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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23화 (23/230)

〈 23화 〉 이 입학시험은 안전합니다!

* * *

띠링!

【하급마법: 윈드 커터(E)를 익혔습니다.】

【처음으로 하급 마법을 익혔습니다. 조잡한 마법(F) 특성이 하위 마법사(E)로 승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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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마법사(E)】

당신은 이제 막 기초를 벗어난 마법사입니다.

아직 한 사람 몫을 하는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있어 보이네요.

더 많은 마법을 익히고, 그렇게 익힌 마법의 숙련도를 높이세요.

­마법의 효과가 5% 상승합니다.

­영창 속도가 아주 조금 빨라집니다.

익힌 마법: 틴더, 워터, 윈드, 테라, 쇼크, 포스, 원드 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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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되네.”

설마 마차로 이동하는 도중에 하급 마법까지 익히는 데 성공할 줄이야.

게임에서의 주인공이 어떻게 혼자 마법을 배운 건지 이제야 알겠다.

상태창 보정 이거 완전 사기잖아?

멍한 표정으로 허공에 맺힌 예리한 바람의 칼날을 바라보던 카를라가 홱! 하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게 되네라는 말 한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에요 주인님! 3일이라구요? 겨우 3일 만에 하급 마법을 익히신 거라구요?!”

“아카데미 도착 날짜에 딱 맞췄네?”

마차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첨탑들과 묘하게 근대스러운 분위기가 어우러진 특이한 도시.

인간 중심 국가인 레반틴 제국을 벗어났기 때문인지, 이종족들도 자주 보인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카를라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주인님. 하급 마법이 하급이라 불려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구요.”

“나도 알아.”

기초 마법은 어디까지나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자체에 집중한 마법이다.

틴더는 성냥불 수준의 불길을 피워 올리고, 워터는 한 컵 정도의 물을 만들어내며, 쇼크는 정전기보다 조금 따끔한 전류를 만들어 낼 뿐.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다. 그냥 불러내는 게 전부다.

하지만 하급 마법부터는 다르다.

불러낸 현상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변형시키고, 공격이나 방어등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는 것.

그렇기에 마법사로 인정받는 첫 단계가 바로 하급 마법이다.

겨우 하급 마법 정도에 만족해서는 앞으로의 일을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피식 웃으며 카를라의 콧잔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 아냐? 카를라 네가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준 것도 모자라, 직접 마력을 이끌어주며 시범을 보이기까지 했잖아. 거기에 내 재능까지 있으니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난 것뿐이야.”

“맞는 말씀이긴 한데…그치만 어떻게….”

여전히 루비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혼란스러워하는 카를라.

하지만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뇨. 주인님 말씀이 맞아요. 주인님이시라면 당연한 일이죠. 더욱 위대한 마법사가 되실 분이니까요.”

착실히 나를 자신의 선조와 같은 용혈 각성자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온 반응.

말없이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다시 창문을 바라보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대한 도시. 그 중앙에 늘어선 여러 개의 첩탑.

아카데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아카데미.

300여년 전에 선신과 악신의 싸움을 종결시킨 용사 라힘의 유지를 받들어 만들어진 곳으로.

에우렐리아 대륙의 인재들을 한곳에 모은 최초이자 최고의 교육 기관.

재능만 있다면 신분 상관없이 누구든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요, 졸업한 뒤의 출세는 따놓은 당상이기도 하니 그 지원자의 수는 어마무시하게 많다.

하지만 정작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카데미에서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최고의 인재.

이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거칠게 시험장 밖으로 나서는 저 늑대 수인처럼 어중간한 재능으로는 문턱조차 밟을 수 없으니까.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줄을 서다 보면 은근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뭐, 나는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카를라?”

“그럼요. 주인님이라면 마력량만으로도 충분한 자격이 되시는데, 이번에 하급 마법까지 익히셨잖아요. …그나저나 주인님? 정말 저를 기숙사에 데려가실 생각이신가요?”

“당연하지. 네가 없으면 누가 내 시중을 들어?”

“시종이 없는 생도들에게는 아카데미에서 담당 시종을 한명 붙여주는데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를라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작게 속삭였다.

“난 밤시중 말한 건데?”

“……!”

아카데미는 배우기 위한 곳이다.

전 대륙에서 거르고 걸러 뽑은 생도들에게 잡일 따위를 시킬 리 없잖은가.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2명까지는 시종을 데리고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며, 만약 시종이 없는 경우라면 아카데미 측에서 붙여주기도 한다.

오롯이 자신의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배려.

당연한 말이지만 아카데미 측에서 보내준 시종에게 손을 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라고 보내준 시종이 아니니까.

“흐우으….”

카를라가 좋아해야 하는지, 싫어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이해 못할 건 아니다. 본래 카를라는 아카데미 생도였잖은가. 그것도 4학년 마법학부 수석.

실제로 카를라의 흑화 떡밥이라도 넣고 싶었던 건지, H&A의 초반에는 아카데미 내에서 카를라의 존재를 얼핏 들을 수 있었다.

‘그 아름답고 대단한 선배가 노예로 전락하다니…사교도는 무섭구나!’ 같은 엑스트라들의 대화로 말이다.

즉, 아직까지 카를라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카데미에 제법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카를라가 신입생의 시종역이 되어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온다? 목에는 떡하니 노예 각인을 달고?

엄청난 주목을 받겠지. 카를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껄끄러울 테고. 하지만.

“주변 시선이 걱정이라면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

“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카를라.

그런 카를라의 백금색 머리카락을 쓸어주고는, 훤히 드러난 귓가에 다시 한번 속삭였다.

“카를라. 너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노예야. 네가 복종해야 할 사람도, 눈치 봐야 할 사람도, 잘 보여야 할 사람도 전부 나야. …그리고 너 없으면 난 누구한테 마법을 배워야겠어?”

“주인님….”

양손을 가슴께에서 맞잡고, 얼굴을 붉히는 카를라.

팔에 짓눌려 의도치 않게 강조된 가슴과 촉촉히 젖은 눈동자.

퍽 감동한 것 같은 모양새였지만…이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카를라 수준의 미모라면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는데, 저런 포즈까지 잡으면 더더욱 주변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그 때문일까. 입학시험을 위해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 중 한 무리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맑은 창공을 연상시키는 연하늘색 머리카락은 웨이브지다 못해 돌돌 말려있었으며.

마찬가지로 옅은 푸른색을 띠는 눈동자는 순도 높은 얼음을 연상시킨다.

노출이 조금 있는 드레스는 본인의 우월한 태생 마력을 강조했지만, 그 위를 덮은 고급진 망토형 로브 덕에 천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역시 자랑스레 드러낸 길쭉한 귀다.

단순히 끝이 뾰족한 게 아니라, 저렇게 길쭉한 귀는 엘프 중에서도 특별한 혈통을 타고난 하이 엘프의 특징이니까.

누가 봐도 귀한 집 아가씨 같은 여인이 메이드 둘을 대동한 채, 우리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흐응.”

어지간한 악기보다도 고운 음색.

하지만 뒤이어진 말은 음색이 아깝게도 단순한 시비에 가까웠다.

“오랜만이네요 린델하이트 영애. 아니, 이젠 그냥 카를라인가요?”

“…엘리샤.”

촥!

들고 다니던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린 엘리샤가 빈정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어머? 요즘 노예는 버릇이 없네요. 실반 마탑의 후계자이자, 하이 엘프의 피를 이은 제 이름을 이렇게 함부로 부르다니요.”

“…….”

딱딱하게 굳은 채, 아무 말도 못 하는 카를라.

와…이 녀석을 여기서 만나네.

엘리샤 실반 글렌시엘.

게임에서는 보스로만 만날 수 있던 카를라와 달리, 엘리샤는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면 정식 동료로 삼을 수 있는 캐릭터였다.

영입 조건도 까다롭지 않은 데다가, 상당히 강력한 마법사로 성장하기에 뉴비들에게는 필수 캐릭이라고도 불렸고.

헌데, 그 엘리샤가 아무래도 카를라와 인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썩 좋은 인연은 아닌 것 같지만.

게임에서는 만난 적 없었던 둘이기에 조금 뒷이야기가 궁금하기 한데, 지금은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정중한 태도로 엘리샤에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제 노예가 글렌시엘 님의 귀를 어지럽힌 점 진심을 사과드립니다. 아직 제 처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니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길 간청드리겠습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에는 교칙을 믿고 좀 막 나가도 되지만, 아직은 입학시험도 치르기 전이다.

괜한 트러블을 일으켜 시험장에서 퇴출당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다행히 내 즉각적인 사과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엘리샤가 하늘색 눈동자를 반달 모양으로 곱게 휘며, 그새 접은 부채로 내 어깨 위에 얹고서 작게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밤 시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던 것 같습니다만….”

“역시 글렌시엘 님이시군요. 작은 속삭임이라 생각했는데 이걸 들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후후. 하이 엘프는 세간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감각이 뛰어나답니다.”

즐겁다는 듯 한차례 귀를 파닥거린 엘리샤가 이번에는 주변에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어디의 영식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노예를 다루는 법은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 천것들은 엄히 다스려야 하는 법이랍니다.”

외모와 말끔한 옷차림 때문일까. 나를 어디 귀족 가문의 자제로 착각한 것 같네.

그럼에도 나를 자신의 아래로 깔보고 있는 듯한 태도가 여실히 묻어나왔지만.

하기야. 지금의 엘리샤는 그래도 되는 자리에 앉아있긴 하지.

그나저나 굳이 밤 시중이라는 단어를 꺼낸 뒤에 엄히 다스리라는 말을 꺼내다니.

이건 역시 그런 쪽으로 벌을 주라는 뜻이리라.

마지막 부분만 큰 소리로 말한 건 자기가 관대히 용서했다는 걸 알리기 위함일 테고.

역시 귀족이란 여러모로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며, 최대한 비열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에 따끔하게 교육시켜 버릇을 고쳐놓겠습니다.”

교육이라는 말에 과거의 일을 떠올린 걸까.

화들짝 놀란 카를라가 포식자 앞에 선 토끼처럼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엘리샤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법이지요. 허나 두 번은 용납할 수 없는 법. 지켜보겠습니다.”

그리 말하고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멀어지는 엘리샤.

줄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이미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도중이었나 보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카를라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내게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주인님께서 엘리…글렌시엘 님에게…벌…무섭지만 제대로 받을 게요. 뭐든 내려주세요. 그러니 제게 화를 다 푸시고 나면…그때는 부디 저를 용서해주세요 주인님….”

“어? 그런 거 신경 쓰고 있었어? 괜찮아.”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주인님. 글렌시엘 님에게 찍힌다는 건….”

얼마나 엘리샤가 대단한 배경과 재능을 가졌는지, 하고자 하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줄줄이 설명하는 카를라.

하지만 카를라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샤도 얼마 안 가서 몰락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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