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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25화 (25/230)

〈 25화 〉 이 입학시험은 안전합니다!(3)

* * *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시험장 위로 향하는 얀델.

메이킨의 적의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태연한 모습을 잠시 노려보던 메이킨은 이내, 멍하니 앉아있는 카를라를 향해 다가갔다.

“카를라 양.”

“메이킨 교수님! 깜짝 놀랐어요! 교수님이 시험관이셨군요?”

처음 시선을 마주쳤을 때의 어색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과거 아카데미에 있었을 무렵처럼 밝게 웃는 카를라.

다만 그러는 와중에도 몸은 꿈쩍도 않고 고개만 돌리는 것이, 마치 기다려 명령을 받은 강아지 같은 모양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만난 애제자가 이상해진 것 같다.

그 사실에 약간 마음이 아파진 메이킨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카를라에게 물었다.

“많이…힘들죠?”

오랜만에 만난 제자의 모습에 메이킨의 마음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린델하이트 가문에 사교도 혐의가 걸리기 전.

카를라는 마법 학부의 우상이요, 교수들의 자랑이었다.

메이킨 또한 자신의 자랑스러운 제자인 카를라가 언젠가는 고위 마법사를 넘어,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메이킨은 당시의 빛나던 카를라의 모습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본 광경도 절대 잊지 못하리라.

귀족가의 영애로서 보이던 여유와 기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겁 많은 토끼처럼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하는 카를라.

언제나 총명함으로 반짝이던 눈동자는 그 빛을 잃고 탁하게 흐려져 있었으며.

목에는 노예 각인 특유의 가시덩굴 문양이 쇠사슬처럼 새겨져 있었다.

거기에 카를라의 주인이라던 얀델은 어떠했는가.

난데 없이 카를라의 엉덩이를 후려치는 것은 물론이요, 무슨 강아지 다루듯이 카를라를 대하던 얀델.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카를라는 노예의 신분이니까.

하지만 필사적으로 제 주인에게 아양을 떠는 카를라의 모습을 떠올리자, 메이킨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이런 메이킨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를라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저 안 힘들어요 교수님!”

“괜찮을 리가 없잖습니까. 저한테까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카를라.”

사실 현실적으로 메이킨이 카를라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힘들다고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편해지기 마련.

메이킨은 잠깐이라도 좋다면 얼마든지 카를라의 고통을 받아주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으음…정말로 괜찮은데요?”

메이킨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를라.

이에 메이킨이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카를라는 방긋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 보세요! 이 옷도, 악세사리도 전부 주인님이 사주셨어요!”

좋게 말하면 활동성이 좋은 옷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몸에 착 달라붙어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노골적인 옷차림.

장신구는 또 어떠한가.

황금색으로 과하게 반짝이는 것이 전체적인 조화보다, 아무튼 비싼 장신구를 덕지덕지 걸친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천박한 졸부 취향.

하지만 카를라는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주인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조금 짓궂으실 때도 있지만…저를 때리지도 않고, 굶기지도 않으세요. 제가 잘못해서 벌을 내리실 때도 정말로 심한 짓은 안 하세요.”

“…….”

너무나 당연한 일들을 했을 뿐인데, 얀델이 좋은 사람이라 말하는 카를라.

메이킨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차라리 날 때부터 노예였던 이라면 모를까. 누구보다도 귀하게 자라왔을 카를라의 말이라고는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쯤되자 메이킨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메이킨이 아는 마도명가의 상냥한 영애는 어딘가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주인의 작은 변덕에도 기뻐하는 노예만이 남아있다는 걸.

그렇게 세뇌당한 걸 수도 있고, 이리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몰렸던 걸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이미 카를라는 조교 당했다는 것뿐.

대체 무슨 일을 당했던 걸까.

분명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라, 별다른 풍파 없이 아카데미 교수직까지 오른 메이킨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겠지.

메이킨은 자신의 딸 같은 제자를 망가뜨린 원흉을 노려보았다.

검은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 흔치 않은 조합이지만, 잘생긴 외모가 합쳐지니 귀족 특유의 고귀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서류상으로는 평민이라 기재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어느 대귀족의 사생아쯤 될 것이다.

애초에 카를라의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을 정도의 재력이 있잖은가.

정확히 얼마에 거래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평민이 평범하게 벌어서 모을 수 있는 금액은 아니리라.

메이킨이 얀델의 정체를 추측하는 사이. 시험이 시작됐다.

***

“끼에에엑!”

반투명한 고블린이 울부짖었다.

최약체라 불리는 고블린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대1에서의 이야기.

자신이 약한 걸 잘 알고 있는 고블린은 언제나 무리를 지어 다니며, 정면 승부 대신 기습이나 함정 같은 술수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경험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어중간하게 강한 몬스터보다 오히려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고.

물론 내게는 단순한 잡몹이지만.

“키르륵!”

“케루룽!”

처음 외친 고블린의 울음소리가 모종의 신호라도 되는 걸까.

좌우로 흩어져 이쪽을 포위하고 있던 다른 고블린 둘이 동시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덩치는 작아도 성인 남성과 맞먹는 근력. 손에 들린 단검은 조잡하지만, 사람을 살갗을 찢어버리기엔 충분할 정도로 예리하리라.

하지만 맞지 않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정면을 향해 몸을 던지며, 인벤토리에서 빛나는 사자 단검을 꺼냈다.

무기를 쥐며 조잡한 무기술 특성이 발휘된 덕일까. 조금 더 깔끔해진 몸놀림으로 양옆에서의 합공을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고블린 한 마리.

녀석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단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점프.

“케케륵!”

예상대로네.

고블린의 근력은 나와 비슷할지언정 팔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짧다.

그렇기에 결정타를 꽂을 수 있는 기회라 여겨지는 순간에는 언제나 도약으로 거리를 좁히려 든다.

이 패턴을 노려 카운터 치는 것이야말로 고블린 계열 공략의 알파이자 오메가.

공중에 붕 뜬 채, 내 목덜미를 향해 단검을 내리찍는 고블린을 향해 빠르게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쇼크.”

파지직.

“케륵?!”

기초마법인 만큼 쇼크의 위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어엿한 전격 계열 마법이기에 경직 효과는 확실한지, 공중에서 뻣뻣하게 굳은 고블린.

감전은 금세 풀렸는지 다시금 자세를 잡으려 들지만…이미 늦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의 목덜미에 냅다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끄륽….”

피거품을 물며 바동거리는 고블린.

녀석을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다른 고블린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체구가 작은 만큼 몸무게도 가벼운 고블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란히 달려오던 녀석들 정면에서 날아오는 동료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힌다.

콰당탕.

“키에엑!”

“케라악!”

한 덩어리가 되어 널브러진 고블린 세 마리.

놈들이 자신들 위에 널브러진 동족을 황급히 밀어내며,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하지만…그보다 내가 조금 더 빨랐다.

“바람이여. 칼날이 되어 적을 베어내라. 윈드 커터!”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이 길게 늘어지면 날아갔다. 그리고.

서걱.

이제 막 일어나려던 고블린 둘의 머리를 동시에 베었다.

이제 남은 건 처음 단검에 목을 찔려 죽어가는 녀석뿐.

하지만 굳이 확인 사살을 하는 대신, 다시금 윈드 커터의 주문을 외웠다

“바람이여. 예리하게 날을 갈아라. 내 손에 머물며 더더욱 거세어져라.”

조금 전과 약간 달라진 영창. 마법을 바로 사출하는 대신, 단단히 붙잡고 마력을 과충전시킬 때 주로 쓰는 주문이다.

모든 몬스터를 죽여야만 다음 몬스터의 환영이 등장하는 입학시험의 시스템을 활용한 일종의 꼼수.

마지막 고블린이 천천히 죽어가는 사이, 계속해서 마력을 불어넣으며 차징을 유지했다.

다음 상대는 오크 한 마리.

나보다 확연히 강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단숨에 제압해야 한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완전히 죽은 것인지,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는 고블린들의 환영.

이어서 시험장의 중앙에 생겨나는 2m 크기의 거구.

내 기억대로 오크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하며 모아둔 마력을 단번에 풀어 헤쳤다.

“윈드 커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단숨에 상 하체가 분리되는 오크.

하지만 생명력이 질긴 몬스터답게 앞으로 1분 정도는 더 목숨이 붙어있으리라.

그 사이에 다시 윈드 커터의 주문을 외우며 차징을 시작했다.

내가 다른 강력한 하급 마법을 놔두고, 굳이 윈드 커터를 가장 먼저 배운 건 이렇게 써먹을 걸 염두에 둔 일이었다.

절단을 통한 완벽한 무력화와, 적당히 느릿한 죽음.

고블린을 제외한 모든 몬스터는 한 마리씩 등장하니, 내 마력이나 집중력이 끊기지 않는 이상 지금의 구도는 계속될 것이다.

비교적 위력이 약한 바람계열 마법이라도 풀차지로 날리면, 어지간한 소형 몬스터는 꼼짝도 못하고 죽어야 하니까.

이게 바로 내가 알아낸 튜토리얼 꼼수.

통칭 윈박꼼…!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시험장 바깥의 카를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완벽한 사이클을 자랑할 생각이었는데.

“…….”

어째서인지 질색하며 시선을 피하는 카를라.

…아, 왜! 비겁해도 이기면 그만 아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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