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으신 분들은 항상 중요한 걸 어딘가에 숨겨놓는 버릇이 있지. 그걸 찾으면 되는 거야?”
“위치는 이미 알아요. 편협한 찬탈이 억지로 아틀란티스를 들어 올리며 잠금 마법도 같이 부서졌겠죠. 다만 그 안에 있는 상자를 여는데 페이 선배의 연금술이 필요한 거예요.”
코어가 된 인어 공주의 시체가 있는 책상. 그 근처의 바닥을 발로 몇 번 두드리자 소리가 조금 다른 부분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힘이여. 내 손이 되어라. 포스 그랩.”
내가 쓸 수 있는 염력 마법 중에서도 가장 강한 마법. 거기에 마력까지 넉넉하게 쏟아부으니, 얇은 금속 정도는 간단히 휘어지리라.
우드득.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강제로 뜯겨나가는 바닥.
그 안쪽에는 작은 상자 하나와 편지가 있었다.
슬쩍 편지를 열어보자 H&A에서 읽었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대충 자기가 아틀란티스의 제3 공주며, 몰려오는 피셔맨을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 배수로 쪽을 담당하러 왔다는 이야기.
그리고 살아생전에 못다 한 이야기가 주르륵 나열되어있었다.
조금 비장하면서도 안타까운 내용의 유언장.
하지만 중요한 건 마지막에 적힌 한 줄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넉넉했다면, 그렇게 이 비약이 완성됐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당연히 그 비약이란 상자에 들어있는 걸 말하는 거다.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함을 페이에게 건넸다.
“이 안에 만들다 만 포션이 있을 거예요. 그걸 마저 완성시켜주세요 페이 선배.”
“…레시피는 있어?”
“아뇨. 그게 있었으면 이렇게 미완성인 채로 재료만 들어있진 않았겠죠. 다만 완성된 결과가 어떤 건지는 알아요.”
영구적인 수중 호흡과, 약간이지만 물을 조종하는 능력을 선사하는 아틀란티스의 유산.
바다의 축복.
본래는 다른 종족의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를 데려오기 위해 만들려던 물건이다.
만약 바다의 축복을 마시고 물속에서 전력을 낼 수 있는 마스터급 강자들이 지원을 왔다면?
악신이 개입한 이상 아틀란티스의 멸망은 막을 수 없었겠지만, 인어라는 종족의 멸종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지만.
“여기 들어있는 포션들을 조합해 만들 수 있는 건 확실해요. 다만 그 방법은 페이 선배가 알아내야 하고요.”
“다중 조합 포션? 좀 걸릴 것 같은데…그냥 가져가서 만들면 안 되는 거야?”
“재료 중에 아틀란티스의 정수라는 포션이 있는데, 그건 여길 벗어나는 순간 효력을 잃어요.”
“그럼 어쩔 수 없네. 한번 해볼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줘.”
여러 포션을 섞어, 복합적이고 새로운 효과를 만들어내는 걸 다중 조합이라고 한다.
300년 전에는 이제 막 대두되던 이론이라 제때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오랜 전쟁과 300년이라는 시간은 연금술을 비롯한 각종 기술들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콧대 높은 고위 연금술사들이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기 시작했으니.
이제 와선 실력 좀 있는 연금술사라면 누구나 조합법을 찾아낼 정도가 된 것이다.
실제로, 페이가 바다의 축복을 만들어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페이가 바다의 축복을 만들어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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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축복】
과거. 한 종족의 명운을 걸고 만들어진 비약.
이제는 사라진 종족의 기술로, 잊혀진 장소에서만 만들 수 있는 재료가 포함되어있기에 재현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병만으로도 충분히 제 몫을 다하겠죠.
…용케도 구했네요?
-특성: 바다의 축복을 획득합니다.
-고도로 농축된 물약입니다.
-올바르게 가공했기에 별다른 부작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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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완성된 포션을 보고 있자니 절로 흘러나오는 감탄.
가끔 데려온 연금술사의 실력이 모자라거나, 운이 없어서 삐끗하면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는데.
“역시 페이 선배. 깔끔하네요. 이대로 한 모금씩만 마시면 되겠네요.”
고도로 농축된 물약이라는 게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의외로 효과는 간단하다.
본래 한 병이던 정량이 한 모금으로 변하며, 물이랑 섞으면 마이너 버전의 포션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
참 좋은 특성이지만, 그만큼 재료에 비해 만들어지는 양도 적다.
분명 여러 병의 약물을 조합했을 텐데 완성된 바다의 축복이 한 병뿐인 것도 그래서고.
만족스레 헤실대고 있자니 옆에서 페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후배님.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보통 부작용이 생긴다면 어떤 부작용이야?”
“별거 아니에요. 아가미나 비늘이 돋아나고, 최악의 경우 피셔맨처럼 머리가 생선 대가리로 변하는 정도인데….”
“별거 맞잖아?!”
에이. 외견이 변할 뿐 능력은 그대로인데 뭐가 문제겠는가.
무엇보다 나아아아중에 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도 생기고.
“그런 걸 우리한테 먹이려고 한 거야? 나, 난 잠깐이라도 생선 대가리가 되고 싶지 않아 후배님!”
“동감일세. 하이 엘프를 자칭하는 생선 대가리 마법사…? 끔찍하군.”
“스승님 말대로예요 얀델. 백보 양보해서 인어라면 모를까 어인은 좀….”
“맞아요 주인님. 그랬다가는 전 몰락 영애가 아니라 멀록 영애가 되어버리는걸요?”
멀록 영애 크랄라…조금 상상했는데 너무 무섭네. 문제없이 완성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무언가 생각난 건지, 돌연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카를라가 내 얼굴을 붙잡으며 까치발을 들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
여느 보석이 그러하듯 카를라의 루비색 눈동자 또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카를라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습 공격에는 나도 모르게 멍하니 감탄하고 마네.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를 빤히 바라보고서야 카를라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 이 비약이 얼마나 대단한 보물인지는 모르겠지만…세상에 주인님 얼굴보다 귀한 건 없어요.”
“……?”
“그러니까 앞으로 강해지려고 외모를 희생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그냥 제가 그만큼 더 강해질게요. 그만큼 더 주인님을 강하게 키워드릴게요.”
“어, 응….”
언제나 장난스레 애교를 부리거나, 헤실거리며 좋아하거나, 간곡히 부탁하는 모습만 봤지 이렇게 진지한 카를라는 오랜만이네.
“근데 너무 내 얼굴만 좋아하는 거 아냐?”
얼빠 기질이 있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어이없어하는 내 모습에 카를라가 안심하라는 듯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세요! 주인님보다 제 취향에 딱 맞는 사람은 없을 테고, 있더라도 제 눈에는 주인님밖에 안 보이거든요!”
“나보다 더 잘생긴 사람한테 뺏길까 걱정한 거 아니거든?”
하지만 저 자신만만한 장담에 흐뭇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누르며 말을 이었다.
“흠흠. 아무튼 앞으로 조심할 테니까 이제 마시자고. 한 모금이면 충분하니까 괜히 여러 번 마시지는 마.”
“넹.”
내 조심하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스르륵 멀어지는 카를라.
인벤토리에서 꺼낸 작은 컵에 한 모금 분량씩 따라 전원에게 나눠주었다.
효과는 페이가 만드는 사이에 간단히 설명해줬으니 또 말할 필요는 없겠지.
다 따르고도 몇 모금이 더 남았지만, 이건 뚜껑 닫아 인벤토리에 보관하기로 했다.
나중에 또 쓸 일이 있겠지.
투명한 비취색으로 빛나는 물약을 잠시 내려다보다 그대로 홀짝 삼켰다.
꿀꺽.
혀에 닿자마자 퍼지는 짜고 비린 바다의 내음.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청량하기까지 했지.
그렇게 퍼져나간 기운이 전신으로 뻗어나가 자리를 잡는 순간.
띠링.
【특성: 바다의 축복을 획득했습니다.】
【특성: 약성 체질에 의해 그 효과가 증폭됩니다.】
아니, 여기서 약성 체질이…?
모든 종류의 이로운 약효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나 증가시켜주는 개꿀 특성이지만.
이건 스탯이 오르는 게 아니라 특성을 획득하는 거라 발동 대상이 아닐 줄 알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태창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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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바다의 축복(B+)】
당신은 육지에서 태어났지만, 바다의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순환하는 생명의 가호가 힘을 보태기까지!
당신은 더 이상 물과 육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물속에서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이참에 지느러미 없는 인어를 자처해 보실래요?
-수중 호흡이 가능해집니다.
-소량의 액체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수중 행동, 투사체 패널티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모든 종류의 물 속성 공격 데미지가 10% 증가합니다.
-모든 종류의 물 속성 피격 데미지가 10%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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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바다의 축복은 B랭크 특성. 하지만 지금 내가 얻은 랭크는 순환하는 생명의 가호…그러니까 약성 체질의 보너스를 받아 B+가 됐다.
그냥 말만 플러스가 아닌지, 성능 또한 약간 업그레이드됐고.
물 속성 한정 강화와 내성은 원래 없던 효과거든.
예상치 못한 선물에 낄낄 웃으며 페이에게 물었다.
“페이 선배. 어때요? 어떻게 쓰시는지 좀 아시겠나요?”
“응…처음 후배님 말만 들었을 때는 물에서 전력 손실 없이 싸우기 위한 능력 아닌가 싶었는데.”
바닥에서 끌어 올린 작은 물방울을 내게 보여주는 페이.
“왜 이게 연금술사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겠어. 액체 종류라면 훨씬 세심하게 다룰 수 있어서 그런 거지? 이거라면 오차를 최소화하는 건 물론, 여기저기 활용할 방법이 있을 거야.”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슬슬 나가보죠.”
“나간다는 건….”
“코어를 부숴야죠.”
조금 딱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페이. 다른 여인들도 따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챈 일행이 내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들 아시죠? 이번 공략 보상은 페이 선배에게 가야 한다는 거.”
“그럼요 주인님. 마력 결정화라고 했던가요? 저희도 있으면 좋은 능력이지만…아무래도 페이 양에게 더 유용하겠죠.”
“음. 페이의 목적은 저번에 이야기하며 들었네. 언젠가는 소재 이상의 힘을 끌어내야 하니, 인챈트 쪽도 어느 정도는 익혀야 할 터. 결정화 능력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걸세.”
그렇다. 이번 던전의 클리어 보상은 마력 결정화.
주변의, 혹은 자신의 마력을 정제해 결정 형태로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마력을 다용도로 써먹는 마법사에게 주는게 무난한 특성이지만, 연금술사나 인챈터에게 주면 작업 효율이 크게 늘어나기도 한다.
H&A에서 본격적인 연금술사나 인챈터 플레이를 하려면 필수나 다름없는 특성이었지.
페이에게 주면 최근 연구 중이라는 마법 무구 제작에 도움이 되리라.
아무래도 우리 일행이 전부 마법사다 보니 평범한 무기는 별로 쓸모가 없거든.
차라리 이렇게 페이에게 주는 게 전체적으로는 훨씬 이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