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던전 야O
* * *
“남은 시간을 조금 더 즐겁게 보낼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딸꾹.”
카를라가 대답 대신 딸꾹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답할 여유가 없는 것 같네.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카를라의 가슴 단추를 하나씩 풀어냈다.
투둑. 툭.
격한 움직임을 상정한 탓에 약간 타이트했던 상의가 조금씩 벌어진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서일까. 아니면 내 손가락이 살결에 닿아서일까. 이제야 정신을 차린 카를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주인님? 여기 던전인데요?”
“우리밖에 없는 던전이지.”
“밖에서는 경비대가 목숨 걸고 사교도랑 싸우고 있지 않나요…?”
“에이. 사교도가 숨어다니는 이유가 뭐겠어. 정면으로 붙으면 승산이 없어서 그런 거야. 경비대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거기에 게프 시는 경매장 덕에 돈이 집중되는 곳인 만큼 경비대의 수준도 상당하다.
조금 다치는 사람은 있어도, 사망자는 한 명도 안 나오지 않을까?
아, 단추 다 풀었다.
완전히 풀어 헤쳐진 상의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카를라의 가슴.
다만, 속옷에 감싸여있는 모습이 조금 거슬린다.
“브라 압수.”
“네? 그게 무슨…아.”
당황한 카를라에게서 브라까지 벗겨 내고, 즉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출렁.
그제야 모든 속박에서 해방된 가슴이 자유롭게 흔들렸다.
새하얀 살덩이와, 그 끝에 달린 연분홍색 유두.
내가 새긴 손자국은 포션을 마시며 전부 회복됐나 보네.
아쉬운 마음에 카를라의 가슴을 이리저리 주무르고 있자니, 카를라가 불안하다는 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으아…주인님 진짜 하실 거에요? 여기는 침대도 없는데요? 야외인데요…?”
“그래서? 싫어?”
내 말에 흠칫한 카를라가 우물쭈물 말을 흐렸다.
“아, 아뇨. 싫은 게 아니라 주인님 불편하실까 봐 그런 거죠…거기에 제가 어떻게 주인님께 거스르겠어요….”
그리 말하고는 양팔을 뒤로 모아 자연스레 가슴을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취했다.
마치 더 만져달라고 아양이라도 떠는 것 같은 모양새.
하지만 나는 오히려 가슴에서 손을 떼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주인님?”
똑같이 아양을 부렸건만, 엉덩이를 비벼댈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에 당황한 걸까.
카를라가 느릿한 움직임으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버려진 동물을 연상시키는 처량한 눈빛.
나와 몸을 섞은 이후로는 그럭저럭 밝아진 카를라지만, 가끔 이렇게 처음 사왔을 때처럼 불안해할 때가 있다.
주로 내가 카를라에게 실망한 척하거나, 관심이 사라진 척 했을 때 저러더라.
마도명가로 이름 높은 린델하이트 공작가의 영애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그 점이 조금 불쌍하면서도, 음습한 우월감을 자극하지만.
잠시 카를라가 내 눈치를 보는 모습을 감상하며 원인을 생각하고 있자니.
털썩.
돌연 바닥에 무릎을 꿇는 카를라.
너무 방치했나?
카를라는 내가 무어라 말리기도 전에 손바닥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방금 제가 너무 건방지게 굴어서 화나신 거죠…? 주인님이 받아주셔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저 흙탕물에서도 뒹굴 수 있어요! 주인님께 불만 같은 거 가진 적 없……읍?”
“아니, 화난 적 없으니까 진정해.”
카를라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으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솔직히 좀 식겁했네.
왜 이렇게 반응이 극단적이야?
물론 짐작 가는 이유는 있다. 일반적인 노예의 대우를 내가 왜 모르겠는가. 벌써 이 세상에서 3년이나 살았는데.
장담컨데 나 정도면 상위 1% 안에 드는 주인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변하거나 카를라를 팔아버릴까 두려워하는 거겠지.
하지만 어찌 됐든 나는 카를라를 돈으로 사서, 반강제로 순결을 앗아간 사람이기도 하지 않은가.
카를라가 겉으로는 애교를 부려도, 속으로는 날 원망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끔씩 보여주는 절박한 모습에 자꾸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카를라.”
“으븝. 으브븝.”
“아, 입 놔줄 테니까 방금처럼 호들갑 떨지 말고.”
“감사…합니다 주인님.”
괜찮다고 했음에도 아직 불안한 눈빛으로 내 말을 기다리는 카를라.
그 모습에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묻고 싶은 것은 많으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기에.
“그럴 리 없겠지.”
주인을 좋아하게 된 노예? 심지어 겨우 하룻밤 만에?
그런 건 판타지 세상에서도 소설 속 이야기 취급이다.
“…….”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내 모습에서 무언가 느낀 걸까. 카를라가 조용히 내 쪽을 올려다보았다.
잔뜩 겁먹어 벌벌 떠는 것도, 버려질까 불안해하는 것도, 좋아하는 이야기가 나와 우쭐대는 것도 아닌 처음 보는 눈.
오로지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겠다는 듯, 루비색 눈동자가 투명하게 반짝였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카를라의 시선을 들여다보기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카를라가 선홍빛 입술을 달싹이며 차분한 목소리를 냈다.
“주인님.”
“어? 어, 왜?”
“주인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단어를 고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차례 우물거리고서야 말을 잇는 카를라.
“저는 주인님이 저를 구원해주셨다고 생각해요.”
“…뭐?”
어이가 없어 되물었으나, 카를라는 흔들림없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은 린델하이트 가문이 사교도 혐의로 몰락했다는 거 아시나요?”
“당연하지. 한때 전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든 유명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렇다면 제가 사교도의 딸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를 혐오스러워하지 않으신 거네요.”
“…….”
이 세상은 한때 악신과 그들이 이끄는 군세에 멸망할 뻔한 적이 있다.
다른 선신들과 용사의 활약으로 어찌어찌 역전하는 데 성공했지만, 두려움만큼은 씻어내지 못했으니.
아카데미의 존재와, 사교도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는 아직까지 남은 당시의 잔재이리라.
“저희 가문의 호흡법을, 제 마법을 부정한 것이라 여기지 않고 귀히 사용해 주셨어요.”
“그건….”
그건 내가 린델하이트 가문의 사교도 혐의가 누명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사교도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족속이었지만…카를라는 애초에 사교도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잖은가.
하지만 말할 수 없다.
이 지식의 출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것들을 카를라에게 알려줘야 하니까.
“주인님은 저를 도구가 아닌 사람처럼 대해주셨어요. 제게 명령을 내리기에 앞서 스스로 순종할 기회를 주셨고, 복종의 대가로 상을 약속해주셨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그냥 너를 편하게 다루기 위한 방법일 뿐이야.”
“아뇨. 정말 저를 편하게 다루고 싶으셨다면, 각인을 통해 명령을 내리셨겠죠. 그마저도 불만족스럽다면 채찍을 드시면 됐을 거에요. 저는 참을성이 부족해서 아프고 힘든 건 못 견디거든요.”
“…….”
내 어중간한 태도는 현대인의 잔재 같은 것이다.
카를라가 노예 교육을 받으며 마음이 꺾였듯, 나 또한 어린 시절에 받은 지구의 교육은 단단한 윤리관을 만들어냈다.
나는 특별히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이 세상에 어중간하게 적응한 이방인일 뿐이지.
아까부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더니, 그게 신경 쓰인 걸까. 카를라가 나를 향해 짐짓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주인님은 잘생겼잖아요? 이거 정말 중요해요.”
“엉?”
“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주인님. 배불뚝이 탈모 아줌마와, 조금 짓궂지만 엄청 예쁜 연하의 미소녀. 반드시 몸을 섞어야 한다면 어느 쪽이 좋으세요?”
“당연히 후자 쪽이지.”
“바로 그거에요! 노예가 된 첫날에, 앞으로 웃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주인님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허, 참. 나, 참.”
얼빠 뭐야.
물론 이 얼굴은 본래의 얼굴이 아니긴 하지만, 내가 오랜 시간을 들여 커스터마이징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 탓일까. 언제 심각한 생각을 했냐는 듯,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람이 이리도 단순한 생물이다.
어쩌면 나도 카를라의 출중한 외모 덕에,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풀어지는 걸지도 모르겠네.
멋대로 움찔대는 입꼬리를 애써 억누르고 있자니, 카를라가 예의 투명한 시선으로 다시금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중요한 일이니 한 번 더 말씀드리는데, 저는 주인님께 팔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정말로요.”
“…그러냐.”
“네. 그러니까 저는 주인님께 예쁨 받고 싶어요. 주인님이 저를 필요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쭈욱 말이에요.”
이제야 알겠네.
가문이 몰락하며 볼 꼴 못 볼 꼴을 전부 본 탓일까? 아니면 짐승의 조련에 가까운 노예 교육 때문에?
어느쪽이든 카를라는 조금 잘해줬을 뿐인 내게 깊이 의존하며, 집착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스윽 스윽.
카를라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준 뒤, 단숨에 바지를 내렸다.
절그럭.
“어? 으어어?!”
이 타이밍에 벗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지, 입을 헤 벌리고 내 아랫도리를 응시하는 카를라.
아직도 무릎 꿇고 있는 카를라의 얼굴에 자지를 들이대며 말했다.
“복습할 시간이야.”
“복습이요…?”
“펠라 복습. 어제 한번 해봤잖아?”
“그, 입으로 하는 거 말씀이신가요 주인님?”
“맞아. 앞으로 한두 번 할 것도 아니니 미리미리 익숙해져야지.”
“……!”
앞으로의 이야기를 확언하자,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크게 떠지는 루비색 눈동자.
그래.
카를라의 사고방식은 일그러져있다. 하지만 망가졌기에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다.
멀쩡한 것이 부서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나, 부서진 것이 고쳐지는 일은 자연스레 일어나지 않는 법.
내가 카를라를 노예로서 아낀다면, 카를라 또한 내게 반기를 들지 않으리라.
진작에 한계치까지 발기한 자지로 카를라의 볼을 톡톡 두드리며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빨아.”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주인님.”
카를라가 자지에 볼이 짓눌린 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