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16화 (116/230)

“일주일 내내 도서관에서 야한 책만 찾아봐서 그런 게 아니라?”

“아니거든? 완전 열심히 조사했거든? 나름 실마리 정도는 찾았거든?”

“정말? 일단 마법진은 린델하이트 가문 양식이던 것 같던데.”

“맞아. 지금이야 몰락했다지만 워낙 유명하니까 알 만한 사람은 다들 알겠지.”

“응. 근데 그게 왜?”

“생각해 봐. 평범한 평민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제대로 된 가문 출신도 아니잖아? 하지만 재능은 뛰어나니 배움에 목말라 있을 거란 말이지.”

“노예에게 배울 정도로?”

“바로 그거야. 아마 마지막의 그건 실반 마탑 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쪽으로 조사 중이었지.”

“헤에…정말 열심히 조사했었구나? 그럼 아까부터 품에 꼭 안고 다니던 이 책도 관련된 책이겠지?”

“자, 잠깐 그건…!”

“어디 보자…제목이 핑챙 야캐욧? 세상에. 너 이런 거 좋아하니?”

“꺄아아아악! 내놔아아앗!”

이런 식으로 내가 가진 것들, 보여준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생긴 소문들이라 별로 문제 될 것도 없다.

…그나저나 어떻게 책 이름이 핑챙 야캐욧?

분명 오리의 부리와 너구리의 몸통을 가진 괴생물체를 좋아하는 작가나 쓸 법한 괴이한 소설일 거다.

가볍게 쯧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카를라. 엘리샤. 오늘 수업 끝나고 도서관이나 들르자.”

“전 주인님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요!”

“…페이 양의 공방이 아니라요? 이렇게 하루 만에 거사를 치를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저번과는 관계가 달라졌으니 한 번쯤 제대로 인사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얀델?”

“아, 그 부분은 걱정 마. 어차피 사흘 뒤가 주말이잖아? 그때 아예 이리스까지 합쳐서 저택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아하? 당신도 다 생각이 있었군요. 하긴.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엘리샤 실반 글렌시엘의 주인이니 그 정도는 당연하겠죠!”

그리 말하고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부채를 꺼내 오호호 웃는 엘리샤.

부채…정말 마음에 들었구나?

흐뭇함에 괜시리 엘리샤의 엉덩이를 토닥여주고 있자니 카를라가 은근슬쩍 내 팔짱을 끼며 밀착했다.

“주인님 주인님! 도서관은 처음 가보시는 거죠?”

“어. 대체 도서관이 어떤 곳이길래 다들 이상한 걸 배워오는지 좀 궁금해서 말이야.”

카를라도 엘리샤도 그리고 페이도.

도서관에서 하나쯤은 감명 깊게 본 야설이 있는 것 같더라고.

아무리 아카데미가 20살부터 입학 가능한 곳이라지만, 대놓고 도서관에 야설이 있다니.

사교도를 조지기 위해서건, 개인과 가문의 출세를 위해서건 아무튼 아카데미는 배움의 장 같은 곳 아니야?

H&A에도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긴 했지만, 거기서는 몇몇 설정이 담긴 책밖에 볼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용사 라힘의 전기라거나, 각 악신 교단의 특징과 계열별 몬스터라거나, 수인족의 기원 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굳이 도서관에서 볼 필요 없이 메인 스토리나, 특정 캐릭터의 개별 스토리를 진행하면 알게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미리 알면 좋지만 몰라도 문제 되지는 않는 것들.

게임을 깊게 파고드는 유저들을 위한 서비스.

대충 그런 느낌이었지.

하지만 이렇게 아카데미의 도서관이라는 소재를 방치하기 아까웠는지 제작사는 한가지 히든 피스를 준비해뒀는데.

이게 또 엄청 좋진 않아도 은근 쏠쏠하더라. 겸사겸사 히든 피스도 챙겨야지.

…지금 생각하니 그 제작사라는 곳도 참 신기하네. 대체 이 세상과는 어떤 관계일까.

지금껏 눈앞의 일에 치여 일단 덮어두던 의문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어 올린다.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H&A를 재밌게 플레이해서 꼭 닮은 세상을 만들었나?

아니면 이 세상의 출신의 누군가가 지구로 넘어간 건가?

애초에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부캐로 빙의한 건 어째서지? 상태창은 또 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답 없는 질문에 답답함 만이 쌓여간다.

하지만 그 끝에 내린 결론은 예전과 다를 게 없었으니.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이번 결투로 사교도의 계획을 크게 늦췄을 테니, 이제 그렇게 번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가장 빠른 성장 방법은 역시 던전 클리어와 업적 달성.

이리스가 있다면 어지간한 곳은 클리어 가능할 테니, 이번 주말에 페이도 데리고 적당한 던전을 하나 클리어해야겠다.

속으로 당일치기 가능한 적당한 던전의 리스트를 점검하며 찬찬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방과 후.

이제 막 도서관에 가려는데, 마법학부 교실까지 찾아온 헬레나가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형제님. 조금 늦었지만 일전에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슬쩍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수녀복 3벌이 들어있었다.

“오.”

입학한 지 이제 겨우 3달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이지만 나는 꽤나 강해져있었다.

아카데미 학생 수준이라면, 학년 상관없이 대부분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니까.

시스템 보정 덕에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강해졌지만…아직 아카데미에서 배울 건 많다.

애초에 말은 다 이기니 뭐니 해도 몇몇 예외적인 학생에게는 미치지 못하기도 하고.

카를라나 엘리샤 같은 천재들. 혹은 H&A 시절에 소위 초심자 픽이라 부르던 이들 말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헬레나 또한 그런 부류 중 하나다.

방과 후.

이제 막 도서관에 가려는데, 마법학부 교실까지 찾아온 헬레나가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형제님. 조금 늦었지만 일전에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슬쩍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수녀복 3벌이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오.”

요즘 이래저래 바빠서 나도 까먹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미소 지으며 이걸로 뭘 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도 잠시.

원래는 넉넉하게 3벌 달라고 했지만, 그 사이에 이리스와 엘리샤, 거기에 페이까지 내 여인이 되었다.

즉 한 벌이 부족하다는 상황.

내 칠칠치 못한 미소에 심란해하는 헬레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그런데 헬레나 사제님.”

“예에. 무슨 일인가요 얀델 형제님.”

“혹시. 혹시 말입니다.”

“편히 말씀하시지요. 저희는 이런 걸 주고받는 사이 아닙니까.”

수녀복이 든 상자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이는 헬레나.

내가 수녀복을 어떤 용도로 쓸지 대충이나마 짐작하고 있기에 나온 너스레겠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혹시 한 벌만 더 주실 수 있나요?”

“…헙!”

그런데 어째서인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서는 헬레나.

급기야는 자신의 신성력 주머니를 양 팔로 가리며 내게 경멸어린 표정을 짓기까지 한다.

“실망입니다 형제님.”

“왜 그러세요 헬레나 님. 잘은 모르겠지만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라니요. 제가 어려서부터 교단 안에서만 자라 바깥으로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래도 알 건 다 알고있답니다.”

대체 뭔 소리를 하려나 가만히 기다리자, 확신에 가득한 목소리로 외치는 헬레나.

“수녀복을 한 벌 더 달라는 건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을 벗으라는 소리죠?!”

“…머라구요?”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형제님께서 이 옷을 입힐만한 상대는 기껏해야 셋. 하지만 하나를 더 달라니…제 옷을 벗으라는 소리 아닙니까!”

“대체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논리예요?! 오해 맞잖습니까!”

“시치미 떼지 마시지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비슷한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또 도서관이야! 또! 대체 도서관이 뭐 하는 곳이길래!”

내 어이없어하는 반응에도 헬레나의 눈빛에 실린 경멸은 사라지질 않았다.

“제가 알기로 형제님이 수녀복을 입힐만한 상대는 기껏해야 셋입니다. 지금 양옆에 계신 노예와, 페이 자매님 이렇게 셋 말입니다.”

“아카데미 바깥에 한 명 더 있거든요?! 그래서 네 벌이 필요한 겁니다!”

“그렇다면 조금 전에 저를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건 대체 뭐였단 말입니까?”

“그냥 눈치 본 거예요! 기껏 부탁한 대로 가져오셨는데 하나 더 달라고 하니 미안해서!”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니, 아니이…!”

답답함에 가슴을 쿵쿵 두드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웃음소리.

서운함을 담아 카를라와 엘리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둘 다 허둥대는 내 모습에 실실거리긴 해도 소리내어 웃진 않더라.

설마 하는 마음으로 헬레나 쪽을 바라보자.

“흐…흐흫!”

언제 나를 경계했냐는 듯, 소리죽여 키득거리는 헬레나.

“헬레나 님?”

“아. 죄송합니다 형제님. 장난이 너무 짓궂었나 봅니다.”

“장난이요?”

내 황망함 가득한 시선에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스윽 돌린다.

“형제님께서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장난기가 들어 그만….”

“…….”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대신 한 벌 더 이른 시일 안에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어이쿠.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수녀복 한 벌에 이 정도 장난이면 당해줄 수 있다.

내 빠른 태세 전환에 헬레나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쿡쿡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제 슬슬 급한 일도 끝났으니 얼마 안 걸릴 거랍니다.”

“그럼 저야 좋죠. 그보다 헬레나 사제님께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만.”

“무슨 일이신지요?”

“저번에 말씀드렸던 정의로운 광명 교단의 던전 공략이나, 사교도 토벌에 동참하게 해달라는 부탁 말입니다.”

“아아. 그거라면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일로 형제님의 이름이 저희 교단 내부에서도 높아지고 있는 터라….”

이어진 헬레나의 말에 의하면 아직 나를 부를만한 일도 없거니와, 자기들끼리 한번 만나보겠다며 싸우고 있어서 조금 시간이 걸릴 거라나.

나를 두고 싸우는 아조씨들이라니 이게 무슨….

조금 아연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불러주시길 기다리고 있을게요.”

정의로운 광명 교단은 가장 적극적으로 싸우는 교단인 만큼, 업적작을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업적은 그대로 스탯과 특성으로 이어지니 내게는 필수나 마찬가지고.

기본적인 전투력을 갖췄으면 다음은 역시 업적작이지.

이후로도 헬레나와 간단한 잡담을 잠시 나누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도서관에 도착했다.

***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책으로 이루어진 높은 탑이었다.

“허….”

아니지. 자세히 보니 그냥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은 책장에 빼곡히 책이 꽂혀있을 뿐이었다.

모니터 너머로 볼 때는 그냥 책장인가 보다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무슨 예술 작품 마냥 장엄함이 느껴진다.

대체 도서관에 얼마나 공을 들인 거지?

천천히 높게 치솟은 원형 책장에서 눈을 떼자 그제야 도서관 내부의 자세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책장들, 앉아서 읽을 수 있도록 곳곳에 설치된 책상과 의자. 그리고 공중에 둥둥 떠다니면서 책을 꺼내오는 팔 달린 금속 구체….

“잠깐. 저건 또 뭐야?”

조금 전의 원형 책장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놀라운 것이었다면, 저 팔 달린 구체는 아예 처음 보는 녀석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