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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41화 (141/230)

“다 모였으면 이제 시작할게.”

잠시 방안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인어들. 그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게 죽은 중앙의 인어 공주.

그녀의 시체를 향해 스태프를 뻗었다.

“타올라라. 그리고 뒤덮어라. 이그니!”

가볍게 쏘아진 불꽃이 코어가 된 시체를 휘어감는다.

화르륵.

화염이 높게 솟아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에 열리는 파란 게이트.

“에어 포켓 준비할까요 주인님?”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조금 전에 마신 비약 덕에 물이 몸에 묻을 일이 없거든.”

“아하? 말로만 들었을 땐 저희가 어떻게 물속에서 자연스레 움직일 수 있는 건가 했는데…저희를 둘러싼 작은 에어포켓이 상시 유지되는 원리군요? 물을 약간 조종할 수 있게 되는 것도 그래서구요.”

“맞아. 그러니까 페이 선배 처음에 꺼냈던 냄새 제거 포션 좀 부탁드릴게요.”

“어…근데 후배님. 그거 결국 우리가 그 더러운 호수를 다시 헤엄쳐 가야 한다는 거 아냐?”

“앗.”

아무리 안 묻는다고 해도, 그 더러운 물속을 헤집는 건 좀 꺼려진다.

“…카를라. 그냥 에어포켓 마법 부탁할게.”

“넹.”

잠시 뒤.

슬슬 방 전체로 번지는 불길을 뒤로 하고 출구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올 때 그러했던 것처럼 공기 방울을 타고 수면 위로 부상하여 땅에 발을 디디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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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얀델

칭호: 어설픈 트레저 헌터

기초 능력

근력: 14

내구: 14

민첩: 14

재주: 15

마력: 21

특성

끝없는 마나(A)

원소 친화(B)

뛰어난 기억력(B)

평범한 무기술(D+)

린트블룸 마나 코어(C+)

하위 마법사(C)

태양신의 가호(B)

사교도 혐오(C)

약성 체질(C)

원소 조합(A)

바다의 축복(B+)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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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 정도면 당일치기로 다녀온 것 치고는 좋은 성과네.

던전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어슴푸레한 새벽이었다.

다시 저택에 들르기는 힘들겠고, 바로 기숙사로 돌아가 조금 쉬다가 수업 들어가면 되겠네.

일행들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는 활력 포션으로 버티면 되겠지.

고급 이상 포션이면 후유증도 없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남용해서는 안 된다.

포션 자체의 부작용이 없더라도, 사람이기에 생기는 문제들.

예를 들면 활력 포션의 경우 수면 패턴이 망가진다는 식의 자잘한 문제 정도는 생길 수 있으니까.

비슷한 예로는 절단된 상처를 포션으로 붙이면 한동안 환상통에 시달린다는 점이 있는데.

사제의 신성력으로 치유하면 환상통이 없는 것처럼, 피로 또한 축복을 받으면 별다른 문제 없이 싹 가신다고 한다.

…그냥 나중에 수업 들어가기 전에 헬레나한테 부탁할까.

응. 그게 좋겠다.

아무렴. 내가 이래 보여도 정의로운 광명 교단의 귀인 아닌가.

걱정거리가 하나 사라져서인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것도 잠시.

이리스가 짧은 다리를 쫑쫑쫑 놀리며 다가왔다.

“주인이여.”

“응? 왜 그래?”

“이제 와서 하는 말이다만…주인은 그 복잡하다는 미궁형 던전의 길을 전부 꿰뚫고 있더구나.”

“뭐, 그렇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조금씩 내가 아는 미래가 틀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던전의 위치와 구조였다.

이건 아무리 사교도라도 인위적으로 어쩌지 못하는 거니까.

기껏해야 던전의 존재를 숨기거나, 먼저 들어가 입구를 함정으로 도배하는 정도겠지.

그나마도 자기들이 먼저 찾은 던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고.

긍정의 의미를 담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자 이리스가 작은 머리통을 옆으로 갸웃거렸다.

“허면 조금 의아함이 남는구나. 길은 물론이요 숨겨진 보물까지 찾아낼 정도로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왜 아직까지 공략하지 않고 그대로 놔둔 게냐?”

“…….”

어, 음. 거기까진 생각 못했는데.

굳이 말하자면 클리어할 조직원이 없었다고 해야겠지. 우리가 창립 멤버니까.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으니, 최대한 그럴듯한 말로 시간을 끌기로 했다.

“던전 클리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으응?”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엘리샤와 같은 파란 눈동자를 깜빡이는 이리스.

사실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지라 그냥 되는대로 말을 이었다.

“던전을 클리어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던전을 완전히 시공간의 저편으로 날려 보내려는 것 아닌가. 가만 놔두면 시간이 오래 되서건, 사교도들의 의식 때문이건 몬스터들이 풀려날 테니.”

“그렇지. 그럼 왜 몬스터가 풀려나면 안 되는 건데?”

“왜냐니. 그야 그 많은 놈들과 싸우느라 피해도 생기고, 사교도의 전력 또한 충원되니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잠깐.”

계속되는 왜 라는 질문에 어이없어하다가도 흠칫 얼굴을 굳히는 이리스.

그리고는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설마. 그럴 리가…하지만 이게 아니면 이유가 없을 터. 애초에 음지에 숨어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리스?”

“무엇보다 주인이라면…초대 린델하이트…용의 유산…악신 토벌….”

드문드문 들려오는 혼잣말의 스케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저번처럼 알아서 해석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대체 무슨 결론을 내린 건가 싶어 조금 불안해하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초점이 돌아온 이리스가 이해했다는 듯 힘차게 끄덕였다.

“이제 알겠네. 주인은…주인의 동료와 선조였던 이들은. 진심으로 악신을 죽일 생각이었나 보군.”

“…어?”

“최대한 많은 던전을 알아두고, 공략법을 기록해두되 공략하지는 않고 가만 놔둔다. 그 모든 보상을 언젠가 악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인재에게 몰아주기 위하여. 훌륭하네. 어중간한 강자 여럿보단, 압도적인 강자 하나가 더 중요한 법이니.”

“…….”

아니 여기서 그런 결론이?

“던전의 보상이란 결국 선신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권능의 파편. 즉 신성의 조각이란 소리네. 이를 모으고 또 모으다 보면, 신에 가까워질 수 있겠지. 누더기 신성이라 신격에 이르지는 못해도 그 힘만이라면….”

“대, 대충 그런 거지.”

조금 과장된 것 같긴 한데 결론만 놓고 보면 이리스의 말이 맞다.

던전 보상을 모아 시너지를 일으키는 빌드를 짜고, 업적을 세워 스탯을 높인다.

이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최종적으로는 악신의 사도, 그리고 악신의 본체까지 쓰러뜨리는 것.

그것이 H&A의 기본 골자니까.

아무리 재능있는 이라도 그냥 놔두면 재능 있는 채로 멸망을 맞이할 뿐이다.

그래서 던전은 틈 날 때마다 꾸준히 돌아줘야 하는 건데.

“악신의 봉인은 풀려도 신은 강림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 땅에서 새로운 신을 만들어낸다….”

이리스가 어쩌다 보니 찾아낸 이유. 어쩌면 이게 H&A를 만들어 지구에 뿌리고, 나를 이 세상으로 납치해온 존재의 진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대담하고 과격하지만, 의외로 실현 가능성 있는 방법일세.”

“…그러게.”

너무 그럴듯해서 나도 진짜 그런 이유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묘한 표정으로 끄덕이는 내게서 무엇을 본 건지, 잠시 우물거리며 입을 여는 이리스.

“그리고 주인이 그 최고의 인재인 게로구나.”

“아니. 최후의 인재인 거지.”

내가 실패하면 그다음은 없으니까.

세상이 멸망하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죽으면 거기서 끝 아니겠는가.

잠시 나를 이 세상에 떨군 초월적 존재에 대한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다소 냉소적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차 싶어 무어라 덧붙이려 이리스를 돌아봤지만.

“주인이여….”

이미 늦었는지, 내 쪽을 향해 촉촉한 시선을 보내는 이리스.

무척 안쓰러운 것이라도 본 것처럼 동정심 가득한 얼굴이다.

어째 심각한 오해가 발생한 것 같아 즉시 고개를 저으려 했으나.

이리스가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움직였다.

제자리에 멈춰 서고는 양팔을 활짝 벌리는 자세.

“안아주게.”

“…뭐?”

“안 오면 이쪽에서 가겠네.”

쭉 펼친 팔을 붕붕 흔들며 오도도 달려오는 이리스.

무슨 날다람쥐라도 된 것처럼 폴짝 점프까지 하길래,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이리스를 받아들였다.

덥썩.

그러자 이리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팔다리를 휘감아 나를 꼭 끌어안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작지만 확연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부드러움.

폐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숲을 연상시키는 체향.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나 느꼈던 안심되는 체온과 부드러운 손놀림.

그토록 높다 높다를 싫어하던 이리스가 먼저 안아줘요를 시전한 것도 모자라, 내 머리를 조심스레 토닥여주기까지 했다.

“걱정 말게. 내가 주인의 반려라면, 주인의 짐 또한 내 짐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주인의 반려는 나 하나가 아니잖은가.”

“…….”

“다 잘 될 걸세. 내가 아니,…우리가 그리 만들 테니.”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자상한 목소리.

…왜 이리스가 아이 취급하지 말라는지 알 것 같네.

솔직히 좋긴 좋은데, 묘한 반발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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