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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2화 (12/230)

〈 12화 〉 던전 O스(5)

* * *

탁 트인 늪지.

중앙에는 거대한 나무 하나가 허리부터 부러져,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고.

부러진 나무 앞에는 늪에 몸을 담근 새하얀 개구리가 보였다.

지금까지 봐온 빅 마우스의 3배는 될법한 육중한 몸집.

특히 대가리는 어찌나 큰지, 작은 집 하나 정도는 그대로 꿀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덩치와 흉악함에 걸맞은…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을 뿜어대는 빅 마우스.

저 녀석이 바로 게프 던전의 보스인 빅 마우스 킹.

그런 녀석을 앞에 두고, 카를라가 악을 써댔다.

“죽일 거야! 죽일 거예요! 그럼 더 안 마셔도 되죠?! 말리지 말아주세요 주인님!”

통통해진 카를라의 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응.”

“감사합니다…!!”

내 떨떠름한 반응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카를라는 기뻐하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우웅­

지금까지 썼던 파이어 볼과는 급이 다른 마력의 유동.

실제로 지금 카를라가 쓰려는 마법은 한 단계 높은 중급 마법이다.

하급 마법이 대인전에 사용하는 마법이라면, 중급 마법은 소규모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마법이다.

어디에나 예외는 있으니, 대체로 그렇다는 소리지만.

아무튼 카를라는 중위 마법사. 전력을 다한다면 중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만한 화력이라면 보스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터.

하지만 마법사가 전력을 다한다는 소리는, 오랜 시간을 들여 캐스팅해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니 누군가는 카를라를 지켜야 한다.

미리 이야기했던 대로 지금껏 카를라의 뒤에 숨어있던 내가 앞으로 나섰다.

심상치 않은 마력의 유동을 느끼고 이쪽을 노려보던 빅 마우스 킹이 혀를 낼름 거렸다.

“궤에에에굴?”

마치 '니가?' 라고 비웃는 듯한 울음소리.

“와…내가 개구리한테 무시당할 줄이야.”

사실 무시당할만하긴 하다.

아직 마법은커녕 마력 조작조차 제대로 못 하니, 녀석 입장에서는 별다른 위험이 느껴지질 않았겠지.

그럼에도 내가 나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궤에에에엣­!!”

나와 함께 영창 중인 카를라를 꿰뚫어 버리겠다는 듯, 빠르게 쏘아지는 빅 마우스 킹의 혀.

그 앞에서 당당히 외쳤다.

“나는 그렇다 쳐도, 돈의 힘은 무시할 수 없을걸!”

<보호의 반지=""/>

­하루에 다섯 번, 착용자의 위험에 반응해 자동으로 실드 마법을 펼친다.

<수호자의 목걸이=""/>

­하루에 세 번, 착용자의 의지에 반응해 포스 실드 마법을 펼친다.

<방패 문양="" 팔찌=""/>

­하루에 한 번, 착용자의 위험에 반응해 자동으로 포스 실드 마법을 펼친다.

허공에 피어오르는 반투명한 보호막이 세 겹.

거기에 미리 써둔 실드 스크롤까지 더하면 무려 네 겹의 마법으로 보호받는 셈이다.

실드야 하급 범용 방어 마법이지만, 포스 실드는 무려 중급 물리 특화 방어 마법.

솔직히 구하는 게 쉽진 않았다.

중급 마법이 내장된 마도구는 시중에 돌아다니는 마도구 중 가장 비싸고, 가장 수요가 높으니까.

참고로 상급부터는 국가의 전략 물자 취급받아, 철저한 관리를 받는다나?

가끔 던전 공략 보상으로 상급 마도구를 얻은 모험가가 경매에 내놓는 경우를 제외하면, 돈으로 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

후반부 장비를 상점에서 팔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기에, 게임 시절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뒤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는 거겠지.

아무튼, 이 정도면 당분간은 버틸 수 있으리라.

빅 마우스 킹이 마법이라도 쓸 줄 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다행히 녀석은 순수 물리 타입 몬스터다.

쿠웅!!

“구에에엑?!”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던 혀가 허공을 가로막은 역장에 막혔다.

뾰족하던 끝은 뭉그러지고, 반투명한 벽을 타고 산성을 띈 침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자신의 공격이 막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당황한 빅 마우스 킹이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녀석은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즉시 자신의 혀를 회수했다.

그리고는 짤막한 팔다리를 휘저으며 뒤뚱뒤뚱 이쪽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기형적인 머리 크기 때문에 개구리면서도 점프도 못하고, 방향 전환도 느릿하지만….

돌진의 위력만큼은 절대 경시할 수 없었다.

한번 가속이 붙으니 예상외로 빠른데다가, 보스급 몬스터 특유의 덩치까지 더해지니 어떻겠는가.

콰아아앙!!

쩌적­!

포스 실드 하나에 큼직한 금이 생겨났다.

툭 건드리면 그대로 쪼개질 것 같은 불안불안한 모양새.

“씁.”

마도구의 마법은 마법사가 펼친 마법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벌써 횟수를 한번 소모할 줄이야.

빅 마우스 킹이 다시 돌진하기 위해 거리를 벌리는 사이. 목걸이를 재차 발동시켜, 포스 필드를 보강했다.

그리고는 카를라의 영창은 어떻게 되어가는 지 확인하기 위해 슬쩍 뒤로 시선을 돌리자.

“—————————.”

스태프를 끌어안은 채, 쉴 새 없이 웅얼거리는 카를라.

그녀의 발밑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으며, 복잡한 도형과 문자들이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마법진을 채워넣고 있었다.

마법진이 완성되어가는 속도를 보아하니, 몇 번 더 막아내면 어떻게든 될 것 같네.

그리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을 무렵. 충분히 거리를 벌린 빅 마우스 킹이 다시금 달려들기 시작했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거대한 대가리.

콰아아아앙!

이번에도 막혔지만, 녀석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진을 감행했다.

쿠우우우웅!

보스답게 영악한 녀석이라 알고 있는 것이리라. 내 방벽은 강력하지만, 때리다 보면 결국 전부 부서질 거라는 걸.

카아아아앙!

녀석의 판단은 옳았다. 슬슬 마도구의 힘이 다 떨어져, 실드의 보강이 늦어지고 있었으니까.

콰아아아앙!

개구리 특유의 가로 동공이 카를라를 향해 비장한 시선을 보낸다.

어쩌면 카를라의 마법에 직격할지도 모르나, 한방만 버티면 나와 카를라를 한꺼번에 뭉개버릴 수 있다 여기는 걸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이는 녀석의 착각이다.

애초에 내가 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둘이서만 던전을 공략하자 했겠는가.

녀석에게 다음은 없다.

후우웅­!!

등 뒤에서 일어나는 거센 폭풍.

워낙 강맹한 마력이 집중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카를라가 나와 같은 마나 코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두근 두근.

심장은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멋대로 뛰기 시작했고, 이제 막 자리 잡은 미약한 코어는 작은 공명을 일으켜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했다.

심상치않음을 느낀 빅 마우스 킹이 돌진하는 대신, 허겁지겁 반대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지만…이미 늦었다.

카를라의 웅얼거림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주변 일대를 가득 채우는 선명한 외침이 되었다.

“…이는 장막으로 가릴 수 없는 빛이요,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니. 누구도 감히 저항할 수 없으리라!”

영창을 마친 카를라가 스태프 상공으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동어.

“『프로미넌스 플레어!』”

힘을 품은 언어는 하나의 선고가 되었다.

화르륵.

상공의 피어오르는 자그마한 불꽃.

평범한 성냥불보다 못하던 불씨는 카를라의 마력과 술식을 잡아먹으며, 급격하게 자신의 몸집을 부풀렸다.

더 크게, 더 밝게, 더 뜨겁게.

그렇게 지상에 강림한 작은 태양이 될 때까지.

“허어….”

타오르는 열기와 광량이 눈을 찌르지만, 도저히 눈앞의 광경에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프로미넌스 플레어.

머리로는 알고 있는 마법이다.

폭발이나, 지속 데미지같은 특수한 효과가 없는 대신, 순수한 화염 데미지 만큼은 엄청난 중급 마법.

게임에서는 단순히 화염 약점 몬스터를 일거에 쓸어버릴 때 쓰던 유용한 범위 공격이었지만….

실제로 보는 프로미넌스 플레어는 내 상상을 훌쩍 뛰어넘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미쳤네.”

물론 내가 카를라에게 마법 위력을 극대화 시키는 마도구를 몰아주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던 것도 잠시.

카를라가 천천히 스태프를 내리자.

화르르륵.

이에 호응하듯 떨어져 내리는 자그마한 태양.

“궤에에에엑!!”

기겁한 빅 마우스 킹이 한층 더 빠르게 뒤뚱거렸으나, 그 짧은 발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호선을 그리며 떨어진 태양이 정확히 녀석의 등에 내려앉았다.

화아아아악!

막대한 열기가 일거에 해방되며, 주변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보스인 빅 마우스 킹은 비명조치 지르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었으며, 주변의 늪지 또한 순식간에 증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 주변을 휩쓰는 매서운 열풍.

“자, 잠깐…!”

고작 여파가 이 정도라니.

기겁하며 인벤토리에서 실드 스크롤을 하나 꺼내 찢었다.

그리고는 카를라의 앞을 다시 가로막으며, 충격에 대비했는데.

……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어째서인지 프로미넌스 플레어가 일으킨 열기나, 그로 인한 열풍 또한 전혀 내가 있는 곳을 침범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

마치 태풍의 눈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 같은 고요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 기울이자.

꾸욱 꾸욱.

내 등을 잡아당기는 자그마한 손길.

“저어…주인님?”

“응?”

“모든 중급 마법부터는 본인의 마법에 본인이 휩쓸리지 않도록, 방어 술식과 여파 제어 술식이 포함되어있어요.”

“…….”

그러니까…내가 호들갑 떨면서 실드 스크롤까지 찢은 게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소리지?

약간의 쪽팔림과 뚱함을 담아 노려보자, 머쓱하게 웃는 카를라.

“헤헤…말씀드리는 걸 깜빡해서 그만…그, 그래도 조금 전에는 저를 지켜주시려고 했던 거죠? 역시 저한테는 주인님밖에 없……우에으에….”

어색하게 아부하려는 카를라의 볼을 양옆으로 쭉쭉 잡아당겼다.

“앞으로. 그런 건. 꼭. 말하도록. 깜짝 놀랐잖아.”

“네에…아헤허요….”

한 만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다그치자. 새는 발음으로 마구 고개를 끄덕이는 카를라.

이 정도로는 조금 개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반성하고 있는 것 같으니 두어 번 더 쪼물딱 댄 뒤에야 카를라의 볼따구를 놓아주었다.

“우으…아파요오….”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어루만지며, 우는 소리를 내는 카를라.

도저히 조금 전의 그 엄청난 마법을 시전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분명 늪지였던 주변 일대는 어느새 잿더미로 뒤덮인 평야가 되어있었다.

예외가 있다면 우리가 서 있는 곳 정도?

조금 전에 느낀 그 위압감은, 경이로움은, 심장의 두근거림은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급 마법이 원래 이 정도였던가?”

“그건 아니에요. 원래는 지금의 절반 정도 위력이거든요.”

“그래?”

“네. 주인님께서 사주신 마도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거 참 대단한 일이네.

하지만 H&A에 대가 없는 힘은 없다.

마법 내장형 마도구는 엄청난 가격과 횟수 제한이라는 단점이.

카를라가 장착 중인 버프형 마도구에는 효과에 걸맞은 패널티…이를테면 소모 마력 증가 같은 것이 붙어있는 게 좋은 예시다.

“카를라? 마력 소모는 어느 정도였어?”

“평소의 3배? 아니, 4배 정도려나요?”

“그럼 남은 마력은?”

“…….”

시선을 샥 돌리는 카를라.

수상한데.

“카를라. 명령이야. [남은 마나는 얼마나 되지?]”

“읏. 그읏.”

나름 저항이라도 하는 건지 잠시 머뭇거리던 카를라였으나, 이내 모든 걸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요.”

“뭐라고?”

“거, 거의 다 썼어요.”

“…분명 포션으로 마력 전부 채워두지 않았어?”

“…그 마력을 전부 다 쓴 거에요.”

“…….”

“…….”

잠깐의 침묵.

그러네. 중위 마법사의 모든 마나를 꼬라박았으니, 이 정도 위력이 나올 법도 하지.

움찔움찔 떨면서 자꾸만 내 시선을 피하는 카를라에게 물었다.

“카를라.”

“…네?”

“마나 포션 하나 더 먹을래?”

반쯤 장난처럼 내뱉은 한마디에 카를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다리에 힘이라도 풀린 것처럼,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는 카를라.

그리고는 빵빵해진 자신의 배를 양팔로 끌어안으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주, 주인님! 그 약만은 안 돼요! 부디…부디 한 번만 자비를…!”

아니, 그 자세로 그런 말을 하니까 뭔가 좀 그렇잖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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