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리스를 내려놓을 수는 없다.
이제 와서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하기도 힘들고, 해도 제대로 안 믿어줄 것 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것보다 이 우스꽝스러운 포옹에 실제로 내 마음이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
안 그런 줄 알았지만, 나도 꽤 압박감을 느끼고 있던 걸까.
결국 느릿하게 뻗은 손으로 이리스를 떨어뜨리는 대신 엉덩이를 받쳐 붙어있기 편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와 이리스는 한참을 찰싹 달라붙은 채로 길을 걸었다.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될 때까지.
***
“영차.”
실제로 몸이 가볍기 때문일까. 가벼운 몸놀림으로 바닥에 착지하는 이리스.
저택과 아카데미로 갈라지는 대로변에서 이리스가 피식 웃었다.
“주인이여. 그리도 아쉽다면 다른 아이들에게 안아달라고 하게.”
“뭐래.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이제 한동안 못 보겠다 싶어서 그런 거거든?”
“음. 주말밖에 못 본다는 건 확실히 아쉽긴 하구나. 주인도 엘리샤도 5일 뒤에야 볼 수 있다니.”
“거기에 슬슬 시험 기간이라 한동안은 얼굴은 봐도 같이 뭘 하긴 힘들 거야.”
“시험 기간…? 그런가. 던전을 척척 공략하는 주인이지만 아직 1학년이었구나.”
단순 전투력이라면 하위 마법사와 중위 마법사의 사이쯤 되는 나다.
아카데미 최고 학년이라도 지금의 나보다는 부족하겠지만…전투 이외의 모든 분야에서는 좀 뛰어난 1학년 수준이라 어쩔 수가 없다.
“마법을 배우면 배울수록 느끼는 건데…이거 어설프게 경지만 높인다거나 파괴력 높은 마법만 익히려 들면 안 되겠더라고. 처음엔 몰라도 나중에 가면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아.”
“오오…! 말 잘했네. 무슨 일이든 기본이 중요한 법이지. 그런 부분이라면 나나 린델하이트 영애에게 배우는 것보다 아카데미가 훨씬 도움이 될 걸세. 나도 그래서 엘리샤를 아카데미에 보냈던 거니까.”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던 이리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뒤늦게 아공간 주머니에서 사람 얼굴만 한 수정구를 꺼냈다.
“이게 뭐야?”
“연락용 수정구일세. 남는 시간에 하나 만들어 봤네. 이게 있다면 아카데미에서도 나와 연락할 수 있겠지.”
그리고는 히죽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언제든 보고 싶어지면 연락하게. 엘리샤. 너도 마찬가지란다. 설마 주인에게 홀려 스승을 홀대하려는 건 아니겠지?”
“무슨 그런 말씀을! 매일 잠들기 전에 연락할 테니 스승님이야말로 제대로 연락받으세요.”
서운하다는 듯 투덜대는 엘리샤.
잠시 두 사제가 아옹다옹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리스와 작별 인사를 했다.
“주인이 남긴 예산은 아직도 넉넉하니 가능하면 그때까지 사람 수대로 로브 세트를 완성할 수 있도록 하겠네.”
“너무 무리하진 말고. 그렇게 급한 문제는 아니니까.”
“무얼. 이미 어떻게 만들지 알고 있는 마도구를 몇 개 더 만드는 것 아닌가. 가장 큰 문제인 예산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 정도는 무리라고 할 수도 없네.”
없는 가슴을 자신만만하게 내미는 이리스에게 피식 웃어주었다.
“그럼 다행이고. …다음 주에 보자고.”
“음! 다음 주에 보세!”
아장아장 걸어가는 이리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다른 여인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우리도 이제 돌아가자.”
아카데미로.
전투도 얼마 없었고 길을 헤맨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밤 새서 던전을 돌았기 때문일까.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피로가 몰려왔다.
“…그냥 신성학부 기숙사 쪽으로 갈 걸 그랬나?”
“아무리 그래도 새벽부터 여자 기숙사는 좀 그래요 주인님….”
“뭐…비상시라면 괜찮겠지만 이젠 다 끝난 거잖아요? 피곤하다고 자는 사람 깨우는 건 안 될 일이죠.”
“그냥 해본 말이었어. 알람만 맞춰놓고 좀 쉬자.”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지 이 세상에도 자명종 비스무리한 물건이 있더라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마도구로 시간을 설정해두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그러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자연스레 내 양옆에 달라붙는 카를라와 엘리샤.
셋이 나란히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슬쩍 마력을 끌어올렸다.
“클린.”
“저희 냄새나나요 주인님?!”
“역시 그 호수의 냄새가 밴 게 분명해요! 카를라! 지금 당장 씻으러 가죠!”
언제 널브러져 있었냐는 듯 벌떡 일어나는 카를라와 엘리샤.
그런 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냄새 안 나니까 걱정 마. 그냥 바깥에 다녀왔더니 좀 찝찝해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저도 찝찝해지기 시작했잖아요! 카를라. 그쪽을 드세요. 씻는 김에 얀델도 같이 씻기죠.”
“주인님을 구석구석 마음대로…흐헤헤…좋아! 어서 가자.”
영차 영차 귀여운 소리를 내며 나를 일으키는 카를라.
엘리샤가 그런 카를라를 조금 질린 듯이 바라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도 함께 반대편 팔을 부축하기 시작했다.
“우으어어….”
괜시리 팔을 휘적거리며 좀비 흉내를 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엘리샤의 철없는 것을 보는 눈빛뿐이었다.
“아 왜! 귀찮단 말이야! 이럴 때 쓰라고 마법이 있는 거 아냐?!”
클린 마법을 걸었으니, 이론상 지금이나 씻은 후나 촉촉함 말고는 차이가 없을 터.
하지만 나만 그리 생각하는 건지 이번에는 카를라가 곤란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긴 한데요…느낌이 다르거든요. 조금 더 청량하달까…진짜 깨끗해진 기분이 든달까….”
“어지간한 비누칠보다 클린이 더 깨끗하지 않아?”
“그래서 기분상의 문제라는 거예요. 물론 주인님이 싫으시다면 저희는 따르겠지만요…제가 주인님을 씻겨드리려 했는데 아쉽네요.”
은근슬쩍 가슴을 한데 모아 강조하는 카를라.
참 알기 쉬운 모습에 허리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바로 눕긴 역시 좀 찝찝하지.”
“얀델 당신 진짜…후우.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전히 엘리샤는 철없는 것을 보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당당했다.
꼬우면 네가 주인 했어야지.
***
사람 고용하는 것보다 골렘 운용하는 게 훨씬 저렴한 아카데미답게 욕실에도 온갖 마도구가 설치되어있었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와 그 온기를 유지해주는 욕조가 바로 그러하다.
처음부터 시종 둘을 데리고 들어가는 걸 상정한 걸까. 욕조는 우리 셋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널찍했는데.
원하는 대로 목욕 중이건만 어째 카를라와 엘리샤의 표정이 시무룩하다.
“주인니임….”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이야….”
바다의 축복을 마시며 물에서도 육지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된 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잠수해도 호흡이 가능한 건 물론이고, 물의 저항감 없이 움직일 수 있으며, 젖지도 않아 뽀송뽀송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근데 그러면 목욕하는 의미가 없지.
아무리 몸을 담가도 온기 말고는 아무것도 전해지질 않으니 울상을 지을만하다.
뭐…방법은 있지만.
잠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무의식적인 제어를 풀어지며 순식간에 몸뚱이가 젖어 들었다.
“짜잔.”
그 모습에 카를라와 엘리샤가 눈을 크게 떴다.
“어, 어떻게 하신 건가요 주인님?! 원리를 알려주신 덕에 방법은 알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안 되던데요?!”
“맞아요 당신! 무의식적인 수류 조작을 어떻게 의식적으로 제어한 거죠?!”
무언가 조를 때처럼 자신의 가슴 사이에 내 팔뚝을 끼워 넣는 카를라.
엘리샤 또한 카를라에게 배운 건지 은근슬쩍 내게 가슴을 들이밀었다.
“뭐야. 이러면 내가 알려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안…되나요 주인님?”
“조금 더 필요하단 소리였지.”
슬쩍 양손을 뻗어 카를라와 엘리샤의 다리 사이로 집어넣었다.
분명 물 속이건만, 물기 하나 없이 뽀송뽀송한 보지가 반가이 내 손가락을 맞이했다.
“으응….”
“흣!”
짧은 떨림. 손끝에서 느껴지는 점점 단단해지는 클리의 감촉.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콩알을 마구 지분대며 입을 열었다.
“엘리샤의 말대로 무의식적인 걸 의식적으로 제어하는 건 꽤나 힘들어. 연습하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바로 가능한 건 절대 아니고.”
“그럼…힉!”
무언가 말하려던 엘리샤의 클리를 가볍게 손톱으로 긁어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린 이미 많은 걸 무의식적으로 하잖아? 그걸 응용하면 되지. 예를 들자면 팔을 들어 올릴 때 사용하는 자잘한 근육들처럼 말이야.”
“어…물을 조작하려는 게 아니라 물에 잠기고 싶어 해야 된다는 건가요? 팔을 움직일 때 어느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한다가 아니라, 그냥 팔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바로 그거야.”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단 말이지.
뭐, 잘난 듯이 말했다만 사실 이걸 알아낸 건 내가 아니다.
바다의 축복 특성을 얻은 뒤, 엘리샤의 개별 이벤트에서 슬쩍 언급되는 내용이지.
밤바다와 모닥불. 그리고 어깨에 기대 슬쩍 이쪽을 올려다보는 엘리샤의 일러스트가 매력적인 이벤트였다.
…방학 때 바다나 한번 가볼까?
바닷가에 사교도 지부가 하나 있으니, 헬레나도 꼬셔서 다 같이 한번 들르는 것도 좋겠다.
시간이 남으면 조금 놀다 가면 되는 거고.
속으로 성큼 코앞까지 다가온 여름 방학의 계획을 짜고 있던 것도 잠시.
“흐으…”
“삐야아….”
낑낑대던 카를라와 엘리샤의 표정이 거의 동시에 풀어지며 기묘한 소리를 냈다.
둘의 보지를 만지작대던 손끝에 애액이 아닌 목욕물로 잠긴 것을 보아 제어에 성공한 것이겠지.
물에 잠기자 조금 느낌이 다르네.
팔을 감싼 가슴은 미끄러지지 않고 착 달라붙고, 애액이 씻겨나간 보지는 미끌거림이 사라졌다.
신기한 마음에 이리저리 만지작대다가 슬그머니 손가락을 질구에 집어넣으려 했지만.
찰싹.
“나중에 해줄 테니까 지금은 잠깐 집중하게 해주세요 얀델.”
엘리샤가 입을 삐죽 내밀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쩝. 알겠어.”
입맛을 다시며 손을 떼자 그제야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스르륵 욕조 안으로 미끄러졌다.
그렇게 쇄골만 살짝 보일 정도로 깊게 몸을 담그고는, 느슨한 미소를 지으며 물장난을 시작했다.
찰팍찰팍.
다만 손이 아니라 바다의 축복으로 얻은 수류 조작을 이용한 물장난이었지만.
…저게 신기했던 거구나?
하기야. 원소 마법을 전공으로 하는 엘리샤에게 별도의 공정 없이 직접 물을 조작하는 지금의 감각은 꽤 각별하게 다가오리라.
그럼 그사이에 카를라랑 놀아볼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자.
“엘리샤도 참…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이 주인님보다 중요할 리 없는데.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제가 주인님이랑 놀아드릴 테니까요!”
말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그대로 몸을 반바퀴 돌렸다.
빙글.
자연스레 내 위에 걸터앉은 모양새가 된 카를라.
“어? 뭐야 카를라. 갑자기 하고 싶어졌어?”
그 정도로 시간이 넉넉한 건 아니라 그냥 손장난만 하려 했는데…카를라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활짝 웃으며 카를라의 골반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허리를 움직여 카를라의 엉덩이골에 물건을 비비는데.
“아뇨! 저희 공명 수련해요!”
“…지금? 같이 놀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