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00화 (100/230)

너무 가깝잖아.

“이 자세가 되니 갑자기 확 부끄러워지네요. …당신도 그런가요 얀델?”

“조금? 카를라랑은 자주 끌어안고 뒹굴거렸지만, 엘리샤 너랑은 그럴 기회가 얼마 없었으니까.”

기세에 맡겨 그대로 본방으로 넘어가긴 했는데 갑자기 확 어색해지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서로 익숙해질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곧장 허리를 움직이는 대신 슬그머니 엘리샤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의 그 춤. 하프엘프를 부르는 춤? 그건 대체 뭐야? 야하긴 엄청 야했는데…진짜 있는 춤이야?”

“얀델 당신은 대체 엘프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잠재적 에로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낄낄 웃어대며 억울해하는 엘리샤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품에 안기는 온기와 부드러움. 씩씩대던 엘리샤가 빠르게 진정해간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 둘만 붙어있는 모습에 소외감을 느낀 걸까.

꾸욱.

뒤에서부터 달라붙는 물컹한 감촉.

카를라가 자신의 가슴을 내 등에 꾹꾹 들이밀며 목덜미에 얼굴을 부벼온다.

“저도 끼워주세요 주인님…혼자는 외로운걸요? 방해는 안 할게요. 이러고만 있게 해주세요.”

“안 될 거 없지.”

흡사 샌드위치 같은 구도.

이쯤 되면 엘리샤가 퉁명스레 한마디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들려오는 것은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얀델. 제가 잠깐 생각을 해봤거든요?”

“뭐를?”

“하프엘프를 부르는 춤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나, 페이 양의 공방에서 괜히 주제넘게 오지랖을 부린 거 말이에요.”

“아, 그것도 있었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치자 엘리샤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저는 벌써부터 당신과 저 사이에서 나올 아이가 신경 쓰이는 것 같네요.”

“…뭐?”

“당신의 아이가 하프엘프라도 제대로 키워주실 건가요 얀델?”

“…….”

순간 엘리샤의 안에 들어간 자지가 살짝 꼬무룩해졌다.

우리 항상 피임하지 않았었어…?

“당신의 아이가 하프엘프라도 제대로 키워주실 건가요 얀델?”

“…….”

순간 엘리샤의 안에 들어간 자지가 살짝 꼬무룩해졌다.

어, 그.

우리 항상 피임하지 않았었어…?

밀착한 상태다 보니, 나도 모르게 멈칫한 게 전해진 걸까.

엘리샤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렇…겠죠. 예에. 제가 괜한 소리를 냈네요.”

노예가 된 이후로 부쩍 늘어난 틱틱거림이 아니다.

제법 진심이 담긴 것 같은 서글픈 목소리다.

이에 되려 당황한 것은 내 쪽이었다.

“아니. 잠깐. 기다려 봐. 그거 아냐. 오해야!”

“애써 거짓을 입에 담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얀델. 혼자 어떻게든 해보죠. 당신에게 피해가 갈 일은 없도록 할 테니 안심하시길.”

“정말 아니라니까?!”

자꾸만 헛소리를 하는 엘리샤의 입을 내 입으로 막았다.

“흡?!”

입술과 입술이 닿는 부드러운 감촉.

무언가를 참고 있는 듯, 미세하게 떨리는 엘리샤의 입술 사이로 조심스레 혀를 집어넣었다.

“으읍….”

혀로 엘리샤의 안쪽을 휘젓는다.

부드럽게, 다정하게.

하지만 반항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함을 담아 강압적으로.

처음에는 뻣뻣하게 굳어있던 엘리샤였으나, 이내 어설프게 호응해온다.

먼저 혀를 얽어오지는 않아도 내가 다가가면 피하지 않고 받아주는 느낌.

그렇게 한참을 엘리샤와 호흡을 나눈 끝에 천천히 입을 떼었다.

“파하….”

입술과 입술 사이로 은색 실선이 쭈욱 늘어났다가 끊어진다.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엘리샤의 한쪽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손바닥으로는 말랑말랑한 볼을, 손가락으로는 길쭉한 귀를 만지작대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제대로 키워야지. 애초에 페이 선배의 공방에서도 말했잖아? 그런 일이 있으면 제대로 책임질 거라고.”

“하지만 방금은….”

“조금 전에는 다른 이유로 놀란 거야.”

사실이다.

엘리샤가 임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지금’ 임신했을지도 모른다는 게 신경 쓰였다.

그랬다면 아이를 가진 채로 부활한 악신들과 대전쟁을 치러야 하지 않은가.

“이제 곧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 찰 거야. 사교도 놈들이 준비해온 혼란 말이야.”

“그건….”

“난 그 안에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 그래서 식겁했던 거고.”

“하지만 모든 게 끝난 뒤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어…저기 그럼 얀델 당신의 말은….”

“맞아. 하프엘프 목장은 지금이 아니라 몇 년 뒤에 가동하겠다는 소리였어.”

“목장이라니…그렇게까지 많이 낳을 생각은 없거든요?”

“그건 엘리샤 네가 아니라 내가 정하는 거야.”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장난스러운 어조로 어깨를 으쓱이자 픽하고 웃어버리는 엘리샤.

그 모습에 뒤에 있던 카를라가 살짝 토라진 것처럼 앵겨오기 시작했다.

“주인님 주인님. 저는요? 저는 저도 주인님의 아이를 낳게 해주실 건가요?”

“혼자서 린델하이트 가문을 다시 부흥시킬 만큼 낳을 테니까 각오해.”

“허억…오히려 좋아요!”

싱글벙글 내 목덜미에 키스를 퍼붓는 카를라.

작은 새가 쪼아대는 것 같은 그 감촉을 즐기고 있자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근데 갑자기 이 이야기는 왜 꺼낸 거야?”

“말했잖아요? 저와 당신 사이에서 나올지도 모르는 아이가 신경 쓰여서….”

“신경 쓰여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겠지. 적어도 착실히 피임에 신경 쓰는 지금은 말이야.”

“…….”

엘리샤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이내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이 맞아요 얀델. 지금 꺼낼 말은 아니었죠. 그래도 이유는 있답니다.”

“이유라면 어떤?”

“…당신은 제 마나 코어를 그대로 남겨두었어요. 그게 제게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함이건, 제 능력이 필요해서건, 어쨌든 저를 마법사로 두겠다는 결정을 내린 거죠.”

그 말대로다. 미래의 대마법사를 오입질 좀 하겠다고 날려버릴 수는 없잖은가.

“하지만 제가 계속 마법사로서 성장한다면…분명 언젠가는 이 노예 각인을 스스로 해제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예요.”

“뭐, 고위 마법사가 되면 마력 족쇄라도 채워져 있는 게 아닌 이상 벗어날 수 있겠지.”

그때가 되면 엘리샤라는 또 다른 족쇄에서 벗어난 이리스도 덩달아 노예의 굴레를 벗어던질 것이다.

“노예 각인에서 해방된 건 좋아요. 하지만 그다음은 어떻게 하죠?”

“…뭐?”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게 엘리샤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고위 마법사가 된다면 어딜 가나 대접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정령 소환에 연루된 마법사를 써줄 곳은 얼마나 있을까요? 노예 각인이 사라져도 제 신분은 여전히 노예 아닌가요? 무엇보다….”

알몸으로. 그것도 아래가 연결된 상태에서 이어지는 엘리샤의 고백.

“무엇보다 당신에게 바친 제 정조는 어떻게 되는 거죠? 다시 돌아오나요? 아니면 누군가 정상참작 해주기라도 하나요?”

“아.”

엘프는 정조 관념이 강하다. 에로프가 되는 걸 막기 위한 본능적인 끌림이라지만, 어쨌든 순결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엘리샤는 자기 자신에게도, 동족에게도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제가 노예 각인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고위 마법사가 되어 세상의 대부분을 내려다보게 된다고 하더라도.”

툭.

카를라가 있는 곳의 반대쪽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엘리샤.

“저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죠.”

“그건….”

“하지만 그게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랍니다.”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린 엘리샤가 코와 코가 맞닿을 정도고 가까운 거리에서 살포시 미소 지었다.

“얀델. 당신이 있잖아요.”

“어?”

“제 처음을 가져가고, 마법사로서의 저를 필요로 해주며, 여인으로서의 저를 아껴주는 사람. 누구보다 제 가치를 잘 알아주는 사람.”

“…….”

“당신이 있잖아요.”

순간 뒤통수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가.

이래서 엘리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호의적으로 변한 건가.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는 걸 넘어 적극적으로 뭔가 해주려고 한 게.

단순히 노예라는 신분에 순응하고 책임을 다하려던 것이 아니라, 그다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그건 마치….”

“네. 얀델 당신을 미래의 반려로 생각하고 있다는 소리랍니다. 어디까지나 제 안에서의 이야기지만…아무튼 그래서 조바심을 냈던 것 같네요.”

생각도 못 했던 이야기에 벙찐 나를 재촉하는 엘리샤.

“당신은 어떤가요? 만약 당신이 저를 받아주신다면, 저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당신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지요.”

“…그렇게 말하니 무슨 정략혼 같네.”

“어머? 대충 비슷한 거랍니다. 저는 당신에게 제 모든 것을, 당신은 제게 행복한 삶을. 알기 쉽고 간단한 거래죠?”

키득대는 엘리샤의 뒤통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길쭉한 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나쁘지 않네.”

“읏!”

갑자기 귀에 닿는 입술의 감촉과 속삭임 때문인지 움찔하는 엘리샤.

그런 엘리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꽉 붙잡았다.

“엘리샤 네 몸은 노예로서 팔린 순간부터 내 것이었지만…이젠 다른 모든 것도 전부 내 거야. 네 손으로 바쳤으니까.”

“엇, 그으…네.”

말을 더듬는 엘리샤의 귀에서 입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대신 나는 최선을 다해 네 삶을 책임지는 거고.”

“바로 그거예요….”

엘리샤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엘리샤의 귀를 가볍게 깨물며, 손으로는 등의 오목한 골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다.

“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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