일 숨어있어야 해야 하니까.

이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마지막 기회다.

…순간 자신의 바지 속을 파고드는 이오나의 손가락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아쉬움이 차올랐지만.

아무튼 지금은 잠깐 문이 열리는 틈을 타,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속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엉금엉금 책상 밑에서 기어 나오자.

“왁!”

뒤집어진 이목구비. 거꾸로 흘러내리는 검붉은 머리카락.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

감자기 위에서부터 이오나의 머리가 툭 튀어나왔다.

“흐아아아아아아악!!!”

쿵!

화들짝 놀라 정수리를 책상에 박았지만…눈물이 핑 도는 고통에도 허겁지겁 뛰쳐나오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쓸데없이 거대한 초상화. 액자 속 이오나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르더니, 정확히 나와 눈이 마주쳤다.

“……!”

심지어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기괴한 미소를 짓기까지 하니.

이쯤 되면 다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악!!”

초상화가! 웃었어!

그리고 두 번이나 소리를 질렀으니 이오나에게 잡히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잡았다! 잡았다! 이 스토커!”

이오나가 두꺼운 야설책을 휘둘렀다.

깡!

그만 눈앞이 깜깜해지고 말았다.

***

눈을 떠보니 코앞에 이오나가 있었다.

“안녕! 안녕! 드디어 일어났네!”

“???”

묘한 기시감.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맞아. 분명 에드메렉을 쓰러뜨리고 집중 치료실에서 회복 중이었을 때였지.

그럼 이건 꿈인가…?

“내 제자가 변태 스토커 범죄자라니! 이 이오나 교수님은 너무 슬퍼….”

잠이 덜 깨 흐릿했던 머리가 확 맑아졌다.

정신을 차렸으니 해야 할 일은 역시 그겠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이오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무해함을 증명하기 위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고.

…무릎 꿇고 손드는 것처럼 보였다면 절대 아니다.

아무튼 진지한 얼굴로 이오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해입니다.”

“으응? 으응? 얀델 학생이 몰래 쫒아오고, 설마 하는 마음에 잠깐 자리를 비워보니 연구실에 들어가 일기장을 훔쳐보고, 심지어 책상 밑에 들어가 교수님 다리까지 훔쳐보다가 걸렸는데…오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있었어?”

“…아무튼 오해입니다.”

“오해란 말이지?”

이오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그럼. 뭔가 변명거리가 있단 소리겠네?”

“물론이죠.”

한차례 심호흡을 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입을 열었다.

“사실 도서실에서 교수님을 봤을 때부터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고….”

“거짓말! 거짓말! 내 매혹에 넘어간 게 아니라는 건 방금 확인했거든?”

“앗.”

생각해 보니 이오나는 내 존재를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다는 듯 말했었지.

설마….

침을 꼴깍 삼키는 사이. 이오나가 뒤편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고개를 까딱였다.

“얀델 학생. 이게 뭔지 알아보겠어?”

“음…이오나 교수님의 아름다움과 대인배적 면모를 잘 나타낸 초상화…?”

“아냐 아냐! 이건 초상화처럼 생긴 방범 마도구거든! 그리고 아부해도 안 봐줄 거야!”

뒤이어진 이오나의 말에 따르면 저 초상화는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하면 즉시 찾아내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오나와 시선 공유까지 하며 실시간으로 연구실 내부를 살펴볼 수도 있고.

그러니까 내가 기절하기 직전에 초상화와 눈이 마주쳤다거나 히죽 웃는 모습을 봤다는 건 착각이 아닌 거겠지.

“얀델 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기장 훔쳐보는 모습은 다 봤거든!”

“아….”

“이제 알겠지? 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이오나 교수님이 자…흠흠. 혼자 위로할 만큼 개방적인 사람으로 보였어? 일종의 테스트였다구!”

만약 내가 매료의 영향을 받는 상태였다면, 이오나가 바지춤에 손을 집어넣는 시점에서 무언가 이상행동을 벌였겠지.

힘의 차이를 알면서도 이오나를 덮치려 든다거나, 코박죽을 시도한다거나, 아니면 공평하게 내 바지도 내려 맞딸을 치려 든다거나.

하지만 나는 숨죽이고 지켜보긴 했어도 이상하다고 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만약 내가 매료에 당한 것 같았다면 즉시 붙잡아 모종의 방법으로 해체해주려던 게 아닐까?

이오나는 자신의 매료를 경계하고 있으니까.

하긴. 일기를 보면 왜 그러는지 대충 이해는 가더라.

“알겠지? 알겠지? 그러니까 이제 솔직하게 말해!”

“…….”

어쩔 수 없나. 이오나의 말대로 솔직하게 불고 용서를 구해야….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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