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이변(3)
* * *
2m가 넘는 장신. 번들거리는 검은색 비늘. 세로로 갈라진 동공.
인간과 뱀을 반쯤 섞어 놓은 것 같은 괴인과 눈이 마주쳤다.
특이하게도 녀석의 몸뚱이에는 난잡한 이빨 자국 문신이 그려져 있었는데.
마치 거대한 맹수가 한 입 깨물기라도 한 것 같은 저 문양을 보는 순간, 누군가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친 충격이 느껴졌다.
저거 혼탁한 합일의 표식이잖아?
그리고 나는 본래 입학시험을 습격할 예정이었던 피에트로 주교를 죽이며 놈들의 공적이 되었고.
…설마 나 하나 잡자고 이렇게 칼을 갈아 온 건가?
아니. 이건 너무 자의식 과잉일 거다.
악신이 왜 악신이겠는가. 성격이나 사고방식이 개 같으니까 악신이지.
당연히 놈들이 공적으로 지정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자기 교단에 방해되는 녀석은 죄다 공적이랍시고 방방 뛰는 놈들이니 분명….
“쉬이익? 찾았다. 목표.”
“에라이! 다들 전투 준비!”
헬레나가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도록 상체를 기울였으며, 빈센트는 검을 뽑아 녀석을 겨누었다.
이에 뱀 괴인은 눈앞의 다 잡은 학생을 내팽개치고, 내 쪽을 향해 입을 벌렸다.
진짜 뱀이라도 된 것처럼 녀석의 아래턱이 양옆으로 갈라진다. 관절의 한계를 넘어 크게 벌어진 입은 기괴할 정도.
“저놈 저거 독 뱉으니까 조심해!”
“그 정도는 쓰러진 이들의 안색을 보면 안다! 하지만 독이란 건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게 아닌….”
퉤엣!
빈센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크게 벌린 입에서 쏘아진 보라색 액체. 뭘 어떻게 한 건지 허공에서 부채꼴로 넓게 펼쳐진 독액이 우리를 덮쳤다.
하지만.
“하앗!”
“흐아악!”
헬레나는 자체적으로 정화의 힘을 지닌 신성력을 한껏 끌어올려 정면으로 돌진했으며.
빈센트는 옆으로 몸을 던져 땅을 뒹굴며 피해냈다.
그리고 나는.
촤아악
그냥 맞았다.
대신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꺼낸 최상급 해독 포션을 마셨고.
독 데미지는 결국 지속 도트 대미지라 해독만 빨리하면 그냥 몸으로 맞아도 되거든.
실제로 맞은 부위가 조금 따끔하긴 했지만, 중독 증상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따끔한 것도 점점 사라져가는 중이고.
“쉬, 쉬익?”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지,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멈칫한 녀석.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독액을 내뱉으려 자세를 잡았으나…그보다 헬레나가 조금 더 빨랐다.
“다른 사람에게 침을 뱉으면 안 된다는 것조차 배우지 못한 겁니까! 아니면 가르쳐줄 부모가 없었던 건가요!”
패드립을 날리며 괴인의 배때지에 보디 블로를 때려 박는 헬레나.
콰직!
“쉐에에에엣!!”
단단한 비늘이 깨져나가는 소리와, 괴인이 내지르는 비명이 뒤섞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빈센트.
“흐읍!”
여전히 직접 목을 베는 건 좀 거부감이 느껴지는지, 급소가 아닌 녀석의 한쪽 팔을 노리는 일격.
본래라면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멍청한 짓이었겠지만…이번에는 그게 빈센트를 살렸다.
“샤아앗!”
보디 블로를 맞고 활처럼 휘었던 괴인의 목이 유연하게 꺾이며, 그 거대한 아가리를 빈센트에게 들이밀었으니까.
“히익!”
괴인의 입안 구조를 보고 잔뜩 쫄은 빈센트였으나, 다행히 괴인의 머리는 그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만약 팔이 아니라 머리를 노린답시고 정면에 서 있었다가는 통째로 삼켜졌겠지.
바짝 얼어붙은 빈센트에게 재차 머리를 들이미는 괴인이었으나.
“아가리 닫으세요! 입에서 사교도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헬레나가 터프하게도 녀석의 위턱과 아래턱을 붙잡아 그대로 멈춰 세웠다.
외팔이 된 괴인이 안간힘을 쓰며 헬레나를 떨어뜨리려 했지만…팔 한쪽으로 그게 되겠는가.
전투에 특화된 정의로운 광명의 신성력은 헬레나의 신체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저 가녀린 팔로 상식을 벗어난 괴력을 뿜어내는 건, 몇 번을 봐도 놀랍기 그지없네.
물론, 놀랍다고 시전하던 마법이 중간에 끊기는 일은 없지만.
“……하여 단단한 것, 날카로운 것, 회전하는 것은 내 손 안에 있음이라. 락 블래스트!”
강화 영창을 통해 평상시보다 크고 뾰족한 돌덩이가 회전까지 하며 괴인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애액…퍼엉!
물주머니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길쭉한 허리가 끊어졌다.
상체와 하체가 완전히 나뉜 놈이 힘없이 쉿쉿 소리를 냈으나, 그것이 오히려 녀석의 명을 재촉했다.
아직 괴인이 살아있음을 깨달은 헬레나.
그녀가 잡고 있던 턱을 위아래로 찢어버리며 괴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았으니까.
“회개하세요!”
으지직!
어우 무서워라.
그래도 다친 사람 하나 없이 사교도 하나를 처치했네.
솔직히 좀 긴장했던 터라 절로 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러다 눈이 마주친 얼떨떨한 표정의 이름 모를 학생. 사제복을 입고 있는 걸 보아 신성학부 소속이겠지.
습격받은 파티 중 한명인 그 사제를 보고서야 아직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아있음을 떠올렸다.
인벤토리에서 최상급 해독 포션 2개를 더 꺼내며 그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쌔액…쌔액….”
“끄윽….”
쓰러진 둘은 중독이 심각한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만…죽지만 않았으면 된 거지.
어찌어찌 입 안에 포션을 흘려 넣자, 얼마 지나지 않아 확 안색이 밝아지는 두 사람.
역시 비싼 포션은 비싼 값을 한단 말야. 돈은 언제나 옳다.
아무튼 아직 정신을 차리려면 멀었지만, 이걸로 목숨은 건졌으리라.
“가, 감사합니다. 제 신성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독이었는데….”
“뭘요. 나중에 해독 포션 값이나 적당히 치러주시면 됩니다. 그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앗. 네. 그러니까 저희가 한창 이블 래빗을 사냥하던 중에….”
이어진 그의 말에 의하면 한창 싸우던 도중에 기습을 당했다고 한다.
지금 자세히 보니 전부 모르는 얼굴들이다.
즉, 같은 A반 학생이라도 H&A에서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엑스트라라는 소리.
비교적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중독된 상태로 싸웠으니 전멸 직전까지 갈 수밖에.
“아무튼 별다른 전조 같은 건 못 느꼈다는 거죠.”
“네? 네…한창 이블 래빗에 집중하고 있어서…죄송합니다.”
“아뇨 뭐, 죄송할 것까지야.”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는 그에게 적당히 손사래 쳐준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다음으로 출발할 건가요 얀델 형제님?”
“그 전에 잠깐 확인할 게 있어요.”
내 마법에 상하체가 분리되고, 헬레나의 손에 머리가 갈라졌지만…그래도 아직 원형이 제법 남아있는 괴인의 시체를 뒤적거렸다.
딱 세 가지만 확인하면 된다.
이목구비. 내장의 상태. 그리고 문신의 위치.
찢어져 덜렁거리는 머리를 대충 맞춰보고, 바닥에 흩뿌려진 잔해를 긁어모으고서야 확신했다.
“구토하는 에드메렉…의 분신체인가.”
“에드메렉? 설마 혼탁한 합일의 대주교 에드메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형제님?”
놀랍다는 듯이 눈을 땡그랗게 뜨는 헬레나.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둘러댔다.
“네. 예전에 조금 얽힌 적이 있거든요. 그때 알게 된 겁니다.”
당연히 현실의 이야기는 아니고 H&A의 이야기지만…아무튼 거짓말은 안 했다.
구토하는 에드메렉.
온갖 생물을 통째로 집어삼키나,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다시 토해내기를 반복하는 녀석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누군가는 평범한 인간인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저주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혼탁한 합일의 신도가 되며 생긴 대가라고도 하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평범한 구토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 능력을 보여줄 기회도 없이 스킵당한 피에트로와 달리, 주교급 이상의 모든 사교도는 각자의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에드메렉의 경우에는 분신 생성이 바로 그러하고.
다만 악신의 권능답게 분신을 만드는 방식이 굉장히 기괴했는데.
적당한 생물을 산채로 삼키고, 이를 다시 토해내면, 본래의 생물과 에드메렉 본인이 반쯤 섞인 분신이 나오는 것이다.
괜히 구토하는 에드메렉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지.
아무튼 이 시체는 에드메렉의 분신체가 지닌 특징을 전부 가지고 있다.
“우선 얼굴을 보세요. 뱀 수인이랑 전혀 다른 그냥 뱀이랑 인간을 섞은 키메라 같은 모양새죠? 실제로 에드메렉 본인의 인자와 뱀을 뒤섞어서 그런 거예요.”
“예에. 보고만 있어도 사교도의 뒤틀린 감수성이 엿보이는 얼굴입니다.”
“다음은 위장. 에드메렉은 항상 통째로 무언가를 삼켜야 해서 내장 기관이 특이하게 변이했어요. 소장과 대장은 퇴화하고, 위만 먹이를 담기 위해 엄청 발달했죠. 이건 분신도 똑같아요.”
“허어…이제 보니 그 말씀대로군요. 이건 내장이라기보다 찢어진 풍선 같습니다.”
사교도 간부에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내 말 하나하나에 크게 반응하며 경청하는 헬레나.
반응이 워낙 좋아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지금은 시간이 아까우니 그럴 수 없겠지.
“마지막으로 표식의 위치. 이놈들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에드메렉의 분신체예요. 본질적인 부분은 같다는 소리죠.”
“…악신의 표식은 악신과 사교도가 이어진 통로의 흔적. 본체와 분신의 표식이 같은 곳에 있는 게 당연하겠군요.”
기본지식이 있어서인지 이해가 빠르네.
심각한 표정을 짓는 헬레나에게 빙그레 웃어주며 포션 하나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이건…?”
“냄새 제거 포션이에요. 에드메렉은 삼킨 생물과 자신을 반씩 닮은 분신을 만들어내는데, 같은 인간을 삼켜봤자 별다른 차이도 없으니 잠입용이라면 모를까 전투용 분신은 동물을 삼켜 만들거든요.”
“그리고 대부분의 짐승은 후각이 예민하지요. 이해했습니다. 역시 얀델 형제님께 지휘를 맡긴 게 정답이었네요.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아, 그건 마시는 게 아니라 뿌리는 거예요.”
“…….”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는 헬레나.
사실 대부분의 포션이 마시는 형식인 건 맞다. 실제로 카를라와 던전을 돌았을 때 사용한 냄새 제거 포션도 마시는 거였고.
다만 위장의 한계가 있다는 걸 배빵빵 카를라로 알게 됐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잖은가.
이건 페이에게 부탁해 만든 뿌려도 효과가 있는 어레인지 버전이다.
마시지 않아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신, 그 지속시간이 짧은데…그거야 뭐 많이 쏟아부으면 될 일이지.
징그러운 광경을 본 탓인지, 구석에서 구역질 중인 빈센트에게도 포션 병을 2개 던져주었다.
“넌 2개 뿌려!”
“구에엑…왜 나는 2개인가?”
왜긴. 토 냄새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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