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던전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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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려다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린 카를라와의 격렬한 교미 이후.
잠깐 정신을 놓으면 하루 종일 카를라만 만지작대거나, 살살 괴롭히며 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서 깨달았다.
카를라는 남자를 글러 먹게 하는 여자가 분명하다고….
이래서는 안 된다.
모처럼 한 달간 유지되는 20% 성장 버프…재능 있는 신입생 칭호의 효과가 활성화된 상태 아닌가.
이럴 때 더 열심히 수련해야지 카를라만 가지고 놀면 곤란하지.
그런 이유로 하루 할당치를 정해두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카를라에게는 손끝조차 대지 않는다는 강경책을 시행했는데….
어째서인지 나보다 카를라가 더 의욕을 불태우더라.
덕분에 낮에는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카를라에게 집중 과외를 받으며 매일같이 마법 수련에 몰두할 수 있었다.
물론, 야심한 밤에는 카를라에게 몰두했고.
여전히 엘리샤에게는 이길 수 없었으나, 하루가 다르게 쓸 수 있는 하급 마법이 늘어나며 대련 수업의 성적도 좋아졌다.
그 결과, 내게 한층 더 처참하게 털린 몇몇 A반 학생들이 질투의 화살을 엘리샤에게 돌리며 엘리샤의 평판은 나날이 악화되었다.
정작 엘리샤는 그런 건 신경조차 쓰지 않고 나를 더더욱 적극적으로 자기 밑으로 영입하려 들었지만.
카를라의 말대로 감히 실반 마탑의 미래 그 자체인 엘리샤와 대적하려는 사람은 없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동이겠지.
그 외에도 주기적으로 페이를 만나 연금술사 플레이를 하며 외워둔 몇몇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했다.
만드는 방법은 모르지만 재료 정도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조합 방법은 페이가 알아서 찾아내겠지 뭐.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한 달 동안 열심히 산 결과.
드디어 아카데미의 수업 내용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코어의 특징을 기준 삼아 대략적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마력의 운용법. 그리고 어떤 식으로 마력을 다루건 최종적으로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했었죠.”
마력 조작 과목의 교수. 에단 베일리프가 교단 앞에 서서 그리 이전 수업의 내용을 한번 되짚었다.
중후한 나이의 신사 같은 이 노교수는 대단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나, 지식의 넓이와 깊이가 보통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 H&A시절에는 강의를 통해 이런저런 설정을 알려주는 스피드왜건 포지션의 캐릭터였고.
“언제나 말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니 한 번 더 말하겠습니다. 마력 조작은 모든 마법적 행위의 기본이자 모든 것입니다. 조작 방법이 독자적일수록 타인의 마력 간섭에서 자유로워지며, 효율적일수록 마법의 위력이 늘어나거나 더 많은 마법을 쓸 수 있죠.”
예전에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어, 통째로 외웠다가 나중에 카를라에게 물어보곤 했으나…이젠 아니다.
저게 무슨 소리인지 이제는 얼추 이해되니까.
조금 감개무량하네.
“하지만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같은 코어를 가졌다고 해도 개개인의 마력의 패턴과 재능이 다르니, 당연히 운용 방법이 달라져야겠죠. 그 결과 코어의 능력 활용법마저 달라지는 거고요.”
내겐 시스템 보정이라는 남들에겐 없는 능력이 있다.
같은 린트블룸 코어를 가졌다고 하나, 효율성과 안정성을 신경 쓸 필요 없는 나와 그렇지 않은 카를라의 마력 운용법이 같을 수는 없겠지.
본인의 경지가 높아 하급 마법 정도는 움직이면서도 난사할 수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카를라는 고정 포대 형식의 마법사다.
그렇기에 강력한 한 방에 특화된 방식으로 마력을 운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뛰어다니거나, 굴러다니면서도 전력을 다한 마법을 시전할 수 있잖은가.
이런 시스템 보정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운용 방법을 찾아야지.
“다들 했던 말을 왜 자꾸 하냐는 얼굴이네요. 실은 이게 마지막이라 그렇습니다. 오늘부터는 단순한 이론 수업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마력 운용법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니까요.”
빙그레 웃는 노신사의 말에 조금 지루해하던 학생들의 분위기가 확 돌변해, 흥미진진해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세상은 달라도 다들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수업보다는 직접 뭔가 해보는 걸 좋아한다는 건 변함이 없겠지.
나야 마법 공부가 공부 같지 않고, H&A의 뒷 설정을 외우는 기분이라 재밌었지만.
잠시 소란스러워진 강의실을 바라보던 에단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조용.”
분명 작게 말했을 텐데, 강의실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소리 증폭 마법 같은 거라도 쓴 거겠지.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만족스레 둘러보던 에단이 아공간에서 컵 여러 개를 꺼냈다.
“그리 재촉하지 않아도 오늘부터 실습입니다. 우선 다들 이 컵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세요.”
염력 마법인 걸까. 에단이 손을 까딱이자, 컵이 일제히 허공을 가로질러 학생들의 눈 앞에 멈춰섰다.
모든 학생이 그렇게 받아든 컵을 책상에 올려두는 걸 확인하고서야 말을 잇는 에단.
“그럼 이제부터 각자 컵 안에 마법으로 물을 채워 넣으세요. 이렇게요. ‘워터’.”
에단이 허공에 생겨난 작은 물 덩어리를 컵에 집어넣는 시범을 보이자, 강의실 여기저기에서 피어오르는 마력과 시동어.
나 또한 기초 마법인 워터로 만든 물로 컵의 3분의 2가량 채워 넣었다.
찰랑.
“워터 주문으로 만들어진 이 물은 마셔도 될 정도로 평범한 물과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물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죠. 그건 바로….”
거기까지 말한 에단이 수면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가,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물이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이내 손가락을 따라오며 용오름 같은 형상으로 솟구쳐 올랐다.
“마력에 민감하다는 점입니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물이라 그런 거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잠깐동안 가만히 물의 형상 변환을 높이 치켜든 에단.
“이 나선형이 보이시나요? 제가 직접 꼬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적당한 세기로, 적당한 양의 마력을 투사하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을 뿐이죠.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아는 학생 있나요?”
그 말에 몇몇 학생이 손을 들었다.
“빌헬름 학생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네요. 한번 답해보세요.”
“네. 교수님이 따로 물의 형상을 조작한 게 아니라면, 저 모습은 교수님의 마력 패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모습일 겁니다.”
“정답이에요. 안 그래도 마력에 민감한 물이, 그 근원이 되는 마력을 만나면 별다른 조작 없이도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그러니까 가장 술자의 마력 패턴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아마 다른 사람이 하면 다른 형태가 나올 거라고 한다.
“사람마다 마력 패턴은 다릅니다.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동일한 사람은 없기에 수사나 추적에 자주 쓰이는데…음.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수업에서 너무 벗어났네요.”
에단이 멋쩍게 목덜미를 긁적이고는 헛기침을 했다.
“흠흠. 단순히 마법을 쓰는 것과 달리, 정확한 양의 마력을 정확한 세기로 투사하는 것은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건 순수한 마력 조작 능력이 필요하니까요.”
그리 말하며 나선형의 물을 흩어버린 에단이 짐짓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
“하지만 제가 지금껏 해본 모든 방법 중, 이게 가장 자신의 마력 패턴을 알아내기 좋더군요. 다른 책에서는 죄다 명상이니 뭐니 하는 주먹구구식 방법밖에 안 알려줘서…에잉.”
짜증 난다는 듯 혀를 차고는 물컵에 담긴 물을 꿀꺽꿀꺽 마셔 처리한 에단이 말을 이었다.
“10분 뒤부터 한명씩 돌아가면서 봐줄 테니 각자 시작해 보세요. 아,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도 좋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A반 중에 자신의 마력 패턴을 시각화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엘리샤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어느 정도 감은 잡은 것 같았는데….
이건 완성된 마법이 아니라 시스템 보정을 받을 수 없던 탓인지, 나는 조금 헤매는 편이었다.
이것도 나중에 카를라에게 도와달라 해야겠네.
수업 시간 내내 죽만 쑤다가 끝난 에단의 강의.
뒤이어진 다른 과목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요 한 달간 이론에 충실했으니, 이를 바탕으로 하나둘 실습을 시작했기 때문.
…이제 좀 기본 지식이 쌓여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 되자마자, 배울 게 더 생기는 거 실화인가.
그래도 착실히 성장하고 있으니 불만은 없다.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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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얀델
칭호: 재능 있는 신입생
기초 능력
근력: 12
내구: 11
민첩: 13
재주: 14
마력: 18
특성
끝없는 마나(A)
원소 친화(B)
뛰어난 기억력(B)
허접한 무기술(E)
린트블룸 마나 코어(C)
하위 마법사(D+) > (C)
태양신의 가호(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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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힌 하급 마법의 가짓수가 늘어나며, 특성의 랭크가 한 단계 상승했다.
자주 쓰는 하급 마법은 대부분 익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이걸로 시스템 보정을 조금 더 받을 수 있을 테니 당장의 수업에서 헤매긴 해도, 전투력 자체는 상당히 늘어났다.
그래.
이제 슬슬 시작될 던전 실습에서 원하는 바를 얻기엔 충분할 정도로.
…근데 던전에 시종을 데려갈 수 있던가?
하도 오래 붙어있었더니, 이젠 카를라랑 떨어지면 좀 어색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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