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이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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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합일은 그 신명에서 알 수 있듯, 최종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그 방법은 먹어서 배속에 넣는 것.
하여, 사교도건 몬스터건 혼탁한 합일 계열의 적들은 언제나 특별한 것을, 많이 먹는 것에 미쳐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럴 때마다 강해지는 놈들이고.
그렇기에 에드메렉은 혼탁한 합일의 신도 중에서도 유독 특이한 녀석이다.
먹어서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먹어서 자신과 뒤섞인 것을 다시 토해내니까.
그렇다 보니 본체의 힘이 쌓이는 속도는 무척이나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에드메렉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랬으면 대주교라는 자리까지 오르지도 못했겠지.
그가 먹었던 것들은 전부 분신체가 되었고, 분신체는 에드메렉의 수족과 같은 것.
분신체들까지 합쳐서 에드메렉이라고 보는 것이 옳으리라.
하나의 개체로서의 자신을 강화한 게 아니라, 스스로 군집이 되어 덩치를 부풀린 괴물.
그것이 에드메렉이다.
당연히 각 분신체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주어졌고…놀랍게도 본체의 역할은 전투가 아니다.
힘에 미친 대부분의 사교도들과 달리 에드메렉은 조금 더 신실한 녀석이었다.
여왕개미처럼 끝없이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믿었기에 기꺼이 자신의 힘을 포기할 정도로.
왜 에드메렉의 수식어가 구토하는 에드메렉이겠는가.
정말 쉴 새 없이 자신의 분신체를 토해내서 그런 거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던가. 에드메렉은 개체가 아닌 군집이라고.
에드메렉이 포기한 힘은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다른 분신체에게 집중된 것이지.
그래. 예를 들면 지금 달려오는 머리 대신 촉수가 달린 기괴한 거인 같은 녀석 말이다.
쿵. 쿵. 쿵.
그워어어어어!
“입도 없는데 대체 어디서 저런 소리를 내는 거죠?!”
“어쩌면 저 촉수 안에 작은 입이 있는 걸 수도 있지 않…우욱. 미안하군. 꿈틀거리는 촉수로 먹이를 잡아 안쪽의 입으로 씹어 삼키는 걸 상상했더니 그만….”
이상한 부분에서 경악하는 엘리샤와, 쓸데없이 상상력이 풍부한 빈센트.
헬레나가 다른 학생들과 함께 분신체들을 막고 있는 사이. 나와 엘리샤와 빈센트는 에드메렉의 본체를 상대하기로 했었다.
빈센트에게 약간의 하자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중에서 가장 강한 건 사실이니까.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얀델! 혹시 저 덩치도 당신 계획에 포함되어있었나요?!”
“아뇨! 전 보스를 먹으면 보스급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요!”
예상치 못한 강적이 하나 추가됐다는 거다.
H&A의 에드메렉 토벌전은 외부에서 치러진 거라 이런 게 가능할 줄은 진짜 몰랐지….
물론, 내가 아무리 징징거려봤자 이제 와서 무승부로 해주지는 않을 테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글렌시엘 님, 빈센트. 둘이서 저놈을 상대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 화력만으로 쓰러뜨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화력을 전부 투사할 때까지 빈센트가 버텨줄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거군요. 이해했습니다.”
“…미안하네.”
“아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말도 없이 저런 걸 만들어 낸 에드메렉이 잘못한 거지.”
여기서 빈센트를 탓해봐야 쓸데없이 사기만 떨어진다. 애초에 지금의 빈센트가 반푼이라는 걸 알면서도 데려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모든 건 사악한 사교도인 에드메렉이 잘못한 거다. 아무튼 그렇다.
내 일방적인 책임 전가에 둘 다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조차 아깝다.
“그럼 일단 저 덩치부터 쓰러뜨리죠. 에드메렉은 그다음이고요.”
“하기야. 저런 걸 무시하고 싸우기는 좀 힘들겠죠.”
“나도 동감일세.”
빠르게 수긍한 엘리샤의 머리 위로 물과 바람을 형상화한 반투명한 구체가 떠올랐으며.
빈센트는 검을 꼬나쥔 채, 곧장 달려나갔다.
나 또한 스태프를 겨누며 영창을 시작했고.
원소의 그림자를 통해 물과 바람 속성의 마법은 빠르게 난사할 수 있는 엘리샤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보다, 빈센트가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촉수 거인을 저지하는 일이겠지.
저지력에는 역시 대지 계열 마법만한 게 없지.
두근.
코어의 진동이 심장과 공명하며 주변의 마나를 끌어당겼다.
시스템 보정 덕에 크게 정신을 집중하지 않아도 절로 완성되는 마법.
영창이 끝날 때쯤에는 스태프 앞에 내 상체보다 큼직한 바위 덩어리가 떠올라 있었다.
뾰족하지도 회전하지도 않는다.
공격보다는 질량 그 자체에 중점을 둔 마법.
“바위 던지기!”
실로 투박한 이름이나, 애초에 마법 자체가 투박한 마법이니 어쩔 수 없다.
시동어는 그 마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어야 하니까.
후웅
묵직한 파공음과 함께 날아가는 바위.
이거라면 저 거대한 촉수 거인도 주춤하리라.
그 틈을 타 빈센트는 다리를 베어내, 기동력을 앗아갈 수도 있을 것이며.
엘리샤는 녀석에게 확실한 피해를 줄 수 있도록 조금 더 강력한 마법을 시전할 수 있겠지.
내가 생각해도 참 적절한 마법 선정이었으나…아쉽게도 나는 그 결과를 볼 수 없었다.
시야의 한구석.
H&A에서 그러했고, 조금 전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분신체들이 싸우는 사이에 새로운 분신체를 토해낼 줄 알았던 에드메렉.
녀석이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으니까.
검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딱 붙이고, 엄지는 아래쪽으로 떨어뜨렸다가 나머지 네 손가락과 강하게 맞부딪힌다.
마치 짐승이 아가리를 벌렸다가 다무는 것만 같은 손짓.
혼탁한 합일의 사제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권능 허공 포식. 그 상위 권능인 포식연쇄의 전조다.
효과는 심플하다. 허공 포식을 연달아 3번 반복할 뿐이니까.
“저 미친놈이!”
전력을 다해 몸을 옆으로 던졌다.
까드득.
내가 있던 자리를 깨무는 반투명한 이빨.
처음 허공 포식을 피했을 때처럼 준비 동작만 미리 확인했다면 피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문제지.
데굴데굴.
“윈드!”
마법으로 몸을 떠밀면서까지 바닥을 빠르게 굴렀다.
그런 나를 추격하듯,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저작음이 연속해서 들려온다.
간신히 세 번을 전부 피해낸 뒤에야 벌떡 일어나 에드메렉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피식 웃으며 터덜터덜 걸어오는 녀석.
“설마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나?”
“지금까지는 그랬으니까.”
“던전 입구가 아닌 이곳으로 찾아온 것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에 대해 이래저래 조사한 게 많은 것 같다만…처음에 말하지 않았나. 지금은 좀 특별한 상황이라고.”
팔랑이는 로브 자락 너머로 슬쩍 드러난 앙상한 에드메렉의 팔.
썩은 나뭇가지 같은 팔이 다시금 내게 겨눠졌다.
재빨리 몸을 일으키자 또다시 허공을 으스러뜨리는 반투명한 턱주가리.
아까부터 움찔거리며 자꾸만 이쪽에 시선을 보내는 엘리샤에게 휘휘 손을 저으며 외쳤다.
“시간만 끄세요! 어찌 됐든 분신체를 계속 토해내는 건 막았으니 헬레나 쪽이 먼저 정리하고 도와주러 올 때까지 버텨주세요!”
그리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허공 포식은 강하지만 준비동작이 워낙 뚜렷하고, 직접 공격 지점을 겨눠야 하기에 계속해서 움직이거나 집중을 유지하면 피하기 쉬워진다.
거기에 혼탁한 합일의 사제는 허공 포식 외에는 뚜렷한 공격 권능이 없으니, 특수 패턴을 제외하면 다른 걸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에드메렉을 붙잡고 늘어진다.
패턴은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으니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
하지만 에드메렉은 자신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마법을 영창하는 내게 시선을 떼지 않았을 뿐, 여전히 태연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다른 윗대가리들이 교단의 위협이라는 이유로 공적을 지정한 것과 달리, 그분께서 직접 너의 죽음을 명하셨다. 평소와는 다르게 나설 수밖에 없잖은가.”
준비하는 마법은 썬더 볼트.
혼탁한 합일의 사제들이 허공 포식 원툴이긴 한데, 이는 실제로 허공 포식 하나로 어지간한 일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고, 특별한 준비 없이는 경직될 수밖에 없는 전격계 마법이 좋겠지.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지리라.”
다시금 내게 손을 들어 보이는 에드메렉.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손가락이 다시 다물리기 전에 내가 먼저 마력을 해방했다.
“썬더 볼트!”
파지직!
허공을 꿰뚫는 푸른색 번개.
물론, 진짜 번개만큼이나 빠른 것은 아니다. 이건 내 상상과 마력이 만들어낸 번개의 흉내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는 될 터인데.
“먹어치워라.”
까드득.
허공에서 나타난 반투명한 턱이 번개를 물어뜯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법.
씁. 이럴 줄 알고 있었어도 직접 보니 어이가 없다.
마법을 먹어서 없애는 게 말이 되나?
그래도 나름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일이기에 허공 포식을 하나 공격적으로 막았다 치고, 다음 공격에 대비하려는데.
어째서인지 연달아 허공 포식을 쓰기는커녕, 느닷없이 나를 검지로 가리키는 에드메렉.
“그 누구도 배고픔을 피할 수는 없음이라. 너도 곧 나와 같아지리라.”
짧은 선언. 그 직후에 느껴지는 극심한 허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풀리는 다리가 멋대로 꼬이며, 내 몸뚱이가 바닥을 뒹굴었다.
“커헉!”
짐작가는 것은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도 그럴게….
이건 본래 에드메렉이 마지막 페이즈에 쓰는 디버프였으니까.
“씨발.”
패턴 훼이크 걸고 저주 걸기는 에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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