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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60화 (60/230)

〈 60화 〉 이변(2)

* * *

퍼엉! 퍼어엉! 펑!

실습용 던전의 하늘을 수놓는 각양각색의 불꽃들.

허공에서 피어나는 폭발은 제각기의 굉음과 화염으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급하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려는 것처럼.

때아닌 불꽃놀이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나도 빈센트도 헬레나도. 그 누구도 웃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이건 놀이 같은 게 아니라, 저 하나하나가 구조 요청이니까.

시야를 가득 메운 구조 신호의 향연에 정신이 멍해졌다.

뭐지?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지?

난…이런 이벤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입학시험이 조작법 튜토리얼이었다면, 던전 실습은 던전 튜토리얼.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면 가장 먼저 들어가는 던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풍경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내가 모르는 사이, 모르는 이유로 무언가 일이 터졌다.

그것도 제법 심상치 않은 녀석이.

무거운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헬레나였다.

“형제님들. 어찌하시겠습니까.”

헬레나는 모양 좋은 가슴팍 위에 놓인 로자리오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기도라도 하는 것같은 경건한 자세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희도 직접 상대해봐서 알겠지만, 이블 래빗 따위로는 아카데미 학생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습니다.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거죠.”

“다른 무언가라 하심은?”

“…저는 사교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헬레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한두 군데도 아니고, 이렇게 던전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건 언제나 사교도 놈들이었지.

놈들은 언제나 던전의 몬스터들을 해방하고, 자신들의 휘하에 넣어 그 세를 불리거나, 자신이 추종하는 악신의 영향력을 강화해 봉인의 붕괴 속도를 가속시키려는 놈들이니까.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사교도가 이 안에 들어왔단 말이오?”

빈센트의 의아함도 일리는 있다.

실습용 던전은 아카데미의 엄중한 관리를 받는다.

평소부터 경비를 잔뜩 고용해 던전의 외부도, 내부도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던가.

다른 무엇도 아닌 던전을 관리하는 일이니, 조금 과할 정도로 안전에 신경 쓰기 때문.

그런데 사교도가 아무도 모르게 들어와 깽판을 치고 있다?

이건 절대 평범한 일이 아니다.

거기에 교수님들이 바깥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텐데, 그분들이 사교도를 지켜보고만 있겠는가.

제이슨 교수는 실력에 비해 소시민적이고 별다른 대의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사교도는 개새끼며, 학생은 지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개념은 있다.

크리스티나 교수? 사제가 악신과 관련된 놈들을 극혐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오나 교수.

맨날 실실 대지만 이오나는 무려 300년 전의 대전쟁에 참가한 적 있는 사람이다.

악신의 권유를 거부했다가 모든 클랜원을 잃고, 그 뒤로는 새로운 클랜원을 만들지 않으며 복수에 매진하고 있고.

그렇기에 로드‘급’ 뱀파이어라 불리는 거지, 뱀파이어 로드라 불리진 않는 것이다.

클랜이 없으니까.

셋 다 지금 당장 뛰쳐나와 사교도 놈들의 모가지를 뽑고 다녀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들인데….

분명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예를 들면 밖에서도 세 교수와 맞먹는 놈이 있어서 한창 전투 중이라거나.

아니면 던전의 출입을 막아두었다거나.

…던전의 출입을 컨트롤한다는 건 시공간을 멋대로 주무르는 실력자라는 소리니, 그건 아니겠네.

사교도 중에 그런 놈이 없는 건 아니나, 녀석은 지금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니까.

이후로도 계속 머리를 굴려봤지만, 더는 추측할 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판단한 재료가 너무 부족하기도 하고.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으니.

이건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반드시.

입학시험 습격 사건은 일종의 무력 시위였다.

예비 신입생을 죽여 미래의 아카데미를 약화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악신의 두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한 테러.

처음부터 진지하게 아카데미랑 한판 붙을 생각으로 온 건 아니란 소리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놈들이 칼춤 한번 제대로 춰보겠다고 하는 의지가 절절히 느껴지지 않는가.

어느 교단 놈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대로라면 학과를 불문하고 수없이 많은 A반 학생이 목숨을 잃을 터.

이는 앞으로 이어질 악신의 부활에 맞설 인재가 날아간다고도 할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답답함과 짜증. 그리고 불안이 마구 솟구쳤다.

아아악!

고집을 부려서라도 어떻게든 카를라를 데려왔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거칠어진 호흡. 이를 심호흡으로 억지로 가라앉히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헬레나 사제님 말씀처럼 이게 사교도, 혹은 그에 준하는 놈들의 습격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바깥엔 교수님들도 있고, 여긴 아카데미의 관리를 받는 곳 아닌가. 나는 차라리 이게 교수님들이 설치해둔 함정처럼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시험이라 생각하네.”

“…….”

시험은 아니다. 일단 H&A에서는 이런 내용이 없었거든.

어쩌면 내가 입학한 이후로 나도 모르는 뭔가가 나비 효과를 일으켰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어. 난 저 신호가 나오는 쪽으로 가볼 거고, 깜짝 시험이건 사교도 새끼들이건 어떻게든 해볼 생각이니까. 너희는 어떻게 할 거야?”

그 말에 헬레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얀델 형제님과 함께하겠습니다.”

나긋나긋한 어조. 하지만 그 안에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헬레나 님.”

“뭘요. 형제님 말씀대로 시험의 일환이면 해결하면 될 일이고, 사교도면 쳐 죽이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분명 얼굴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사교도 부분에 힘을 주어 말하는 모습이 조금 무섭네.

아무튼 즉답한 헬레나와 달리 빈센트는 잠시 고민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시험이면 차라리 낫네. 하지만 정말 사교도 같은 놈들이라면…내가 자네들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지금처럼만 하면 충분히 되고도 남지.”

“알겠네. 그럼 미력하나마 내 검으로 자네를 거들어보겠네.”

무슨 맹세라도 하듯. 자신의 왼쪽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빈센트.

이러니저러니 해도 괜찮은 녀석이긴 하단 말이지.

자, 그럼 이제 다 같이 구조 신호가 나온 곳을 돌아보기로 정해졌으니, 속도가 중요하겠지.

필드형 던전은 몬스터의 수준과 상관없이 내부가 넓은 편이니까.

“그럼 출발하기 전에 잠깐 이리 모여 봐.”

“왜 그러시나요 형제님?”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건가?”

둘의 의아한 표정에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지만…여차할 때를 위해 준비해둔 것들이 좀 있거든.”

인벤토리의 내용물을 힐끗 바라보았다.

저장된 포션과 스크롤은 충분했다.

***

버프는 중첩되면 중첩될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심지어 같은 계열 버프는 합산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한 하나만 적용되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효율이 떨어질 뿐, 버프가 유용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없다.

그렇기에 H&A의 수많은 유저들은 효율적인 도핑 조합을 알아내고자 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접 만들어낸 조합도 여럿 되고, 남들이 찾아낸 조합을 줄줄이 외우기도 했으니까.

지형, 클래스, 캐릭터 개인, 파티의 조합, 상대하는 적, 컨셉 플레이, 유저의 성향, 그 외에도 이것저것.

다양한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도핑 조합을 연구하던 기억은 아직도 고스란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오랜만에 그 기억을 끄집어내 빈센트와 헬레나에게 맞춤 도핑을 해주었다.

아마 지금 이 세상에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도핑 방법.

그 결과.

“미쳤군! 자네는 정말 미쳤어! 이만한 포션과 스크롤을 쟁여두고 다니다니! 몸이 너무 가벼워서 내 몸이 아닌 것 같네!”

“예에. 심지어 제 축복과 상충되지 않도록 정교하게 설계해둔 것이지요? 여기에 다다르기까지 형제님께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지 여실히 느껴집니다.”

우리는 기존의 2배 이상의 속도로 숲을 돌파하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튀어나오는 이블 래빗은 우리의 기세에 질려 도망치거나,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걷어차여 그 생을 마감할 뿐이었다.

거기에 내가 준비한 건 아직 하나 더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 이렇게나 많은 마도구를 빌려주셔도 괜찮은 건가요? 혹시라도 망가진다면….”

“물어내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까 팍팍 쓰십쇼.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허어…자네 혹시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는 마도구점이라도 운영했던 건가?”

빈센트가 그런 의문을 가질 정도로 많은 마도구를 빌려준 것이 바로 그러하다.

대부분이 하급 마법이 각인된 것들이라 지금은 거의 안 쓰지만….

카를라를 사들이기 전까지만 해도 부족한 무력을 마도구로 때우며 살아왔다.

그 돈지랄의 흔적을 인벤토리에 짱박아두는 것도 아까우니, 이번 기회에 전부 풀어버리기로 한 것.

본래는 이렇게 과할 정도로 아이템에 의존하면 확 감점당해서 자제하고 있었는데…이젠 그럴 필요 없잖은가.

다만, 배빵빵 카를라라는 선례가 있으니, 지금 상태를 그리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겠지.

그러니 속전속결이라는 생각으로 미친 듯이 달려 도착한 가장 가까운 신호가 있던 곳.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내 상상보다 조금 더 안 좋은 현실이었다.

“쉬이이이익!”

“끄윽…아, 안 돼…!”

보랏빛으로 물든 채 쓰러져있는 학생 둘과 간신히 정신줄만 붙잡고 오들오들 떠는 하나.

그리고 지금 상황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간과 뱀을 반쯤 섞어둔 것 같은 괴인.

2m쯤 될법한 녀석의 길쭉한 몸뚱이에 새겨진 이빨 자국 문신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습격자들이 혼탁한 합일의 추종자라는 걸.

그리고 나는 일전에 놈들의 주교 하나를 죽여서 입학시험 습격 사건을 막은 적이 있다.

덕분에 혼탁한 합일 놈은 자기 계획을 방해한 날 공적으로 지정했고.

…설마 나 하나 잡자고 이렇게 칼을 갈아 온 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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