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얼마야! 얼마면 돼!(3)
* * *
칙칙한 회색빛 건물.
대낮인데도 묘하게 어두컴컴하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꺼림칙하기 그지없다.
사람을 잡아끌고, 자신을 홍보하여 후원을 따내기 위한 공방으로서는 하자 그 자체인 외견. 하지만….
‘페이 야른샤드의 공방’
반쯤 녹슬어있는 명패가 이곳이 목적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주인님? 정말 여기 맞아요? 아무리 4구역이라지만, 아카데미 내부에서 무슨 슬럼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요?”
“조금 사정이 있거든. 단순히 밀려난 게 아니라 쫒겨났다고 해야 하나….”
“막 구리구리한 냄새도 나는데요?”
“모든 연금술 공방에서 나는 냄새지. 보통은 냄새 제거 마도구를 설치해 맡을 일 없는 냄새기도 하고.”
“저어…주인님. 제가 주인님의 결정에 따르지 않겠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닌데요…여기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주인님이 뭘 의뢰하려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여기서 해야 하는 건가요?”
“에헤이. 걱정 마. 정말로 괜찮으니까. 그리고 여긴 의뢰 맡기러 온 게 아니라 후원하러 온 거야.”
그제야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카를라.
“아하. 후원받으러 온 거군요. 어라? 분명 후원은 정의로운 광명의 교단에서 받을 거라고 하셨는데…아, 혹시 여기에 자원봉사 중인 사제님이라도 계시는 건가요?”
다만 조금 잘못 이해한 것 같았지만.
현실 도피하느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카를라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대로 볼을 양옆으로 쭈욱 잡아 늘렸다.
“흐아앙!”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팔만 파닥거리는 카를라의 볼을 마구잡이로 유린하며 말을 이었다.
“후원받으러 온 게 아니라 후원하러 온 거라니까. 내가, 내 돈으로, 여기 주인을 지원해주고 전속 계약 좀 맺으려는 거야.”
“왜, 왜 돈을 내다 버리시려는 건가요?! 아카데미 재학생이, 그것도 A반 학생이 이렇게나 구석진 곳에 처박힐 정도면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실력만 좋지 다른 모든 부분에서 결함 덩어리일 수도 있다구요!”
“뭐, 틀린 말은 아니네.”
그만큼 페이의 상황은 좋지 않다. 오죽했으면 가만 놔뒀을 때 자살까지 가겠는가.
“하지만 돈만 있으면 전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더 좋은 재료, 특별한 재료로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페이는 모든 문제를 오로지 결과로 돌파한다.
다만 내가 그러한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걸 말해줄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페이가 이 꼴이 된 원인뿐.
“너무 그러지 마. 왕따라 그런 거거든.”
“네?”
“본인 문제가 아니라, 주변에서 따돌림당한 탓에 여기까지 몰린 거라고.”
“…아카데미가 그런 걸 용납했을 리가 없어요.”
“보통은 그렇지. 근데 딱 교칙에 걸리지 않을 수준이었거든.”
같이 안 놀아준다거나, 일부러 없는 사람 취급한다거나 뭐 그런 정도.
막 어디 으슥한 데로 불러서 줘패고 그런 수준은 아니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는 카를라.
솔직히 조금 귀찮아져서 그냥 카를라의 순산형 엉덩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꽈악.
“히익!”
“아무튼 본인 문제 아니라는 거 알았으니 됐지? 이제 들어가자고.”
“네, 네에…그으…주인님?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없다지만 밖에서 이러시는 건 조금….”
“그래서 내가 뭐 못 만질 거라도 만졌다는 거야?!”
적당히 주종관계로 찍어 누르자 황급히 고개를 젓는 카를라.
“아,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주인님이 만지고 싶으시면 언제 어디서든 만지셔야죠!”
“그래?”
“네! 방금 것도 주인님께 거역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걱정돼서 그런 거였어요! 저는 주인님의 충실한 노예니까요!”
이 뒤에 이어질 말을 미리 예고라도 하듯 양손을 들어 가슴께에서 귀엽게 꺾는 카를라.
마치 강아지를 흉내 내는 듯한 자세로 마지막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끼익!
“소, 손님? 손님이신 거죠…? 어, 어서 들어오세……요?”
인기척을 느낀 걸까. 굳게 닫힌 문이 열리며 등장한 공방 주인이 우리의 모습에 딱딱하게 굳었다.
강아지 자세를 취한 어여쁜 시종, 그런 시종의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나.
그리고 이런 상황에도 꿋꿋하게 이어지는 카를라의 마지막 대사.
“멍멍!”
공방주인…페이의 얼굴이 요상하게 찌그러졌다.
에헤이. 야외플 하려다가 들킨 거 아니니까 표정 풀어.
***
“드, 들어와. 바닥이 조금 어지러우니까 발 조심하고…아, 혹시 반말 불편해…요? 내가 선배지만 겨우 1년이니까, 싫으면 그만둘게…요.”
“괜찮아요. 편한 대로 부르세요 선배.”
“후힛…선배래…나를 선배라고 불렀어….”
타이밍이 안 좋아 생긴 약간의 오해를 풀고 난 뒤, 페이는 묘하게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나와 카를라를 공방 내부로 안내해 주었다.
다만 비꼰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다. 그냥 페이의 웃음소리 자체가 기묘할 뿐이지.
사실 그런 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조금 어지럽다는 바닥이었다.
빼곡히 쌓인 잡동사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철 덩어리, 그리고 뭔가 위험한 색으로 빛나는 포션까지.
조금 어지럽기는 개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잖아.
나도 카를라도 조심조심 발끝을 들어 올린 채,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공방의 중심.
그래도 사람 사는 공간이 맞다는 걸까. 여전히 주변은 더럽지만 중앙의 빈 공간은 넉넉했다.
어두컴컴한 조명. 주변에 널린 알 수 없는 물건들. 그리고 저 뒤에서 악취를 내며 보글보글 끓는 가마솥까지.
연금술사의 공방이라기보다는 옛날이야기에 나올법한 마녀의 집 같은 곳이지만….
페이는 익숙하다는 듯, 발로 주변 물건을 슥슥 밀어내고는 우리 앞에 앉았다.
경황이 없던 지금까지와 달리, 그제야 페이의 모습을 차분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앉아있다는 걸 감안해도 굉장히 작은 키. 하지만 신장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가슴.
떡지지는 않았으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머리는 부스스한 개털처럼 엉덩이까지 늘어졌으며.
아까부터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동자는, 콧잔등에 걸쳐진 두꺼운 안경 때문에 보는 쪽마저 어지럽게 느껴진다.
그래.
페이 야른샤드는 이런 녀석이었지.
항상 머릿속에서는 생생히 기억났으나, 실물을 눈앞에 두니 어쩐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망치로 적의 골통을 깨부수냐, 철을 두드리느냐의 삶을 살던 드워프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드워프.
기꺼해야 내 명치에 오는 짜리몽땅한 키는 드워프의 혈통이나, 카를라보다도 커 보이는 저 가슴은 인간의 혈통이 발현된 것이리라.
보통 드워프는 절벽 수준으로 납작하니까.
어린 시절부터 혼혈이라는 이유로, 전사도 대장장이도 아닌 연금술사의 길을 택했다는 이유로 드워프 사이에서 겉돌았다고 했던가.
심지어 평범하게 포션이나 특수한 소재 같은 걸 만들려는 것도 아니다.
페이는 연금술로 무구까지 만들고자 했으니까.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원하는 형태로 주조하는 것처럼, 연금술로 모든 것을 주조하고자 한 것이다.
차라리 연금강이나 금속 용해제 같은 걸 만들었다면 오히려 드워프들이 반겼겠지.
하지만 완성된 무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망치질을 신성시하는 드워프들 사이에서 이단시 되기에 충분했다.
그 탓에 어린 시절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나.
물론 드워프들이 페이를 학대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기본적인 것들은 제대로 챙겨줬으니까.
다만 없는 사람 취급당했을 뿐이지.
그것만으로도 페이가 지금 같은 음침한 성격으로 자라기엔 충분했던 것 같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페이는 더더욱 연금술에 파고들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결과를 내면 이를 인정해 주리라 여겼기에.
아득바득 아카데미까지 입학하는 데 성공했지만…결국 여기서 막히고 만다.
페이가 가려는 길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고, 이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시행착오가 필요하며, 그 시행착오에는 돈이 든다.
그런데 페이는 가문으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다. 후원을 받으려 해도 누구랑 대화해본 적이 너무 오래라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심지어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한 연금술의 결과물은 미묘하기 그지없었으며, 드워프의 비율이 높은 제작학부 A반에서는 고향에서 그랬던 것처럼 따돌림까지 당한다.
공방의 꼬라지를 보면 알 수 있듯, 페이는 아카데미에서 붙여주는 시종조차 거부했는데, 이는 최후의 발버둥 같은 거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어 마지막으로 연금술에 매진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방해되는 모든 것을 주변에서 치운 것.
아마 기숙사도 방치해둔 채, 공방에만 처박혀 있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페이는 연구의 실마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다.
이대로라면 천천히 말라죽을 뿐이라는 걸 깨달은 페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이젠 그럴 일 없을 거다.
내가 있으니까.
잠시 감상에 빠져,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페이를 바라보고 있던 탓일까.
이를 재촉이라 여긴 건지 페이가 우물쭈물 대면서도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바, 반가워. 나는 페이…페이 야른샤드야. 후, 후배님은 이름이 어떻게 돼…?”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절대 마주치치 못하는 시선. 한시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고 꼼지락대는 손가락.
겨우 인사 하나 하는데 얼마나 긴장한 건지.
피식 웃으며 확정 가챠…아니, 페이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꾸벅였다.
“저는 얀델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선배.”
“으, 으응!”
그러자 황급히 고개를 꾸벅이는 페이. 다만 그 기세가 지나쳐 고개를 푹 숙였는데….
놀랍게도 겨우 이 정도 움직임에 페이의 묵직한 젖가슴은 자신의 무릎을 짓눌렀다.
몰랑.
이리저리 일그러지며 삐져나오는 가슴.
교복은 물론이고, 펑퍼짐한 로브로 한 번 더 몸을 가렸을 텐데도 이만한 움직임이라니.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들어 올린 페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앗, 읏….”
다급히 상체를 들어 올리며 옷깃을 단단히 여미는 페이.
하지만 그녀는 알까. 다급히 들어 올리는 시점에서 가슴이 마구 흔들리고 있다는걸.
굉장하네.
정지된 일러스트가 아닌, 움직이는 실물은 내 상상 이상으로 굉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마냥 가슴만 바라볼 수는 없겠지. 실례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척 목을 가다듬고서 바로 본론을 꺼냈다.
“흠흠. 제가 수업 첫날부터 페이 선배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궁금하실 겁니다. 여기가 어쩌다 찾을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니까요.”
“어? 으응! 맞아. 호, 혹시 나한테 의뢰…맡기려는 거야? 나 어지간한 건 다 만들 줄 알아. 포션, 재료, 촉매, 폭탄…뭐, 뭐든 말해!”
나름 믿음직스러운 제스쳐랍시고 자기 가슴을 통통 두드리는 페이.
그럴 때마다 조금 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격렬한 파도가 일었으나…이를 자각하지 못한 건지 내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런 페이에게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오늘 단순한 의뢰를 맡기려고 온 게 아니에요.”
“…어? 그럼.”
“네. 선배가 목적으로 한다는 연금술 주조. 거기에 관심이 있거든요.”
“지, 진짜?”
“진짜죠. 설마 가짜겠어요?”
“와아…! 그, 그럼 한번 들어 볼래? 원리가 어떤 식이냐면….”
확 하고 밝아지는 페이의 얼굴.
여전히 내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는 못하지만 힐끔거리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는다.
아직 후원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관심에 굶주린 거냐고….
애잔함마저 느껴지는 페이의 반응이 진정될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고서야 말을 이었다.
“흥미롭네요. 저는 선배의 연구에서 가능성을 느꼈어요.”
“그, 그래? 에헤헤…그런 말 듣는 거 처음이야….”
그렇겠지. 솔직히 말해서 너무 흥분해서 자기 말만 하느라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거든.
단순히 내 연금술 지식이 부족해서라고 하기에는 옆에 있던 카를라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아, 그냥 페이가 말을 횡설수설해서 그런 게 분명하다.
물론 지금은 적당히 알아들은 척해야겠지만.
“그래서 말인데 제가 선배를 좀 후원해드릴까 하는데요.”
“후, 후원…!”
“금액은 한 달에 300골드. 부족하면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경우, 더 드릴 수도 있고요.”
“매달 300골드?! 거기서 더?!”
너무나 비정상적인 금액이었던 걸까. 되려 차분해진 페이가 의심의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하기야 의심할만하지.
후원이라 함은 매달 몇 십 골드의 돈과 이런저런 추가 지원을 해주는 게 보통이니까.
이럴 땐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한번 보여주는 게 최고지.
다짜고짜 인벤토리에서 300골드를 꺼냈다.
촤르륵
바닥에 쏟아진 황금색 물결.
“허억…!”
숨을 크게 삼키며 이를 바라보는 페이에게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후원처와는 달리 재료를 싸게 살 수 있다거나 연금술 도감을 무료로 빌려준다거나 하는 지원은 없습니다. 제가 가진 건 돈뿐이라서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죠?”
“…으응! 응! 충분해! 이거면 생각만 하던 신식 연금로에 마나 정제 키트, 그리고 각종 희귀 광물까지 전부 살 수 있어! 저, 정말 후원해주는 거야? 이렇게 거금을?”
“물론이죠. 다만 조건이 있어요.”
“조건…?”
조건이라는 말에 불안하다는 듯이 내 눈치를 살피는 페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제 전속이 되어주세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우선적으로 들어주셔야 해요.”
“…전속?”
아무리 돈이 궁한 사람이라도 전속이라는 말에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걸까.
처음으로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페이.
이어서 내 옆에 있던 카를라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
“그, 그러니까…후배님이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한다는 소리지…?”
“네. 걱정 마세요. 그리 과격한 부탁은 안 할 테니까요.”
3일 안에 현자의 돌을 만들어라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킬 생각은 없다.
물론 언젠가는 가능하게 되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니까.
잠시 숙고하듯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는 페이.
그 상태에서 힐끗힐끗 내 쪽을 바라보더니,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미, 미안! 못들은 걸로 할게! 그…이런 건 조금 그렇다고 생각해…!”
뭐?
왜 거절당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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