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28화 (28/230)

〈 28화 〉 혼자서도 잘해요

* * *

에우렐리아 대륙 전체의 인재가 모인 아카데미.

그런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라힘 시에는 자연스레 막대한 부와 기술이 집약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각종 마도구들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고급 숙박시설에 걸린 편의용 마법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물론 그만큼 가격이 비싸지만…돈만 있다면 현대의 지구에 가까운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다.

아니, 일부는 더 낫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자면 방음 같은 부분 말이다.

“그거 알아? 이 여관의 방음 성능은 라힘 시 전체에서도 최고 수준이래. 지금도 봐봐.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물인데 문을 닫으니 고요하잖아?”

“앗. 네….”

새삼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카를라.

떼이잉.

이러니까 마도 명가에서 자라, 아카데미 수석으로 가장 좋은 기숙사만 썼던 전직 영애란!

질 좋은 방음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을 못 하는 것 같네.

현대에서도 층간 소음으로 매년 칼부림이 일어나거늘.

카를라에게 방음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최대한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 카를라? 이 안에서는 아무리 울고, 빌어도 누구 하나 도와주러 올 사람이 없다는 소리다.”

“???”

이 또한 새삼스레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카를라가 뒤늦게 무언가 알아차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리고는 잠시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더니.

“엣흠 엣흠.”

이내 자신의 몸을 감싸듯 가리고는, 어색한 연극조로 그럴듯한 대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큭…! 이런다고 제 마음까지 당신의 것이 될 줄 아시나요? 아니면 제가 스스로의 처지에 순응하기라도 할 줄 알았나요? 아뇨! 눈물도, 자비를 애원하는 목소리도…그 무엇 하나 당신에겐 내어주지 않을 거예요!”

“오….”

딱딱한 연극 톤이 조금 아쉽지만, 대사 자체는 굉장히 맛깔나네.

짝. 짝. 짝.

순순한 감탄의 의미를 담아 박수를 쳐주자 카를라가 부끄럽다는 듯이 뒤통수를 긁었다.

“헤헤….”

“즉석에서 나온 것 치고는 좋은데? 무슨 연극에 나온 대사라도 되는 거야?”

“그게…연극은 아니구요. 책에 나왔던 거에요.”

“아하.”

이 세상은 문화적으로도 제법 발전한 동네다. 마법이 그러하듯 문화생활 또한 상류층의 전유물이라는 게 문제지만.

“책 제목이 뭐였는데?”

“100일 뒤에 암캐가 되는 영애님이요.”

뭐야 그거. 혹시 야설이니?

내 어이없어하는 시선을 어떻게 여긴 건지 자랑스레 가슴을 내밀며 말하는 카를라.

“아카데미 도서실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어봤다구요?”

심지어 도서실에 있던 야설이구나.

피식 웃으며 카를라의 볼을 양쪽으로 쭉쭉 늘려주었다.

“흐에엑!”

“그래서? 나한테는 무엇 하나 줄 수 없다고?”

볼을 붙잡힌 채, 울상을 짓던 카를라가 내 말에 배시시 미소 지었다.

“어쩔 수 없는걸요? 이미 제 모든 건 주인님의 것인데 어떻게 뭘 더 드리겠어요.”

“이때다 싶어 아부하는 것 좀 봐. 응?”

“아부 아닌…그에으엥….”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짓는 카를라의 볼을 손바닥으로 마구 비벼주고서야 놔주었다.

“으…볼이 따끈따끈해졌어요….”

자신의 볼을 어루만지며 우는 소리를 내는 카를라의 모습에 낄낄 웃어대자, 붉어진 볼을 살짝 부풀리며 불만을 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잠깐의 침묵.

대화와 대화 사이에 생겨나는 필연적인 공백을 덧칠한 것은 카를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주인님?”

“응?”

“벗을까요?”

“응.”

내 단호한 대답에 카를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몇 걸음 물러선다.

그렇게 전신이 내 시야에 들어오는 위치에 도착하자 그제야 헤헤 웃으며 옷 위에 손을 올린다.

“벗는 건 아직도 좀 부끄럽네요.”

“난 그래서 좋던데.”

“주인님은 제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짓궂으셔라.”

어깨를 으쓱이고는 턱짓으로 가볍게 재촉하자, 카를라가 그제야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뚝. 뚜둑….

하나둘 풀어지는 단추. 옷깃 사이는 크게 벌어져 안쪽의 살결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옷가지를 벗어 던진 카를라.

큼직하고 모양 좋은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 하지만 다시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는 골반까지.

정말 몇 번을 봐도 감탄밖에 나오질 않는 몸매다.

이를 잠시 감상하고 있자니.

카를라가 총총총 다가오며 해맑게 웃었다.

“주인님도 벗겨드릴까요?”

“나쁘지 않지.”

얌전히 팔을 벌리고 서 있자, 카를라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옷을 하나둘 벗기기 시작했다.

전문 시녀라도 되는 것처럼 나긋나긋한 손놀림. 하지만 중간중간에 버벅대며 애를 먹기도 한다.

어디 가서 카를라가 이런 걸 배워본 적은 없었을 테니, 아마 자신이 영애던 시절에 받았던 대우를 눈대중으로 따라 하는 거겠지.

내 옷을 벗기느라 낑낑대는 카를라의 알몸. 무방비하게 흔들리는 가슴의 움직임을 눈을 쫒고있는 사이.

어느새 마지막 남은 속옷까지 벗겨낸 카를라가 이를 곱게 접어,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다했어요!”

그리고는 내 쪽으로 머리를 은근슬쩍 내밀었다.

따로 말은 안 했지만, 어서 칭찬해달라는 노골적인 요구.

카를라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 백금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잘했어.”

“헤헤…저기 그럼….”

“응?”

“또 상 받을 수 있을까요?”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루비색 눈동자.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멍하니 카를라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에 뭐 간식거리라도 사줄까?”

“아뇨. 그거 말고 다른 게 받고 싶어요.”

“다른 거? 일단 말해두는데, 한 일에 비해 과한 건 안 된다?”

“그 정도는 저도 알죠. 그냥….”

잠시 얼굴을 붉힌 채, 꼼지락대던 카를라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키스…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허?”

이게 왜 상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거절이라 생각한 건지 급격하게 시무룩해지는 카를라.

“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죠…죄송해요 주인님.”

“아니, 누가 안 된다고 했어?”

멀어지려는 카를라의 허리를 휘감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뭉클.

내 상체에 짓눌리는 카를라의 가슴. 그 끝에 느껴지는 단단한 유두의 감촉이 조금 간지럽다.

“내가 해달라는 게 아니라, 카를라 네가 해보고 싶다는 거지?”

“네? 네….”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카를라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카를라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

하겠다는 키스는 안 하고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어 바라보자, 그곳에는 헤벌쭉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좋아하는 카를라가 있었다.

전부터 살짝 느꼈던 건데, 카를라는 내 얼굴을 정말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네.

어차피 마음대로 하라고 한 거, 어디까지 이러고 있나 지켜보고 있자니.

“히히.”

더듬 더듬.

“와아….”

만지작 만지작.

“흐헤헤.”

쪼물쪼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히약!”

가만히 있던 내가 입을 열자 화들짝 놀라는 카를라.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자각한 카를라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심지어 마땅히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횡설수설 말을 더듬기까지.

“이건, 저기, 그게 말이죠 주인님….”

“됐고. 빨리하자. 더는 참기 힘들다고.”

피식 웃으며 카를라의 허리를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크게 부풀어 오른 가슴 때문에 지금껏 살짝 떨어져 있던 하반신이 밀착된다.

꾸욱.

자연스레 카를라의 아랫배를 짓누르는 내 물건.

카를라의 가슴이 내 상체에 눌리던 조금 전과는 반대의 양상.

“이건…?”

당연히 자신의 배에 닿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카를라가 시선을 아래쪽으로 내렸다.

그리고는 침을 꼴깍 삼키고서야 다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그리 많이 몸을 섞은 것도 아니건만, 어느새 카를라의 몸은 쾌락을 기억한 걸까.

방금까지의 감탄과는 다른 느낌의 열기가 실린…완연한 여인의 표정.

“…이제 정말로 할게요?”

조심스레 말한 카를라가 느릿하게 발꿈치를 들어 올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 코와 입술에 와닿는 카를라의 따뜻한 숨결. 그리고.

쪽.

입술이 맞닿았다.

말랑한 감촉과 함께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오는 혓바닥.

겁이라도 먹은 것처럼 흠칫거리는 카를라가 내 혀를 슬쩍 건드린다.

이에 가볍게 호응해주자, 용기를 얻은 듯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카를라.

생각해 보면 카를라가 먼저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인가? 지금까지는 내가 시키는 대로 했었으니까.

어쩐지 가슴 한 켠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카를라와 혀를 얽었다.

그렇게 서로의 호흡이 섞이고, 타액이 섞이며 정신이 몽롱해질 때쯤.

“프하….”

카를라가 고개를 떼며 길었던 키스의 끝을 고했다.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만이 아니었던 걸까.

열이라도 오른 것처럼 멍한 표정의 카를라가 내 입을 바라보더니.

“하음.”

그대로 다시 달려들었다.

…다만 입술이 아닌 혀를 향해서.

“하으…흐읍…츄릅.”

입술은 거의 닿지 않는 상태. 카를라는 오로지 내 혀만을 빨아대고 있었다.

말랑한 입술을 오물거리고, 혀를 꼼지락대며…마치 펠라라도 하듯이 내 혀를 정성스레 핥는 카를라.

키스와는 전혀 다르다. 조금 더 본능적이고 야릇한 느낌.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이러고 있고 싶었지만…아쉽게도 이 예상치 못한 애무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혀를 쭈욱 내밀고 있던 탓일까. 자연스레 혀를 타고 흘러내리는 침.

이를 반사적으로 꼴깍 삼킨 카를라의 눈에 그제야 초점이 돌아왔다.

“히끅.”

기억은 멀쩡한지 카를라의 루비색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부끄러워서 죽고 싶다는 듯한 표정.

“더 안 해줘?”

“…….”

장난스레 물어보며 혀를 내밀자 가지런한 백금발이 산발이 되도록 마구 고개를 젓는 카를라.

그리고는 고장 난 골렘처럼 삐그덕거리는 움직임으로 침대로 향하더니, 벌러덩 드러누웠다.

몸을 대자로 펼치고, 눈은 꼭 감은 것이 제발 조금 전의 일은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전신으로 주장하는 것만 같은 모양새다.

“난 좋았는데…다음에 또 시킬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

조금 다른 의미로 오들오들 떠는 카를라를 따라 침대 위로 올라갔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