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속성 과외
* * *
덜그럭덜그럭.
이 시대의 마차는 불편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마차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돈 많은 상인이나 귀족들은 충격 흡수나 공간 왜곡 같은 온갖 마법을 마차에 떡칠해놓기에 제법 편안하다고 한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마차처럼.
창문 너머로 멀어지는 게프 시를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 봐. 내가 뭐랬어. 오히려 보상까지 받아올 거라고 했잖아?”
“으으…사전에 이미 조사가 끝난 상태였다면, 그리 말씀해주시지 그랬어요 주인님. 괜히 저만 호들갑 떨었잖아요.”
말은 그리하면서도 안심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카를라.
게임 속에서 조사한 것도 사전에 조사한 거라고 할 수 있으려나?
시간대의 차이는 있었기에 디테일한 부분은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사교도 놈들의 수법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놈들의 수법이라는 건 악신의 지령…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혼탁한 합일이 내린 지령대로 움직이는 거라 쉬이 변하지 않는다.
선신 악신 할 거 없이 신들에게는 묘한 고집 같은 게 있어서, 처맞기 전까지는 자신의 계획을 수정하지 않더라고.
덕분에 어렵지 않게 경비대장에게 둘러대고, 이런저런 감사의 표시를 받을 수 있었다.
별로 필요는 없지만 골드도 제법 받았고, 유용하게 써먹을 경매장 VIP 회원증도 받아냈다.
그리고 이 마차의 대여 또한 보상 중 하나다.
이런 편의성 좋은 마차는 만드는 데 오랜 시간과 막대한 돈이 들어가서 주문 제작이 원칙.
별다른 무력이나 권력이 없던 지금까지의 나는 보물 고블린 같은 존재나 다름없어서 차마 만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게프 시에서 시청 소속 고오급 마차를 빌려준 것이다.
어디까지나 대여이기에 아카데미에 도착하면 반납해야겠지만, 가는 동안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으리라.
흔들림 없는 편안함에 흥얼거리며 발을 쭉 뻗는데…돌연 카를라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이번에는 주인님 말씀대로 운이 좋았네요. 극비 임무를 받고 이동 중이던 주교급이 마침 게프 시에 들러 재정비하는데, 마침 저희가 은신처를 파헤치고, 마침 던전을 클리어하고도 적당히 시간을 끌다 나왔더니, 마침 결계를 쳐놓고 텔레포트 준비를 하던 녀석의 등 뒤에서 나온 거였던가요….”
나를 바라보는 카를라의 목소리에 확신이 서린다.
“사실은 전부 주인님의 계획인 거죠?”
“아니? 진짜 그냥 운이었는데?”
이건 또 뭔 소리람.
하지만 내 진심 어린 부정에도 카를라는 그저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알겠어요. 주인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런 거겠죠. 네. 절대 어디 가서 말 안 할게요. 저희는 운이 좋았네요!”
“…….”
그렇게 ‘나는 주인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려 깊은 노예입니다’ 라는 어필을 해도 말이지….
방금 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다.
난 그냥 초반에 얻을수록 편한 빛나는 사자의 단검이 목적이었을 뿐이라고.
이번 피에트로의 건은 정말로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단 말이다.
뭐, 그리 말해도 믿을 것 같지는 않지만.
초롱초롱한 카를라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괜히 백금색 머리카락을 헤집어 주었다.
“헤헤….”
이걸 칭찬이라 여겼는지, 기뻐하는 카를라.
사실 카를라의 착각은 내게도 나쁜 일이 아니다.
게임 지식의 출처를 궁금해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처럼 정보가 새어나갈까 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느낌으로 밀고 나가면 되겠지.
“그나저나 극비 임무라….”
정황 조사에 응하다가 겸사겸사 듣게 된 생포한 사교도들의 심문 결과에 의하면, 피에트로는 비밀스런 임무를 받고 홀로 이동 중이었다고 한다.
아마 그 임무라는 건 아카데미 습격 계획이겠지. 아카데미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었지만.
…어라? 그럼 아카데미 습격은 어떻게 되는 거지?
계획의 리더격인 피에트로가 죽었으니, 습격 자체가 흐지부지되려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피에트로 대신 지휘할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확실한 건 게임에서 본 튜토리얼 때보다는 상황이 좋아질 거라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건 조금 불안하지만, 그래도 사교도에게 기회를 주는 쪽이 더 위험하다.
H&A의 스토리는 게임으로서 무척 재밌는 내용이었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엄청 작위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
주인공과 조연들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사랑과 우정의 힘으로 각성이라니…그런 건 말 그대로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각성 같은 불확실한 요소에 기대지 않고, 해피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본래의 시나리오보다 더욱 좋은 상황을 만들어내야 한다.
생각보다 더 중요한 위치가 되어버렸지만, 카를라의 구입 또한 그러한 계획의 일환이었고.
…슬슬 원작이 시작되는 시기가 다가오니 생각이 많아졌네.
무엇을 하든 결국은 당장의 첫걸음부터 내디뎌야 하는 법.
그런 의미에서 아까부터 직접 머리를 움직여, 셀프 쓰담쓰담을 받고 있는 카를라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놓았다.
딱!
“흐앙! 에? 으에…?”
왜 맞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눈만 끔뻑이는 카를라.
그런 카를라에게 피식 웃어주며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에 도착할 때까지 일주일은 걸릴 텐데, 계속 그러고 있으려고? 이거 쓰는 법 좀 알려줘야지.”
내 가슴…마나 코어가 있는 심장 부분을 툭툭 두드리자, 그제야 카를라가 이마를 부여잡던 손바닥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대로 주인님께 마법을 가르쳐드리면 되는 거죠?”
“맞아. 이대로 입학시험을 치러도 태생 마력량이 있으니 합격은 하겠지만…그래봤자 최하위 반일 거 아냐. 지금부터라도 배워두면 최하위 반은 면하지 않을까?”
“어…마법이라는 게 그렇게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미리 배워두면 좋긴 하죠!”
마법 이야기에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은 카를라가 살짝 흐트러져있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우선 주인님의 현 상황부터 알아봐야겠네요. 마법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아시나요?”
“어지간한 마법의 종류랑 그 성능은 알아. 다만 어떻게 쓰는지는 아무것도 몰라. 마력을 움직이는 방법도 아직 감이 안 잡히고.”
“으응…? 그건 마법사 지망이라기보다는 마법사를 부리는 사람에 더 가까운…핫! 그, 그런 상황이라면 마력 운용부터 시작해야겠네요!”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고 화들짝 놀란 카를라가 급하게 주제를 틀었다.
그러고도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내 정체를 유추하려는 짓이 문제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다.
하기야. 카를라 입장에서 나는 굉장히 불가사의한 사람이겠지.
연줄 하나 없는 평민인데 어지간한 귀족보다 더 귀티 나는 외모와 낭비하다시피 뿌려대는 골드.
던전 공략자라고 해놓고 무력은 일반인 수준인 것도 모자라, 사교도에 대한 출처를 알 수 없는 지식과 맹목적인 적의까지.
내가 생각해도 보통 수상한 녀석이 아니긴 하네.
괜찮다는 의미를 담아 카를라의 허벅지를 콕콕 찌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마력 운용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린트블룸 호흡법의 경로를 따라 마력을 순환시키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처음 카를라가 내 몸에 코어를 전수해주며, 뚫어준 마나 회로를 제외하면 다른 곳으로 마력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 이야기를 해주자 카를라가 고개를 안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팔이 하나 더 생긴 격인데, 어떻게 바로 자연스럽게 다루겠어요? 오히려 한번 이끌어 줬을 뿐인데, 하루 만에 스스로 마력 순환을 해내신 주인님이 대단한 거예요.”
“아부는 아니지?”
“정말이에요. 당장 저도 아버님께 코어를 전수받고, 사흘이 지나서야 간신히 순환시킬 수 있었는걸요? 이것도 엄청 빠른 거라고 어릴 때 칭찬 많이 받았었는데….”
지금은 없는 린델하이트 공작의 모습이라고 떠올린 걸까. 말끝을 흐리는 카를라의 표정이 덩달아 흐려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며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는 카를라.
“아무튼, 주인님은 어쩌면 저보다 더 마력 조작에 재능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이번에도 제가 한번 마력을 이끌어 드릴 테니 따라 해 보실래요?”
“그게 가능해? 처음 전수할 때야 내 몸에 아무것도 없었다지만, 이젠 나도 미약하지만 코어가 있잖아. 반발하는 거 아냐?”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저랑 주인님은 같은 호흡법으로 만든 같은 코어를 쓰잖아요? 주인님이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같은 코어를 가진 사람들끼리는 마력을 이끌어줄 수 있다니…이건 몰랐네.
애초에 게임에서의 플레이어는 알아서 마법을 배우고, 단축키 하나로 마법을 뽕뿅 날려대는 존재였으니까.
물론 수업을 듣는다거나, 수련한다거나, 마법서를 연구하는 등.
마법에 관련된 활동을 해야 배울 수 있었지만, 어쨌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디테일한 설정은 구태여 집어넣을 필요가 없었겠지.
뭐, 나한테는 좋은 일이다.
나중을 위해 기초 마법서를 몇 권 사서 읽어본 적도 있는데…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
상상력이랑 의지가 중요하다는 건 알겠으나, 직관이랑 수식은 대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직접 몸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일단 그대로 따라 해보며 감을 잡다 보면, 늦게나마 이해가 따라오지 않겠는가.
“좋아. 한번 해보지 뭐. 어떻게 하면 돼? 가만히 있으면 되나?”
“네. 이제부터 제가 주인님의 코어에 마나를 불어 넣을 건데, 최대한 편한 자세로 자연스레 받아들이시면 돼요.”
“그래? 편한 자세 말이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작은 방 하나 크기는 될 것 같은 마차의 내부.
지금 나와 카를라가 앉아있는 곳도 의자라기보다는 소파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내 옆에 앉은 카를라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
영애 시절의 습관인지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있던 카를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는, 옆으로 몸을 눕혔다.
푹신한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머리는 카를라의 허벅지에 뉜 자세.
“어? 어어…?”
졸지에 내게 무릎 베개를 해주는 자세가 된 카를라가 어버버 거리기 시작한다.
아쉽게도 아래서 올려다보는 각도로는 묵직한 가슴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주인님? 이, 이러고 하시게요…?”
“엉. 편한 자세로 있으라며? 그래서 편하게 누웠는데. 문제 있어?”
“아뇨 아뇨! 주인님은 잘못하신 거 없어요! …그런데 정말 이러고 계시려구요?”
똑같은 말을 또 묻기에, 슬쩍 손을 들어 카를라의 상의를 잡아당겼다.
그렇게 드러난 카를라의 뽀얀 배.
이제는 포션이 얼추 소화됐는지, 다시 날씬해진 복부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대로 귀여운 배꼽을 향해 얼굴을 묻었다.
“힛!”
움찔한 카를라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푸르르르
“흐이야아아앙…!”
난데없는 배방구에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펄떡이는 카를라.
차마 나를 떨어뜨리지도 못하고, 그저 열심히 간지러움을 참아내는 카를라를 적당히 즐기다가 얼굴을 떼어냈다.
“하으…으아…”
카를라가 요 몇 초 사이에 잔뜩 지친 사람처럼 거친 숨결을 몰아쉰다.
그런 카를라를 향해 다시 한번 당당히 요구했다.
“이 자세로 해줘.”
“으읏….”
“또 이거 맞냐고 물어보면 그땐 혀까지 넣을 거야.”
“아, 알겠어요! 이대로 해드릴게요. 해드릴 테니까 제 배를 가지고 노는 건 봐주세요오….”
카를라가 울먹이며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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