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이 입학시험은 안전합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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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내 튜토리얼 꼼수는 23번째 라운드인 아이언 센티피드에게 막히고 말았다.
아이언 센티피드는 대형견 크기의 철갑 지네로, 튼튼한 방어력이 특징인 몬스터다.
윈드 커터는 바람 계열 마법이 으레 그러하듯, 빠르고 은밀하지만 그 위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고.
풀 차지를 해도 아이언 센티피드의 철갑을 완전히 베어내지 못한 탓에, 광분한 녀석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 처리. 시험은 거기서 끝이었다.
아, 도중에 습격받는 일도 없었다.
피에트로가 죽으며 습격 계획을 보류하거나, 무산시킨 거겠지.
“이 정도면 A반에 배정받을 수 있겠지?”
“…그, 그럼요. 제가 입학할 때랑 비슷한 성적이신걸요? 당연히 원하시는 곳에 가실 수 있을 거예요.”
내가 꼼수를 쓴 게 불만인 걸까,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시험관인 메이킨 교수가 무척이나 떨떠름한 표정을 짓긴 했으나….
그래도 아이언 센티피드까지 간 게 상당한 성적인지,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 서류와 함께 아카데미 안내 책자를 넘겨주더라.
일단은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지금은 약속대로 카를라가 좋아하던 식당으로 향하는 중이다.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잘 풀린 상황.
다만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그래서 카를라. 아까 왜 내 시선을 피했는데.”
“으으…그게 말이죠….”
“내 완벽한 공략법이 그렇게 부끄러웠어?!”
기습적으로 빼액 소리 지르자, 카를라가 기겁하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래도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몬스터 상대로 비겁한 게 어딨겠어요! 하지만 주인님께서 사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뒤틀린 취향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금 겁먹었을 뿐이에요…!”
“뭐? 카를라 너라면 모를까 몬스터를 괴롭혀서 어디다 써?”
“…저를 괴롭히는 건 쓸모있는 일이었나요?”
“응. 내가 재밌잖아. 그보다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그야…죽어가는 고블린 앞에서 주인님께서 웃고 계셨잖아요. 일전에 얼떨결에 혼탁한 합일의 주교를 쓰러뜨리셨을 때도 그랬구요….”
“아니, 그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도 전에 사교도 놈들의 계획을 하나 꺾은 데다가, 스킵하지 못한 튜토리얼을 스킵할 수 있었다.
거기에 원작 시작 시점보다 3년이나 빠르게 빙의한 탓에, 게임 지식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꿀 빨기에 성공한 것이다.
무엇보다 마법 없는 세상에서 살던 내게, 마법전은 상상 이상으로 가슴 벅찬 경험이더라.
당연히 들뜰 수밖에.
하지만 내가 왜 들떴는지를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 그 탓일까. 나오는 말이 조금 이상해지고 말았다.
“…좋은 사교도는 죽은 사교도뿐! 몬스터도 마찬가지야!”
“히이익! 고통받는 게 아니라 죽이는 쪽에서 희열을 느끼시는 건가요?! 살려주세요! 저는 사교도도 몬스터도 아니에요! 주인님의 충실한 애완 노예에요! 멍멍!”
“…….”
카를라의 소란에 주변에서 이쪽을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쯤 되면 단순히 쫄아서 패닉에 빠진 게 아니라, 몰래 나를 맥이는 게 아닐까?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카를라의 볼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흐에에에엑!”
“쓰읍. 조용히 안 하면 레스토랑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바로 여관으로 돌아간다?”
“…흡!”
즉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슬쩍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 카를라.
효과 좋네.
“…….”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냐는 카를라의 시선을 피하며 레스토랑까지 향했다.
***
“이제 말해도 괜찮아.”
레스토랑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막고 있던 카를라가 그제야 손을 뗐다.
“프하…!”
그리고는 방실대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 많이 먹어도 돼요?!”
“저번처럼 배가 볼록해질 때까지 먹어도 괜찮아. …그래도 살찌면 빠질 때까지 굴릴 거니까 적당히 조절하고.”
“괜찮아요. 마나 코어나 오러 코어 있는 사람은 살 안 쪄요!”
“뭐? 진짜?”
“정말이에요. 이게 원리가 어떻게 되냐면요….”
이어진 카를라의 말에 의하면 마나와 오러에는 신체를 건강히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기에 일정 이상 지방이 끼면 알아서 연소시킨다고 한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요.”
“응. 어딘지 알 것 같네.”
가슴은 맘마통…아니, 마나통이다 이거지?
그렇게 카를라와 적당히 시시덕대며,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구석진 룸으로 향했다.
높으신 분들도 자주 찾아오는 곳이기에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룸도 여럿 있다나.
카를라의 추천대로 적당히 음식을 주문한 뒤, 인벤토리에서 조금 전에 받았던 책자를 꺼냈다.
그러자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기다리던 카를라가 루비색 눈동자를 번쩍 떴다.
“앗! 주인님 그거 읽으시게요?”
“어. 이제 곧 아카데미에 다녀야 하니 한 번쯤은 읽어봐야지.”
사실 이 안내 책자는 게임에서도 존재하던 물건이다.
일종의 문서 아이템으로 아카데미의 교칙이나, 학과별 특징 같은 설명이 적혀있었지.
내용 자체는 뛰어난 기억력 특성 덕에 전부 외우고 있지만, 혹시나 달라진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 한 번 더 확인해봐야 한다.
한장 한장 페이지를 넘기고 있자니, 카를라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어…주인님? 그거 아세요? 제가 주인님의 노예가 되기 전에는 아카데미 최고 학년이었어요.”
“응?”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자, 카를라가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카데미에 관해서 궁금한 거나 모르시는 게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시면 돼요! 시험 족보도 전부 알려드릴 수 있어요! 어때요? 제가 그 책자보다 훨씬 더 유용하죠?”
“…….”
책자에 질투하는 거 뭐야.
조금 어이가 없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에 일단 책자는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대충 훑어봤더니, 내 기억 속 내용이랑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하지만 이를 자신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전조라 생각한 걸까.
카를라가 자신의 가슴을 콩콩 두드리며 말했다.
“뭐든 물어봐 주세요 주인님!”
나름 듬직한 모습을 연출하려는 것 같지만, 흔들리는 가슴 때문에 그냥 야할 뿐이다.
출렁이는 카를라의 가슴을 잠시 감상하다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당장 닥친 문제에 대해서 말인데.”
“앗! 네! 전공 선택인가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1학년 때는 학부의 구분만 있을 뿐, 학과의 구분은 없으니 다양한 수업을 들어 보시고 2학년 때 주인님께 잘 맞는 전공을 고르시면….”
“엘리샤 실반 글렌시엘이 나한테 시킨 카를라 괴롭히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신나서 이것저것 말하던 카를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오들오들 떨면서 내 안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 역시 그래야겠죠? 엘리…글렌시엘 님에게 찍히면 주인님께서 많이 힘들 테니까…응. 괜찮아요. 주인님을 위해서라면…그래도 가능하면 아픈 건 좀 봐주실 수 있나요 주인님…?”
그리 말한 카를라의 어깨는 축 늘어졌으며,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버려진 것도 모자라 비까지 쫄딱 맞은 새끼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처량함.
잠시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에잇.”
딱!
“히약!”
카를라의 코끝에 가벼운 딱밤을 놓았다.
자기가 왜 맞았다는 지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코를 감싼 카를라.
그 모습에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하아…꼭 진짜로 할 필요는 없잖아.”
“네…?”
“그냥 밤에 여러모로 심한 짓 당한 척만 하면 된다고.”
“???”
멍하니 눈만 깜빡이는 카를라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카를라에게는 누군가를 속인다는 발상이 없다는걸.
순진하기도 해라.
“생각해 봐. 엘리샤가 내 방을 훔쳐보기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밤 시중이랍시고 뭘 시키는지 전혀 모를 거란 말이지.”
“그야 그렇지만…평소의 제 반응이나 몸에 남은 상처 같은 걸로 유추 가능하지 않을까요…거기에 다른 시종들을 시켜 주인님의 동향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거구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카를라 네 반응이나 상처, 내 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들만 신경 쓰면 된다는 거 아냐.”
“…어?”
이건 생각도 못 했다는 듯이 눈을 땡그랗게 뜨는 카를라.
물론 엘리샤는 바보가 아니니 속이는 게 쉽지 않겠지. 다만, 설령 들키더라도 문제 될 건 없다.
“나도 아카데미의 학생인 이상, 엘리샤가 직접적으로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어. 심지어 카를라 너를 괴롭히라는 음습한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는 더더욱 그렇겠지.”
“하, 하지만 주인님. 그건 어디까지만 직접적으로 부당한 압박을 가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간접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걸요?”
나도 안다. 본격적으로 엘리샤가 힘을 쓰기 시작하면 엄청 귀찮아지리라.
그래서 엘리샤를 적당히 속여 넘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거고.
다만.
“그것도 상관없어. 만약 엘리샤가 마음먹고 우리를 압박해 오더라도 딱 3개월만 버티면 돼.”
“네? 3개월이요? 그 뒤에 무슨 일이 있나요?”
“응.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그때가 되면 엘리샤는 더 이상 우리에게 신경 쓸 여력도, 능력도 없을 거야.”
실반 마탑이 무너져도 하이 엘프라는 혈통이 남아있긴 하지만…엘프 사회에서 하이 엘프는 어디까지나 신성시되는 존재.
즉, 종교상의 이유로 대접받는 것이지, 실질적인 계급을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종교는 순수를 잃은 것에 각박해지는 법.
직접 정령 소환에 동참하지는 않았더라도, 금기 연구에 관련됐다는 것 하나만으로 엘프들은 엘리샤를 외면하리라.
수틀려서 최악의 경우가 온다 해도, 3개월만 뻗대면 어떻게든 된다.
“어때? 할만하지?”
내 자신만만한 태도에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카를라였으나.
이내 나를 믿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주인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저는 구체적으로 뭘 하면 되나요?”
“간단해. 나한테 팔리기 전에 받았던 노예 교육 내용 기억하지?”
“네? 네…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카를라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떨리는 카를라의 손을 살포시 붙잡고,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딱 3개월만 그때 배운 대로 해보자.”
장담컨데 처음 사 왔을 때의 그 모습을 보여주면 아무도 의심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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