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속성 과외(3)
* * *
화르륵.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던 불씨의 흔들림이 멎었다.
심지어는 이전보다 확연히 선명해진 주홍빛으로 타오르기까지.
…어쩐지 뭔가 걸리더라니.
이게 원인이었구나.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완벽하지만 인간미 없는 코어의 구조.
그리고 특성으로 등록되자마자 완성도가 확 높아진 불꽃.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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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얀델
칭호: 길 잃은 이방인
기초 능력
근력: 11
내구: 10
민첩: 12
재주: 14
마력: 18
특성
끝없는 마나(A)
원소 친화(B)
뛰어난 기억력(B)
조잡한 무기술(E)
린트블룸 마나 코어(C)
조잡한 마법(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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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만 보이는 반투명한 화면. 가장 아랫부분에 떡하니 적힌 조잡한 마법 특성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마법을 구성하는 4대 요소는 상상, 의지, 직관, 수식이라고 했던가.
그중에서 직관과 수식이 발현된 마법이 시전자의 의도대로 굴러가도록 보정해주는 역할이고.
아무래도 나는 거기에 더해 상태창 보정까지 받나 보다.
상태창 보정이라…
지금 생각해 보니 조잡한 무기술 특성도 기이한 구석이 있네.
‘특성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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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잡한 무기술(E)】
동네 양아치 수준으로 무기를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조잡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지만, 다양한 무기를 다룰 수 있다는 건 그럭저럭 칭찬해줄만 하군요.
무기를 이용한 물리 공격에 한해, 기본 공격력이 5%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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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공격력 약간 상승이라는 심플한 효과.
지금까지는 공격력이 강해진다는 게 힘이 강해지는 거라 생각했는데…그게 아니라 상태창의 설명대로 내가 무기를 ‘다룰 수 있게’ 된 거라면?
조금 더 효율적인 자세로 조금 더 정확히 무기를 휘둘렀기에, 적은 힘으로 큰 결과를 낼 수 있던 걸 힘이 강해졌다 착각했을 뿐이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조잡한 무기술은 카를라처럼 누군가 도와줄 사람도 없었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얻은 특성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무기를 휘두르는 일에 익숙해진 것이라 생각했고.
하지만 결국 내 근접전 실력은 동네 양아치 수준.
잘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실수를 남발해야 정상이다.
실제로 빙의 초반에 시비가 붙었던 양아치들이 그러했고.
하지만 나는 아니다. 기껏해야 일반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무기술이지만, 실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피에트로를 쓰러뜨릴 때 한 번에 심장을 찌르진 못했으나, 손을 적신 피에 칼이 미끄러지지도 않은 것처럼.
단순히 상대의 실력에 밀린 거라면 모를까 스스로 자멸한 적은 없단 소리다.
동네 양아치 수준 한정이지만, 비인간적일 정도로 정확한 움직임.
이 또한 상태창의 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전부 말이 된다.
랭크에 맞는 수준에 한해서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상태창 보정의 효과가 아닐까?
내 가설을 확인해 보기 위해 다시 한번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나 회로 바깥으로는 꿈쩍도 않던 마력이 너무나도 자연스레 손끝으로 모인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외쳤다.
“틴더.”
화르륵.
카를라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처음 쓸 때처럼 강하게 의지를 불어넣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시전되는 틴더 마법. 심지어 그 위력과 안정성이 이전과 동일하기까지 하다.
예상대로네.
랭크라는 제한 안에서 극한의 효율을 추구한, 어떤 의미로는 완벽하다고도 할 수 있는 마법의 발현.
신기한 마음에 몇 번 더 반복해 봤다.
“틴더. 틴더. 틴더.”
화륵 화륵 화르륵.
내 의지에 따라 깜빡이며 발화와 소멸을 반복하는 불길.
체내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은 느껴지지만, 그 외의 수고로움은 거의 없었다.
딱 라이터를 켰다 껐다 하는 정도?
그렇게 불장난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한참 동안 틴더를 난사해보는 것도 잠시.
문득, 아까까지 낭랑한 목소리로 설명해주던 카를라가 조용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어보자.
“어버버버….”
물밖으로 튀어나온 붕어처럼 입술만 뻐끔거리는 카를라.
대체 얼마나 놀란 거야?
연분홍색 입술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슬쩍슬쩍 보이는 촉촉한 혓바닥.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카를라의 입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쮸왑쮸왑.
“???”
혀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펠라라도 하듯, 야릇하게 혀를 움직이는 카를라.
“…핫!”
다만, 무심코 저지른 짓이었는지 정신을 차린 카를라가 조심스레 검지를 뱉어냈다.
그리고는 옷 소매로 손가락에 묻은 침을 문질러 닦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놀란 척을 했다.
“세상에! 주인님 방금 어떻게 하신 거에요?! 마법 처음 배운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겨우 한 번 만에 감을 잡으시다니….”
“카를라?”
“아뇨. 이건 단순히 감을 잡은 정도가 아니에요. 조금 전에 주인님이 보여주신 틴더는 수십 년을 화염 마법에 쏟아부은 마법사처럼 노련한….”
“카를라.”
“…아무튼 주인님은 천재가 분명해요!”
“카를라!”
“다른 마법도 가르쳐 드릴까요? 주인님의 적성을 알아볼 겸, 이번에는 물속성의 기초 마법이 좋을 것 같네요.”
자꾸만 모른 척하는 카를라.
그 모습에 자꾸만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새까만 심술이 새어 나온다
이에 몸을 맡기고 턱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는 입 안쪽을 향해 천천히 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당연히 조금 전까지 카를라가 입에 물고 할짝였던 손가락을.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꺄아아아악!!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목구멍 끝까지 삼킨 경험은 처음이라 아직도 잔상처럼 감각이 남아서 저도 모르게 그랬어요! 다시는 주인님 말씀 못 들은 척 안 할 테니까 제발 그 손가락은 핥지 말아주세요!”
“누가 들으면 내가 네 손가락이라도 핥는 줄 알겠네. …아하! 실제로 카를라 너는 내 손가락을 핥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낄낄 웃으며 말랑한 배를 콕콕 찌르자, 카를라가 몸을 뒤틀며 울상을 지었다.
“흐아앙…놀리지 말아주세요…찌르지 말아주세요…잘모태써요…안 핥을 게요오….”
“아니. 다음에도 핥는 건 괜찮아. 아니, 핥아. 대신 부끄럽다고 말 돌리려 들지는 말고.”
“네…다음부터는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부끄러운 것도, 자랑스러운 것도 무엇 하나 숨기지 않고 전부 보고 할게요….”
그렇게까지 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시무룩한 표정으로 꾸벅이는 카를라가 귀여웠으니 적당히 대답해 주며 대화의 주제를 틀었다.
"어…응. 잘하자. 그보다 조금 전에 했던 말 말인데.”
“…목구멍에 주인님의 감각이 아직 남아있다는 거요?”
“그건 그것대로 흥미롭지만, 조금 더 전에 했던 내용 말이야. 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했던 거.”
나는 앞으로 아카데미 생활을 보내며 이런저런 마법을 배울 것이다.
상태창 보정은 에우렐리아 대륙의 내노라하는 인재들이 모인 아카데미에서도 특히나 이질적인 것.
이에 대해 캐묻는 이들이 한둘은 아니겠지.
하지만 상태창의 존재를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는 내겐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인벤토리를 아공간 가방이나 던전 보상으로 속였듯, 이번에도 적당한 설정을 덧붙여 속이는 수밖에.
“그거 말인데…아무래도 내가 정말 천재인 것 같아.”
“…넹?”
진지한 얼굴로 그리 말하자, 루비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를라.
그런 카를라의 허벅지에 볼을 부벼대며 말을 이었다.
“아까 카를라 네가 말했잖아? 단순히 감을 잡은 정도로는 안 된다고.”
“그렇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것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전혀 다르니까요.”
“근데 난 되더라.”
“…….”
내 태연스러운 대답에 입을 쩍 벌린 카를라. 아직까지도 내 가슴에 올려진 손을 괜스레 만지작거렸다.
“상상과 의지가 현상을 일으키고, 직관과 수식이 이를 보조해 마법으로서 승화시킨다고 했지?”
“네…맞아요. 그렇게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살짝 덧칠하는 게 마법이죠.”
“나는 그중에서도 직관이 엄청나게 발달한 것 같더라고. 한번 마법을 써보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본능적으로 깨닫게 돼.”
“…….”
가장 애매한 요소인 직관에 상태창 보정을 끼워맞췄을 뿐인 말도 안 되는 소리.
보통은 몇 번을 보여줘도 쉬이 믿지 않을 말이지만…카를라는 다르다.
다른 어디도 아닌 마도명가 린델하이트의 영애였던 카를라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알 수밖에 없다.
본능적으로 마법을 구사하는 존재.
드래곤에 대해서.
H&A는 다양한 종족이 살아가는 판타지 세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드래곤은 그 중에서도 특별하다.
무려 마법을 창시했다고 일컬어지는 종족이니까.
지금이야 선신과 악신의 싸움에 휘말려, 멸종 위기까지 몰렸지만 그럼에도 절대 경시할 수 없는 강력한 종족이기도 하고.
다만, 그런 주제에 이상할 정도로 인간에게 집착하는 종족이기도 하기에 제법 많은 혼혈을 남기기도 했다.
만약. 어쩌면. 아주 희박한 확률로.
격세 유전이 일어나 용의 피를 진하게 일깨운 사람이 있다면?
막대한 마나를 타고났지만 이를 감당하지 못해, 마나 감응 불능이라는 부작용을 떠안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린델하이트 가문의 시조와 똑같은 사람이 하나 더 있다면?
“…….”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내려다보는 카를라에게 히죽 웃어 보였다.
“또 손가락 집어넣기 전에 다른 마법도 좀 알려줘 봐. 지금처럼 카를라 네가 도와주면 금방 배울 것 같은데?”
어쩌면 아카데미에 도착하기 전까지 하급 마법 정도는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잖은가.
…거짓에 거짓을 덧씌우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절대 내가 이 세상의 ‘바깥’ 에서 왔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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