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얼마야! 얼마면 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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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주변에서 느껴지던 방과 후 특유의 소란스러움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공방 거리에 도착한 것이다.
스윽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전체적으로 잘 조성된 거리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깔끔한 바닥, 휘황찬란한 간판, 그리고 쇼윈도에 장식된 뭔가 엄청나 보이는 물건들.
검이나 지팡이 같은 알기 쉬운 장비는 물론, 보석이 잔뜩 박힌 액세서리나 정체불명의 포션 같은 것이 멋들어지게 진열되어 있었다.
1구역 답게 명품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분위기.
하지만 내가 목적으로 하는 곳은 여기가 아니다.
“가자.”
“네. 이대로 더 들어가시면 돼요.”
고개를 끄덕이는 카를라를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안쪽으로. 조금 더 안쪽으로.
번쩍번쩍한 1구역을 시작으로, 반듯한 2구역, 그럭저럭 깔끔한 3구역까지 전부 지나치자 어느 순간 분위기가 확 일변했다.
“연습용 롱 소드 싸게 팝니다! 두 자루 사면 하나 더 드려요!”
“최하급 활력 포션 10개들이 한 세트 팝니다! 묽어서 포션 중독도 심하지 않아요! 이거 한 병이면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시제품 실드 반지 그냥 드립니다! 공짜에요 공짜! 대신 다음 던전 실습에서 한번 써주시고 후기 남겨주세요! 가능하면 좋은 내용으로!”
겨우 몇 미터 들어왔을 뿐인데 도떼기시장처럼 변한 분위기.
여기가 바로 4구역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이 어디겠는가. 바로 하위 반인 C반이다.
동시에 평민의 비중이 가장 높은 반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귀족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기도 하며, 그 재능을 단련할 환경을 갖춘 경우가 많으니까.
반대로 검술이나 마법을 접할 일이 거의 없는 평민의 특성상, 대장간이나 약초꾼 일을 하다 자신의 재능을 자각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제작학부에는 유독 평민이 많이 몰려있고.
덕분에 둘 모두에 해당하는 제작학부 C반이 모인 공방 거리 4구역은 바깥의 시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여긴 언제 와도 소란스럽네요 주인님.”
“나름대로 필사적인 거겠지.”
제작학부는 그 특성상 뭔가 좀 하려 들 때마다 돈이 엄청나게 깨지다 보니, 어떻게든 좋은 후원자를 구하려는 거겠지.
단순히 판매 대금만이 목적이라면, 아카데미에 납품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다만, 그렇게 납품한 물건은 제작자가 표기되지 않고, 오로지 아카데미에서 만들었다는 것만 적혀있기에 이름을 알릴 수가 없다.
아카데미 납품으로는 후원자를 구할 수 없다는 소리다.
참고로 제작학부만큼 후원자가 중요한 학부도 없다.
걸작을 만들거나, 대박 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상 돈을 쏟아 부어 실력을 키운다는 느낌이 강하니까.
수련에 무기 한 자루만 있으면 되는 기사나, 조용한 골방만 있으면 되는 사제들과는 다르다.
마법사도 돈이 많이 들긴 하지만…그건 대부분이 인건비다.
자신의 상상과 의지로 마법을 일으키는 마법사들은 대체로 에고가 강한 편인데, 그러다 보니 누굴 가르치는 데 돈을 엄청나게 요구하기 때문.
공짜로 가르치는 아카데미에서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다 보니, 오로지 제작학부 학생들만이 자금난에 허덕인다.
안 그래도 돈 없는 평민이 대부분인데,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해보려 할 때마다 돈이 왕창 깨지니까.
물론 기본적인 것들은 아카데미에서 전부 지급해주지만…평범한 재료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강철을 두드려도 미스릴이 되는 건 아니잖은가.
설령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물건을 만들 실력이 있다고 해도, 더 좋은 재료로 만들면 더 좋은 물건이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고.
그러니 이제 막 4학년이 졸업하고, 신입생들은 삐약대는 한산한 시즌이라 해도 저들은 여전히 필사적인 것이리라.
자신의 몸값을 높일 기회를 하루라도 헛되이 할 수 없으니까.
거기에 그런 이들 중 괜찮은 이들을 영입하려는 귀족이나, 비슷하게 가난한 다른 학과 학생이 필요한 물건을 싼값에 사러 오는 등.
여러 사람이 한데 뒤섞였으니 시끌시끌할 수밖에.
하지만 내가 찾는 사람은 이곳과도 거리가 멀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앞장설게.”
“엇…네.”
무언가 신경 쓰인다는 듯 순간 멈칫한 카를라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곳한 자세로 내 뒤에 섰다.
아마 내가 왜 이리 4구역의 모습에 태연한 건지, 길도 몰라 여기까지 안내받은 주제에 혼자서 어떻게 찾겠다는 건지 의아한 거겠지.
대답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 적당한 변명거리를 생각해두긴 해야겠네.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가장 가까운 곳의 연금술 공방으로 향했다. 조금 전에 활력 포션을 판다며 호객 행위를 하던 곳이다.
여기가 그나마 4구역에서 괜찮은 자리에 공방을 차려뒀거든.
“저기요.”
“네! 어서오세요! …신입생?”
내 교복 가슴팍에 달린 작은 책과 스태프 모양의 배지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배.
“신입생이면 오늘이 수업 첫날일 텐데?”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래? 부지런하기도 하네. 뭐, 신입생이든 아니든 손님은 손님이지. 찾고 있는 물건이라도 있어? 최하급에서 하급 정도지만 어지간한 포션은 전부 있고, 회복 포션과 활력 포션은 중급도 몇 병 있어.”
“그럼 활력 포션 쪽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첫날부터 수업이 좀 빡세더라고요.”
“아하? 너 A반이구나? 거긴 이오나 교수님이 첫날부터 엄청 굴린다고 하던데. 아무튼 그런 거라면 들어와. 물건을 보여줄 테니까.”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구석을 뒤져, 노란 물약으로 가득 찬 작은 시험관 3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선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색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이 특징적이다.
“왼쪽에서부터 최하급, 하급, 중급이야. 별다른 어레인지 없이 공식 레시피대로 만든 거지만, 대신 대량 생산할 수 있어. 효과가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건 샘플이니까 마셔서 확인해봐도 괜찮아.”
아니, 여기서 자기 어필을?
뭐…공장이 있는 것도 아닌 세상이니, 포션의 대량 생산은 중대 사항이긴 하다.
내가 어느 영지의 후계자였다면 귀가 솔깃했겠지.
다만 나는 먹여 살릴 영지민 같은 건 없고, 내가 여기서 포션을 사려는 건 일종의 정보료 같은 것이기에 고개를 저었다.
“음. 그건 괜찮아요. 이미 살 건 정해뒀거든요. 중급으로 10병 주세요.”
“어…7병밖에 없는데?”
“그럼 7병 주세요.”
등급이 낮은 물약은 대량 생산 가능하지만, 조금만 등급이 높아져도 만들기 힘들어하는 타입인가.
어쩌면 그런 쪽의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카운터를 보고 있던 선배의 시종이 능숙한 움직임으로 포션을 하나둘 꺼내는 걸 확인하고서야 대금을 건넸다.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금을 주머니에 집어넣는 선배. 나 또한 포션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조금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혹시 페이 야른샤드의 공방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
잠깐의 침묵.
하지만 그는 떨떠름해 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포션 사러 온 손님이 아니었네. 뭐, 신입생이 그 녀석을 찾는 이유는 모르겠지만…많이 사줬으니 못 알려줄 것도 없지.”
세세하게 가는 길을 알려준 선배에게 가볍게 꾸벅여 인사한 뒤에야 공방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조금 멀어지자마자 내 소매를 꾹꾹 잡아당기는 카를라.
“주인님 주인님.”
“응?”
“혹시 원래부터 아는 분이었나요?”
“음…그렇긴 해. 다만 나 혼자 알고 있는 거였지만. 그러는 카를라 너는 들어본 적 없어? 지금 2학년이니까 네가 재학 중일 때 입학한 사람인데.”
“에이. 아카데미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학과 학생. 그것도 당시에 1학년이었던 사람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것도 그러네.
“뭐…일단 A반이니까 실력은 확실할 거야.”
“네? 그으…주인님? 그게 말이죠…A반인데 4구역까지 밀린 거면….”
“실력 이외의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는 소리지?”
“네. 심지어 4구역에서도 이렇게 구석진 곳이니까 아마 확실할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다.
이래저래 문제가 많은 녀석이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할 만큼 실력은 좋단 말이지. 뭣보다 페이 본인이 문제인 것도 아니고.”
“그 정도인가요?”
“어. 자세한 건 보면 알 거야.”
엘리샤가 지원만 제대로 해주면 대마법사까지 성장하는 것처럼, 페이도 늦지 않게 지원해주면 결국에는 현자의 돌 연성에 성공하는 확정 가챠니까.
…반대로 타이밍을 놓치면 조용히 자살하는 극단적인 녀석이기도 하지만.
아직 페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나…그래도 가능하면 빠르게 접촉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로 수업이 끝나자마자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지원이라는 것도 간단하다. 말하지 않았던가. 제작학부 돈 먹는 하마라 후원이 중요하다고.
H&A에서는 주인공이 이래저래 발품 팔아 연금술 길드와 연결해주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이 페이의 사이드 스토리였지만….
꼭 거기에 따를 필요는 없지. 결국 돈이 문제라면 내가 후원자가 되면 될 일 아닌가.
엘리샤가 실반 마탑을 등에 업고, 내게 후원 제안을 했다면.
나는 내 플레이 타임을 등에 업고 페이의 후원자가 되면 되겠지.
슬쩍 인벤토리의 잔액을 확인하자 절로 흘러나오는 흐뭇한 미소.
갑자기 왜 혼자 실실대는지 모르겠다는 듯, 갸웃거리는 카를라와 함께 4구역에서도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얼마야! 얼마면 돼요!”
“으게엑!”
“얼마면 내 전속이 될 거냐고요!”
“도,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야…!”
뭐?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그럴 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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