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의식하면 할수록 점점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각.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내 것이 아니라 카를라의 심장이고 코어라는 걸.
맞닿은 가슴, 이어진 하복부.
본래 서로 다른 사람이었으나 적어도 지금만큼은 하나가 된 나와 카를라.
그래서일까.
분명 나는 내 내면에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카를라의 코어가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박동 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코어의 강렬함은 그 빛을 더해간다.
그렇게 손 뻗으면 닿을 만큼 코앞까지 다가가자 나도 모르게 감탄이 새어 나왔다.
잘 정돈되어있지만 심장을 주변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인 내 코어와 달리, 카를라와 코어는 고리의 개수도 크기도 심지어 회전 방식마저 차원이 달랐다.
오직 묘한 동질감만이 같은 호흡법으로 만든 코어라는 걸 추측할 수 있게 해줄 뿐이네.
나도 모르게 카를라의 코어 앞에서 넋을 놓는 것도 잠시.
사근사근한 카를라의 속삭임이 나를 다음 단계로 이끌었다.
“잘했어요. 그럼 이제 제 코어에 주인님의 코어를 겹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크기도, 고리 개수도, 회전 방식도 다르지만. 그래도 겹쳐보는 거예요.”
…될까?
지금까지는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왔지만, 여기서부터는 조금 긴가민가한데.
그래도 일단 해보긴 해야지.
카를라의 코어에 집중하는 동시에, 잠시 잊고 있던 내 코어의 존재감을 천천히 부상시켰다.
떠오르는 위치는 당연히 카를라의 코어가 있는 곳.
물론 실제로 내 코어와 카를라의 코어가 겹쳐진다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미지지만.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엇박처럼 미묘하게 어긋나는 나와 카를라의 박동. 이걸 일치시켜야 한다.
심장 박동을 자의로 조정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힌트는 진작에 내 입으로 말했었다.
본질적으로는 바다의 축복 특성을 온 오프 할때와 같다.
심장의 박동도, 마나의 파장도 결국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변화일뿐.
중요한 건 내 코어와 카를라의 코어를 일체화 시키는 것이다.
순수한 마나 조작에는 시스템 보정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지만….
이 정도는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든 될 터.
팔을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레 내 코어와 카를라의 코어를 동조시키기 시작했다.
잡음, 반발, 상쇄, 왜곡 등등.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래도 요령을 알고 있었던 덕인지 어떻게든 되더라.
두근 두근.
하나 된 박동 소리. 그와 동시에 급격하게 확장되는 인지능력.
카를라의 마나 센스를 공유하며 일어난 현상이리라.
…다만 이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내가 반사적으로 카를라를 밀어내며 집중이 풀렸으니까.
“왜 기감이 아니라 오감도 같이 공유되는 거야?!”
“주인님이 느끼는 제 보지는…이런 느낌이군요…?”
내 물건에 박히는 감각 따윈 알고 싶지 않았어!
무언가 잘못됐다.
“꺄아아아아악!”
“흐읏…주인님 갑자기 그렇게 발버둥 치시면….”
“꺄악! 꺄아아악! 끼야아아아악!!”
카를라의 코어와 깊게 동조한 순간. 아주 잠깐.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기감이 아닌 오감까지 링크되어버렸다.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
“그 누구도 내게 박을 순 없어!”
설령 그게 나 자신일지라도!!
“끼에에에에에에엑!!!!!!”
“아앗! 주인님! 진정하세요! 이러시면 자꾸 비벼져서…흐읏…더 빼기가….”
결국 한바탕 난리를 치고서야 엘리샤의 도움으로 진정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카를라가 2번 정도 절정하긴 했으나….
본인은 만족하는 것 같으니 괜찮겠지 뭐.
***
“이제 좀 진정했나요 얀델?”
“응….”
추욱 늘어진 카를라를 끌어안은 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새로운 능력을 시험해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심통이 난듯한 모양새의 엘리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입꼬리를 움찔하더니 그대로 깔깔 웃기 시작했다.
“푸훗! 그게 그렇게 싫었나요 얀델?”
“그럼 좋겠어?”
“어머? 저희는 매일 당신의 그 흉악한 물건을 받아들이며 사는걸요?”
“…좀 줄일까?”
조심스레 묻자 기절한 줄 알았던 카를라가 파들거리는 움직임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매일 해주세요…전 그런 주인님의 자지가 좋으니까요.”
“카를라!”
원치 않은 역지사지 체험 때문인지 카를라의 말이 유독 감동적으로 들렸다.
“그나저나 제 보지 완전 장난 아니던데요? 이런 걸 명기라고 하는 거죠?”
뒤이어진 말만 아니었다면.
나와 엘리샤가 식겁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카를라는 농담이었다며 해맑게 웃었다.
엘리샤는 그 미소에 무어라 말하려 하다가도 이내 한숨을 푹 내쉴 뿐이었다.
“하아…아무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원래는 마나를 다루는 감각만 일체화되는 거 아닌가요?”
“헤헤. 맞아. 보통은 그렇지. 내가 주인님의 코어에 동조할 때도 오감은 느껴지지 않았거든.”
“그럼 대체 왜….”
“그야 주인님이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의심도 없는 대답.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거리는 카를라의 루비색 눈동자에 엘리샤가 말을 잃었다.
“어, 응…그렇지? 얀델이니까….”
시원찮은 엘리샤의 반응에 카를라가 팔을 휘적거리며 항의했다.
“아부 같은 거 아니거든? 진짜 그럴듯한 이유가 있단 말이야.”
“그건 나도 좀 궁금하네. 대체 무슨 이유길래?”
“간단해요. 주인님의 심장이 저보다 훨씬 원본에 가깝잖아요.”
“…응?”
이게 뭔 소린가 싶었지만 이어진 카를라의 설명은 꽤나 앞뒤가 맞아 떨어졌다.
대를 거듭하며 용의 피가 옅어진 카를라와, 선조회귀를 통해 가장 짙은 피를 갖게 된 나.
그리고 그런 나와 똑 닮은 선조가 만든 린트블룸 호흡법.
누구의 적성이 더 뛰어난지는 명백하다.
“그런 주인님이 제 코어에 동조하려 하시니 제가 할 때보다 조금 더 강력한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슨 뱀파이어 클랜도 아니고 순도 높은 피를 가진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장악력을 행사한…음….”
잠시 고민하던 엘리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드래곤도 가디언이랍시고 권속을 부렸었죠. 어쩌면….”
“…….”
어쩌면은 뭔 어쩌면이야.
애초에 내가 용의 후예라는 설정 자체가 날조인데.
내가 보기에 이것도 시스템 보정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물론 마법이 아닌 마나 조작의 영역이었던지라 직접적인 보정을 받지는 못했겠지.
하지만 꼭 마법을 시전하는 게 아니더라도 보정을 받는 요소는 많다.
무기를 잡으면 몸을 움직이는 모든 행위에 보정이 들어가는 것처럼.
특성으로서 상태창에 각인된 모든 것에 평균 이상의 기량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상태창 보정의 본질.
마나 코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래라면 아무리 카를라가 만들어줬다고 해도, 한참은 고생한 뒤에야 스스로 마나를 순환시킬 수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코어가 안착하는 순간 빠르게 안정되며 회로가 활성화됐었다.
그 대신 개인의 특징이 보이지 않는 무기질적인 느낌이라고는 하는데.
오히려 그렇기에 카를라와 동조하면서 과할 정도로 깊숙이 들어간 게 아닐까?
페이를 끌어안을 때보다, 이리스를 끌어안을 때 더 심장이 가까워지듯이.
별다른 요철이 없는 코어이기에 카를라에게 맞췄을 때 한층 더 긴밀한 동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나에 관련된 감각에서 끝나지 않고, 오감까지 공유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뭐…이 또한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지만.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두 번 다신 안 할 거야.”
“네에?! 왜요! 주인님도 아시잖아요! 그 정도로 긴밀한 연결이면 얻어가실 수 있는 것도 많다는 걸요!”
“알지. 하지만 안 해.”
“설마…?”
“응. 아까 말했잖아? 설령 나 자신이라도 예외는 없어.”
“아니이…주인니임….”
카를라가 어이없어하며 떼를 쓰긴 했지만 이것만큼은 안 된다.
내 단호한 태도에 결국 포기한 걸까. 카를라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내 쇄골에 볼따구를 비비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상체에 비벼지는 젖가슴은 덤이었고.
조금 토라진 듯한 카를라의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너무 아쉬워하진 마. 그래도 내 마나 패턴을 다른 무언가에 맞추는 느낌은 확실히 기억하거든.”
“…네?”
의아해하는 카를라.
놀랍게도 마나 패턴을 변형시키는 요령을 깨달았다는 건 사실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번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시스템 보정이 적용된 걸까?
일단 린트블룸 코어, 혹은 하위 마법사 특성에 딸린 잔기술일 테니 가능했던 것 같다.
“그냥 한번 보여줄 테니까 잘 봐.”
잠시 눈을 감고 한쪽 손을 뻗었다.
이번엔 누군가의 마나 패턴을 따라 하진 않을 거다. 그건 동조할 때나 필요한 거니까.
대신 내 마나 패턴을 조금 더 격정적으로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점점 빠르게 울리는 심장 박동 소리. 그에 따라 코어 또한 그 회전속도를 높여가며 과열되기 시작했다.
이미지하는 것은 피어오르는 작은 불씨.
“틴더.”
화르륵.
일전에 카를라가 보여준 공명만큼은 아니지만 꽤 강해진 화력.
차지 시전 없이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이를 본 카를라는 그저 입을 떡 벌렸고, 엘리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끄덕였다.
“코어를 사람이 아닌 화염 마법 그 자체에 동조시킨 건가요?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실제로 특화 마법진이나, 특화 마나 코어가 비슷한 원리니까요. 하지만 이걸 입맛대로 바꾸는 건 좀 놀랍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