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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37화 (37/230)

〈 37화 〉 반 대표 서열전

* * *

다음 날 아침.

“안녕 안녕! 다들 잠은 잘 잤어? 기숙사는 어땠어? 집에서 지낼 때랑 비교해도 꿀리진 않았지? 부러워라! 교수도 그렇게 넓은 숙소는 못 받는데! …대신 연구실을 받으니까 별 차이 없나? 아하핫!”

첫 시간인데 나른하지도 않은지, 폴짝폴짝 뛰면서 등장한 이오나 교수.

하는 짓은 영락없는 어린애지만, 그 몸매는 전혀 어리지 않기에 한번 움직일 때마다 자유분방하게 흔들리는 가슴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A반의 몇몇 남학생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이오나 교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다만 저렇게 경박해 보인다고 해서 우습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이오나는 로드급에 한없이 가까운 뱀파이어로서, 300년 전에는 신들의 전쟁에도 참가한 적 있는 명백한 괴물이니까.

심지어 담당하는 과목도 ‘전투 마법학’ 이다.

그런 이오나를 누가 우습게 보겠는가.

“오늘은 오늘은! 어제 말했던 대로 반 대표 뽑기 겸 실력 테스트로 대련을 할 거야! 내가 직접 보호 마법을 걸어줄 테니 다칠 걱정은 안 해도 돼! 만약 문제가 생기더라도 양호실에는 사제분이 대기 중이니까 죽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될 거야! 응!”

해맑은 미소로 무서운 소리를 하는 이오나.

뭐, 실제로 그렇게 크게 다칠 일은 없겠지. 애초에 신입생의 실력으로는 이오나의 보호 마법을 뚫지도 못할 테니까.

“자, 그럼 다들 따라와! 따라와! 신입생은 원래 못 쓰는 건데, 내 이름으로 대련장 하나 빌려뒀어!”

그리 말한 이오나가 들어왔을 때처럼, 폴짝폴짝 뛰어 강의실 밖으로 향했다.

질문을 받기는커녕, 들어오자마자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는 모습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을 무렵.

빼꼼.

문틈 사이로 얼굴만 쏙 내민 이오나가 우리를 재촉했다.

“빨리 와! 오늘은 내 수업 말고도 다른 교수님들 수업도 있는걸? 우물쭈물하다가는 첫날부터 지각할 거야! 그건 곤란하지. 응! 곤란할 거야!”

그리고는 다시 쏙 사라지는 이오나.

슬쩍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혼자 복도에서 바닥을 발끝으로 비비며 놀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이리로 오라는 듯 손짓하기까지.

저런 사람이 아카데미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란 말이지…?

모니터 너머가 아닌, 실제로 보니까 좀 놀랍긴 하다.

내가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로 눈치만 보던 다른 학생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한다.

시종들 또한 그런 우리를 따라 움직였고.

“전부 왔지? 올해 신입생들은 말을 잘 듣네! 기특해! 기특한 삐약이들이야! 그럼 바로 출발할게!”

히히 웃으며 앞장서서 걸어가는 이오나.

그렇게 이오나가 선두에 서고, A반 학생들이 뒤따르고, 그런 우리의 뒤를 시종들이 쫄래쫄래 쫒아오는 기이한 대열이 완성됐다.

마치 줄지어 도로를 횡단하는 오리 가족 같다는 생각에 속으로 낄낄대는 것도 잠시.

“당신.”

분명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을 터인 엘리샤가 어느새 내 옆까지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글렌시엘님.”

“흥! 제가 어제 말했었지요? 식당에서의 일은 잊지 않겠다고요.”

“아.”

그러고 보니 카를라가 엘리샤를 교묘하게 엿먹였던 게 들켰었지.

“각오하세요. 이번 대련으로 당신과 저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드리죠.”

어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자꾸 삼류 악역 같은 대사를 하네.

그래서인지 살짝 장난기가 돌았다.

“네? 뭐라고요? 이번 대련을 빌미로 저를 완전히 뭉개버리겠다고요?! 대체 왜요! 전 글렌시엘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읍읍!”

큰 소리로 그리 외치자, 기겁을 하며 내 입을 틀어막는 엘리샤.

엘프는 인간보다 체온이 낮은 걸까. 아니면, 그냥 엘리샤의 손이 차가운 걸까.

입술과 그 주변을 덮는 보드라운 손바닥에서는 약간의 서늘함이 올라와 조금 기분 좋다.

정작 엘리샤의 얼굴은 본인의 체온과 반대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다급하게 본인을 중심으로 사일런스 마법까지 펼친 엘리샤.

범위가 신경 쓰이는지 내게 조금 더 밀착한 채 필사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쉬잇! 쉿! 미쳤어요?! 왜 자꾸 저를 음해하는 건가요 얀델!”

“으브브븝…츄릅.”

“히약!”

가볍게 손바닥을 할짝였더니 화들짝 놀라 손을 떼는 엘리샤.

어디선가 꺼낸 손수건으로 자신의 침 묻은 손을 벅벅 닦으며, 이쪽을 노려보는 엘리샤에게 어깨를 으쓱여주었다.

“음해라뇨. 전부 사실이잖아요.”

엘리샤가 이번 대회에서 나를 철저하게 때려눕힐 거라는 말도, 어제 하루 카를라를 노예 티 내게 하며 돌아다닌 게 엘리샤 때문인 것도.

내가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니잖은가.

엘리샤도 그리 생각했는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네. 그렇긴 하지요. 다만 좀 더 뭐랄까…말하는 방법이랄까…그런 게…어라? 혹시 저…얀델의 눈에는 이런 식으로 보였던 걸까요…? 신분의 차이가 있으니 정말 그랬을지도….”

혼잣말하면 할수록 점점 엘리샤의 얼굴에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피어오른다.

이내 결론을 내렸는지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엘리샤.

“아, 아니에요! 저 그렇게까지 못된 여자가 아니랍니다?! 방금 건 그냥…으으!”

엄청 미안해하면서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엘리샤.

H&A에서 봐온 모습들과 카를라에게 들은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믿고 한발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농담입니다 글렌시엘님. 처음에는 몰라도, 어제 이야기를 나누고서 그런 오해는 풀렸으니까요.”

“…왜 그런 장난을?"

“그야….”

재밌으니까. 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니까.

그러니 모욕이라 생각하지 못하도록 판을 흔든다 생각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글렌시엘님이랑 친해지고 싶어서요.”

“흣?!”

“몇 번 대화를 나눠보니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분 같아서요. 글렌시엘님도 저를 좋게 보셔서 계속 말 걸어주시는 거죠?”

이건 예상치 못했는지 엘리샤가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정신을 되찾고는, 짐짓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척! 하고 검지를 겨눴다.

“당신! 대련에 최선을 다하세요! 저도 그럴 테니까요! 이 말이 하고 싶었을 뿐이니 오해는 하지 마시길!”

그리고는 다시 대열 사이에 섞여 멀어지는 엘리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뒤편에서 이쪽을 기웃거리던 카를라와 눈이 마주쳤다.

“……!”

왜인지 나와 엘리샤를 번갈아 바라보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아. 사일런스 때문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별거 아니었다고 말해줘야지.

***

도착한 대련장은 내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주변을 둘러싼 관객석까지 있다 보니, 무심코 축구장을 떠올릴 정도의 넓이.

평평한 바닥의 타일과, 벽에 이르기까지.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주르륵 새겨진 것을 보아 무슨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거겠지.

이 넓은 대련장의 중앙에 선 이오나 교수가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시종들은 저어기 구석에 가 있어! 혹시 대련의 여파가 튈지도 모르니까 따로 노는 사람 있으면 안 된다? 그래야 내가 지켜주기 편하니까!”

그 말에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쪼르르 이오나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하는 시종들.

대련장 위에 학생들만 남자, 그제야 이오나가 이번 대련에 관련된 규칙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일 대 일로 대련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부족해! 부족해! 그러니 다 같이 한꺼번에 싸울 거야! 룰은 간단해! 지금 이 순간. 가지고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무력화 시키면 돼!”

그 말에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학생 중 하나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 교수님?”

“응? 질문이야? 뭔데? 뭐가 궁금한데? 뭐든 이 이오나 교수님에게 말해 봐!”

“제 스태프를 시종에게 맡겨뒀는데 그거 가지러 와도 됩니까?”

이름 모를 학생의 질문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무척이나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처럼 마구 웃어대기 시작한 이오나.

“아하핫! 무기는 항상 들고 다녀야지!”

“하하…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잊지 않고 가지고 다닐게요. 그럼….”

어색하게 같이 웃은 학생이 시종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안 돼.”

“…네?”

갑자기 정색하는 이오나.

“말했잖아? 지금 가지고 있는 걸로만 싸워야 한다고. 난 어제 미리 대련이 있을 거라 알렸어. 그런데도 장비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건 본인 책임 아닐까?”

“…….”

저 학생도 A반에 배정받았을 정도니, 능력은 뛰어나겠지. 입학시험의 내용상 싸우기도 잘 싸울 테고.

하지만 안 그래도 실전 지향적인 아카데미에서, 한층 더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선호하는 이오나 교수의 수업이다.

미리 대련 사실을 고지했음에도, 무기를 휴대하지 않는 사람을 봐줄 리 없잖은가.

그 뜻을 알아차린 학생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보며, 이오나가 평소의 밝은 목소리로 돌아왔다.

“뭐! 이번은 맨손으로 어떻게든 해야겠네! 너무 걱정하진 마! 맨손으로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점수 좀 깎일 뿐이지! 아무튼 다른 사람들은 어때? 혹시 무슨 질문 있어?”

하나둘 말없이 아공간에서, 혹은 허리춤에서 각자의 원드와 스태프를 꺼내는 다른 학생들.

나 또한 인벤토리에서 일전에 카를라에게 사줬던 스태프를 꺼냈다. 급한 대로 이거라도 써야지.

맨손인 사람은 오로지 한명 뿐.

“다른 질문은 없나 보네! 대충 알아들은 거지?”

그리 말한 이오나가 허공에 몇번 손을 휘젓자, 막대한 마나가 뿜어져 나오며 우리를 감쌌다.

이게 아마 처음에 말했던 보호 마법이리라.

한명 한명에게 보호 마법을 건 이오나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방긋방긋 웃으며 대련의 시작은 선언했다.

“그럼 이제부터 서로 죽여…싸워라!”

…방금 죽이라고 하지 않았어?

어이없어하면서도 일단 마력을 끌어모아 스태프에 집중시켰다.

우웅­

다만 이를 마법으로 자아내는 대신 그대로 폭발시켰다.

유일하게 맨손인 녀석을 향해서.

콰아아앙!!

일단 한명 컷!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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