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불순한 봉사
* * *
마지막에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페이와 전속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 뒤에는 뭐…더 할 것도 없기에 이번에는 곧장 기숙사로 향했고.
털썩.
문을 열자마자 흐물흐물한 움직임으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푹신푹신하게 내 몸을 감싸는 매트리스, 자연스레 이완되는 전신의 근육. 그리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나오는 한숨.
“으어….”
뒤늦게 밀려오는 노곤함에 몸뚱이를 장악해간다.
“피곤해라….”
이상하네. 오늘 많은 일이 있긴 했지만, 아침의 서열전 이후로 틈틈이 활력 포션을 마셨었다. 그것도 중급으로다가.
대련 중에 하도 뛰어다녀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수업 중에 졸 것 같더라고. 첫날부터 그건 좀 그렇잖은가.
참고로 활력 포션은 등급에 따라 효과 차이가 극명하지만…대충 판타지 버전 에너지 드링크라고 할 수 있겠다.
포션 중독만 아니라면 별다른 부작용도 없어서 하급에서 중급 정도는 평소부터 적당히 마셔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이렇게 피로가 몰려오는 효과는 없었던 것 같은데….
“아.”
정신적 피로인가?
이제 보니 몸은 여전히 힘이 넘치네.
원래는 기숙사에 오자마자 카를라에게 마법을 좀 배우다가 저녁 먹고 잠들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마법 수업은 조금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지금은 이렇게 멍하니 천장이나 올려다보며 쉬고 싶으니까.
말없이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자니, 그런 내 모습을 본 카를라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도 참. 바로 누우시면 더 불편해요. 옷 정도는 갈아입으셔야죠.”
“아…몰라. 귀찮아….”
“으음. 어쩔 수 없네요. 제가 벗겨드릴까요?”
“그럼 좋지.”
몸을 대자로 펼친 채, 기다리고 있자니 내 옆에 살포시 앉는 카를라.
“읏차.”
침대 안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삐걱임. 훅하고 풍겨오는 카를라의 체향. 본인의 얼굴을 반쯤 가린 가슴이 만들어낸 어둑한 그림자.
지금껏 시종이라는 신분에 맞추겠다는 듯, 내 뒤만 따라다니던 카를라의 존재감이 순간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카를라도 나를 따라 여기저기 많이 쏘다녔지.
근데 왜 이렇게 멀쩡하지?
내 의아한 시선의 의미를 알아챈 걸까. 카를라가 내 겉옷의 단추를 풀어주며 방긋 웃었다.
“많이 피곤하시나요?”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푹 쉬셔도 괜찮아요. 저도 아카데미 첫날에는 바로 기숙사에 돌아와 저녁도 거르고 잠만 잤는걸요?”
어딘지 그립다는 듯한 카를라의 목소리.
겉옷을 빼내기 편하게 어깨를 들어주며 되물었다.
“그래?”
“네. 주인님은 활력 포션을 드셔서 반동이 좀 늦게 온 것 같지만…오늘처럼 마법을 많이 써본 것도, 그 마법으로 직접 싸워본 것도, 사람을 공격해본 것도. 전부 이번이 처음이시잖아요? 당연히 정신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죠.”
“…그런가.”
생각해 보니 지칠 만도 하네. 아마 갑자기 피곤해진 것도 기숙사에 돌아와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리라.
벗겨낸 겉옷을 곱게 접어 옆에 두고, 이어서 내 벨트까지 풀어 편하게 해주려던 카를라가 힘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전부 다 해드릴 테니 주인님은 그냥 가만히 계셔도 괜찮아요!”
“허…내가 뭘 원하는지는 알고?”
그 말에 카를라가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엣헴! 저도 이제 주인님을 모신지 한 달이 다 돼가는 걸요? 전부는 아니어도 대략적인 건 알 수 있다구요!”
“이런 건방진 노예 같으니. 그래. 어디 한번 내가 지금 당장 원하는 걸 말해 봐. 맞추면 상을 줄 테니.”
나 또한 피식 웃으며 맞장구쳐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을 붙잡아 그대로 자신의 가슴으로 이끄는 카를라.
심지어 옷 위가 아니라, 안쪽으로 집어넣어 맨살이 그대로 느껴진다.
몰캉.
손아귀를 가득 채우는 부드러운 살결. 중앙에서 느껴지는 유두의 감촉이 조금 간지럽다.
순간 흠칫한 내게 어떠냐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여는 카를라.
“지금 주인님은 제 가슴을 주무르고 싶어 해요. 맞죠?”
“…이건 내 생각을 알아맞힌 게 아니라, 유도 한 거 아냐?”
가슴이 손에 닿으면 주무르고 싶어지는 거 아냐.
쪼물쪼물.
“흐읏….”
그래서 마구 주물렀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촉감에 나도 모르게 느슨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잠시.
얌전히 내 손길에 몸을 맡긴 카를라가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어쨌든 맞췄으니…상 주실 거죠?”
“글쎄…어떻게 할까….”
유도한 것도 맞췄다고 해야 하나.
그런 내 고민이 불만이었던 걸까. 카를라가 살짝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한 번 더 맞춰볼게요 뭐. …지금 주인님은 제 가슴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자신의 상의 밑자락을 잡으며 그리 말하는 카를라.
마치 그렇다고 대답만 하면 언제든 벗을 것처럼 말이다.
…치사하네.
한숨을 푸욱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 손에 마구 일그러지는 카를라 네 가슴이 보고 싶어.”
“헤헤.”
그제야 헤실헤실 웃으며 상의를 벗어 던지는 카를라.
출렁.
속옷까지 한꺼번에 탈의하자 그 반동으로 카를라의 한쪽 가슴이 격하게 흔들렸다.
내 손아귀에 짓눌려 손가락 사이로 살이 삐져나오는 한쪽 가슴과, 마구 흔들리는 다른 한쪽 가슴.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쩌네.
그런데 카를라가 이 정도면 페이는 어느 정도지?
차마 주무르지는 못했으나, 어쩌다 보니 한번 움켜쥔 적 있는 페이의 가슴을 가늠하듯 카를라의 가슴을 만지작대던 것도 잠시.
방금까지 신나있던 카를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우울해졌다.
“…주인님. 지금 페이 양의 가슴을 생각하며 저랑 비교하고 계시죠?”
“어? 어어?”
이걸 들킨다고? 어떻게?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눈이었는 걸요. 주인님은 욕망에 솔직한 분이라 원하시는 게 있으면 금방 표정에 드러나요.”
“그랬어?”
“네. 저는 항상 주인님만 바라보고 있었으니, 금방 알 수 있었어요.”
“…….”
“아, 그래도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막 질투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저는 주인님의 노예인걸요? 감히 주인님의 인간관계에 참견할 생각은 없답니다.”
묘하게 무거워 보이는 카를라의 목소리에 무어라 할 말을 찾는 것도 잠시.
카를라는 그런 내 모습에 애써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이미 주인님께서 저번에 약속해주셨잖아요? 절대로 저를 버리지 않으실 거라구요. 그러니까 저는 괜찮아요. 정말로요. 하지만….”
뒷말을 하려다 말고 한참을 망설이는 카를라.
아직도 굳어있는 혀 대신, 카를라의 가슴을 만지작대던 손을 위로 뻗었다.
부드러이 뺨을 쓸어주고 입술 위를 가볍게 엄지로 훑어주기까지 하며 재촉하자, 그제야 카를라가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꾸 욕심이 나요. 주인님께 버림받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총애를 받고 싶다고 말이에요.”
“……?”
그게 무슨 차이지?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자, 카를라가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오늘 주인님과 페이 양을 보고 깨달았어요. 언젠가 주인님에게도 연인이 생기고,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생겨 그렇게 가정을 이루게 되더라도…여전히 제게 욕정하고, 저를 필요로 해주셨으면 한다고…그리 생각하는 제가 있다는 걸요.”
“…뭐? 잠깐만 페이랑은 오늘 처음 만났는데 왜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거야?”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굳었던 혀가 의문을 토해냈다.
게임에서야 여러 번 봤다지만…어디까지나 내가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 걸 만났다고 할 수는 없잖은가.
뭐, 어쩌다 보니 가슴을 좀 만지게 됐지만 그렇다고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도 이상하고.
다만 내 의문에도 카를라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꼭 페이 양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주인님의 곁에 저보다 훌륭한 분이 자리 잡을 건 당연한 사실이잖아요? 주인님은 좋은 분이시고, 재능도 타고나셨으니까요.”
아마 카를라의 머릿속에서 나는 린델하이트의 시조처럼 언젠가 으리으리한 가문을 세울 남자인 거겠지.
그러니 저렇게 단언하는 것이리라.
“저는…그때도 제가 주인님의 곁에 머무르며 잔뜩 귀여움받고 싶은 거예요. 헤헤…너무 욕심이 과한가요?”
어색하게 미소 짓는 카를라.
카를라가 내게 의존하고 있다는 건, 그 원인이 노예 교육으로 일그러진 가치관 때문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이건 필요에 의해 내 애정을 갈구하는 게 아니라, 마치…….
내가 눈을 크게 뜬 사이. 카를라가 자신의 볼을 감싼 내 손에 얼굴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래서…그래서 주인님이 저를 아끼실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거 아세요? 오늘 했던 말은 농담이나 아부가 아니라는 거. 정말로 주인님은 제 세상의 전부에요.”
거기까지 말한 카를라가 내 손에서 얼굴을 떼더니, 이내 엉금엉금 네발로 기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상의만 탈의한 탓에 훤히 드러난 젖가슴이 평소보다 커 보인다.
그 상태에서 조금 전에 느슨하게 풀어 두었던 벨트에 손을 올린 카를라.
“주인님. 제가 주인님이 무슨 생각 하시는지 맞추면 상을 주신다고 하셨죠?”
“…어, 응.”
이 와중에도 눈치 없게 단단히 서 있는 물건. 카를라가 바지 위로 내 고간을 어루만지며 애원했다.
“그럼…제가 주인님께 불순한 목적으로 봉사 드리는 걸 허락해주실 수 있나요? 주인님에게 귀여움받을 수 있는 기회…그게 지금의 제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이에요.”
“…….”
잠깐의 침묵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제가 진짜 기분 좋게 해드릴게요! 그러니까 주인님은 가만히 누워 계세요!”
“……?”
갑자기 확 밝아진 카를라의 목소리.
그리고 입가에 짧게 맺힌 계획대로라고 중얼거릴 법한 미소.
“어?”
잠깐.
설마 이거…내가 작업당한 거야?
근데 기껏 주인을 속여놓고 한다는게 봉사(야한 의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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