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여라. 그리하여 나의 위업을 바삐 알려라. 썬더 볼트.”
아직 코어의 파장이 불 속성에 맞춰져 있긴 하지만 반대되는 속성을 사용하는 것만 아니라면 문제는 없다.
스태프 끝에서 쏘아진 번개 줄기가, 자연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장애물을 우회한다.
“대단해! 대단해! 언제봐도 빠른 영창이야!”
“그럼 좀 맞아 주시던가요!”
“에이. 내가 그래도 교수인데? 이 정도로는 어림없지!”
이번에도 번개 쪽을 향해 손을 휘젓는 이오나. 투명한 장벽에 막힌 번개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다음 마법은 없다.
아니, 있지만 그게 이오나를 향한 마법은 아니다.
“이 팔은 강인하여 누구도 막지 못하리라. 스트렝스. 두 다리는 준마와도 같아 바람을 가르리라. 헤이스트.”
땅을 박차며 시전한 보조 마법 둘.
근력과 순발력이 강화된 몸뚱이가 자연스레 가속한다.
“아핫! 역시 근접전으로 들어오는구나?”
빠르게 가까워지는 이오나를 향해서 단검을 낮게 들었다.
반대로 스태프는 높게 치켜들며 조금 무리하게 마력을 끌어올렸고.
우웅-
코어에서 느껴지는 뻐근함을 무시하며 그대로 대량의 마력을 때려 박은 마법의 시동어를 읊었다.
“라이트!”
화아악!
새하얗게 물드는 시야. 안 그래도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박았는데, 태양신의 가호로 강화되기까지 했으니 아무리 이오나라도 움찔할….
“있잖아 있잖아. 이 정도면 많이 봐줬지?”
“……?”
백색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들려오는 이오나의 목소리.
등에 얼음을 흘려 넣은 것 같은 섬짓함에 달려다가 말고 옆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서걱.
“아악!”
조금 늦었는지 왼쪽 무릎 부분에서 타오르는 듯한 격통이 느껴졌다.
마치 다리를 통째로 베이기라도 한 것 같은 감각. 윈드 커터인가?
블러드 시프트 덕분에 실제로 다리가 절단된 건 아니라지만 이만한 고통 속에서 멀쩡히 움직이긴 힘들겠지.
다만, 이오나 상대로 정면에서 마법을 주고받아도 승산이 없다는 건 사실.
이를 악물고 아픈 다리로 땅을 디디며 자세를 바로 했다.
기동성이 떨어진 이상 잘 막기라도 해야 하기에 다른 마법 대신 실드를 영창하는 순간.
“하지만 하지만. 잘 기억해둬 얀델 학생. 허를 찌를 수 있는 건 상대도 마찬가지거든!”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이오나가 위에서 아래로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조금 더 정확히는 주먹과 조금 떨어진 위치에 떠 있는 돌덩이를 휘두른 것이지만.
콰앙!
“커헉….”
망치로 후려친 것이나 다름없는 일격.
머리가 으스러지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깜빡깜빡 점멸한다.
갑작스런 충격에 몸이 굳자, 어느새 내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댄 이오나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안 돼 안 돼.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을 놓지 말아야지. 공격 하나가 끝났다고 안심하면 안 되잖아?”
내 머리를 내려찍으며 밑으로 내려갔던 돌덩이가 돌연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바위 던지기!”
이오나의 쓸데없이 해맑은 목소리와 함께 위로 솟구쳤다.
퍼어억!
가죽 주머니를 두드린 듯한 둔탁한 소리. 문제는 내가 그 가죽 주머니라는 점이다.
“……!!”
비명을 두번 연속으로 질렀더니 폐부의 공기를 전부 뱉어냈기 때문일까. 이젠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꺽꺽대며 가슴이 곤죽이 되는 고통을 감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와중에도 시스템 보정은 묵묵히 시전하던 마법을 완성시켰으니까.
“실…드!”
공중에 떠오른 나. 아래에서 핏빛 눈동자를 동그랗게 뜬 이오나.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내 수족이 되리라. 포스 그랩!”
일전에 에드메렉과 싸울 때 그러했듯 스스로를 염력 계열 마법인 포스 그랩으로 잡아 던졌다.
목표는 당연히 바로 밑에 있는 이오나.
쐐애애액!
빠르게 수직 낙하하는 몸뚱이.
실드까지 두르고 있는 덕에 지금의 나는 살아있는 포환이나 다름없는 상태.
설령 막히더라도 실드가 깨진 틈에 단검을 내지르면 한방 정도는 먹일 수 있으리라.
“하아아아아앗!”
말 그대로 몸을 던져가며 얻은 기회.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눈을 부릅 떴으나….
내 눈에 비친 것은 흡족한 미소를 짓는 이오나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법을 쓸 수 있는 집중력은 확실히 대단하네! 하지만 실패했을 때는 생각해 뒀니? 테라.”
발치에서 솟아오른 작은 흙덩어리가 이오나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덕분에 넘어지듯 몸을 기울이며 간발의 차이로 실드 몸통 박치기를 피한 이오나.
단검을 뻗어 보았지만 그마저도 닿지 않았다.
결국 혼자 바닥에 처박힌 꼴이 된 내가 허겁지겁 일어나려는 순간.
“파이어 볼.”
퍼어엉!
“껙!”
등짝이 화끈해지는 감각과 함께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도 온갖 방식으로 발악해 봤지만, 마찬가지로 온갖 방식으로 뒤지게 맞았다.
심지어 근접전으로 끌고 갔을 때도 마찬가지.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이오나가 자신의 특기인 혈마법이나 중급 이상의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딱 하급 마법까지만. 그것도 특수한 계열은 배제하고 익숙한 마법 위주로 싸웠는데.
마치 내 수준에 맞춰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적당히 살살 해준다는 게 아마 이런 뜻이겠지.
물론 내가 뒤지게 아프다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그렇게 수업 시간 내내 이오나에게 처맞고서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앞으로 이걸 매일 해야 한단 말이지?
이오나가 말했던 대로 이오나와의 일 대 일 대련은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라 매일 계속됐다.
그리고 매일 탈탈 털렸다.
아니. 내가 이오나에게 익숙해지고, 이것저것 배운 만큼 대련 강도를 높인 탓에 날이 갈수록 더 심하게 처맞게 되더라.
…하지만 오늘은 다를거야!
“블래스트 번!”
질량을 가진 거대한 불꽃이 시동어에 따라 파열한다.
비산하는 날카로운 화염 조각들. 하나하나가 빠르고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지만, 그 목적지만큼은 동일했다.
일전에 이리스가 원소 조합 마법의 시범을 보이며 시전했던 실체화한 불.
그걸 좀 더 폭력적으로 발전시킨 화염 마법과 대지 마법의 조합으로, 오늘을 위해 준비한 회심의 마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오나는 자신의 급소를 향해 쏘아지는 마법 앞에서도 해맑게 웃을 뿐이었다.
“대단해! 대단해! 이거 실반 마탑의 비전이지? 저번 결투 땐 광범위 공격을 하더니, 이번에는 대인용 마법을 준비해왔구나! 고생했어 얀델 학생!”
“알면 좀 맞아 주십쇼!”
“그건 싫어! 아플 것 같잖아!”
장난스레 대꾸하며 손을 좌에서 우로 휘젓는 이오나. 그 궤적을 따라 대여섯 개의 얼음송곳이 생성되었다.
아이시클 스피어의 연속 시전? 아니면 다중 영창?
“아이스 애로우!”
…아니, 아이스 애로우네
한 번에 여러개를 만들 수 있다거나 쏘아낸 뒤에도 궤적을 어느 정도 조종할 수 있다는 게 애로우 계열 마법의 특징이긴한데.
왜 이렇게 화살이 두꺼워?
속으로 식겁하는 사이. 빠르게 쏘아진 이오나의 아이스 애로우가 내 블래스트 번의 조각을 정확히 요격하며 공멸했다.
펑! 퍼벙!
그러고도 남은 화살 하나가 수증기를 뚫고, 덤으로 내 심장도 꿰뚫었다.
“커헉….”
명백한 치명상. 물론 블러드 시프트 덕에 옷에 구멍이 뚫린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상처는 없다.
오직 잔상처럼 눌어붙은 고통만이 내가 역으로 당했다는 걸 상기시켜줄 뿐.
블러드 시프트가 상처와 함께 일정 이상의 고통까지 흡수한다지만, 그래도 이 빈사에 다다르는 이 감각만큼은 익숙해질 수가 없다.
요 며칠간 통신 수정구로 이리스와 머리를 맞대며 준비한 마법이 이렇게 막힐 줄이야.
단순히 터지는 게 아니라, 파편에 유도 기능 넣겠다고 낑낑대던 기억이 아직도 선한데.
이쯤 되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악! 한 번만 찌르게 해주세요! 제발 한 번만!”
물론 멀쩡할 때도 옷깃 하나 스치질 못했는데, 눈깔 뒤집혀 달려든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안 돼! 안 돼! 아무리 화가 나도 마법사가 그렇게 무식하게 달려들면 어떻게 해 얀델 학생! 그리고 찌른다니…떽! 교수님한테 그런 야한 말 하는 거 아니야!”
이번에는 보조 마법으로 몸을 강화한 이오나에게 친히 두드려 맞고 쓰러졌다.
몇번이고 있었던, 어찌 보면 최근의 일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아무리 버틸 수 있는 충격만 받는다 해도 정신적 피로가 쌓이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걸까.
땅바닥에 드러눕자마자 스르륵 감겨오는 눈.
닫혀가는 시야 너머로 화들짝 놀란 이오나가 달려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눈을 떠보니 양호실 침대였다.
에드메렉을 쓰러뜨리고 입원했던 집중 치료실보다 조금 푹신함이 딸리네.
속으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저 멀리에 있던 꼬장꼬장한 인상의 중년 사제가 다가왔다.
아마 이 양호실의 담당 사제인 거겠지.
“일어났나?”
“앗, 네. 저는….”
“걱정 말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이오나 교수가 이런 부분에서는 쓸데없이 철저하단 말이지.”
쯧쯧 혀를 찬 사제가 짧게 기도문을 읊어 축복을 내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는 푹 쉬게. 이오나 교수에게는 내가 잘 말해둘 터이니.”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이자 대충 인사를 받은 사제가 곧장 병실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옆 방에서 들려오는 몸 좀 적당히 굴리라는 호통 소리.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매일 실려 오는 기사 학부 학생들 때문에 바쁜가 보네.
이제 막 일어나 멍한 머리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문이 벌컥 열리며 카를라와 엘리샤가 우다다 들어왔다.
“주인님! 괜찮으신 거 맞죠?! 저 이오나 교수님 수업에서 기절한 사람은 처음 봐서…정말 어디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죠?!”
“아까 사제님께 설명 들었잖아요 호들갑 좀 그만 떠세요 카를라. …그나저나 이오나 교수도 참 너무한 거 아닌가요? 아무리 실전 같은 대련이 중요하다지만, 어떻게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거죠?”
내 팔을 살살 잡아당기며 걱정하는 카를라와, 은근슬쩍 이오나에게 불만을 표하는 엘리샤.
그런 둘의 턱을 마구 간질이자 빠르게 진정하며 조용해졌다.
“뭐, 너무 그러지 마. 사실 이오나 교수님의 일 대 일 수업을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건…그렇네요. 조금 과격해서 그렇지 이오나 교수님은 아끼는 것 없이 마법사가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예에. 저희처럼 당신의 노예가 되거나, 당신을 수제자로 삼는 게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요.”
아카데미는 출신에 상관없이 재능 있는 이를 기르기 위한 교육 기관이지만…그렇다고 해서 정말 자기 모든 걸 가르치는 교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