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스노우 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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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품 안에서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잠든 카를라.
카를라를 따라 이대로 한숨 더 자는 것도 괜찮겠지만…그 전에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상태창.’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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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도 간부 처치!】
혼탁한 합일의 대주교 에드메렉을 쓰러뜨렸습니다!
첫 던전 실습에서 해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업적!
당신은 아카데미의 자랑이요, 모든 선신 교단의 귀인입니다!
하지만 너무 들뜨지는 마세요.
당신의 유명세는 다른 악신 교단의 귀에도 들어갈 것입니다.
또한 본래의 운명을 한 번 더 비튼 대가는 좋은 의미로건 나쁜 의미로건 상당할 테니까요.
아, 그래도 정의로운 광명은 당신이 다시 한번 자신의 송곳니로 사교도를 죽인 사실에 무척 기뻐하고 있답니다.
모든 스테이터스 성장.
특성: 태양신의 가호(C)가 한 등급 성장합니다. 정의로운 광명 교단과의 우호도가 한층 더 상승합니다.
아카데미와 선신 교단의 우호도 상승.
혼탁한 합일이 당신을 저주하며 공적 등급을 높입니다.
다른 악신 교단의 경계도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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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
에드메렉을 지금 시점에서 처치한 게 이렇게 엄청난 일일 줄은 몰랐는데.
태양신의 가호가 성장한 거야 얼추 예상했으니 그렇다 쳐도, 모든 스테이터스 성장은 예상치 못했다.
최대 스탯이 30인만큼 스탯 성장에는 비교적 짜게 구는 시스템이었으니까.
물론, 성장했다 하여 수치가 반드시 오르는 건 아니다만…그래도 성장치는 쌓이지 않았는가. 그것도 전 스탯이.
마지막으로는 피에트로 때도 봤던 내용.
여기서 죽을 운명이 아닌 이를 죽였다느니, 혼탁한 합일이 나를 적대하느니 하는 내용이 마치 나를 겁주려는 것 같긴 한데.
어차피 크게 보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 확실하고, 혼탁한 합일이 날 죽이고 싶어 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라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일단 기억만 해두고 다음 알림창으로 넘어갔다.
【사교도 고위 간부를 쓰러뜨렸습니다!】
【업적 달성! 새로운 특성 ‘사교도 혐오’ 를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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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사교도 혐오(D)】
당신은 사교도의 계획을 여럿 박살 낸 것도 모자라, 기어이 고위 간부까지 척살했습니다.
누가 봐도 당신은 어엿한 사교도 혐오자입니다!
물론, 사교도들도 당신을 혐오하겠죠.
사교도에게 가하는 모든 데미지 5% 증가.
사교도에게 받는 모든 데미지 3% 증가.
※이 특성은 비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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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도 혐오인가.
고위 간부로 통하는 대주교급 이상을 죽이면 특정 확률로 얻는 특성인데…운 좋게 한 번에 얻었나 보네.
사교도를 많이 죽이거나, 간부를 죽일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며 최종적으로는 A급까지 가는 특성이다.
패널티도 있고 빛나는 사자 단검처럼 몬스터에게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 없이 막 쓸 수 있는 특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쯤 있어서 나쁠 것 없는 특성이다.
활성화/비활성화 설정도 가능하고.
일단 지금은 비활성화로 돌려놓은 뒤, 마지막 알림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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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의 가호(B)】
하늘 위의 가장 빛나는 존재. 태양의 주인이 당신에게 자신의 광휘를 나누어 줍니다.
태양 빛을 받는 동안 체력 회복 속도와 마력 회복 속도가 250% 증가.
광 속성 데미지 15% 증가.
광명의 교단의 우호도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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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이거는 아까 봤던 태양신의 가호 랭크업 알림이네.
벌써 B랭크에 도달한 건 놀랍긴 한데,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효과만 좋아진 거라 대충 보고 넘겼다.
이제 이 알림만 닫으면 상태창이 나올 터.
사실 지금이 제일 떨린다.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특성이 나왔다고 했던가?
실습 던전은 H&A에서는 시스템적으로 클리어가 불가능한 던전이었다.
그런 실습 던전의 클리어 보상? 심지어 특성?
물론 최하급 던전의 보상이니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잖은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마지막 알림을 닫았다.
그제야 시야에 들어오는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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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얀델
칭호: 어설픈 트레저 헌터
기초 능력
근력: 12
내구: 11 > 12
민첩: 13
재주: 14 > 15
마력: 18 > 19
특성
끝없는 마나(A)
원소 친화(B)
뛰어난 기억력(B)
평범한 무기술(D) NEW!
린트블룸 마나 코어(C)
하위 마법사(C)
태양신의 가호(B)
사교도 혐오(D) NEW!
약성 체질(C)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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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탯이야 슬슬 올라갈 때가 된 녀석들이 올라갔다.
가장 수치가 낮은 내구와, 저번 서열전 보상 때의 성장치가 남아있던 재주. 그리고 집중적으로 수련하던 마력이 올랐으니까.
뭐, 스탯은 본래 높아질수록 올리기 힘들어지고.
마력 스탯 18은 나름 중위 마법사 수준의 스탯이다 보니, 순수 수련과 업적만으로 하나 올린 게 뿌듯하긴 한데….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역시 특성 창이리라.
“아니 여기서 무기술이?”
이건 진짜 오를 줄 생각도 못 했다.
3년간 동네 양아치들이나, 내 뒤통수를 치려던 용병들과 엎치락뒤치락 하며 얻은 허접한 무기술 특성.
하지만 마법을 배운 뒤로는 그냥 몸놀림을 좋게 만드는 것 외에는 별로 써먹을 일이 없었는데.
…어라? 그런 것 치고는 좀 많이 치고받고 싸우지 않았나?
대련 때도 허구한 날 단검으로 베고, 스태프로 후려쳤으며, 에드메렉은 아예 단검으로 마무리를 가하기도 했다.
마법 실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법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마법사답지 않은 전투 방식이었으나, 덕분에 살아남았으니 뭐라 하기도 애매하네.
아무튼 무기술 특성은 워낙 낮은 등급이었으니 오를 만도 하지.
뜬금없이 시선을 잡아끄는 무기술에서 고개를 내려 대망의 클리어 보상 특성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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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성 체질(C)】
당신의 몸이 약빨을 더욱 잘 받게 됩니다.
물론 좋은 것만 골라 증폭시키니 안심하시길!
치료제, 포션, 영약의 효과가 10% 증가합니다.
순환하는 생명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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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내용의 텍스트.
덕분에 처음 보는 특성임에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체질이란 이름이 붙은 걸 보아 성장형이 아니라 완성형 특성인 것 같은데…그렇다 해도 전혀 아쉽지 않은 효과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약물의 효과가 10%나 오른다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뒤로 갈수록 그 수치가 크게 다가오는 특성이다.
회복량이 100에서 110이 되는 것과, 10,000이 11,000이 되는 건 전혀 다른 법 아니겠는가.
심지어 이게 영약 종류에도 적용이 된다니.
마침 실습 던전의 히든 피스인 백화된 마력초를 영약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잘됐네.
정의로운 광명이 전투를 숭상하는 신이었다면, 순환하는 생명의 특기는 치유다.
이런 비전투 계열 신들은 봉인한 던전이 얼마 없는 대신, 보상이 동급의 특성이나 아이템에 비해 후한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로 유용한 특성은 얼마 없다.
아니, 이런 개꿀 특성이 실습 던전에 숨겨져 있었어?
물론 실습 던전이 지금껏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를 생각하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만….
그래도 괜찮다.
결국 내가 모든 악신을 쓰러뜨리면 될 일 아닌가.
“…….”
거기까지 생각이 흘러가자,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부담감에서 눈을 돌리고 게임에서 몇 번이나 엔딩을 봤으니 이번에도 문제없을 거라며 나를 다독여 왔다.
실제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의 3년간 겪었던 위협은 공략 지식과 골드의 힘으로 헤쳐나올 수 있었고.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동네 양아치나, 신의 없는 용병, 욕심 많은 귀족 따위와 사교도는 질적으로 다른 상대니까.
떨쳐냈다 생각했던 이 세상을 향한 원망. 날것 그대로의 폭력이 주는 공포. 내가 알던 시나리오를 벗어나기 시작한 세상.
순식간에 불안함이 심장을 잠식해온다.
이게 나다.
플레이어라는 껍데기에, 고인물이었다는 허세에 숨지 않은 본연의 나.
이런 내가 한번 세상을 멸망시킨 적 있는 악신들은 물론, 그 원흉까지 쓰러뜨려야 한다니.
쉽지 않겠지.
그래도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게 시스템과 H&A의 공략 지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다시금 각오를 다지는 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팔에 힘이 들어갔던 걸까. 품에서 느껴지는 카를라의 존재감이 한층 선명해졌다.
말랑말랑하면서도 따스한 감각. 목덜미를 간질이는 숨결과 청량한 체향.
“아.”
내 몸을 바짝 긴장시켰던 불안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자 애착을 품게 된 여인.
카를라는 어느새 이렇게나 내 안에서 커져 있었다. 그저 끌어안는 것으로 온갖 불안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실제로 에드메렉을 쓰러뜨리고, 모든 일이 끝났다 여기는 순간 본능적으로 카를라를 떠올리지 않았던가.
이를 자각하자 괜시리 카를라가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살짝 벌어진 연분홍빛 입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고, 서로의 호흡이 뒤섞인다.
혀는 넣지 않았으나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진한 입맞춤.
당연히 이제 막 잠든 카를라의 눈이 떠질 수밖에.
“으응…주인님? 제가 잠들었었나요?”
“잠깐 눈 붙이긴 했지. 혹시 많이 피곤해?”
“아뇨. 그냥 오랜만에 주인님에게 안기니 편안해서 저도 모르게 잠든 거예요…헤헤.”
조금 부끄럽다는 듯한 미소를 짓는 카를라.
그 모습에 무언가 확 끓어 올랐다.
“카를라.”
“네?”
“역시 여기서 한판 할까?”
“…다 들킬 테니 안 된다고 한 건 주인님이잖아요?”
그건 그래.
나도 모르게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던 걸까. 카를라가 잠시 고민하더니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이불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이불로 입가를 가린 채,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이불 안쪽에서 만지는 것 정도는…괜찮지 않을까요?”
“오.”
그건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매혹적인 타협안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이오나가 있었다.
“안녕! 안녕! 어젯밤은 즐거웠어?”
“???”
교수님이 왜 저랑 같은 침대에 누워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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