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속성 과외(2)
* * *
“아, 알겠어요! 이대로 해드릴게요. 해드릴 테니까 제 배를 가지고 노는 건 봐주세요오….”
카를라가 울먹이며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사락.
얇은 옷자락 너머로 느껴지는 가느다란 손가락의 감촉.
어쩐지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카를라의 체온을 즐기는 것도 잠시.
한참이나 내 가슴을 만지작대던 카를라가 연신 좌우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으응? 흐으응…?”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아뇨. 문제라기보다는….”
카를라가 만지작대던 손을 멈추고, 지그시 손바닥을 눌러온다.
“너무 좋은데요?”
“…내 몸이?”
어쩐지.
사실 카를라는 밝히는 아이였구나. 그래서 쥬지 키스 같은 걸 떠올릴 수 있었던 거야.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카를라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아니에요! 몸 말고 코어요! 코어가 너무 좋다는 거였어요!”
“헉! 사람보다 코어에 흥분하는 변태였다니. 이거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해줘야겠네.”
“그런 거 아니라구요오….”
너무 놀린 걸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카를라의 허벅지 떨림이 심상치 않다.
뭐랄까. 초등학교 시절 짝꿍의 실내화 주머니를 뺏어서 우다다다 도망쳤더니, 처음에는 어찌어찌 쫒아오다가 이내 바닥에 주저앉은 걸 보는 느낌?
이대로라면 울먹이는 걸 넘어 훌쩍이기까지 할 것 같네. 카를라의 옆구리를 살살 쓸어주며 주제를 틀었다.
“뭐, 장난이야. 코어가 너무 좋다고 했지? 그게 무슨 소리야?”
“…너무 정교해서 그래요.”
최대한 티를 안 내려 하는 것 같지만, 목소리에 절절히 묻어나오는 억울함.
하지만 이걸 또 놀렸다가는 더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으니 슬쩍 넘기며 말을 이었다.
“정교하다니. 카를라 네가 잘 전수해줬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물론, 제가 주인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조금 무리해서 코어를 만들어드린 건 사실이에요.”
그 말대로다. 본래라면 마나 코어를 처음 전수받을 때의 랭크는 D~E 수준.
최종적으로 어디까지 성장하느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처음 시작할 때는 다들 밑바닥에서 시작한다.
다만 카를라가 전수해준 린트블룸 코어의 무려 C랭크 스타트.
카를라의 무리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코어를 조금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드렸을 뿐이에요. 코어의 짜임새는…그로부터 비롯된 효율성은 전혀 다른 문제거든요.”
“어…그렇게 들어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알게 쉽게 비유해 볼게요.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있다고 쳐봐요? 키나 몸무게도 똑같고, 힘도 똑같아요.”
허공에 휙휙 주먹질을 하며 설명을 이어나가는 카를라.
“하지만 둘은 배운 기술이 달라요. 한쪽은 악기 연주를 10년간 배웠다면, 다른 한쪽은 광부 일을 10년간 배운 거죠. 만약 둘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요?”
“그야 광부였던 쪽이겠지. 모든 신체적 조건이 동일하다고 해도, 힘쓰는 법을 더 잘 알 테니까.”
“바로 그거에요! 똑같은 코어라도, 제대로 다룰 줄 알면 더 효율적으로 마나를 조작할 수 있는 거죠! 지금의 주인님이 딱 그런 느낌이에요.”
“…나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래서 신기한 거죠. 혹시 마력을 순환시키면서 코어도 건드리셨나요?”
“설마. 잘못 건드렸다가 무슨 문제가 생길 줄 알고.”
코어가 망가졌다고 심장이 터진다거나 하진 않는다. 대신 두 번 다시는 코어를 만들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지만.
기껏 카를라를 사서 마나 감응 불능 체질을 고쳐놨더니, 코어 불구가 될 수는 없잖은가.
“세상에…그냥 운 좋게 지금 형태로 만들어진 건…아니, 그랬으면 아직까지 유지하질 못했겠죠.”
“좋다는 거지?”
“그럼요! 좋다는 말로 끝낼 수준이 아니에요. 이 정도면 대마법사셨던 아버님과 비슷한 수준인데 대체 어떻게…앗, 그게…방금 건…그러니까….”
말하다 말고 횡설수설하는 카를라.
아마도 사교도로 알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은 실언이라 생각한 것이리라.
나중에 한번 기회를 봐서 린델하이트 가문의 사교도 혐의는 누명이라는 걸 알려줘야겠네.
본래는 언젠가 자력으로 노예 각인을 해제했을 때를 대비한 협상 카드였는데…지금의 카를라를 보면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으니까.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시야를 반쯤 가리는 카를라의 묵직한 가슴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히얏! 주, 주인님…?”
“괜찮아. 그냥 예시를 들려고 한 말이잖아? 그런 걸로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
“감사합니다….”
“어쨌든 내 코어가 정교하게 잘 짜여있다는 건 알겠어.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어떤 느낌인데?”
“으음. 린트블룸 호흡법은 작은 고리를 엮어, 하나의 큰 고리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렇지.”
지금도 조금만 심장 쪽에 신경을 기울이면 코어의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지니, 이 정도는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보통은 작은 고리 하나하나의 크기가 들쑥날쑥하고, 큰 고리도 삐뚤어진 경우가 수두룩해요. 당장 저도 큰 고리는 어찌어찌 모양을 잡았지만, 작은 고리 쪽은 완전히 교정하지 못했으니까요.”
“헤에…이제 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겠네.”
심장 부근에서 느껴지는 코어의 크기는 미묘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C랭크라는 느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느껴지는 코어의 구성 요소들은 도저히 C랭크라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작은 고리 하나하나의 크기는 전부 동일하며, 그것들이 모여 이룬 큰 고리는 완벽한 원을 이룬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기라도 한 것 같은 인간미 없는 조형.
…인간미 없는 조형?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카를라를 재촉했다.
“아무튼 좋다는 거잖아? 문제없는 거니까, 이제 하던 거나 마저 하자.”
“앗, 네. 이제부터 주인님의 코어에 공명하며 마력을 이끌어 드릴 테니 잘 기억해주세요.”
내 심장 위에 얹은 카를라의 손. 그로부터 미약한 청량함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두근. 두근.
귓가를 울리는 심장 박동 소리.
아니, 이건 심장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심장 주변을 둘러싼 코어가 선명한 존재감을 뿜어대며 생기는 착각일 뿐.
그리고 내 안쪽이 아닌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하나 더.
쿵. 쿵.
가슴에 맞닿은 손을 타고 전해지는 또 다른 울림.
나보다 훨씬 뚜렷한 기세를 자랑하는 카를라의 코어가 내 코어에 호응해 맥동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서로 대화라도 주고받는 것 같은 모양새.
하지만 주거니 받거니 하던 울림은 점점 그 간격이 짧아지더니, 이내 온전한 하나로 겹쳐진다.
외부의 마나와 공명해야 할 코어가 카를라의 코어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웅웅
그렇게 어느 것이 내 박동이고, 어느 것이 카를라의 박동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을 무렵.
카를라의 손에서 흘러나온 청량한 마력이 체내로 흘러들어왔다.
본래라면 서로 반발하며 밀쳐내야 했을 타인의 마력이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레 섞인다.
그리고는 마나 회로를 따라서만 움직이던 내 마력을 데리고, 회의 바깥으로…검지의 끝자락으로 이동했다.
“마력이 마나 회로를 따라 움직일 때 가장 안정되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마나 회로로만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니죠.”
푸르게 빛나는 손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카를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나중에는 코어와 주변 마력을 공명시켜 외부에 마법진을 그릴 수 있지만, 지금은 힘드실 거예요. 처음에는 이렇게 손끝에 집중한 마나로 마법진을 그리시는 게 더 편할 거구요.”
“이대로 마법진을 그리면 마법이 나가는 건가? 아, 주문도 외워야 했지?”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부분뿐이에요. 내면에서 조금 더 복잡한 처리를 거쳐야만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으실 거예요.”
“…예전에 기초 마법서를 몇 권 읽어본 적이 있는데, 거기 나온 상상, 의지, 직관, 수식 이걸 말하는 거야?”
뛰어난 기억력 특성 덕에 통째로 외우고 있던 내용을 말해주자, 카를라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서린다.
“맞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마법을 구성하는 4대 요소는 상상, 의지, 직관, 수식이에요.”
“마법인데 마나는 포함되지 않나 보네?”
“마법사의 의지가 곧 마력이거든요. 그래서 마법서를 읽다가 보이는 의지를 담아서 뭘 하라는 문구는 더 강한 마력을 쏟아부으라는 소리예요.”
이게 그런 뜻이었구만.
팔다리가 근육으로 움직인다면, 마력은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다.
마력을 강하게 끌어올리면 자연스레 강한 의지를 품게 되는 거고.
“이참에 조금 더 풀어서 마법의 발현 단계를 설명해드릴게요. 솔직히 마법서는 아무리 기초라도 독학하라고 만들어진 책이 아니거든요. 주인님 혼자 읽으셨으면 많이 어려우셨을 거예요.”
“…어쩐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더라.”
내가 멍청한 게 아니었어.
안심한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리자, 카를라가 쿡쿡 웃었다.
“그래도 이젠 제가 있잖아요? 제 입으로 말하기 조금 뭣하지만, 저는 정말 유능한 노예거든요.”
“그렇겠지. 중위 마법사면 마법사 중에서도 엘리트로 통하잖아.”
참고로 고위 마법사는 개인이라기보다는 공성 병기 취급받는다. 실제로 고위 마법에 그만한 위력이 있기도 하고.
“헤헤…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게요. 마법의 발현 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우선 원하는 현상을 상상하고, 그 상상에 의지를 덧씌우며, 직관과 수식으로 결과를 보정한다.
그게 바로 카를라가 말하는 마법의 발현 순서였다.
“간단한 마법일수록 직관과 수식의 비중이 적어요. 간단한 만큼 보정할 것도 얼마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 카를라가 자주 쓰는 클린 마법.
더러운 걸 씻어내는 마법이다만, 애초에 더러운 것의 기준이 뭘까.
만약 노폐물이라면 어디까지가 치워야 할 노폐물이고, 어디서부터 필요한 각질인 걸까.
클린 한번 잘못 썻다가는 피부의 껍질이 죄다 벗겨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외에도 옷에 엎지른 음료를 닦아내려다가, 안구의 물기를 같이 날려버릴 수도 있는 거고.
이러한 말로 하나하나 설명하기 힘든 부분을 제어하는 게 바로 직관이라고 한다.
“수식은 조금 더 알기 쉬워요. 범위나 방향을 제어하는 거거든요.”
“자기 마법에 자기는 피해를 입지 않는 것처럼?”
“아, 그건 직관의 영역이에요. 자기 마법이 일으킨 후폭풍에 자신이 휘말리지 않게끔 하는 게 수식인 거죠.”
이미 한번 카를라가 프로미넌스 플레어를 쓰는 모습을 본 덕일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제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 카를라가 해맑게 웃었다.
“그럼 이제 직접 해보죠! 뭐가 좋을까요. 무난하게 틴더로 시작해볼까요? 불씨 정도는 여차할 때 제가 끌 수도 있으니까요.”
“…다짜고짜 한번 써보라고 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려울 거 없어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기초마법에는 직관과 수식보다 상상과 의지가 더 중요하다구요. 우선 불씨를 상상해 보세요.”
불씨라…모닥불은 자주 피워봤다. 뛰어난 기억력 특성 덕에 모닥불 위로 흩날리던 불씨를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력은 제가 움직이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저 움직임을 기억하며 강하게 바라기만 하세요.”
불씨를. 작지만 장작만 넣어주면 언제든 크게 피어날 불씨를….
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다.
“되셨나요? 그럼 마지막으로 마력이 집중된 손가락으로 원을 하나 그리세요.”
빙글.
푸른 빛이 잔상처럼 허공에 남아 살짝 일그러진 원을 그렸다.
“이제 마력의 원 안에서, 불씨가 생겨나길 바라며 영창을 외우시면 돼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고, 이제부터 마법이 시작될 거라는 신호가 되기만 하면 내용은 뭐든 괜찮아요.”
노예 각인으로 카를라에게 명령을 내릴 때랑 비슷한 느낌이면 되겠지.
“피어올라라. [틴더].”
화륵.
마지막 시동어를 신호 삼아 푸른 원 안에서 피어오른 작은 불씨.
기껏해야 성냥불 정도 크기인데다가,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기까지 하지만…그래도 마법이다.
난생처음 써본 마법. 이쪽 세상에만 있는 신기한 힘.
“허….”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내가 일으킨 작은 불씨를 멍하니 보고 있던 것도 잠시.
띠링!
【기초마법: 틴더(F) 익혔습니다.】
【처음으로 마법을 익혔습니다. 조잡한 마법(F) 특성을 습득합니다.】
익숙한 알림음이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화르륵.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던 불씨의 흔들림이 멎었다.
그리고는 이전보다 확연히 선명해진 주홍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쩐지 뭔가 걸리더라니.
이게 원인이었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