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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0화 (10/230)

〈 10화 〉 던전 O스(3)

* * *

사교도들이 던전을 차지하려는 목적은 명확하다.

선신들이 걸어둔 봉인을 풀고, 자신이 모시는 악신의 군세를 해방하기 위해서.

이를 위해 녀석들은 온갖 해괴한 의식으로 봉인의 힘을 깎아내려 한다.

“인육 섭취 또한 그런 의식의 일환이야.”

“인신공양 같은 건가요?”

결국 고기 꼬치가 아닌, 꿀에 절인 사과를 오물거리던 카를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슷해. 엄밀히 말하자면 사람을 바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먹는 행위 자체를 바치는 거지만.”

혼탁한 합일.

녀석은 식욕과 관련된 악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탁한 합일을 따르는 몬스터는 무언가를 먹는 것에 특화되어있으며, 신도들에게 내리는 권능도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적 있는 내용이네요. 샌드 웜이나 슬라임 같은 식탐이 강한 몬스터를 말씀하시는 거죠?”

“잘 알고 있네. 역시 수석.”

“헤…헤헤.”

“뭐, 지금은 내 노예지만.”

“아으….”

좋아했다가, 침울해졌다가 바쁘게 왔다갔다하는 카를라의 얼굴.

그 모습에 낄낄대고 있자니, 카를라가 소심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저…주인님? 제가 주인님을 못 믿는 건 아니에요. 절대 절대 아니지만. 그으…저를 못 믿겠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리냐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

“몬스터 뿐만 아니라 사교도들도 있는데 정말로 제가 클리어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노예 교육을 받으며 자신감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던전과 사교도들을 과대평가하는 걸까.

어느쪽이건 마음에 안 들었기에, 대답 대신 카를라의 엉덩이를 가볍게 때려 주었다.

찰싹.

“꺄앗!”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자신의 엉덩이를 샥 가리는 카를라.

안 그래도 새로 산 장비 때문에 주변에서 힐끔거리던 상태였는데, 비명까지 지르자 완전히 시선이 집중된다.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엉덩이를 얻어맞은 것이 수치스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카를라.

그런 카를라의 엉덩이를 쪼물거리며,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쉿.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이었잖아.”

“주, 주인님께서 제 엉덩이를 때리셔서….”

“뭐어? 그러니까 내 탓이라고?”

“아, 아뇨! 제 탓 맞는 것 같아요! 죄송해요오…!”

살짝 짓궂게 농담했을 뿐인데, 고개를 마구 저으며 부정하는 카를라.

아니, 그뿐이 아니다.

살랑살랑.

어색한 움직임이지만, 엉덩이까지 흔들며 내게 달라붙는 게 아닌가.

자연스레 자신의 엉덩이를 내 손에 비벼대는 카를라의 모습에 절로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예뻐해달라더니, 이제는 아양도 부릴 줄 알게 됐네.

“흠흠. 그럼 됐고.”

토닥 토닥.

알겠다는 의미를 담아 엉덩이를 토닥여주자, 그제야 카를라가 안심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까.

“아무튼 카를라 너는 내가 괜찮다고 했는데도, 불안하다는 거지? 괘씸하게도.”

“앗, 그으게…명령에는 제대로 따를 생각이었어요! 정말이에요!”

“빅 마우스Big mouth.”

“…네?”

“이번 던전은 습지 필드에, 주력 몬스터는 빅 마우스야. 보스의 위치도 이미 파악했고.”

빅 마우스는 머리가 기형적으로 발달한 거대 개구리 형 몬스터다.

덕분에 자기 몸집보다 큰 먹이도 한입에 삼킬 수 있는데다가, 전신이 특수한 점액질로 뒤덮여 순수 물리 공격에 강한 내성을 보이고.

이리 보면 우스꽝스러운 생김새와 달리 상당히 강한 몬스터 같지만…녀석의 위험도는 기껏해야 중하위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빅 마우스에게는 너무나도 뚜렷한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열기다.

급소만 정확히 맞출 수 있으면, 하급 화염 마법에도 죽는 몬스터.

마법사에게는 그만큼 쉬운 상대도 없으리라.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넓은 던전 내부와, 이를 가득 채운 몬스터의 물량이지만….

나는 이미 보스의 위치를 알고 있다.

길을 헤맬 일도, 잡다한 놈들과 싸우느라 마력이 부족해질 일도 없다는 소리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카를라가 침을 꼴깍 삼켰다.

“주인님이 그걸 어떻게…아, 아뇨 주인님의 말씀대로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사교도들은….”

“그놈들은 다른 사람이 맡아줄 테니 걱정하지 마. 뭐, 몇 놈 놓칠 수도 있으니 뒤통수는 조심해야겠지만.”

“아하? 주인님의 협력자가 계시는 건가요?”

협력자를 찾는답시고, 두리번거리는 카를라.

그런 카를라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근처의 노점상 하나를 가리켰다.

“일단 저 꼬치구이 집에 마법 좀 날려 봐.”

“…네? 아, 저분이 협력자시군요. 메신저 마법을 쓰면 되는 거죠?”

“아니? 쟤가 사교도인데? 저거 인육 꼬치야.”

“……?”

카를라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와 노점상을 번갈아 보았다.

거짓말같지만, 진짜다.

저 노점 바로 밑에는 혼탁한 합일의 제단이 있고.

손님들이 꼬치를 사 먹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인육 섭취의 죄를 혼탁한 합일에게 봉헌하게 하는 구조다.

…겉으로만 봐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일단 파이어 볼부터 날려봐. 최대한 느릿하게, 노점상이나 주인을 노리는 게 아니라, 발밑을 무너뜨린다는 느낌으로.”

“으읏….”

잠시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보던 카를라였으나,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여차하면 명령이라도 내려야 하나 싶었는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네.

“불꽃이여. 타올라라.”

2소절의 짤막한 주문.

화르륵.

카를라의 스태프 위에 큼직한 화염구가 피어오른다.

곧장 쏘아지는 대신, 계속해서 마력을 잡아먹고 그 몸집을 부풀리는 불꽃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염이란 마법에 무지한 이들에게도 알기 쉬운 위협이다.

약간의 정적. 이어지는 소란.

“마법…? 도시 한복판에서?”

“꺄아아아악!”

“도, 도망쳐! 경비대! 경비대를 불러!!”

주변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단.

꼬치가게 주인 하나만 빼고.

“큿…!”

우리의 목적을 깨달은 녀석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물러서면 바닥이 무너져 제단이 드러날 테고, 설령 몸으로 버틴다 해도 화염구의 충격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카를라가 쏟아부은 마력만큼 위력 또한 상승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녀석이 해야할 최선의 방법은 단 하나다.

“아아아­!”

노점 주인이 입을 크게 벌렸다. 크게, 더 크게. 기어이 가슴팍까지 벌어질 정도로 크게 벌어진 턱.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가동범위에 확신을 얻었는지, 카를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에게 사교도란 자신의 아버지를 타락시키고, 자신을 노예로 영락시킨 만악의 근원같은 존재.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리라.

뭐, 그런 주제에 나중에는 악신의 성녀가 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그런 미래는 오지 않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여차할때를 대비해, 실드 마법이 담긴 목걸이에 정신을 집중하는 사이.

한계치까지 벌어졌던 사교도의 입이 무언가를 억지로 씹어내듯,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허공 포식인가. 쉽게 말해 원거리 깨물기다.

만약 저대로 입을 닫는다면, 카를라의 살점이 뭉텅이로 찢어지겠지.

기껏 캐스팅한 마법은 그 충격으로 허공에 흩어지거나, 제자리에서 폭발할 테고.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녀석이 입을 다무는 것보다, 카를라의 마법이 한층 더 빨랐기에.

“가속하라. 파이어 볼.”

한 소절을 덧붙이며 입에 담은 시동어.

계속된 마력 주입으로 기존의 3배 크기까지 불어난 파이어 볼이 미친듯한 속도로 쏘아졌다.

화르르륵!

사교도의 입이 절반도 채 닫히기 전에 폭염에 휩싸인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새까만 숯덩어리가 되어버린 사교도.

하지만 카를라의 마법은 적을 완전히 불태우고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파이어 볼은 단일 마법이 아니다. 범위 마법이지.

콰아아아앙!!

귀가 먹먹해지는 폭발음.

마법 한번에 노점상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그 자리에 남은 거라고는, 지하통로로 이어지는 큼직한 구멍 뿐.

“허….”

상상 이상의 위력에 놀라 반사적으로 카를라를 돌아보았는데.

“히끅.”

어째 나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딸꾹질을 해대는 카를라.

아니, 네가 그러면 어떻게 해.

“쭈인…딸꾹. 님. 이 스태프 대단해여…히끅.”

“…린델하이트 가문이 멀쩡할 때는 지금 것보다 더 좋은 스태프도 써보지 않았어? 그게 비싼 거긴 해도,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수준인데.”

“집안에 좋은 지팡이들이 있긴 했지만…실력 상승에 방해된다면서 아카데미 졸업 전까지는 못 쓰게 하셨거든요….”

뭔지 알 것 같네.

너무 장비가 좋으면, 장비의 성능을 자기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배우기 위해 들어간 아카데미니, 배우는 데 집중하라는 뜻이었겠지.

어쩌면 카를라의 실력이 내 생각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열기가 남아있는 지면을…그 중앙에 뚫린 큼직한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저 멀리에 보이는 정체 모를 고기와 뼈로 이루어진 기분 나쁜 제단. 그리고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기묘한 일렁임.

예상대로네.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아직까지 멍하니 스태프를 바라보는 카를라의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딱.

“히얏!”

“정신차려. 사교도 놈들이 상황 파악하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 하니까.”

“…넵!”

높이는 제법 되지만, 못 뛰어내릴 정도는 아니네.

이마를 부여잡으면서도,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은 카를라와 함께 지하로 몸을 던졌다.

쿵.

“으엑.”

가까이서 보면 훨씬 더 징그러운 제단의 모습에, 카를라가 인상을 찌푸린 것도 잠시.

이내 조심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주인님? 다른 일행분이나 협력자가 없으시다면, 나중에 몰려올 사교도는 누가 상대한다는 건가요?”

“경비대.”

“네…?”

“아까 도망친 사람들이 경비대에 신고했을 거 아냐. 경비대가 대신 싸워주겠지.”

“…….”

이게 맞나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를라.

무얼.

게프 시는 레반틴 제국 소속이고, 레반틴 제국은 가장 엄격하게 사교행위를 배척하는 나라다.

지하에 숨어든 사교도의 존재를 밝힌 것도 모자라, 던전까지 클리어하는데 성공한다?

“이건 오히려 상을 줘야지.”

제단 뒤편의 일렁거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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