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던전 O스(2)
* * *
던전에 가겠다고 했지만, 지금 당장 갈 수는 없다.
아무래도 준비가 필요할 테니까.
어제처럼 드레스 위에 외투 하나를 걸친 카를라를 데리고, 여관을 나서며 간단하게 계획을 설명했다.
“우선 연금술 상점에 가서 피임 포션부터 살 거야. 그 뒤에는 카를라 네가 입을 옷을 몇 벌 사고, 이번 공략에 필요한 물건도 넉넉히 챙긴 다음에야 던전에 들어갈 거고.”
“네? 피임 포션이요?”
“네는 뭘 네야. 최종적으로는 너 데리고 아카데미까지 갈 거라니까? 그런데 애 키우면서 아카데미 생활을 어떻게 해.”
“…제가 아이를 낳으면, 주인님께서 키워주시는 거군요. 헤헤.”
갑자기 왜 웃는 건가 싶어 인상을 찌푸리자, 카를라가 손을 휘휘 저으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피임 마법은 저도 알거든요.”
“엥? 그거 마법도 있어? 포션만 있는 게 아니라?”
“포션 가격이 저렴한 덕에 누구나 쓸 수 있어서 유명한 거지, 피임 마법도 있어요. 아마 마법을 익힌 귀족가 자제라면 대부분 알 걸요?”
하기야. 그쪽은 함부로 임신하거나, 임신시키면 안되니까.
내가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이자 카를라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랫배에 손을 대고 무어라 주문을 읊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랫배가 반짝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확실한 거 맞지? 어째 좀 허전한데.”
“그럼요. 오히려 변질 위험이 있는 포션보다 제 마법 쪽이 더 안전할 거에요. 제가 노예가 되기 전에는 무려 마법학부 수석이었거든요!”
어서 칭찬해달라는 듯 으스대는 카를라.
린트블룸 호흡법을 설명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평소에는 히에엑 거리는 카를라지만, 마법 이야기만 나오면 신 나하는 것이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단 말이지.
그만한 능력도 있는 것 같고.
실제로 아카데미 4학년, 마법학부 수석 자리는 엄청난 자리긴 하다.
작중에서 역대급 세대로 묘사되는 주인공 세대와 동떨어졌다는 걸 감안해도…중위 마법사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항상 입학 직후의 소문이나, 타락한 이후의 모습으로밖에 접하지 못해 잘 실감이 안 났는데.
카를라의 재능이 정말 대단하긴 한가 보다.
…지금은 내가 대답이 없자, 무어라 지레짐작한 건지 이쪽의 눈치나 보고 있지만.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검지를 뻗었다.
“하나.”
“에?”
“노점에서 파는 간식 하나 사주겠다고. 던전 들어가기 전에 간단하게 배는 채워야지.”
“…메뉴 제가 골라도 되나요?”
“그건 상관없는데, 여긴 경매 도시 게프잖아? 고기 종류는 피하는 게 좋을 거야.”
이 곳의 경매장은 에우렐리아 대륙에서도 최고로 손꼽힌다. 카를라가 괜히 게프 경매장에 나온 게 아니란 말이지.
그러다 보니 이곳을 방문하는 귀족들의 편의를 위해 이런저런 상업이 발달했고, 자연스레 경매 도시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장 내가 머무르던 고급 여관도 경매장을 찾는 귀족들을 노리고 만들어진 곳이고.
아무튼 경매장을 끼고 급격하게 성장한 도시다 보니, 그에 관련된 몇몇 괴담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몇몇 노점은 평범한 고기인 척 인육을 판다는 소문이다.
대충 그만큼 돈에 미친 동네다…라는 식으로 떠도는 이야기다만.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건지, 카를라가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주, 주인님. 설마 소문이 사실인 건가요? 팔리지 못한 노예는 살처분해서 고기로 판다는….”
“아, 그건 헛소문이야. 애초에 게프 경매장이 이렇게 커진 이유가 뭐야. 귀족들이 환장하는 고급화 전략이 성공해서 그런 거잖아?”
그러니 귀족의 명예에 흠이 갈 수 있는 불법적인 물건이나 범죄는 최대한 지양한다.
무엇보다 게프는 레반틴 제국에 속하는 도시다.
에우렐리아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는 레반틴 제국은 가장 엄격하게 사교?행위를 금지하는 국가이며.
인육 섭취는 가장 유명한 사교 의식 중 하나다.
따라서 경매장이 인육을 파니 뭐니 하는 건 죄다 헛소문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아무리 게프가 에우렐리아 대륙 최고의 경매장이더라도, 레반틴 제국과 법황청을 동시에 적을 돌리는 미친 짓은 안 할 테니까
내 설명을 들은 카를라가 눈에 띄게 안심했다.
“휴우….”
“근데 인육을 파는 것 자체는 사실이야.”
“…헤?”
이어지는 말에 다시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아. 진짜 반응 즉각적인 게, 너무 재밌네.
바짝 얼어붙은 카를라에게 낄낄 웃어주며 진실을 알려주었다.
“게프에는 사교도들의 지부가 있거든. 그놈들이 몰래 파는 거야.”
“사교…도….”
우울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카를라.
맞다. 생각해 보니, 린델하이트 가문은 가주가 사교도라는 누명을 받아 몰락한 거였지.
뭐, 워낙 깔끔히 조작해놔서 카를라 본인도 진짜인줄 알고 있겠지만.
반쯤 넋을 놓은 카를라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정신 차려. 아무튼 이제 내가 어떤 던전을 공략하려는지 알겠지?”
“…게프 어딘가에 사교도들이 숨겨놓은 던전이 있는 거군요.”
“바로 그거야.”
사교도들이 숨겨놓은 던전.
달리 말하면, 히든 던전이라고도 한다.
***
H&A의 플레이 스타일은 간단하다.
평일에는 아카데미의 수업으로 실력을 키우고, 주말이나 방학에는 던전을 공략해 보상을 챙기는 방식.
물론 중간중간에 히로인들과의 이벤트가 있긴 하지만…어쨌든 큰 틀은 그런 느낌이지.
그렇다면 던전은 어디서 나타나는 걸까.
주 배경인 아카데미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실습하러 간 외지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방학에 놀러 간 친구의 영지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정말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물론 대부분은 나라에서 관리하며, 그 위치를 공개하고 있다.
던전을 공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안에 사는 몬스터 일부를 죽이는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까.
그리고 몬스터의 부산물은 돈이 된다.
해당 국가 입장에서는 간단한 관리 좀 해주며, 수수료만 챙겨도 쏠쏠하니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때때로 부산물의 가치가 높은 던전은 공개하는 대신, 직접 기사단을 보내 주기적으로 토벌한다고 하고.
어느쪽이든 국가에서 관리하기에 티가 날 수밖에 없다.
게임에서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이냐, 특정 국가의 공헌도를 쌓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이냐의 차이일 뿐이어지.
다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사교도.
녀석들은 특수한 방법을 통해 던전의 존재를 탐지하고, 은폐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던전은 악신의 군세가 봉인된 아공간이고, 사교도는 그러한 악신을 섬기는 무리니까.
같은 악신을 섬겨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만…아무튼 가끔은 국가보다 사교도에서 먼저 던전을 가로채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곳, 게프의 던전 또한 그런 경우다.
분명 혼탁한 합일이라는 악신을 섬기는 사교도와,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었지.
본래 게임에서는 경매장 때문에 게프에 자주 방문하던 도중. 무언가 수상함을 느낀 유저가 직접 조사해야 했었다.
퀘스트 보드와 미니 맵의 도움 없이 이런저런 소문을 긁어모으고, 단서를 수집하여 위치를 특정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누구?”
플탐 7,000시간의 고인물.
올 클리어를 몇 번을 해봤는데, 당연히 던전 위치 정도는 줄줄 외울 수 있다.
그렇게 속으로 뿌듯해하는 것도 잠시.
내 혼잣말을 들은 걸까. 옆에 있던 카를라가 흠칫 놀라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어…제 주인님이요?”
“그것도 맞지. 그나저나 새로 산 옷은 어때? 움직이기 불편하진 않지?”
“네! 하, 하지만 이렇게 많이 사주셔도 괜찮으신가요? 그리고 정말 저희 둘이서 사교도의 던전에 들어가는 거에요…? 차라리 지금이라도 경비대에 신고하시는 게….”
다소 불안한 듯한 표정으로 나와 자신의 옷을 번갈아 보는 카를라.
지금의 카를라는 경매장에서 입었던 드레스와는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던전에 들어가는데, 예쁘기만 한 옷을 입고 갈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그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투용으로 싹 다 맞춰 주었다.
전체적으로 승마복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 가슴팍에 달린 프릴과, 등을 살짝 덮는 짧은 망토가 포인트다.
거기에 들고 있는 스태프는 어떠한가.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게 조금 부담스럽지만, 마력 증폭률도 높고, 몸체도 단단해 여차하면 근접전에도 써먹을 수 있으리라.
그 외에도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 온갖 장신구형 마도구까지 둘렀으니…총합 5,000골드 정도 들었던가?
전부 상점제 장비들이나, 이 정도로 비싼 녀석들은 그 성능을 무시할 수 없다.
역시 돈이 최고야.
하물며 카를라는 아카데미 최고학년. 그중에서도 마법학부 수석 출신 아닌가.
게프의 히든 던전은 기껏해야 초중반부 난이도에 불과하고, 그 공략법도 완벽히 기억하고 있으니 위험할 리가 없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카를라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던전은 걱정하지 마. 내 지시에만 따르면 문제없이 클리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돈은….”
잠시 카를라의 복장을 살펴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부터 본전 뽑아야지.”
일해라 노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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