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그러려고. 내가 린트블룸 호흡법을 익혔으니, 나중에 가면 원소 조합에 공명까지 섞을 수 있으려나?”
다시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
어째서인지 이리스와 엘리샤의 반응이 좀 미묘했지만.
“얀델…당신 단순히 카를라에게 마법을 배우는 걸 넘어 호흡법까지 익혔나요?”
“응? 말했잖아? 나도 마나 감응 불능 체질이어서 그거 고치려고 배웠지.”
“맞다. 그랬었죠. 린델하이트 가문의 호흡법에, 비전, 그리고 마법 스타일까지라….”
“카를라 양. 자네는 다 생각이 있었구만?”
“그게…헤헤….”
뭔데. 왜 너희만 아는 이야기 해? 나도 끼워줘!
“스승님. 저희 없이 실반 마탑이 잘 굴러갈까요?”
“5년 안에 그냥저냥한 삼류 마탑이 된다는 것에 전 재산을 걸 수도 있네. 땡전 한 푼 없는 신세지만.”
“이참에 한 번 올인 갈까요 스승님?”
“언젠가는 주인이 우리를 풀어줄 것 같다만…나쁘지 않구나. 사실 지금 시점에서는 별다른 선택지도 없고.”
서로 짧게 대화를 나누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제.
그 표정이 제법 음흉하다.
이에 기겁한 카를라가 나를 보호하듯 와락 끌어안으며 외쳤다.
“아앗…다들 멈춰! 내 주인님에게 무슨 짓을 할 생각이에요?!”
“후후. 이젠 우리 모두의 주인이라네.”
“마법 스타일은 그렇다 쳐도 전투 스타일은 제 쪽에 더 가깝지 않나요? 아, 설마…카를라 당신의 욕심으로 얀델의 앞날을 가로막을 생각은 아니겠죠?”
“그윽…으그극….”
엘리샤의 말이 결정타가 됐는지 이를 갈면서도 천천히 비켜서는 카를라.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이리스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인이여. 나는 아카데미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나? 걱정 말게. 그 전에 어떻게든 기초는 익힐 수 있게 해줄 터이니.”
“아.”
뭔진 모르겠지만, 교육열에 불타는 이리스의 눈동자를 보자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카데미에 도착할 때까지 쉴 틈이 없다는 걸.
…야스할 틈은 있겠지?
“어흐흑…카를라아…나 힘들었어….”
“에구구. 우리 주인님 많이 힘들었어요? 괜찮아요. 이제 다 끝났잖아요.”
품에 안겨 우는 소리를 내자, 이걸 또 장단 맞춰 토닥여주는 카를라.
눈물을 닦는 척. 카를라의 푹신한 가슴에 스윽 얼굴을 비비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뻘쭘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는 이리스와 엘리샤.
“있잖아.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묻는데, 요 며칠간은 그냥 하극상 아니었을까?”
“하, 하극상이라니 말이 심하구나 주인이여! 나는 그저 성심성의껏 가르쳤을 뿐이네!”
“맞아요 얀델! 저도 스승님도 그저 당신이 잘되길 바랐을 뿐이랍니다! 이건…그거에요! 입에 쓴 충언 같은 거요!”
그리 말하는 와중에도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둘.
그래. 너희도 아는구나.
도중부터 엘리샤도 끼어든 탓에, 지난 3일간 좀 과했다는걸.
이리스에게서는 원소 조합을, 엘리샤에게는 원소 마법 전반의 이해와 요령을.
마차 안에서는 물론이요, 숙소에서도 쉴 새 없이 가르치는 탓에 잠도 제대로 못 잤을 정도였으니까.
뭐…그래도 필요한 일이긴 했다.
시스템 보정은 어디까지나 상태창에 각인된 것들에 한해 적용되는 것.
그리고 내겐 스킬 포인트를 투자해 스킬을 습득하는 능력 같은 건 없다.
적어도 한번은 확실하게 익혀, 자력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보정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재능있는 신입생 칭호의 학습 속도 증가 버프가 사라진 게 아쉬웠으나…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없으면 없는 대로 노오오력을 해야지.
무엇보다 이리스의 말대로 이리스를 아카데미로 데려갈 수 없으니, 돌아가기 전에 어떻게든 기초를 떼는 게 베스트기도 하고.
…근데 정말 힘들었다.
언제든 벗길 수 있는 노예를 셋이나 끼고도 야한 일 한번 제대로 못 할 정도로 바빴으니까.
결국 올라오는 서러움에 엘리샤를 째릿 노려보며 선언했다.
“이리스 몫까지 네가 고생 좀 해야겠어.”
“네?! 또 저한테 무슨 짓을 시키려는 건가요 당신!”
“흐흐…그 포동포동한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낮잠을 자주마.”
“으응? 그 정도라면야….”
“그리고 내 머리에 눌린 탓에 저려오는 다리를 마구 주물러야지!”
“대체 왜 그렇게 저린 다리를 괴롭히는데 집착하는 건가요?!”
“당연히 비명소리가 재밌어서지.”
“익! 이익…!”
잇소리를 내는 엘리샤의 모습에 키득거리고 있자니, 노예 가족 중 부인 쪽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어…주인어른? 엘리샤 아가씨도 이리스님도 나쁜 뜻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 겁니다.”
내가 머리만 긁적여도 벌벌 떨던 이전과는 확연히 편해진 모습.
며칠간 내가 다른 이들을 대하는 모습에 조금 안심한 것이리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하는 건 여전하지만.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도 정말로 화가 났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단순한 투정이지. 이거 봐봐.”
창밖 멀리로 보이는 아카데미를 배경 삼아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틴더.”
현상을 일으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기초 마법.
기껏해야 성냥불보다 조금 더 크게 흔들리는 불꽃이 허공에 피어오른다.
원소 마법은 직관적이다. 원소라는 이름처럼 자연을 이루는 요소를…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다루는 마법이기 때문.
실제로 불, 물, 바람, 땅, 번개. 그 무엇 하나 생소한 것이 없다.
이미 존재하며 경험해본 것을 불러내는 것이니 익숙하고 직관적 일 수밖에.
원소 마법이 가장 흔한 마법인 이유는 바로 그래서다.
마법은 결국 상상에서 나오는 것.
이미지가 확실하게 잡힌 것일수록 사용하기 편한 건 당연한 일이리라.
하지만 그렇기에 원소 마법은 변형이 어렵다.
불은 뜨겁고 형체 없이 일렁이는 것이어야 하며, 물은 차갑고 계속해서 흐르는 것이어야 한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불로 정화한다느니, 물로 치유한다느니 하는 것도 있긴 하다.
단순한 현상이 아닌. 인위적으로 덧붙인 개념을 활용하는 방법인데…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아무튼 원소 마법의 이점이었던 익숙함이 선입견이 되기에, 원소 마법은 시전은 편하지만 응용은 어려운 마법에 속한다.
하지만 원소 조합은 단순히 응용 수준이 아니다.
각 원소의 구성 요소를 완전히 해체하고, 원소 친화력으로 이를 억지로 이어 붙이는 것.
이리스가 마지막에 보여준 폭발도 억지로 이어 붙인 것들을 놓아주자, 자연스레 일어난 반발이라 했지.
그저 주던 힘을 놓았을 뿐이니 마력의 소모가 적었던 것이다.
대신 엘리샤가 말한 대로 그만큼 난이도도 있고, 집중력 소모도 장난 아니었지만….
이젠 아니다.
힘들긴 했지만 어찌 됐든 성과는 확실했거든.
손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자.
화르륵.
일변하는 화염의 색.
주홍빛이 아닌, 진청색으로 타오르는 틴더.
심지어 불꽃의 열기는 어디로 갔는지 손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차디찬 냉기뿐.
화염의 타오르는 형태에 물 속성 특유의 찬 성질을 끼워 넣은 원소 조합이다.
차가운 불.
보기엔 멋있지만, 어디에 써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
그래도 이제 시스템 보정을 받아 간단히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엘리샤도 이건 신기했는지 고개를 요리조리 갸웃거렸다.
“언제 봐도 대단하네요. 처음에는 좀 헤매긴 해도, 어설프게나마 한번 성공하면 바로 감을 잡다니.”
“엣헴 엣헴.”
“…왜 카를라 당신이 우쭐대는 거죠?”
아르릉 가르릉 투닥대는 카를라와 엘리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틴더를 마차 바깥에서 터뜨렸다.
펑!
하위 마법에 버금갈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강렬한 폭발.
여기까지 전해지는 냉기를 느끼며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외쳤다.
‘상태창.’
띠링!
======================
【원소 조합(A)】
당신은 원소를 제 뜻대로 해체하고 조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단하긴 해도, 그 자체로 강력하지 않습니다.
어떤 원소를 어떻게 조합하여 원하는 현상을 일으킬지. 그건 당신 하기 나름이랍니다.
어디 한번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세요!
-원소의 형태와 성질을 임의로 조합할 수 있습니다.
-위력은 원소 마법의 숙련도의 영향을 받습니다.
-특성: 원소 친화가 없으면 비활성화됩니다.
======================
고정형 A랭크 특성. 여기서 더 성장하지 않는다 하여 아쉬워할 건 없다.
S랭크쯤 되는 특성은 천무지체나 드래곤 하트 같은 말도 안 되는 종결급 특성 뿐이니까.
A랭크면 사실 평범하게 구할 수 있는 특성 중 최고라고 보면 된다.
괜히 비전이 아니네.
흐뭇하게 웃고 있자니, 언제 내 눈치를 봤냐는 듯 나보다도 더 흐뭇한 표정의 이리스가 내 어깨를 통통 두드려 주었다.
안마…인가?
주먹도 작고 힘도 약해서인지 별로 시원하진 않다.
귀여우니 그냥 놔뒀지만.
“이젠 완전히 능숙해졌구나. 수고 많았네 주인이여.”
“뒤늦게 아부해도 변하는 건 없어. 이번에 못 한 만큼 다음 주에 몰아서 할 테니까 각오하라고.”
“아부라니. 진심이라네. 카를라 양이 왜 주인에게 푹 빠졌는지 조금 알것 같구만.”
“설마 이거 에두른 고백이야? 쑥스러워라…그래도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해야 하는 거 알지?”
“물론이네. 제대로 기억해두고 있으니 걱정 말게.”
“뭐, 어련히 잘하겠지. 탑주 자리를 카드 게임으로 따먹은 것도 아닐 테니까.”
단, 듀얼은 예외다.
속으로 그런 헛소리를 하며 키득대는 사이.
문득 창밖을 바라보자, 저 멀리에 보이던 건물들이 성큼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드디어 도착이네.
오랜만의 아카데미다.
***
라힘 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구한 것은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