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신입생이 노예를 안 숨김
* * *
카를라의 도발인지 유혹인지 모를 것에 넘어간 이후로, 우리는 여관방 안에서 두문불출하며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카를라에게 마법을 배우고, 밤에는 카를라를 범하고, 때때로 카를라에게 아카데미에서의 생활에 대해 듣기를 반복했다.
입학식 당일인 오늘까지 쭈욱.
…생각해 보니 카를라가 되게 고생했네.
그 결과가 이거다.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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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얀델
칭호: 길 잃은 이방인
기초 능력
근력: 11
내구: 10
민첩: 12
재주: 14
마력: 18
특성
끝없는 마나(A)
원소 친화(B)
뛰어난 기억력(B)
허접한 무기술(E)
린트블룸 마나 코어(C)
하위 마법사(D)
태양신의 가호(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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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마법의 숙련도가 오르고, 익힌 하급 마법의 종류가 늘어나며 마법사 특성이 한단계 더 성장했다.
이제 마법을 쓸 때 상태창 보정을 조금 더 많이 받을 수 있겠지.
여기서 하급 마법의 숙련도를 더 높이면 마법사 특성을 C등급까지는 올릴 수 있지만…그 윗단계인 B등급이 되려면 중급 마법을 익혀야 한다.
슬쩍 카를라에게 중급 마법의 이론 정도만 들어봤는데, 솔직히 하나도 모르겠더라.
그렇다고 하급 마법처럼 카를라의 도움을 받아 직접 체험하는 것도 힘들겠지.
중급 마법은 카를라가 전력을 다해야 쓸 수 있는 마법인데, 코어 공명과 마력 인도에 쏟을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애초에 지금처럼 하급 마법을 날로 먹는 상황이 더 특이한 거다. 이건 게임에서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니까.
결국 여기서부터는 우직하게 직접 마법을 익혀야 한다는 소리.
대신 한 번이라도 시전하는 데 성공하면 그대로 상태창에 등록되어 다른 마법들처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으리라.
그동안은 카를라에게 마법을 배우는 방식이 직접 체험해 보는 게 아니라, 일 대 일 과외 같은 느낌으로 변하겠네.
진짜 생각하면 할수록 카를라가 고생이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열심히 모닝 펠라 중인 카를라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으읍?”
갑작스런 손길에 의아하다는 듯 슬쩍 내 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카를라였으나, 이내 배시시 눈웃음을 지으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오르는 사정감에 카를라의 뒤통수를 꾹 잡고 눌렀다.
“흐극…!”
잠시 놀란 듯 했으나,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내 물건을 깊숙이 받아들이는 카를라.
그렇게 카를라의 목구멍 안에 지그시 정액을 흘려 넣은 뒤에야 놓아주었다.
“프하…흐아…어떤가요? 개운해지셨나요 주인님?”
“응. 덕분에. 수고했어 카를라.”
“흐헤헤….”
인벤토리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카를라의 입가를 닦아주자, 눈을 감고 행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 손길을 즐긴다.
귀여워라.
꼼꼼하게 카를라의 얼굴을 닦아준 뒤에야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입학식 날인 오늘이야 사복이지만, 내일부터는 아카데미 지정 교복을 입어야겠지.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다시 교복을 입을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기에 어쩐지 묘한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나와 카를라는 서로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었다.
“아, 맞다. 잘 이해했을 거라 생각하고 더 말하진 않았는데…나중에 아카데미에 가서 아는 사람 만나도 먼저 예전처럼 대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계급으로 부당한 대우를 가해서도, 받아서도 안 된다는 교칙은 어디까지나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니까요. 저는 시종 신분으로 가는 거니, 주인님께서 곤란해하시는 일이 없도록 제대로 주의할게요.”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온 카를라의 대답.
하기야. 엘리샤에게 한번 데였으니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는 않겠지.
“그 부분은 믿을게. 다만….”
“신경 쓰이는 점이라도 있나요 주인님?”
“정말 포션 안 마셔도 되겠어?”
목덜미에 새겨진 키스 마크나, 요 며칠 내게 시달리느라 생긴 다크서클. 그리고 힘이 풀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까지.
누가 봐도 지금의 카를라는 이런저런 의미로 혹사당한 여인처럼 보일 뿐이다.
모종의 퇴폐미마저 느껴질 정도.
물론, 이 정도는 회복 포션과 활력 포션으로 해결할 수 있다. 중급 이상의 포션을 써야겠지만…설마 카를라에게 그 정도도 못 해주겠는가.
하지만 이를 거절한 건 카를라였다.
“괜찮아요 주인님.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거 아냐? 어차피 보여주기식인데, 포션까지 거부해가며 실제로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
처음 아이디어를 꺼낸 나는 막상 실제로 보고 나니 망설여졌건만, 정작 당사자인 카를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주인님은 엘리샤가 어떤 아이인지 모르세요.”
모르기는. 게임에서는 얼마나 자주 동료로 영입했었는데. 아는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게 더 신경 쓰일 정도다.
“엘리샤가 얼마나 저한테 집착하는 지 아시나요?”
“뭐…따로 지켜보겠다는 말을 하고 갔을 정도니, 여차하면 실제로 내게 압박을 가할 생각도 있다는 건 알겠어. 그래서 3개월간 교칙 믿고 배짱부리는 대신 이렇게 귀찮은 연기를 하는 거고.”
“그건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문제는 엘리샤에게 어설픈 연기는 통하지 않는다는 거죠.”
언제나 카를라를 신경 쓰던 만큼, 카를라의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제가 아무리 노예답게 주인님에게 조아려도 제가 힘들어하거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면, 이에 의문을 품고 저희를 조사하기 시작할 거예요.”
“…잠깐만. 그게 편하거나 수치스럽지 않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잖아.”
밥 먹을 때도 네발로 엎드려 바닥에서 먹고, 내 심기가 불편한 것 같으면 비굴할 정도로 아양을 떨어야 하는데 그게 쉬울 리가 없잖은가.
그래서 아카데미에서 고생하는 만큼 기숙사 안에서는 최대한 카를라를 자유롭게 풀어줄 예정이었다.
설령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뒹굴거려도 나란히 드러누워 여기저기 쪼물딱댈 뿐, 푹 쉬는 것 자체를 방해하진 않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이어진 카를라의 말은 정말로 예상치 못했다.
“으음…저번에 주인님께서 여기에 도장까지 찍어주시며 저를 안심시킨 뒤에 생긴 일인데요….”
“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자신의 아랫배를 어루만지던 카를라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그날 이후로 주인님께 봉사하는 일이 너무 즐거워요.”
“…허?”
“주인님이 제 아양에 웃어주시면 저도 기쁘더라구요.”
“잠깐, 잠깐만.”
“심지어 잘했다고 칭찬의 의미로 머리라도 쓰다듬어주시면…그으…조금 상스러운 말이지만 살짝 젖어버릴 정도예요.”
“…….”
말없이 카를라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주었다.
스윽 스윽.
“헤응….”
그리고는 카를라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볍게 손가락으로 훑었다.
“응앗.”
손을 빼내자 검지와 중지에 묻어, 그 사이로 은색 실선을 쭈욱 늘어뜨리는 점성 있는 액체.
이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냥 이대로 가자. 힘들면 그때 포션 달라고 하고.”
“네!”
해맑게 웃는 카를라와 함께 방을 나섰다.
…이런 성벽이 개화할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네.
***
입학식은 별거 없었다.
애초에 H&A에서는 오프닝 노래와 함께 재생되는 영상 정도로 퉁 쳤던 이벤트다.
뭐가 있으면 그게 더 문제지.
대충 아카데미 학장의 환영 인사와, 설립 목적, 그리고 여기서는 함부로 신분으로 찍어누르는 짓은 하면 안 된다는 경고 등.
뻔하다면 뻔한 내용의 입학식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30분 정도.
중요한 건 이다음부터다.
“A반 떴나!”
“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주인님이라면 문제없이 A반에 배정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카를라의 영혼 없는 어색한 말투.
저번에 어느 야설 속 대사를 따라 했을때 얼추 눈치챘지만, 카를라는 연기가 굉장히 서툴다.
이번에도 불쌍한 척 연기하려다가 어색해진 거겠지만…이 경우에는 그 서툰 연기가 오히려 좋은 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오해하기 좋은 쪽으로.
그런 카를라를 데리고, 반 배치 게시판 근처를 돌아다니면 당연히 주변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거기에 다들 시종이라지만, 돈 주고 고용한 하인을 데려오지 노예를 데려오지는 않기에 카를라의 존재는 한층 더 눈에 띄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게시판을 앞쪽에서부터 살펴보았다.
본래 H&A에서는 오프닝 영상이 끝나자마자 게시판이 클로즈업되면서 내가 어느 반인지 바로 알려줬지만…현실이 된 지금은 그런 게임적인 연출 따위는 없었다.
보통 이런 귀찮은 일을 시키라고 시종이 있는 것이나, 아무래도 반 배정이 관련된 일이다 보니, 학생이 직접 오는 일도 제법 많다.
평민 출신 합격자들도 모일 테니 더더욱 그렇겠지.
덕분에 귀찮게 이 많은 인파를 헤치고 직접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입학시험 습격 사건이 사라진 덕인지, 게임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밝은 분위기인 건 다행이네.
게임에서는 죽은 학생들과 교직원들로 인해 약간 침울하면서도 비장한 분위기가 아카데미 내에 만연해있었으니까.
아무튼 왁자지껄한 인파 속에서 한참을 게시판을 노려본 끝에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A반 떴다!”
“축하드려요 주인님!”
목적했던 대로 상위 반인 A반에 배정된 걸 보고 양팔을 번쩍 들며 외치자, 옆에서 짝짝짝 박수를 치는 카를라.
다들 각자의 반을 찾았는지 희비가 교차하는 소란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어머?”
연하늘색 롤빵 머리와 길쭉한 귀. 어지간한 악기보다도 맑은 음색이 특징적인 여자.
엘리샤가 나를 발견하며 샐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신도 합격했나 보네요. 이름이….”
“얀델입니다 글렌시엘님.”
“흐응. 평민이었나요 당신?”
“일전에는 경황이 없어 차마 밝히진 못했지만 그렇습니다.”
“뭐,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멋대로 착각한 건 제 쪽이니 그 부분은 넘어가겠습니다. 그보다 제가 부탁한 건은….”
스윽 시선을 돌려 카를라를 바라본 엘리샤가 딱딱하게 굳었다.
겁이라도 먹은 것처럼 어정쩡하게 움츠린 자세(허리 아파서 그럼).
며칠째 밤이라도 샌 것처럼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야스하느라 밤낮이 바뀌었음).
노예 각인 특유의 가시덩굴 문양이 새겨진 목덜미에는 울긋불긋한 키스 마크가 어우러져 있었으며(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거기에 아직 회복이 덜 됐는지 이따금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와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까지(어색한 연기 때문임).
누가 봐도 밤새 주인에게 시달린 노예 같은 몰골의 카를라.
그 모습을 확인한 엘리샤가 하늘색 눈을 땡그랗게 뜬 채,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이, 이렇게까지 심하게 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