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랫동안 혼자 산 사람. 혹은 공용어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몬스터들은 아직도 독자적인 언어를 아직도 사용한다.
“Nani zamu ya kuwa mwathirika wakati huu?”
바로 지금처럼.
물론 몇몇 몬스터는 자신들의 언어와 공용어를 동시에 구사하기에, 그들과의 대화나 던전에서 찾은 문서들로 번역을 시도한 사람도 있다.
다른 게임의 이야기지만, 용언처럼 대략적인 단어장이나 해석표를 만든 사람도 있고.
당연히 뛰어난 기억력 특성 덕에 이 또한 전부 기억하고 있는데….
“Sijui, ni mimi tu.”
응.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게임에서는 전부 텍스트로 나와서 눈으로 보고 해석하면 됐는데, 귀로 들으니 감조차 안 잡힌다.
그래도 얼추 발음 나는 대로 받아 적고 비슷한 단어를 대조해보면 느릿하게나마 해석이 될 것 같기도 하다만….
“쇼크. 쇼크. 쇼크. 쇼크.”
“hiyo?!”
“kwake!”
“booger…?”
“yak!”
내가 피셔맨이랑 대화를 나눌 것도 아닌데 거기까지 공들일 필요는 없지.
별다른 영창이 필요 없는 기초 마법 쇼크.
의외로 불 마법에 내성이 있는 놈들이지만, 전격 마법에는 약하기에 기초마법에도 꽤 큰 경직을 받는다.
부들거리며 입에서 거품을 무는 피셔맨의 목을 향해 진작에 꺼내든 단검을 쑤셔 박았다.
카각.
“엇.”
어찌어찌 박히긴 했으나 단단한 비늘 때문인 걸까. 순간 손목에 전해진 충격 때문에 단검을 놓칠 뻔했다.
맞다. 물리 내성은 좀 높은 놈들이지?
지금껏 빛나는 사자 단검을 무슨 죽창처럼 써대서 이번에도 습관적으로 휘둘러버렸네.
빛나는 사자 단검이 강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교도 한정으로 강력한 무기다.
그 외의 상대에게는 가끔 강력한 한 방이 터지는 쓸만한 단검에 불과하기에 후반부에는 효율이 떨어지는 무기고.
하위 개체인 피셔맨 워커라 내 힘으로도 뚫을 수 있는 수준이지만…이러다 손목이라도 다치면 어떻게 해.
벌벌 떠는 한 놈을 걷어차 다른 한 놈과 포갠 뒤. 마력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번쩍여라. 저는 창백한 전류일지니. 썬더 볼트.”
파지직!
““……!!””
이번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다 축 늘어지는 피셔맨 둘.
하지만 기초 마법까지는 괜찮아도 하급 마법은 안된다는 걸까.
로브의 투명화가 풀리며 내 모습이 마지막 남은 피셔맨에게 드러났다.
“binadamu!”
경악에 가득 찬 목소리.
슬슬 쇼크의 경직도 풀려가는지 가까스로 무기를 집어 든 녀석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직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창을 휘둘러봐야 얼마나 강하겠는가.
터엉!
굳이 피할 필요도 없이 미리 발동해둔 실드가 녀석의 창을 튕겨낸다.
그 틈을 타 이번엔 가면에 마력을 가득 잔뜩 불어 넣었다.
후웅.
내 마력을 받은 가면이 파르르 떨더니 즉시 기이한 파장 같은 것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거구만?
최후의 발악이 실드에 막혔다는 상황, 그리고 묘한 압박감 때문인지 쇼크에 당했을 때처럼 멈칫한 피셔맨.
녀석이 다시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엉겨붙은 바위여. 파열하라. 락 블래스트.”
허공에서 먼지 같은 것이 스태프 위에 들러붙더니, 이내 머리만 한 돌덩이가 되었다. 그리고.
쩌적.
무언가 부서지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금이 가기 시작한 돌덩이가 대여섯개의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피셔맨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퍼버벅!
“Kuumiza…!”
단말마 같은 외침을 마지막으로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진 피셔맨이 쓰러졌다.
1분은커녕 30초도 채 되지 않아 전멸한 피셔맨 4마리.
“음.”
성능 확실하구만.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긴 하다.
사실 마지막의 마법은 피셔맨 워커의 방어력이 얼마나 될지 시험해볼 생각으로 써본 거다.
흙 속성 계열 마법은 대부분이 물리적인 특성을 가지니까.
그런데 내 예상보다 훨씬 튼튼하더라고.
파편 중 하나가 머리를 꿰뚫었으니 죽은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락 블래스트 한방으로는 쓰러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비늘이 단단한 놈들이 게 껍데기 같은 갑옷까지 두르고 있으니까 그런 건가?
이 정도라면 내 수준에서의 물리 공격은 아예 안 하는 게 좋겠네.
기사학부야 오러로 몸을 강화하니 그냥 힘으로 부수고 들어가는 게 가능하겠지만…내가 그 정도는 아니잖은가.
요즘 들어 육체 스탯도 부쩍 성장하고, 빛나는 사자 단검으로 사교도 여럿을 쑤신 덕에 스스로도 가끔 착각하곤 하는데.
나는 마법사다. 엄연한 후위직이란 말이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은신을 푼 이리스가 일행들과 함께 방 안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차례 멀쩡해 보이는 나와 바닥에 널브러진 피셔맨을 훑어보고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실제로 써보니까 어떻던가 주인이여.”
“최고야. 나보다 강한 적 상대로는 좀 써먹기 힘들 것 같은데, 반대로 나보다 약한 적 상대로는 이보다 유용한 장비는 없을 것 같아.”
“흠흠. 당연한 일이네. 상위 마법사의 극에 달한 이가 예산 제약 없이 만든 아티팩트일세. 당연히 그 정도는 나와야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리스.
그 모습이 귀여워 슬쩍 비행기를 태워주려 했지만.
“어림도 없네!”
똑같은 기술에 두 번 당해주지는 않겠다는 듯, 민첩하게 내 손길을 피해낸 이리스가 엘리샤의 뒤에 숨었다.
“주인이여!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어린아이가 아닐세!”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귀여워 해주고 싶다는데.”
“상관있네! 내가 부끄럽잖은가!”
“칭찬받는 사람들은 머쓱해 하거나 으쓱해 하거나 둘 중 하나던데. 이리스 너는 머쓱해 하는 편인가 보네.”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지 않나! 말로 칭찬하게! 말로!”
“싫은데? 이리 와. 딱 10번만 높다 높다 해줄 테니까.”
“꺄아아악! 싫네! 안되네! 하지 말아주게!”
그렇게 엘리샤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추적한 끝에 이리스를 잡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약속했던 대로 딱 10번만 허공에서 흔들어주고 내려줬건만, 어째 그사이에 힘이 쪽 빠진 건지 흐느적거리며 엘리샤에게 매달리는 이리스.
“엘리샤야….”
“하아…얀델. 아무리 스승님이 귀여워도 그렇게 괴롭히면 안 되죠.”
“괴롭히다니. 애정 표현인데.”
어깨를 으쓱였지만 돌아오는 건 엘리샤의 철없는 동생을 보는듯한 시선뿐이었다.
너무해.
“그나저나 투명화랑 기척 차단도 좋았지만, 가면의 압박감도 되게 좋던데? 아까 보니까 생각보다 크게 움찔하더라고.”
엘리샤에게 머리를 비비적대며 쁘에엥 거리던 이리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으음. 나도 멀리서 봤다만 그 부분은 좀 이상했네.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었다지만 그 정도로 출력이 강한 마도구가 아니건만….”
“그냥 내가 마력을 많이 쏟아 부어서 그런 거 아냐?”
“하긴 내구성을 위해 소모 마력과 비례해 위력이 올라가는 단순한 구조로 만들긴 했네.”
“아마 마력을 많이 넣어서 위력도 강해진 거 맞을 거예요. 주인님은 워낙 타고난 마력이 방대해서 그런지 별거 아닌 마법도 마력을 팍팍 넣어서 쓰시는 버릇이 있거든요.”
“나한테 그런 버릇이 있었어…?”
“넹. 다만 주인님처럼 마력이 넘쳐나는 분에겐 오히려 더 효과적인 방식이라 따로 말씀 드리진 않았지만요.”
자기도 중위 마법사에 이르며 마나량이 확 늘고는 비슷한 방식으로 쓴다며 덧붙이는 카를라.
그 말에 조금 아리송해하면서도 납득한 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겠네. 허나 출력이 예상보다 낮은 것은 물론, 높아도 문제가 되는 것이 마도구이니 혹시 무언가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면 바로 말해주게.”
“응. 명심할게. …그런데 페이 선배는 지금 뭐하세요?”
“에? 뭐냐니. 그런 것도 몰라 후배님?”
히죽.
피셔맨 사체를 조각조각 해체하던 페이가 특유의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소재 갈무리지.”
“…….”
피투성이인 얼굴로 그런 소리 하니까 무슨 호러 영화같네.
히죽.
피셔맨의 사체를 조각조각 해체하던 페이가 특유의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소재 갈무리지.”
“…….”
피투성이인 얼굴로 그런 소리 하니까 무슨 호러 영화 같네.
영화 제목은 아마도 싸이코 패스…아니, 싸이코 페이? 대충 그런 느낌일 거다.
그렇게 내가 아연해 하는 사이.
“으흐흥~ 흐흥~”
페이는 기분 좋게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갈무리를 이어 나갔다.
단검으로 슥삭슥삭 비늘 몇 개를 떼어내고, 특이하게 생긴 장기 하나, 그리고 눈알까지 꼼꼼히 챙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페이.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분 남짓이었다.
“세상에.”
내가 루팅 펫을 데리고 다니는 거였나?
멍하니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페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부끄럽다는 듯이 목을 움츠렸다.
“후배님? 왜 그런 눈으로 봐?”
“갈무리 속도가 엄청나다 싶어서요.”
“흐흐…쥐뿔도 없는 연금술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재료 손질이거든. 후배님을 만나기 전엔 종종 몬스터 거래소에서 일했어!”
“포션 만들어 파는 게 더 낫지 않아요? 페이 선배 실력이라면 중급 포션까지는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잖아요.”
“…재료 살 돈이 없었는데?”
“아앗.”
아카데미는 학생들이 집안 사정과 관계없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식주를 넉넉히 제공해준다.
그러다 보니 가끔 페이처럼 대책 없이 전 재산을 꼬라박고, 밥만 먹으며 버티는 학생들도 나오더라.
아무튼 겨우 1분 정도라면 그리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저 소재들이 페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겠지.
무엇보다 언제 뭘 쓰게 될지 모르니 원래 제작직은 항상 다양한 재료를 많이 들고 다니는 게 좋다.
“그런데 피셔맨의 소재는 어디에 써요?”
“음…상위 개체였다면 당연히 여기저기에 전부 써먹을 수 있지만, 지금 같은 하위 개체는 사실상 용도가 정해져 있어.”
기껏 집어넣었던 소재들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페이.
“비늘은 약품처리 하면 마나가 잘 통하는 금속처럼 쓸 수 있구, 아니면 적당히 쪼개서 폭발물에 섞어 위력을 높이거나 곱게 빻아서 촉매로 쓸 수 있어. 부레랑 눈은…….”
잘 아는 분야를 물어봤기 때문일까. 페이가 조금 업 된 목소리로 주저리주저리 피셔맨이 어떻게 유용해지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그냥 들어줬겠지만, 지금은 일단 던전 공략 중이니 적당한 선에서 끊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더 알려주세요. 지금은 일단 다음 방으로 출발하죠.”
“엇…이제 조용히 할게. 헙…!”
자기 입을 틀어막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