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반 대표 서열전(2)
* * *
콰아아앙!!
강력한 폭발이 미처 장비를 준비하지 못한 학생을 뒤덮는다.
마력 폭발.
집중시킨 마력을 마법으로 자아내는 대신, 그대로 폭주시켜 성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잡기술이다.
사정거리도 짧고, 제대로 된 마법이 아니라 시전자에 대한 보호 기능이 없으며, 마력의 소모 또한 상당하기에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는 기술.
하지만 근거리의 같은 마법사를 기습하기에는 딱 좋은 수법이다.
하물며 중위 마법사에 버금가는 마력량을 타고난 얀델의 마력 폭발에 직격당한 것이다.
보호 마법이 작동했을 테니 실제로 다친 곳은 없겠지만, 탈락은 면할 수 없으리라.
멍한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은 맨손 학생을 염력 마법으로 빼 온 이오나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박수를 쳐댔다.
“와아…훌륭해! 훌륭해! 마력 폭발의 장점을 잘 이해하고 있네! 확실하게 한명 처리할 수 있다면 잡다한 단점이 뭐가 중요하겠어! 혹시 네가 가르쳐 줬니 카를라? 입학시험 때의 자료를 보니 얀델 군은 마법의 수준에 비해, 응용 능력이 대단하다고 적혀있었거든!”
“네? 어…마력 폭발의 사용법과 특징이라면 제가 가르쳐 드린 게 맞아요. 하, 하지만 지금 같은 타이밍에 써야한다는 건 주인님 스스로 깨우치신 거에요. 애초에 주인님은 마법을 익힌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으셔서….”
갑작스런 이오나의 질문에 반사적으로 대답한 카를라.
혹시라도 얀델에게 마이너스가 될까 황급히 뒷말을 추기하는 모습이 제법 충성스러운 노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오나는 재능있는 모범생에서 충직한 노예가 되어버린 옛 제자의 변화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방긋 웃었다.
“필요하다면 노예에게서도 배울 수 있어야 마법사지. 응! 그렇고말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오히려 안심되었던 걸까.
잔뜩 긴장했던 카를라가 이오나의 태연한 반응을 보고서야 어깨에 들어간 힘을 풀려던 차.
대련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이오나가 돌연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응? 으응? 뭐야 뭐야? 얀델 군 왜 이렇게 무섭게 잘 싸워?! 예쁘장한 외모랑 다르게 어디 용병 출신이라도 되는 거야?!”
이에 반사적으로 대련장 위의 얀델을 눈으로 쫒은 카를라였으나, 그녀 또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그러게요? 왜 이렇게 잘 싸우시지…?”
벼락치기의 성과가 이렇게 좋을 리가 없는데?
***
콰아아앙!
폭발에 휩싸인 학생의 전신이 붉게 물들었다.
피는 아니다. 아마 일정 이상의 충격을 흡수한 이오나의 보호 마법이 붉게 빛나는 거겠지.
저게 일종의 탈락 신호였는지, 붕 떠서 그대로 이오나가 있는 쪽으로 날아가는 탈락자.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가차 없는 선빵에 기겁하며 거리를 벌리는 녀석, 차분하게 실드부터 외우는 녀석. 그리고 지금의 혼란스러운 틈을 타 공격 마법을 준비하는 녀석.
그중에서도 배짱 좋게 나를 노리는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여, 타올라라. 영겁의 불씨는 이 손안에 있으니!”
한방에 날 보내버릴 생각이었는지, 제법 영창이 거창하다. 그래봤자 파이어 볼인 것 같지만.
만들어지다 만 불덩어리를 피해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가자, 마법사가 이렇게까지 접근해올 줄은 몰랐던 걸까.
“파이어…헉!”
화들짝 놀라며 헛숨을 삼키는 녀석.
이 와중에도 캐스팅이 끊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력이 상당하다는 건 알겠지만…그뿐이다.
마법사를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
이는 내가 마법사라고 해도 변함없는 규칙이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녀석이 황급히 자신의 주문을 완성하려 했으나, 내가 그보다 한 발 더 빨랐다.
상대의 머리를 향해 전력으로 스태프를 휘둘렀다.
“조용히 하세요!”
깡!
“끄엑!”
어딜 시동어를 읊으려고.
조금 전에 마력 폭발에 휘말린 녀석의 몸이 까맣게 그을린 것을 보아, 이오나의 보호 마법은 공격 그 자체를 막아주는 게 아니라 공격으로 손상되는 생명력을 대신 지불하는 느낌의 마법이겠지.
아마도 혈마법 계열인 블러드 시프트려나.
하기야. 똑같은 마법을 맞아도 팔에 맞는 것과 머리에 맞는 것이 다르니, 이쪽이 더 합리적이겠지.
고통도 어느 정도 느껴진다는 점에서 더더욱 실전에 가까울 테고.
참 아카데미에서 좋아할 법한 마법이다.
“아, 으아….”
내 예상이 맞았는지, 머리를 얻어맞은 상대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 충격으로 시전하던 마법이 취소된 건 덤이었고.
디스펠(물리)에 당한 녀석의 머리를 비어있는 한쪽 손으로 움켜쥐었다. 이어서.
“틴더!”
“아악!”
별다른 영창이 필요 없는 기초마법을 연발했다.
“틴더! 틴더! 틴더! 틴더!”
몇 번이고. 계속해서. 무력화될 때까지.
화력이 부족한 기초마법의 특성상, 마력 폭발 때처럼 단시간에 무력화 기준치를 넘는 데미지를 가하는 건 힘들겠지.
하지만 고통은 다르다.
얼굴을 불로 지지는 건데 아프지 않을 리가 있나.
“끄아아아악!!”
결국 녀석은 대련장이 떠내려가라 비명만 지르다가 고통으로 기절하고 말았다.
평타+근접 틴더 연발.
사실 이것도 H&A에서도 종종 써먹던 초반 한정으로 괜찮은 콤보다.
어그로 수치처럼 상태창에는 표시되지 않는 개념인 공포 수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안 그래도 영창 시간이 길고, 약간의 충격에도 마법이 취소되는 하급 마법사 상대로는 거의 필살이라고 할 수 있는 콤보지만….
실제로 써보니 너무 심하네.
진짜 적이라면 모를까,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같은 반 친구에게 쓰기에는 좀 그렇다.
축 늘어진 채, 이오나의 염력 마법으로 바깥으로 끌려 나가는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건 잠시 봉인해둬야겠다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
문득 정신 차려보니 엘리샤를 포함한 대련장의 모두가 경악한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 시선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일단 나부터 떨어뜨리겠다는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걸.
“굽이치는 물이여.”
“타올라라.”
“예리하게 날을 갈아라.”
여기저기서 동시에 울려 퍼지는 영창 소리. 이 끔찍한 다구리에 가담하지 않은 건 엘리샤 하나 정도다.
그나마도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 없을 것 같으니 본인의 방비를 굳히겠다는 듯, 실드를 여러 번 중첩하고 있을 뿐이고.
어쩔 수 없네.
각오를 다지며 인벤토리에서 빛나는 사자 단검을 꺼내, 비어있는 손으로 쥐었다.
그것만으로도 조잡한 무기술 특성이 활성화되며 한결 가벼워진 몸.
움직이기 편해진 몸뚱이를 믿고, 가장 만만해 보이는 근처의 여학생을 향해 달려갔다.
“히익! 워터 캐논!”
조금 전의 내 상대가 어떻게 탈락했는지 똑똑히 봤기 때문일까.
자신이 내 타겟이 됐다는 사실에 식겁하며 준비해둔 마법을 발사했다.
내 머리를 노리고 쏘아진 고압의 물줄기.
H&A였다면 방어력과 회피력 스탯을 믿고 돌진하거나, 보호 마법이나 마법 패리 같은 특수한 방법으로 대응했겠지만…이번에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
카를라에게 어제 배웠던 벼락치기 내용 중 지금 상황에 써먹을 만한 게 있었으니까.
모든 마법은 상상과 의지를 기반으로 발현되며, 직관과 수식의 보조를 받는다.
그렇다 보니 투사 계열 마법은 목표를 정확히 눈으로 보고, 스태프나 손가락 등으로 쏘아질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직관적으로 어떻게 날아가, 어떻게 부딪힐지 떠올릴 수 있으니까.
물론 나중에 경지가 높아진다면 생략하거나, 역으로 상대를 속이기 위한 페인트 동작이 되기도 하지만…적어도 신입생 수준에서 가능한 일은 아니지.
무게 중심을 앞으로 숙여 넘어질 듯이 몸을 기울였다.
그러자 스태프가 노렸던 방향대로 내 머리가 있던 곳을 스쳐 지나가는 워터 캐논.
분명 등골이 섬짓해져야 하는 경험이건만, 내 입가는 멋대로 꿈틀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카를라와 죽어라 연습했던, 스태프 방향 보고 피하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리라.
“아아…!”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여학생의 얼굴.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곧 이어질 충격을 대비했으나…내가 그 작은 머리를 스태프로 후려치는 일은 없었다.
“……?”
의아함에 상대가 감았던 눈을 찔끔 떴을 때 쯤.
나는 이미 그녀의 뒤로 돌아가, 단검을 쥔 팔로 목을 휘어감고 있었으니까.
“컥!”
순간 목이 졸려 당황한 여학생이 내 팔을 마구 두드리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마, 마법…마법 대련….”
“왜 마법학부 학생이 대련 시간에 마법 안 쓰냐고?”
끄덕끄덕.
억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여학생을 위해 직접 설명해주기로 했다.
앞으로도 같은 교실에서 같은 수업을 받을 텐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저길 봐.”
“???”
스태프를 뻗어 옆쪽을 가리켰다.
뒤늦게 나를 향해 쏘아진 마법이 잘 보이는 방향 말이다.
“힉…!”
A반의 인원이 열댓명 밖에 안 되는 데다가, 엘리샤처럼 굳이 나부터 조지는데 가담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예닐곱이나 되는 하급 마법이 나를 노리고 있었다.
공격 마법의 경우에는 보통 사람 하나 죽이기에 충분한 마법을 하급 마법이라 한다.
즉, 지금의 나를 예닐곱 번이나 죽일 수 있는 마법이 날아오고 있다는 소리.
아무리 내가 시스템 보정 덕에 영창 속도와 안정성이 지극히 높다고 해도, 기껏해야 마법 한두 개 격추하는 게 전부겠지.
실드 마법이라도 쓸 줄 안다면 모를까, 아직 내가 쓸 수 있는 하급 마법은 윈드 커터가 전부니까.
“그런데 짜잔! 여기에 딱 좋은 실드가 있네!”
“…뭐?”
이오나 교수의 마법은 하급 마법 몇 발 정도로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
기절할 정도의 고통이라면 모를까, 쇼크사할 정도의 고통은 전해지지 않겠지. 보호 마법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
내가 자신을 방패막이로 쓸 거라는 걸 알아챈 이름 모를 여학우가 이를 악물었다.
“너…이 개새….”
“어허. 납븐말 금지!”
순식간에 코앞까지 날아온 마법.
최대한 몸을 웅크려 그녀의 좁은 등 뒤에 숨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