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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46화 (146/230)

한결 편해진 모습에 감사 인사를 하고 마법학부 교실로 가려는 순간.

“아, 형제님?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네? 뭔가요 헬레나 님.”

헬레나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설마 벌써 일전에 부탁드린 마지막 수녀복이….”

“그건 아직입니다! …대신 일전에 말씀하셨던 던전 관련 이야기가 결론이 났답니다.”

그리 말하며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사자 형상의 메달리온.

정의로운 광명 교단의 심볼이다.

“키클로프 산맥의 동굴에서 던전 하나를 찾았습니다. 탐사 결과 레이드형 던전인 듯하여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얀델 형제님께 권유하기로 했습니다만…괜찮으실런지요?”

“오….”

레이드형 던전은 많은 몬스터를 붙잡아두기 위해 만들어진 일반적인 던전과 달리, 유난히 강한 한 마리를 가둔 던전이다.

키클로프 산맥의 동굴 속 레이드 던전이면 트윈 헤드 오우거인가.

확실히 강한 녀석이긴 하다.

일반적인 오우거라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오러 유저 혹은 중위 마법사급으로 이루어진 밸런스 좋은 파티 하나가 필요하다.

그런데 트윈 헤드 오우거라면?

머릿수를 세 배 이상 늘리거나, 오러 익스퍼트 혹은 상위 마법사급이 한명 이상 추가되어야 한다.

물론 어느 쪽이건 전투에 미친 정의로운 광명 교단이라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러니까 우리를 이런 위험한 던전에 부르는 거겠지.

일종의 자기 자랑 겸 포교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정의로운 광명을 믿으면 이렇게 잘 싸워요! 그러니 오늘 같이 예배 한번 드려 볼래요?

이런 느낌 말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레이드 던전은 변수가 얼마 없고, 여차하면 바로 도망칠 수도 있는 곳.

클리어 비율은 둘째치고 생존 확률은 가장 높은 던전이라 그런 걸 수도 있겠네.

손에든 메달리온을 바라보다 활짝 웃으며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좋죠! 그런데 저 말고 몇 명 더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네? 사람이 많아지면 지켜드리기 힘들어집니다만….”

“지시에는 잘 따를 테니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거기에 다들 한 사람 몫은 할 거예요.”

“그렇다면야…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교단에 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헬레나 사제님.”

아무리 던전이 멀어도 왔다 갔다 하는 데 방학 내내 걸리진 않을 터.

돌아오는 길에 있는 바닷가의 사교도 지부도 겸사겸사 조지고, 거기서 좀 놀다 가면 되겠지.

완벽한 방학 계획에 싱글벙글 웃으며 헬레나와 시험 잘 보라는 덕담을 나눈 뒤 마법학부 교실로 향했다.

***

데굴데굴

“이오나 등장!”

오늘도 어김없이 3바퀴를 구르고서 만세 자세를 취하는 이오나.

그 상태에서 한쪽 팔만 붕붕 흔들며 오늘의 수업 일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안녕 안녕! 다들 주말 잘 지냈어? 교수님들은 학기 평가로 어떤 시험을 낼까 고민 중이었는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탄식 소리.

시험 이야기가 나오면 한숨부터 쉬는 건 여기나 지구나 똑같나 보다.

“그래도 마법 전투 수업은 뭘로 시험 볼지 이미 정해졌으니까 미리 알려줄게! 두구두구두구….”

발을 동동 구르며 입으로 북소리를 내던 이오나가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더니 기묘한 포즈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따란! 1학년 1학기 마법 전투 과목의 학기 평가는 바로…리그 식 대련이야!”

역시 리그전인가.

사람이 많은 B반이나 C반은 토너먼트식으로 이긴 사람만 올라가며 순위에 따라 점수를 매겼다.

패자 부활전이 있긴 하지만 상대 운도 중요하긴 했었지.

하지만 사람이 얼마 없는 A반은 각자 최소 한 번씩 대련할 수 있는 리그 형식으로 시험을 보더라고.

누가 나오건 이길 자신 있는 나는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는…….

“아, 하지만 얀델 학생은 예외야!”

삐삐- 소리를 내며 머리 위로 든 팔을 교차시켜 X자를 그리는 이오나.

“어째서요?!”

“그야 저번에 결투하는 거 보니까 다른 애들은 상대도 안 되겠던데? 이길 게 뻔한데 굳이 대련할 필요는 없잖아?”

“허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길래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잠시.

“그러니까 얀델 학생은 나랑 대련하는 게 시험이야! 같은 이유로 앞으로의 수업에서도 나랑 대련하고!”

“…네?”

실전 지상주의인 이오나랑 대련?

황망한 심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이오나는 실실 웃으며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낼 뿐이었다.

“어때 어때?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이오나 교수님과의 일대일 데이트야! 좋지? 응응. 당연히 좋겠지! 감사 인사는 됐어!”

“…….”

언제나 발랄하던 이오나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얄밉게 들렸다.

대련…많이 아프겠지?

이오나는 철저한 실전주의자다.

어느 정도냐면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게 아니라, 진짜로 죽이라며 등을 떠밀 정도.

만약 타인의 피해를 자신이 부담하는 블러드 시프트 마법이 없었다면 A반은 나 빼고 전멸했겠지.

뭐…신들의 전쟁을 경험한 데다가, 이오나 본인의 목표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마는

실제로 효과도 좋고.

다만 내가 처맞는 쪽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직 1학년인 제게 교수님과의 일대일 대련은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4학년이라도 나랑 대련하기엔 300년은 이른걸? 적당히 살살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왜 저랑 대련을?”

“그야 간단하지!”

생글생글 웃던 이오나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얀델 학생. 솔직히 말해서 다른 아이들과의 대련이 도움이 되니?”

“음….”

실드는커녕, 윈드 커터 하나만 쓸 줄 알던 시절에도 A반 학생들은 내 상대가 되질 않았다.

예외가 있다면 엘리샤 정도였는데, 그 엘리샤는 지금 내 노예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대부분의 하급 마법을 익힌 것도 모자라, 던전 공략이니 사교도 토벌이니 하는 이유로 스펙업까지 됐다?

이오나의 말대로 다른 반 친구들과의 대련으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보면 되겠지.

실제로 요즘 아카데미에서는 이론을 공부하는 셈 치고, 실질적인 수련은 기숙사에서 하고 있으니까.

이오나는 사실상 수업을 날려 먹는 거나 다름없는 나를 가만 놔둘 생각이 없나 보다.

납득이 가는 이유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적당히 살살…부탁드립니다.”

“응응! 아, 혹시나 해서 묻는데 반대하는 학생 있어?”

당연한 말이지만…좋아했으면 좋아했지,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납븐 놈들.

지들이 맞는 거 아니라 이거지.

***

조금 우울한 마음으로 도착한 대련장.

다른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평소처럼 대련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홀로 몸을 풀고 있었다.

“끝났어 끝났어?”

“몸은 됐는데 마음의 준비가 아직….”

“다 됐단 소리네!”

쪼그려 앉아있던 이오나가 폴짝 튀어 오르며 일어섰다.

반사적으로 스태프와 단검을 꺼내 자세를 잡자, 이오나의 검붉은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휘어진다.

“흐응. 입으로는 아직이라고 하지만 몸은 벌써 준비됐네!”

“그거 그렇게 쓰는 말 아닙니다.”

“알아! 알아! 하지만 즐거운 수업 시간이잖아? 웃으라고 해본 농담이야!”

자신의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끌어 올리며 익살스런 표정을 만드는 이오나.

역시 외모가 깡패라는 걸까. 뒤지게 처맞을 생각에 우울해져 있었음에도 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아, 그 전에 잠시.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뭔데 뭔데? 이상한 질문은 아니지? 예를 들면 이오나 교수님의 나이라던가!”

“372 살이잖아요.”

“헉….”

귀엽다고 오리너구리를 마구 쓰다듬다가 독 발톱에 찔린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 이오나.

아니, 저번에도 비슷한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본인 나이를 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놀라는 척 하는 걸 보아 말을 돌리려는 것 같다만, 그럴 수는 없지.

“아무튼 다신 본론으로 돌아가자면…굳이 교수님이 아니어도 저랑 대련할 사람은 있잖아요?”

뒤에서 손을 흔들며 응원하는 카를라와, 팔짱을 낀 채 걱정스럽다는 듯이 지켜보는 엘리샤.

둘을 슬쩍 바라보자 이오나가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카를라는 차이가 좀 크지만, 엘리샤라면 분명 얀델 학생에게 딱 좋은 대련 상대네!”

“그럼 왜….”

“하지만 학생이 아니잖아.”

이오나가 딱 잘라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얀델 학생이 어디든 시종을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지만, 그게 수업을 참여시킬 이유는 아니야.”

“이런 부분에서는 칼 같네요.”

“맞아! 맞아! 규칙은 지켜야지! …물론 어깨너머로 보면서 배우는 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씨익 웃으며 뒷말을 덧붙인 이오나가 손을 뻗었다.

그 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빛이 나와 이오나를 하나로 엮는다.

블러드 시프트.

이제부터 내가 입는 모든 종류의 피해는 이오나가 감당하는 마법으로…대련 수업의 유일한 안전장치다.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고 덤벼보라는 뜻이겠지.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마력을 끌어모았다.

두근 두근.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른 박동. 코어의 흐름 또한 한층 격해졌다.

배운 건 바로 써먹어야지.

불 속성에 파장을 맞춘 코어가 마력을 뿜어내는 것과 동시에 스태프 위에 떠오르는 붉은 마법진.

“타오르는 불이여. 폭발하라. 파이어 볼!”

견제용으로 최대한 영창을 간략화해서 날린 파이어 볼.

속성 특화 덕분인지 간략화했음에도 평소보다 거대하고 빠른 불덩어리가 쏘아졌다.

“응응. 좋은 판단이야.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고 해도, 지켜줄 사람도 없는데 다짜고짜 큰 마법부터 쓰는 건 멍청한 짓이지.”

환하게 웃으며 팔을 휘젓는 이오나.

드드득.

그러자 땅에서 솟아오른 ㄷ자 형태로 치솟은 흙더미가 파이어 볼을 감싸 안았다.

콰앙!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 하지만 흙벽은 무사하다. 아마 안쪽을 살짝 무너뜨린 게 전부겠지.

상관없다. 이런 식일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막힐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했으니까.

파이어 볼을 던지자마자 준비했던 다음 마법의 영창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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