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27화 (127/230)

콕.

“이리스 일어나.”

“으으.”

작게 흘러나오는 신음소리. 최고급 푸딩이라도 누른 것처럼 쑤욱 들어가는 볼살.

사람 볼이 어떻게 이렇게 말랑말랑할 수 있을까.

두어번 더 눌러 감촉을 충분히 맛본 뒤에야 손가락은 옆으로 미끄러뜨렸다.

노리는 것은 목덜미.

간질간질.

“…힛!”

검지 끝으로 살살 긁어주자 입꼬리를 씰룩이는 이리스. 하지만 여전히 일어날 기색은 없다.

…이쯤 되면 나도 살짝 오기가 끓어오르네.

“이래도 안 일어나? 에잇 에잇.”

“힉! 흐힛! 후아앗….”

내 손가락 놀림에 따라 이리저리 꼼지락 대면서도 꿋꿋이 감은 눈을 뜨지 않는 이리스.

일어날 타이밍을 놓친 건지, 아니면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자는 척 하겠다는 건지.

아무튼 확실한 건 간질임 정도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겠지

보들보들한 목덜미의 감촉을 느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리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을게. 정말 안 일어나?”

“우음…흠냐….”

어색하게 입을 오물거리며 잠꼬대하는 척 대답을 피하는 이리스.

“어쩔 수 없지. 이렇게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목덜미에서부터 느릿하게 손끝을 쓸어 올렸다.

목, 턱선, 입술, 뺨, 그리고 귀.

“?!”

그저 손을 얹었을 뿐인데 이리스가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감각이 예민한 엘프 중에서도, 한층 귀가 민감한 이리스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귀를 공략당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한 일.

슬금슬금 힘을 주어 이리스의 연골을 어루만지려는 순간.

“그, 그만! 그만하게 주인이여! 일어났네! 일어날 테니까! 오늘은 따로 소개할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제발 귀만은…!”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이리스.

꽤나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얌전히 귀를 내놔!”

“히에에엑!”

쪼물쪼물.

이리스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너무하네! 정말 너무하네 주인이여!”

“너무한 건 괴롭혀달라고 전신으로 주장하는 이리스 아닐까?”

“그런 적 없잖은가!”

“이 악물고 자는 척하는 사람 괴롭히는 걸 어떻게 참아.”

“주인이여…어린 아이도 아니고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는 걸세.”

“이리스 너에 비하면 난 어린애 맞지 않을까?”

“이잇…!”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불만을 표시하는 이리스.

노예 각인 때문에 투닥이는 것도 못하는 이리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발이지만….

이리스는 알까. 아직 내 무릎 위에 올라탄 상태라 말랑말랑한 엉덩이가 자꾸 아랫도리를 자극한다는 걸.

마음 같아서는 그냥 이대로 침실로 직행하고 싶지만, 아직 오늘의 주목적인 페이와의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

방방 뛰는 이리스의 허리를 팔로 휘감고, 작은 정수리는 턱으로 지그시 내리눌러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방긋 웃으며 페이에게 물었다.

“어때요 페이 선배? 이리스가 그리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는 말 이제 좀 알겠죠?”

“으응…오히려 귀여운 분이시네.”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페이. 그 반응에 이리스가 앓는 소리를 내며 속삭였다.

“끄으응…주인이여. 이제 가만히 있을 테니 놔주게.”

“그래.”

풀어주자 한숨을 푸욱 내쉬며 자세를 바로잡는 이리스.

“후으. 우선 오랜만에 보는구나 제자야. 린델하이트 영애도.”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며 화답하는 엘리샤와 카를라.

다음으로 이리스의 시선이 향한 것은 당연히 페이가 있는 곳이었다.

“반갑네. 이리스 실반 바나티스일세. 혹시 노예에게 반말을 듣는 것이 불편하다면 미안하네. 허나 주인에게도 이리 말하는 터라 다른 이에게 존대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주게.”

“괘, 괜찮아요. 이리스 님이 저보다 훨씬 연상이시고…무엇보다 후배님과 깊은 사이시라니 정령 소환 혐의도 누명이신 거죠…?”

말을 조금 더듬긴 했어도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내비치는 페이.

누가 봐도 우리 친하게 지내요 하는 모습이 참 뿌듯하다.

세상에. 페이의 사회성이 이렇게나 발전하다니.

하지만 당사자인 이리스는 곤란하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었다.

“…….”

“저기…이리스 님?”

“…….”

이제는 아예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기까지.

당연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리스가 정령을 소환하려던 건 사실이니까.

미수에 그쳤을 뿐, 진짜로 소환하기 직전이었을걸?

슬슬 심상찮음을 느낀 페이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명…맞죠?”

결국 버티지 못한 이리스가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주, 주인이여. 도와주게….”

허나 이는 달리 말하면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

드르륵-!

“히이익!”

페이가 요란스레 의자를 뒤로 빼내 거리를 벌렸다.

그 노골적인 모습에 이리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힝.”

울상을 짓는 것뿐이었다.

드르륵-!

“히이익!”

페이가 요란스레 의자를 뒤로 빼며 거리를 벌렸다.

노예 각인이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나나, 예전부터 알고 지낸 카를라와 엘리샤랑은 달리.

페이는 오로지 나 하나만 믿고 이리스에게 친해지자며 손을 내민 것 아닌가.

그런데 누명이 아니라 정말로 정령 소환 미수일 줄은 몰랐겠지.

“힝.”

노골적으로 거리를 벌린 페이의 모습에 울상을 짓는 이리스.

그런 이리스의 얇은 손목을 잡고 위로 살짝 들어 올려 항복 자세를 취했다.

마치 인형극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양새.

하지만 빈손을 들어 보인다는 유서 깊은 무해함의 어필이니 분명 효과가 있을 터!

“괜찮아요 페이 선배! 우리 집 노예는 안 물어요!”

“…주인이여. 나는 개가 아니네만.”

시무룩하게 항의하는 이리스의 목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생각해 보세요 페이 선배. 부끄럽다고 이불 안으로 숨어버리고, 자는 척하다가 간지럽힘 당해 울먹이는 사람이 위험한 사람일 리 없잖아요.”

“그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멈칫한 페이.

하지만 여전히 이리스를 보며 오들오들 떠는 것이 어지간히도 겁먹은 모양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에우렐리아 대륙에서 정령 소환을 금지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혹시 악신 같은 재앙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아예 외계의 존재를 불러오질 말자는 것 아닌가.

알기 쉽게 말하자면 세계 단위의 쇄국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정령 소환이 금지당했는데 기어이 정령을 소환하려 한다?

살인강도보다 훨씬 흉악한…굳이 말하자면 사제 핵폭탄 제작 미수범 정도의 취급을 받는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우리라.

안 그래도 소심하고 겁이 많은 페이로서는 무서울 수밖에.

하지만 나는 안다. 이리스가 정령을 소환하려 한 이유가 오로지 엘리샤를 위함이었음을.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좀 과하긴 했는데.

아무튼 사교도들마냥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려는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아…그래서….”

내 설명을 들은 페이가 조금 안심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시답잖은 이유로 칼을 꺼내든 사람은 미친놈이지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칼을 뽑은 사람은 타인의 옹호를 받는 법.

지금의 이리스가 바로 그러했다.

페이의 반응에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힌 이리스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흠흠. 하나뿐인 제자를 위해서라고는 하나, 그 방법에 문제가 많았던 건 사실이네. 내가 눈이 멀었던 게야. 허나, 앞으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안심하게.”

목에 새겨진 가시덩굴 문양의 노예각인을 톡톡 두드리는 이리스.

이에 슬쩍 내 눈치를 보는 페이에게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제가 건 몇 없는 제약 중 하나가 금지된 주제는 연구하지 말라고 한거거든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페이 선배.”

“으응…후배님이 그렇다면야.”

고개를 끄덕이며 느릿하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페이.

여전히 이리스를 힐끔대긴 해도 조금 전처럼 노골적으로 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마저 어쩌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나.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페이 선배. 손!”

“어? 에? 응….”

순간 당황하긴 했으나 순순히 내게 손을 내미는 페이.

그 위에 아까부터 잡고 있던 이리스의 손을 올려두었다.

“얍.”

“주인이여?”

“후배님?”

곤혹스러워하는 이리스와 페이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둘의 손을 한꺼번에 위아래로 흔들었다.

쉐킷쉐킷.

마치 악수라도 하는 것 같은 모양새에 페이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해도 괜찮아 후배님.”

내가 손을 놓자마자 자세를 바로 한 페이가 조금 전보다 한결 편해진 분위기로 가볍게 고개를 꾸벅였다.

“그, 그러고 보니 저는 제 이름을 아직 안 말했었네요. 페이 야른샤드입니다…앞으로 잘 부탁해요 이리스 님.”

“무얼. 같은 남자를 반려로 두게 됐으니 한 가족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나.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하네.”

“바, 반려…아직 그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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