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반 대표 서열전(3)
* * *
내가 자신을 방패막이로 쓸 거라는 걸 알아챈 이름 모를 여학우가 이를 악물었다.
“너…이 개새….”
“어허. 납븐말 금지!”
순식간에 코앞까지 날아온 마법.
최대한 몸을 웅크려 그녀의 좁은 등 뒤에 숨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울려 퍼지는 굉음.
콰앙!
화르륵!
촤악!
“꺄아아악!”
다양한 속성의 마법이 뒤섞여 폭발하는 소리. 그사이에 섞인 작은 비명 소리.
…기억할게!
방금 막 생긴 친구에게 속으로 애도를 표하며, 주어진 잠깐의 여유를 활용해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휘몰아치는 바람이여. 내 손에 머무르며 더욱 예리하게 날을 갈아라.”
내가 가진 마법 중 가장 위력이 높은 마법인 윈드 커터.
일반적인 영창이 아닌, 강화 영창을 통해 필요 이상의 마력을 불어넣는다.
후우웅!
마력의 과충전이 이루어질수록 스태프 끝에 붙들린 반투명한 바람의 칼날이 점점 몸집을 부풀려간다.
그리고 여기가 한계라는 듯 작게 진동하며 주입되는 마력을 공기 중으로 흘려보낼 때쯤.
시끄럽게 귓가를 울려대던 굉음이 일제히 멎었다.
나를 노리던 마법들이 전부 착탄한 탓이겠지.
슬쩍 고개를 들어보자, 하나하나가 사람 한명은 우습게 죽일 수 있는 위력이 담긴 마법이었던 탓인지 주변에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라 있었다.
그 사이로 살짝 보이는 붉은 빛. 아마 내 방패가 되어준 친구의 탈락을 알리는 빛이리라.
예상대로 약간 그을린 흔적은 있어도,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네.
이오나가 탈락한 학생을 회수하는 타이밍에 맞춰 뛰쳐나갈 수 있도록, 무게중심을 앞쪽으로 기울인 것도 잠시.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흙먼지에 초조해졌는지, 누군가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해치웠나…?”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정확히 조준하고, 아까부터 팔이 저릴 정도로 진동하는 스태프를 검처럼 좌에서 우로 휘둘렀다.
“원드 커터!”
쐐애애액!
흙먼지를 반으로 가르며 쏘아진 바람의 칼날. 그 틈새로 드러난 당황한 표정의 비실비실한 인상의 남학생.
그가 무언가 마법을 준비해보려는 듯, 짤막한 원드를 들어 올렸으나….
바람 계열 마법은 다른 원소 마법에 비해 파괴력이 약한 대신, 투사속도가 빠른 것이 장점인 마법.
녀석은 결국 영창을 한 소절도 채 말하지 못하고 윈드 커터에 직격당했다.
뭐, 실드라도 준비해둔 건지 잠시 허공에 멈춰선 칼날이었으나…이내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쨍그랑!
“끄아아아아악!!”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바닥을 나뒹구는 녀석, 그의 몸뚱이는 탈락을 뜻하는 붉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혹시 몰라 풀 차지 해두길 잘했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덩치 큰 사내를 향해 달려 나갔다.
탈락을 확인한 이오나가 내 방패가 되어준 친구와 방금 쓰러진 녀석을 동시에 회수하는 것을 본 다음 상대가 외쳤다.
“이 비겁한 녀석! 가녀린 레이디를 방패로 삼은 것도 모자라, 그 뒤에 숨어 기습까지 하다니!”
“뭐래. 개인전인데 여럿이서 나부터 떨어뜨리려고 협력하는 건 안 비겁하고?”
“동맹은 전략의 일환이다!”
“그럼 방금 건 우정의 일환이었어. 아직 이름도 모르는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줄 줄이야…정말 좋은 친구야. 그치?”
“네놈…!”
빠르게 가까워지는 거리.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마력을 끌어올린 녀석이 스태프를 겨누었다.
“반짝여라! 그리하여 꿰뚫어라!”
녀석의 주변으로 하나둘 생겨나는 빛의 구슬.
광탄 마법?
물리력을 가진 빛을 던지는 마법으로 빠른 속도와 상당한 위력을 자랑하는 제법 까다로운 마법이다.
그만큼 빛 계열 마법은 원소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자랑하지만…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마법을 완성할 자신이 있는 건가.
…이제 보니 기억에 있는 얼굴이네.
빌헬름 트리키아. 스펙은 그럭저럭인데 빛 속성에 유독 적성이 높아, 컨셉 플레이 시에 종종 채용하는 동료였다.
녀석이 내가 아는 그 빌헬름이라면 타이밍에 맞춰 광탄 마법을 완성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니 방해해야지.
전력으로 달려가며 스태프를 겨누었다.
“빛이여!”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부담스러운 디자인의 스태프. 그 끝에 새하얀 빛무리가 맺히더니.
“라이트!”
내 시동어에 맞춰 사방으로 폭발하는 빛.
번쩍!
일부러 한 소절이나마 영창을 추가한 덕에 시동어만으로 쓸 때보다 한층 더 강한 광량이다.
거기에 태양신의 가호 특성으로 10% 강화된 것은 물론, 본래 조명처럼 유지해야 하는 광구光?를 터뜨리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약간 거리가 떨어져있지만, 눈뽕으로 쓰기에는 충분하리라.
“크윽!”
투사체 마법은 대부분 눈으로 보고 조준해서 던진다.
그렇게 시각에 근거한 직관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당연히 조준이 크게 빗나갈 수밖에.
이 또한 카를라에게 배운 마법사를 상대하는 팁이다.
배운 족족 써먹을 일이 생기는 상황에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질주에 박차를 가했다.
타닥. 탓.
그냥 달려가기는 뭐하니 빌헬름이 눈을 떴을 때를 위한 깜짝 선물도 하나 준비해야지.
“바람이여. 너는 한 자루의 예리한 검이 될지어다.”
후웅
스태프 끝에 뭉쳐 드는 바람.
이번에는 시간이 부족해, 조금 전처럼 차지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달리면서 시전한 게 어디인가.
…전부 시스템 보정 덕분이지만.
빠르게 가까워지는 거리. 그리고 기어이 빌헬름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했을 때쯤.
“뭐?! 어떻게!”
드디어 시력을 회복한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온 내 모습에…아니, 달려오면서 시전한 윈드커터의 모습에 기겁했다.
녀석의 정신이 흐트러진 틈을 타, 그대로 스태프를 비스듬히 휘둘렀다.
“윈드 커터!”
너무 윈드 커터 원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어쩌겠는가.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이 이건데.
빌헬름의 목을 노리고 날아간 반투명한 바람의 칼날. 처음부터 나를 노리던 녀석 중 하나니 미처 실드를 펼쳐둘 여유도 없었을 터.
이대로 목을 베어 탈락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흐읍!”
내 접근을 깨닫자마자 상체를 한껏 젖혀 피해내는 빌헬름.
완벽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가슴팍이 베여 옷이 너덜거렸지만 그뿐이다.
그래. 나만 피할 수 있다는 건 아니겠지.
애초에 카를라는 벼락치기로 할 수 있는 기술만을 알려주었다. 너무 복잡하지 않은 그런 것들 말이다.
당연히 어릴 때부터 막대한 연습량을 쌓아온 다른 이들 또한 해낼 수 있을 터.
앞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스태프를 치켜든 빌헬름이, 뒤쪽에서는 언제든 쏘아질 것처럼 난폭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빌헬름의 반격에 당하건, 뒤에서 날아오는 마법 세례에 바삭하게 구워지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쿵!
심장을 주변을 둘러싼 마나 코어가 거칠게 맥동하며 전신으로 마나를 전달한다.
“쇼크!”
손끝이 아닌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작은 스파크. 백만볼트는커녕 그냥 움찔하는 정도겠지만…그거면 충분하다.
“끄윽…!”
내가 처음에 했던 것처럼 스태프를 둔기처럼 쓰려던 빌헬름이 멈칫했다.
그 틈을 타, 왼손에 들고 있던 빛나는 사자 단검을 빌헬름의 옆구리에 쑤셔 넣었다.
“커헉!”
“후…이게 되네.”
칼끝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감촉. 일전에 사교도 간부인 피에트로를 죽였을 때와는 다른 감촉이다.
사람을 찔렀다기보다는 푸딩이라도 찌른 것 같은 괴이한 감촉.
아마 이오나의 보호 마법이 작용한 탓이겠지. 만약 이대로 칼을 뽑는다해도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만 드러날 것이다.
…아직 허접한 마법사들을 모아두고 서로 싸우라고 하니 마법이 아니라 칼찌에 당하는 사람도 나오는 건가.
어찌 됐든 적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오케이라던 이오나와 달리, 뜬금없이 단검에 찔린 게 억울했는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는 빌헬름.
허나 그뿐이다.
마법사치고는 제법 튼실한 덩치를 가진 녀석이나, 칼에 박히면 누구나 꼼짝을 못 하는 법.
반항이라도 해보려는 듯, 꿈틀거리던 빌헬름을 체중을 실어 밀자.
빙글.
순식간에 뒤바뀌는 나와 빌헬름의 자리.
“너도 내 친구가 되어줄래?”
“개소리하지 마라!”
프렌드 실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욕지거리를 내뱉는 녀석.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앞으로의 아카데미 생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나?
설마 수업인데 이걸로 원한을 품고 그러진 않겠지?
뭐, 품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만…그냥 좀 심한 것 같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고민하며 빌헬름을 방패처럼 내세운 것도 잠시.
어째서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나를 다구리 치려던 놈들의 마법이 날아오질 않았다.
그럼 저 격렬한 마력 반응은 대체?
빼꼼 고개를 내밀어 빌헬름의 어깨 너머로 저편을 바라보자.
“으아악! 엘리샤 양 어째서…!”
“저희 그냥 저 비겁한 녀석을 먼저…꺄악!”
“다들 도망쳐! 우리로는 못 이긴다고!”
어째서인지 엘리샤가 나를 마무리 지으려던 녀석들에게 마구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흥! 하고 고개를 돌리는 엘리샤.
그리고는 불만스레 도망치는 다른 학생들을 향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 이거 개인전 아니었나요? 저는 분명 교수님께 그렇게 들었답니다.”
뭐야. 뭐야. 설마 내 편 들어주는 거야? 나 좀 설레려는데.
“무엇보다…누구 맘대로 제 상대에게 손을 대는 건가요. 얀델은 제 손으로 쓰러뜨릴 테니 얌전히 빠져 계시지요.”
아.
자기 손으로 줘패고 싶어서 그런 거구나.
…지금부터 사과하면 마법 살살 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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