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이변(8)
* * *
나는 살면서 굶어본 적이 그다지 없다.
지구에서도 먹고사는 데 문제는 없었고, 에우렐리아 대륙에서는 더더욱 금전적으로 풍족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느껴지는 이 허기는 전율스럽기까지 했다.
“씨발.”
배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허탈함. 전신을 잠식하는 무기력함. 버석거리는 입 안. 흐릿한 시야.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에 대한 강렬한 식탐.
이 갑작스런 변화에 짐작 가는 것은 있다.
끝없는 기아의 저주.
에드메렉이 마지막 페이즈에 진입하며 랜덤한 파티원 한명에게 거는 디버프로, 순식간에 해당 캐릭터의 스태미나를 1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모든 전투행위에는 많든 적든 스태미나가 소모되기에 사실상 무력화 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강력한 저주.
게임에서는 그냥 좀 귀찮은 패턴 중 하나였으나, 실제로 당해보니 진짜 정신 나갈 것 같네.
단순히 힘이 빠진다는 게 아니라 공복 상태가 된다는 점이 특히 괴롭다.
근데 그게 왜 지금 나와…?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어이없음과 억울함.
그래도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고 인벤토리를 열어 활력 포션을 꺼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물약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지만….
이건 진짜 배고픔이 아니다. 음식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허기가 아니라는 소리다.
차라리 게임에서 그랬듯 활력 포션으로 스태미나를 회복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겠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포션을 입에 가져다 댔으나…에드메렉은 이를 가만 놔두질 않았다.
“살점을 바치나이다.”
“아.”
작지만 선명하게 들려오는 에드메렉의 목소리.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반투명한 아가리.
내가 포션을 한 모금 마시는 것과 동시에 에드메렉의 허공 포식이 내 몸을 덮쳤다.
까드득!
날카로운 이빨을 미리 걸어둔 실드가 막아섰다. 하지만 이는 정말 잠시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무력하게 부서지는 보호막.
우웅
곧이어 차례차례 발동한 방어용 마도구였으나, 바이스처럼 조여오는 치악력 앞에 차례차례 부서져 갔다.
몸이라도 뒤틀어 궤적에서 벗어나려 해도, 탈진 상태에 빠진 몸뚱이는 제대로 의지에 응답해주질 않았다.
결국 최후의 보루인 헬레나의 신성술이 그 힘을 다하는 것으로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가 돼버렸고.
그런 내 옆구리에 아직 여력이 남은 이빨이 틀어박혔다.
콰직.
본래라면 내 상체와 하체를 그대로 동강 냈을 위력.
하지만 여러 겹의 방호를 뚫으며 힘을 소진한 걸까. 에드메렉의 허공 포식은 내 살을 찢어버리는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아아아악!”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번쩍 들기에는 충분했지만.
찰팍.
바닥에 쏟아지는 피.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대로 놔둘 수도 없는 상처다.
“막았나. 아쉽게 됐군.”
“너…너, 이거…끄윽.”
급박한 상황에서도 간신히 몇 모금 마신 최상급 활력 포션이 약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기아로부터 벗어났으나, 다음은 고통의 차례였다.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회복 포션을 꺼내려는데.
“그렇게는 안 되지.”
그런 내 낌새를 알아채고 바로 손을 뻗는 에드메렉.
이를 악물고 몸을 던지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가 서 있던 장소에 새로운 이빨 자국이 새겨진다.
“잘도 피하는군. 허나 영원히 피할 수는 없을 거다.”
이후로도 내가 포션으로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연속으로 쏟아지는 권능.
등 뒤에서 들려오는 저작음이 멀어지질 않는다.
애초에 허공 포식은 이렇게 빠르게 발동할 수 있는 권능이 아니다.
아마 에드메렉이 이번 기회에 나를 완전히 끝장내고자 무리하는 거겠지.
실제로 안 그래도 창백하던 녀석의 안색이 거뭇하게 죽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당연히 에드메렉도 이 짓거리를 오래 계속하진 못하겠지만….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내가 먼저 쓰러질 테니, 녀석 딴에는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끄으윽. 컥!”
움직일 때마다 상처 부위가 찢어지고, 내장이 뒤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내용물을 쏟아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지금껏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수준의 고통.
지속 회복 효과가 있는 포션을 미리 마셔두긴 했지만, 너무 격하게 움직여서 회복되는 속도보다 악화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그머니 약한 생각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거 정말 이길 수 있는 거 맞아?
나도 모르게 떠올린 의문. 그것이 문제였다.
내 몸은 시스템 보정 덕에 단검 하나 쥐는 것으로 실수 없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해 생각이 무너지면 몸놀림도 무너진다는 소리.
잃어버린 확신은 망설임을 낳았고, 망설임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흠칫 굳은 몸뚱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머리를 노리는 맹수의 이빨.
거친 웃음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울리며 생의 포기를 종용하고.
나 또한 남의 일처럼 멍하니 스스로의 죽음을 받아들이려던 순간.
카앙!
“정신 차리세요 얀델!”
등 뒤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싼 물의 장벽.
엘리샤가 만든 보호 마법인가?
“…어떻게?”
엘리샤가 뛰어난 마법사인 건 맞지만, 아직 이만한 마법을 구사할 정도는 아닐 텐데.
“어떻게는 뭘 어떻게에요! 실반 마탑에도 몇 없는 귀한 아티팩트를 쓴 거니까 빨리 포션이나 마시세요! 이거 얼마 못 버텨요!”
“앗, 네.”
얼떨떨해하면서도 일단 포션을 들이키자 빠르게 회복되는 상처 부위.
“이…귀쟁이년이…!”
무리해가면서까지 내 숨통을 끊어놓으려던 에드메렉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엘리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카드득.
“꺄아아악!”
그동안 본 게 있던지라 엘리샤도 즉시 몸을 던졌으나 완벽하지는 못했다.
그야 엘리샤는 나처럼 정확한 타이밍이나 공격 범위 같은 걸 알고 있는 게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하지만 엘리샤는 너덜너덜해진 팔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득바득 마법을 자아내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방금 막 떠올린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엘리샤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걸.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는 엘리샤뿐만이 아니다.
홀로 촉수 거인을 막아 세운 빈센트는 연신 눈물 콧물을 흘리는 것은 물론이요 구역질까지 해댔지만,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으며.
무수히 많은 분신체 사이에서 화려하게 날뛰는 헬레나는 막대한 신성력을 믿고, 대부분의 공격을 맞아가며 싸우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피를 토하고 악을 쓰면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잖은가.
심지어 저 에드메렉조차 무리하게 권능을 발현하고 있었고.
반면 나는 어땠는가.
나는 내 목숨을 판돈으로 내걸지 않았다. 그래본 적이 없다.
언제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게임이라도 하는 마인드로 굴고 있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애초에 지구에서의 나는…신용찬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다짜고짜 에우렐리아 대륙에 떨어뜨려 놓고, 이제부터 모든 악신을 쳐 죽이고 세상을 구해라 같은 소리를 들어도 곤란할 뿐이다.
가능할 리가 없잖은가.
내가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어야 했다.
지식이나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긴 해도, 이곳 사람들은 절대 나보다 뒤떨어지는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가능했다는 건 내게도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대학생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H&A의 고인물로서의 나라면?
…장담컨데 나보다 더 이 세상을 구하는데 적합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껏 수십번이나 이 세상을 구했으니, 이번에도 분명 해낼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플레이어가 되기로 했다.
특히 사교도를 상대할 때라면 더더욱 고인물스럽게 굴어야 했다.
그래야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는 어땠는가.
게임 시절과 다른 장소에서 싸우고, 패턴 좀 꼬였다고 죽기 직전까지 몰렸잖은가.
내가 틀렸다.
잘못 생각했던 거다.
고인물로서의 나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이 세상을 게임처럼 대하려던 자세부터가 문제였던 거다.
여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다.
설령 H&A와 같은 세상이라 해도, 여긴 정해진 시스템대로 흘러가는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란 말이다.
진작에 알고 있었던 당연한 내용이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애써 무시해왔던 사실이기도 하다.
실패할 게 두려웠기 때문에.
그래서 몇 번이고 H&A의 엔딩을 본 적 있는 고인물로서의 내게 기대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싸우고, 다치고, 죽어가는 이들을 보며 깨달았다.
지금처럼 한발 물러나 게임 대하듯 굴어서는 안 된다.
어느 한쪽으로서의 나만 내세워서는 부족하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나 또한 나 자신을 판돈으로 내걸어야 했다.
온전한 나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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