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던전 O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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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가 빵빵해진 자신의 배를 양팔로 끌어안으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주, 주인님! 그 약만은 안 돼요! 부디…부디 한 번만 자비를…!”
“…거 누가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겠네.”
지금같은 자세로 그런 말을 하니까 뭔가 좀 그렇잖아!
괜히 뒤통수만 긁적이는 것도 잠시.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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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던전 클리어!】
성공적으로 사교도들이 지키던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남아있는 악신의 군세가 차원의 틈새에 완전히 봉인됩니다.
출구가 생성되며, 외부에서의 던전 진입이 불가능해집니다.
정의로운 광명이 당신의 위업에 찬사를 보냅니다.
혼탁한 합일이 자신의 계획을 망가뜨린 당신에게 이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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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가득 채우는 클리어 알림.
이어서 나와 카를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공간의 일그러짐이 생겨났다.
출구 포탈이 생겼다는 건, 이 안에 남아있던 몬스터들도 전부 사라졌다는 소리겠지.
저길 통해 바깥으로 나가면, 던전이 소멸되며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참고로 공략자를 자동으로 내보내지 않는 건 지금껏 잡은 몬스터와 보스의 부산물을 갈무리하라는 배려다.
…이번에는 보스를 포함해 마주친 모든 몬스터를 잿더미로 만든 탓에 별 의미 없는 배려지만.
게임 시절과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내용을 구태여 한 번 더 읽고서야 알림을 껐다.
“후우…그래. 어차피 좀 쉬어야 하긴 했어. 마나는 그냥 자연회복으로 채우지 뭐.”
“진짜요…?”
“응. 생각보다 빨리 클리어한 것 같거든. 지금 나가봤자 한창 경비대랑 싸우던 사교도 사이에 떨어질 뿐일 걸?”
오들오들 떨던 카를라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길게 늘어진 백금발 사이로 반짝이는 루비색 눈동자.
텅빈 상자 밑바닥에서 보석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희망에 가득 찬 눈빛이다.
나처럼 던전 클리어 알림을 받은 것도 아닐 테니, 단순히 포션을 더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게 기쁜 것이리라.
참 신기하단 말이지.
저렇게 휙휙 변하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의도치 않은 양심 어택으로 날아갔던 장난기가 슬금슬금 차오른다.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인벤토리에서 마나 포션을 꺼냈다.
팟.
투명하고 동그란 유리병. 기다란 목 부분을 잡고 흔들자, 안에 담긴 파란 액체가 찰랑인다.
“히이익…!”
희망으로 가득 찼던 눈동자가 다시 절망으로 물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카를라 앞에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았다.
“카를라.”
“녜헷!”
“그렇게 배불러?”
“네에….”
“배가 부르다는 건 위가 가득 찼다는 소리잖아?”
“그…렇죠?”
내가 무슨 말을 꺼낼지 예상한 걸까. 카를라가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땡그랗게 떴다.
“설마…주인님…?”
“맞아. 아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걸 거야.”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토하고 새 포션을 다시 마시면 괜찮지 않을까?”
“하, 항문에 포션을 부어도 효과는 없어요…!”
“……?”
“……?”
동시에 말하고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와 카를라.
한박자 늦게 카를라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됐다.
세상에. 위로 안 들어가면 아래서부터 넣겠다니.
나도 모르게 떨떠름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너…그런 생각하고 있었어?”
“삐야아악!”
카를라가 괴성을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포션을 토하고 다시 마시는 걸 반복하면,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해져 높은 확률로 마나가 역류하고.
뒷구멍으로 넣는 방법은 효과가 없는 건 아닌데, 회복량이 너무 미미해서 별 의미가 없다.
놀랍게도 둘 다 몇몇 마법사들이 몸소 실험하다 엿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이야기라나?
그나저나 게임에서처럼 포션을 무한히 마실 수 없다니. 앞으로 던전 돌 일이 생기면 다시 공략을 짜야겠네.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푸욱 내쉬자, 이제 좀 진정한 카를라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님…대체 왜 그렇게 포션에 집착하시는 거에요?”
“그야 효율이 다르잖아.”
“효율이요?”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었다는 것처럼, 눈을 빠르게 깜빡이는 카를라.
하기야. 카를라 입장에선 돈을 바닥에 버리는 수준으로 펑펑 써대는 내가 효율을 논하니 어이가 없겠지.
하지만 골드가 넘쳐나는 내겐 이쪽이 더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게임 시절에 한번 검증된 방법이기도 하고.
“생각해봐 카를라. 길을 안다고 해도 평소의 전력으로 이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으음…아무래도 무리겠죠. 빅 마우스를 한 번에 쓰러뜨리지 못할 테니, 마력과 체력이 훨씬 빠르게 소모됐을 테니까요. 보스 앞까지 갔을 때는 이미 한계까지 몰린 상태일 거예요.”
“맞아. 마법사는 한방 한방이 강력하지만 전투 지속 능력은 떨어져. 거기에 기습에도 약하고, 전력을 다하려면 영창 도중에 지켜줄 사람도 필요하잖아.”
“그걸 포션과 스크롤로 커버한다는 건가요?”
정답이다. 본래라면 클리어할 수 없을 던전이라도 풀 버프를 유지하면 어찌어찌 해볼 만 하다.
그렇게 살짝 버거운 몬스터와 싸우며 성장하기도 하고, 클리어 보상으로 전력을 확 끌어 올린다면?
이후로는 더욱 수월하게 다른 던전을 돌 수 있겠지.
한번의 풀 버프런이 스노우 볼을 일으켜, 성장 속도를 몇 단계는 가속시키는 셈이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거군요.”
“맞아. 거기에 이번 같은 경우에는 단둘이서 짧은 시간에 클리어했다는 명성도 얻을 수 있고.”
아카데미는 재능만 있다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지만, 재학생의 대다수는 귀족이다.
아무래도 유전되는 마력량이라거나, 가문의 비전이라거나, 재능을 개화시킬 기회 등.
많은 부분에서 귀족이 유리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레 평민은 무시당하는 일이 많은데…던전 공략자라는 타이틀은 좋은 방패가 되어주겠지.
게임에서야 무시당하던 주인공이 성공하는 모습이 멋있었으나, 정작 내가 무시당하는 입장이 된다는 건 썩 달갑지 않더라.
내 이야기를 들은 카를라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일단 신분을 내세워 상대를 겁박해서는 안 된다는 교칙이 있긴 하지만…잘 지켜지지는 않았죠.”
“그야 아카데미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까.”
괜히 교칙 믿고 나대다가, 졸업한 뒤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될 수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물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내가 졸업할 쯤이면 팔자 좋게 귀족 모욕이 어쩌구 할 때가 아닐 것이다.
“아무튼 포션은 앞으로 적당히 마시기로 하고…마력은 어때? 얼마나 회복됐어?”
“으음. 아직 1할 정도네요. 아무래도 자연 회복은 조금 느리거든요. 지금이라도 마나 연공에 들어갈까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애초에 우리가 바로 안 나가는 이유는 바깥의 전투에 휘말리기 싫어서잖아? 전투가 끝난 뒤에 나간다면, 싸울 일도 없는데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지.”
“뭐어…그렇죠.”
“거기에 카를라 너도 알지? 던전을 클리어하면 죽이지 못한 내부의 몬스터들이 전부 사라진다는 거.”
“네. 봉인에 저항할 쐐기가 사라져, 본래의 목적지인 차원의 저편으로 날아가는 거죠? 이 정도는 아카데미에서 배웠어요.”
그렇겠지. 지금이야 그 의미가 흐릿해졌다지만, 아카데미의 설립 목적은 대륙 전체가 힘을 합쳐 던전을 공략할 인재를 키워내는 거였으니까.
칭찬의 의미를 담아 통통해진 카를라의 배를 통통 두드려주었다.
“히잇! 주, 주인님? 왜 제 배를….”
“잘했다고.”
“감사…합니다?”
차마 몸을 빼지도 못하고, 내 손을 막지도 못하고, 그저 울상을 지으며 내게 배를 맡기는 카를라.
그 모습에 낄낄대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우린 여기서 몇 시간을 더 보내야 하고, 여긴 아무런 몬스터도 사교도도 없어서 안전할 거라는 거지.”
“네…만약 사교도가 저희를 따라 들어왔다 해도, 악신의 권능을 받아들인 이상 몬스터들과 함께 봉인됐을 테니까요.”
사교도와 몬스터는 종족의 차이만 있을 뿐, 악신의 추종자라는 점은 동일하다.
그렇기에 악신의 군세를 막기 위한 봉인이 정상작동하는 순간, 같이 휘말릴 수밖에 없고.
사교도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우울해지는 카를라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배를 쓰다듬던 손을 슬금슬금 위로 끌어 올렸다.
배에서 명치로, 명치에서 젖가슴으로
“읏?!”
내게 한쪽 가슴을 잡힌 카를라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길래, 카를라의 목덜미에 고개를 가져다 댔다.
격하게 움직인 탓에 제법 땀을 흘렸을 텐데…역하기는커녕 묘하게 흥분되는 향기를 풍긴다.
신기해라.
카를라의 체취를 한차례 깊게 들이마시고서야 말을 이었다.
“남은 시간을 조금 더 즐겁게 보낼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딸꾹.”
카를라가 대답 대신 딸꾹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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