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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48화 (148/230)

마탑이나 길드. 혹은 가문에 묶여있는 이들은 비전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배경 없이 스스로 성공한 이들이라면, 자신의 가치를 위해 더더욱 밑천을 숨기는 법.

하지만 이오나는 그러지 않았다.

방식이 좀 거칠긴 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나를 가르쳤거든.

사실상 혈마법이나 질긴 생명력을 내세우는 뱀파이어스러운 전투방식을 제외한 모든 걸 가르치려 들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

이 정도면 편애에 가깝지.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요 며칠 사이에 확 달라진 게 체감되는데 어떻게 모르겠는가.

새로운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마력이 늘어난 것도 아니지만…지금의 나라면 이전까지의 나를 압도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얄미운 건 얄미운 거다.

“힘이…힘이 필요해.”

이오나에게 꿀밤을 먹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

“그렇게 된 거야.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리스?”

-허어…그 교수는 스스로 힘을 제한하며 싸우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인이여. 그럼에도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하다니.

아예 하루 수업을 통째로 쉰 뒤에야 돌아온 기숙사.

도착하자마자 통신 수정구를 켜고 이리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자니 슬그머니 내 무릎에 머리를 뉘이고 하염없이 내 얼굴만 바라보며 실실대는 카를라.

그리고 이리스의 얼굴을 보기 위해 나와 밀착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쭈욱 목을 뻗는 엘리샤.

이제는 양옆에 둘을 끼고 있는 것에 익숙해진 터라, 자연스레 여기저기 쪼물대며 말을 이었다.

말랑 몰랑.

“진짜 뭐 없어 이리스? 막 금지된 주문이라거나, 너무 강해서 무슨무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야만 쓸 수 있는 마법이라던가 그런 거 말이야.”

-그런 마법들은 어찌 보면 마법사의 낭만이라 할 수 있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네.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자신의 꽤 봉긋한 가슴을 가리키는 이리스.

-우선 금지된 주문은 내가 해보려다 걸렸잖은가.

“앗.”

정령 소환도 금지된 주문이긴 해.

-후자도 존재하긴 하나, 나도 몰라 알려줄 수가 없네. 설령 알려준다 해도 그런 마법은 국가 단위의 예산을 필요로 하는 터라 주인이 개인적으로 사용하지도 못할 테고.

“그 정도야?”

-그 정도니 높으신 분들이 엄격히 관리하는 걸세.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런데 이리스 그건 뽕이야?”

-…티 나는 게냐?

“어.”

이리스의 가슴은 완전히 벗거나, 만져봐야 봉긋함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지금처럼 헐렁한 옷 위로도 알 수 있을 만큼은 아니지.

-욕심이 과했군…다음엔 좀 적당한 크기로 넣어봐야겠네.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가슴팍에서 동그란 젤리같은 무언가를 꺼내 어딘가로 던지는 이리스.

이제야 평소의 이리스네.

“아무튼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거지?”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네. 굳이 말하자면 새로운 원소 조합 마법을 만들어내는 것과, 주인이 최근에 성공했다는 원소 공명을 결합하는 것이네만….

“내가 이오나 교수님에게 털리는 건 위력의 문제가 아니니 위력을 높여봐야 별 의미 없다는 거지?”

-바로 그걸세. 하지만 좀 놀랍네. 이오나 교수가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어찌 됐든 나와 같은 상위 마법사의 끝자락에 오른 마법사 아닌가. 솔직히 난 그렇게까지 힘을 제한하면 한 대도 안 맞을 자신은 없네.

“뭐…그만큼 잘 싸우니까 다른 과목도 아니고 마법 전투 과목을 맡은 거겠지.”

원래부터 이오나가 잘 싸웠던 것도 있지만, 뱀파이어라는 종족 자체가 강하기도 하다.

이리스는 잘 모르는 듯하지만, 아마 이리스와 이오나의 전투력만을 비교한다면 이오나가 훨씬 우세하겠지.

물론 언젠가는 내가 이오나보다 더 강해지겠지만…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하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면 결국 노오오오오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

아쉬움에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것도 잠시.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수정구를 어떻게든 들여다보던 엘리샤가 내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당신. 너무 풀 죽지 마세요. 아무튼 이오나 교수님께 한 방 먹일 수만 있으면 된다는 거죠?”

“어. 맨날 맞기만 하니까 너무 억울해.”

“그럼 좀 비겁한 방식이겠지만 약점을 찾아보는 게 어떨런지요?”

“약점?”

이오나에게 약점이랄 게 있던가?

“잠깐.”

생각해보니 나…의외로 이오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얼마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오나는 H&A에선 공략 불가 캐릭터였으니까.

이오나를 동료로 들일 수 없으니 상태창 같은 것도 본 적이 없고, 이렇게 1대1로 직접 대련하는 이벤트도 없었으니 어떻게 싸우는지도 잘 모른다.

굳이 말하자면 전면전을 벌이는 후반부에서 잠깐 싸우는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정말 잠깐이라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들다.

마법 하나만 보고 그 마법사의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기기 위해 상대를 아는 건 기본 중의 기본.

그조차 지키지 못하고 금주 타령이나 하고 있었던 건가.

우선 이오나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그리고 자잘한 습관 같은 건 뭐가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엘리샤 넌 천재야!”

“에? 네에? 흠흠. 제가 이 정도랍니다! 좀 더 저를 칭찬하세요!”

“엘리샤 예쁘다! 허벅지는 카를라보다 더 야해!”

“다른 부위는요?!”

“귀가 길쭉해서 귀여워!”

“좋네요! 오호호호홋!!”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구 칭찬해주니 부채까지 펼쳐가며 좋아하는 엘리샤.

파란 롤빵 머리가 둥실둥실 흔들리는 모습이 든든하기 그지없다.

이게 유능한 부하를 곁에 둔 상사의 마음인가?

속으로 이오나를 스토킹…아니, 관찰할 계획을 세우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설정집에 없는 내용을 직접 알아낼 찬스라니.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잊고있던 H&A에 대한 팬심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이오나 프란체스카.

372살의 로드급 뱀파이어.

직업은 아카데미 교수.

좋아하는 것은 사교도 죽이기.

싫어하는 것은 사교도.

특기는 혈마법.

외모는 피처럼 진한 적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리고 뇌쇄적인 몸매가 굉장히 특징적이다.

다만 학생을 유혹할 수는 없으니, 푼수 같은 언행과 의식적인 매료 억제로 본인의 매력을 숨기고 다니고.

뭐, 가끔 저게 원래 성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자연스럽긴 한데.

놀랍게도 본래의 이오나는 훨씬 위험하고 난폭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오나는 신들의 전쟁 이전부터 이름을 날리던 강대한 뱀파이어로, 꽤 큼직한 클랜의 후계자였으니까.

다만 전쟁이 격화되며 뱀파이어 또한 다른 종족처럼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 결과 일부는 사교도로 전향하고, 일부는 다른 종족과 연합하여 악신의 군세와 맞서 싸우기 시작.

연합을 선택한 이오나의 클랜은 수많은 전장에서 활약했지만, 그 탓인지 사교도에게 급습당해 몰살당하고 말았다.

유일한 생존자는 이오나 뿐.

복수에 미친 이오나는 기껏 건진 목숨을 내다 버리듯, 온갖 전장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소드 마스터나 대 마법사 같은 벽을 넘은 강자도 운 나쁘면 죽어 나가는 시대다 보니 비명횡사하기 딱 좋은 기행.

하지만 이오나는 타고난 전투 센스와 뱀파이어 특유의 질긴 생명력 덕에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그리고 강해졌다.

죽지 않으면 강해질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겠지.

상위 마법사의 경지에 오르고, 뱀파이어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피 또한 충분한 업을 쌓았다.

덕분에 스스로 클랜을 창시할 수 있는 로드의 자격을 얻는 데 성공했으나….

이오나는 자신의 클랜은 전부 죽었다며, 새로운 권속을 만들지 않고 홀로 싸움을 이어 나갔다.

용사가 악신을 봉인하고 전쟁을 끝내기 전까지. 쉬지 않고. 쭈욱.

이오나가 뱀파이어 로드가 아닌, 로드급 뱀파이어로 불리는 이유 또한 그래서다.

부하가 없는 왕은 왕이 아니듯, 권속이 없는 로드를 로드라 부를 수 없잖은가.

하지만 일개 뱀파이어라고 하기엔 이오나의 무력이 너무 강하니 로드급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것이다.

그 뒤에는 뭐…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느끼고,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어 지금에 이르는 거고.

피비린내 나는 과거와 달리 교수가 된 이오나는 주접스럽기 그지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녀의 목표는 300년간 흔들리지 않았다.

남아있는 모든 사교도를 죽인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면, 제자를 강하게 키워 사교도를 죽이게 만든다.

설령 몇백년이 더 걸릴지라도 기꺼이 감수하리라.

아직 이오나는 가족이나 다름없던 클랜원들이 죽어가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으니까.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이오나의 전부다.

아, 하나 더 추가하자면 H&A의 후반부에 꽤 활약한다는 정도?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컷신으로 잠깐 싸우는 장면이 나올 뿐이라 정확히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는 모른다.

이렇게 보면 꽤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지만…결국 행적에 지나지 않는 것들 뿐이네.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은 조금 더 디테일한 요소들이다.

도서관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직접적인 흡혈을 그만둔 지 오랜 시간이 지나 체질이 변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눈앞에서 피를 흘릴 경우 억눌려있던 본능이 반응해 정신이 흐트러지는지.

만약 그렇다면 이를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써먹을 수 있는지.

그 외에도 통통 튀는 언행에 가려진 성격이나, 성격이 전투 스타일에 미치는 영향 등등.

이오나의 발자취가 아닌, 이오나 그 자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어떻게든 한 방 먹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로 며칠간 이오나 교수님을 관찰하기로 했어. 한동안 방과 후에는 혼자 움직일 테니까 너희는 먼저 기숙사에서 기다리고 있어. 여럿이 움직이면 요란스럽잖아.”

“주인님…그건 스토킹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허! 스토킹이라니! 전략적 정보 수집이라는 거야!”

“…….”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애써 참는 것 같은 카를라의 표정.

마치 1+1=11 이라는 답안을 자랑스레 가져온 어린아이에게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정작 말을 꺼낸 당사자인 엘리샤도 다르지 않았던 걸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내 마구 칭찬하기에 기분에 좋아져, 파란 롤빵 머리를 둥실둥실 흔들고 다녔건만.

지금은 얼음물이라도 들이켠 것처럼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얀델. 나의 당신. 약점을 잡더라도 언제나 그 뒤를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 뒤라면?”

“이오나 교수님은 당신의 적이 아니랍니다. 어찌 됐건 당신을 도와주려는 분이죠. 그러니 너무 미움 살만한 일을 하는 건 피해야 해요.”

“그건…그러네. 응.”

방법이 너무 거칠지만 이오나는 정말 성심성의껏 나를 가르치고 있다.

뭣보다 사교도만 잘 조지면 몇 가지 편의를 봐주겠다며 호의를 드러낸 적도 있었고.

내 손으로 아군을 줄일 필요는 없겠지.

“역시 전략적 정보 수집은 보류해야….”

“그러니까 오늘은 이 로브를 입고 가죠 당신.”

“???”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에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부드러운 손길로 투명 로브를 입혀주는 엘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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