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던전 실습(2)
* * *
이오나 프란체스카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검붉은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요사스럽게 빛나는 검붉은 눈동자.
만지면 분이 배어 나올 것 같은 새하얀 피부는, 핏빛을 닮은 색채와 대비되어 그 매력을 한층 더 배가시킨다.
거기에 수수한 옷차림으로도 숨길 수 없는 터질듯한 몸매는 또 어떤가.
남자라면 누구나 일순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굴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
뱀파이어의 외모는 초롱아귀의 불빛처럼 인간을 끌어당기는 사냥 도구였으니까.
흡혈로 번식하는 종족이면서, 되려 여성성을 극대화한 몸을 갖게 된 것은 그래서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남학생들이 이오나에게 홀리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압도적인 미모를 상쇄하는 푼수 짓 때문.
드륵
데굴데굴데굴.
오늘도 여느 때처럼 3연속 앞구르기로 강의실에 입장한 이오나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이오나 등장!”
하지만 요 한 달 사이에 완전히 익숙해진 걸까.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이오나에게 인사하는 학생들.
그 모습이 퍽 친근해 보인다.
저들은 알까. 이오나가 지금처럼 무난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언행을 취하고 있다는걸.
뭐…나중이 되면 다들 알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냥 이오나가 대단하지만 특이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겠지.
잠시 주변의 학생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하던 이오나가 교탁을 탕탕 두드렸다.
“다들 조용 조용! 오늘은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오나의 교수로서의 권위만큼은 존경하는 학생들답게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강의실.
하기야. 매일 대련장에서 이오나에게, 혹은 이오나가 주는 점수에 미친 반 친구들과 죽어라 대련해대는데 어떻게 이오나의 말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약간의 긴장감 섞인 침묵 속에서 이오나가 평소처럼 나사 빠진 미소를 지었다.
“있잖아 있잖아. 다른 데서 듣고 대충 짐작하고 있는 애들도 있겠지만…우리 A반은 일주일 뒤에 던전 실습이 있어! 다른 학과의 A반이랑 합동으로 가는 거니까 기대해도 좋아!”
드디어…!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이오나의 말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던전 실습에 관한 내용이었네.
지금은 조금 퇴색되었다지만, 아카데미의 설립 목표는 어디까지나 사교도들의 절멸과 모든 던전의 공략이다.
그렇기에 실력이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A반 학생들은 설령 입학한 지 한 달 밖에 안 된 병아리라도 한 번쯤은 던전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고.
물론 아무 던전은 아니고, 아카데미에서 철저하게 관리하는 특수한 던전이다.
기본적으로 던전이란 선신이 악신의 군세를 날로 먹으려다 실패한 흔적이다.
몬스터 부락을 주변 일대와 함께 봉인으로 포장하고, 그대로 차원의 저편으로 날려보내려다 악신에게 들켜서 실패했다는 설정이었지.
그 탓에 뒤늦게나마 악신의 가호를 받은 보스 몬스터, 혹은 코어라 불리는 기물이 쐐기 처럼 던전을 이 세상에 붙들어두게 된 것이다.
다만,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려던 걸 도중에 억지로 붙잡은 탓일까.
나와 카를라가 공략했던 필드형 던전처럼 안정된 곳도 있지만, 몇몇 던전은 내부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리젠형 던전.
던전 내부의 시공간이 꼬인 탓에, 일정 주기로 죽었던 몬스터가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곳으로.
공략 방법은 어떻게든 다음 주기가 시작되기 전에 보스나 코어를 부숴 던전 자체를 클리어하는 것뿐.
까딱 잘못했다가는 보스전 도중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고, 무한 소모전을 강요당하기도 하기에, 다양한 던전 중에서도 유독 까다로운 편에 속하는 유형이다.
하지만 만약 고블린이나 코볼트같은 허접한 몬스터들만 나오는 리젠형 던전이 있다면?
보스만 제대로 관리하면 훈련용으로도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발상으로 공략은 진작에 끝났음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이번에 실습차 가게 될 던전이다.
2학년부터야 다른 모험가들처럼 평범한 던전으로 실습 간다지만, 아직 병아리나 다름없는 1학년들도 그럴 수는 없잖은가.
신입생은 무조건 이 실습용 던전만 가야 한다.
그나마도 성적 순서대로 가는 거라, C반쯤 되면 2학기가 돼서야 갈 수 있는데…A반은 아니다.
1학년 때부터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던전 실습을 나갈 수 있다는 게 A반의 장점 중 하나였지.
아카데미 수업만 들으며 수련하는 것보다, 약한 몬스터라도 잡으며 실전을 경험하는 게 성장 속도는 더 빨랐으니까.
…그리고 실습용 던전에 숨겨진 히든 피스도 빨리 얻을 수 있고.
원래 초반 연습용 던전에 뭔가 숨겨놓는 건 국룰 아니던가.
물론, 어디까지나 초반 히든피스라 성능은 그리 대단치 않지만.
속으로 어떻게 해야 자연스레 히든피스를 얻어올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무언가 궁금한 게 있는지 어느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자세히 보니, 일전의 대련 시간에 해치웠나를 외쳤다가 위치를 특정 당해, 그대로 탈락한 비실비실한 남학생이었다.
분명 이름이 맥켈린이었던가.
“질문 있습니다 교수님!”
“응? 뭐야 뭐야? 말해 봐 맥켈린 학생!”
“다른 학과와 합동으로 간다는 건 혹시 파티라도 짠다는 건가요? 그럼….”
“맞아 맞아! 정답이야! 혼자서 모든 걸 다 잘하는 사람은 없어! 그래서 동료가 필요하고, 파티 단위로 던전에 들어가는 사람이 더 많은 거야!”
그 말에 맥켈린은 당연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제가 기사들처럼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다쳤을 때 사제들처럼 바로 치료할 수 있을 만큼 치유 마법에 능한 것도 아니니까요.”
“응? 응응…? 왜 파티 같은 걸 짜냐고, 하급 몬스터 따위는 혼자서도 쓸어버릴 수 있다고 하려던 거 아니야?”
“제가 왜 그런 멍청한 짓을…?”
“매년 A반 중에 그런 멍청한 애가 한명씩은 나오던데…?”
서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맥켈린과 이오나.
뭐어…보통 A반 학생들의 프라이드가 높은 건 사실이다.
이오나의 말처럼 파티원 중 하나가 우쭐대다가 트롤짓을 하는 것도 H&A에서는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이벤트였고.
그리고 언제나 자기 멋대로 뛰쳐나가 문제를 일으키는 녀석은…높은 확률로 마법학부 학생이었다.
마법의 구조상, 마법사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지금의 A반 학생들은 다들 맥켈린처럼 이오나의 말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트롤이 하나도 없는 마법사라고…?
나 또한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려던 순간.
“아.”
은근슬쩍 이쪽을 힐끔대는 주변의 시선에 깨달았다.
내가 대련 시간에 너무 줘팼구나.
엘리샤야 타고난 혈통도 고귀하고, 어릴 때부터 재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마법계의 셀럽이다.
그러니 엘리샤에게 져도 다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지.
하지만 나는 다르잖은가.
어디서 튀어나온지도 모를 용병 출신(아님) 반쪽짜리 마법사가 매일같이 자기를 줘팬다?
심지어 자신들이 전투에 익숙해지는 속도보다, 내 마법 실력이 느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고?
열등감이나 분노는 둘째치고, 적어도 혼자서 다 해먹을 수 있다는 마인드는 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리라.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묘한 표정으로 있자니, 이오나가 해맑게 웃으며 주제를 전환했다.
“그럼 그럼? 파티 짜는 건 왜 물어본 거야?”
“어…다른 학과의 A반 학생들과 팀을 짠다면 저희가 알아서 동료를 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카데미 측에서 알아서 정해주는 건지, 파티원은 몇 명이나 되는지…뭐 그런 거 물어보려고 했죠.”
“아하!”
짝!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가볍게 손뼉을 친 이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알려줘야지! 응! 사실 지금 알려주려고 했던 거기도 하고!”
“하하….”
그 말에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내리는 맥켈린.
“우선 파티는 아카데미에서 임의로 뽑았어! 2학년 때부터는 정식으로 자기 파티원을 꾸릴 수 있지만, 1학년 때는 최대한 많은 이들과 팀을 이뤄볼 수 있도록 매번 파티원이 바뀔 거고! 누구랑 파티가 될지는 비밀! 당일에 알려줄게!”
거기까지 말한 이오나는 잠시 강의실을 둘러보더니, 나와 엘리샤를 보며 한차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아쉬워 하지마! 이번 실습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던전을 체험하는 거야! 너흰 아직 1학년이니까 크게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거든. 최대한 다양한 체험을 해봐야지! …그래 던전에서 흔히 있는 불상사 같은 것도 말이야.”
“““…….”””
뭔가 있어 보이는 이오나의 말에 잔뜩 긴장한 학생들. 조금 전의 눈빛 때문인지 엘리샤조차 침을 꼴깍 삼켰다.
…근데 저거 사실 별거 없다.
던전에 교수님들이 적당한 함정을 설치해둔 거랑, 일부러 능력적으로든 성격적으로든 궁합이 안 맞는 파티원들을 매칭시킬 뿐이니까.
일종의 밸런스 패치라고 보면 된다.
입학시험부터가 몬스터를 얼마나 조질 수 있느냐인 만큼, 1학년이라도 최하급 던전은 그리 어려운 곳이 아니니까.
그러니 서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끔 하는 거다.
실제로 파티의 내분은 흔한 일이기도 하고.
꼭 즉석에서 만든 파티가 아니더라도, 극한상황에서 싸우다 보면 사람이 점점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잖은가.
그런 것도 체험시키겠다는 거겠지.
내 경우에는 마법 전투 과목에서 제법 좋은 성적을 보였으니, 다른 학과의 A반 중에서도 실전에 하자가 있는 녀석이 매칭될 것이다.
누군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번쩍 들었다.
다들 긴장했는데, 혼자 태연스런 내 모습이 의외였는지 핏빛 눈동자를 크게 뜨는 이오나.
“응? 어…그래! 얀델 학생도 질문 있어? 이 이오나 교수님이 뭐든 답해줄게!”
“아. 그게 말이죠.”
잠시 심호흡을 하고서야 말을 이었다. 이거 조금 긴장되는데.
“혹시 파티 이외의 다른 사람도 데려갈 수 있습니까? 예를 들면…시종을 데려가 짐꾼으로 쓴다던가요.”
“얀델 학생도 아공간 주머니 있으면서 무슨 짐꾼이야? 아쉽게도 외부인은 안된답니다! 삐삐!”
팔을 크게 교차시키며 X자를 그려 보이는 이오나.
쩝.
역시 안 되나.
그래도 물어볼 건 다 물어봐야지.
“노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외부‘인’인가요?”
무척이나 쓰레기 같은 발언이지만, 이 시대에서는 허용되는 말이다. 진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 취급이거든.
누가 남의 노예를 죽이면, 그건 놀랍게도 살인죄가 아니라 재물 손괴죄에 해당할 정도로.
그 말에 이오나가 잠시 골똘히 고민하듯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더니, 이내 결정했다는 듯 재차 팔을 교차시켰다.
“으음…그래도 안 돼! 그래서야 이번 던전 실습의 의미가 흐려지거든! 어떻게든 이번에 새로 만난 학생들끼리 파티를 꾸려 다녀와야 해! 노예라도 데려가는 건 금지!”
“어쩔 수 없네요…알겠습니다.”
까비.
카를라 버스 시즌 2는 물 건너갔네.
혼자서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곱씹는 것도 잠시.
주변에서는 무엇을 상상한 건지, 경악과 경멸이 섞인 표정을 보내왔다.
괜찮다. 저것도 어차피 엘리샤에게 화살이 튈 테니까.
하지만.
“…….”
의심의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는 엘리샤.
이건 좀 곤란하네. 아무래도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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