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쌌으니까 샀다(2)
* * *
카를라를 데리고 돌아온 숙소는 제법 괜찮은 고급 여관이었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 좋은 데서 묵는 게 좋지 않겠는가.
실제로 비싼 만큼,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더라고.
여관에 딸린 식당에서 이것저것 주문해 방으로 가져오도록 시킨 뒤, 안절부절못하는 카를라를 내 방으로 데려갔다.
“앉아라.”
“네, 넵!”
일단 시키는 대로 근처의 의자에 앉긴 했지만, 고개를 푹 숙인 채 좀처럼 이쪽을 쳐다보지 못하는 카를라.
그리고 그런 카를라를 멍하니 바라보는 나.
이 어색하다면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우선 간단하게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얀델이라고 한다.”
“아…저는 카를라 린델하이트입니다. 주, 주인님의 노예에요.”
늑대 앞에 선 토끼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스스로 노예라 칭하는 카를라.
그래도 린델하이트면 한때는 공작위까지 받았던 고위 귀족일 텐데….
아, 그건가?
노예가 되면 팔리기 전에 이런저런 교육을 시킨다는 말은 얼핏 들어봤는데, 이것도 그 일환인가 보다.
실제로 나한테 아양 부리려고 하는 말이라기보다, 배운 대로 한다는 느낌이 강하니까.
“그래 카를라. 괜히 무게 잡기도 귀찮으니까 말 좀 편하게 할게.”
“무, 물론이죠! 편하신 대로 하세요! 네!”
이쪽 세상에 떨어진 지 벌써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런 말투가 편하단 말이지.
경매장에서야 정체를 숨기기도 해야 하고, 얕보이면 곤란하기도 하니 일부러 딱딱한 말투를 썼지만.
그나저나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아니지, 내가 굳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나? 내가 주인인데?
턱을 까딱거리며 카를라에게 명령을 내렸다.
“식사가 도착할 때까지 심심한데, 뭔가 재밌는 이야기라도 해봐.”
“재밌는 이야기요…?”
“그래. 시간 때우기용으로 말이야.”
“어…그럼….”
잠시 고민하던 카를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고양이에게 야옹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아시나요?”
“아니?”
“왜옹 이래요.”
“…….”
“…….”
이딴 게…개그?
내 표정이 굳어진 것을 눈치챈 카를라가 허둥대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한번만…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이번에는 정말 재밌을 거에요!”
“뭘 또 그렇게 빌기까지 해. 알았으니까 한 번 더 해 봐.”
“감사합니다!”
순간 표정이 밝아진 카를라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도 길게.
그 끝에 내놓은 대답은.
“흡혈귀가 식사 중에 항상 웃는 이유를 아시나요?”
“설마 피식?하기 때문은 아니겠지?”
“…….”
“맞나 보네.”
내가 시킨 거긴 하지만 이건 뭐….
한숨을 푸욱 내쉬며 손을 휘휘 저었다.
“됐어. 여기까지만 하자. 그리고 넌 어디 가서 개그하지 마라.”
“이, 이상하다…이거 제국 깔깔 유머 모음집에서 본 건데…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인님. 저 할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지금 다시 생각할 테니까…그러니까 부디 한번만 더 자비를…!”
“아니, 정말로 됐다고. 농담 좀 못할 수도 있지. 어차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사실 카를라에게 중요한 건 마나 호흡법을 제대로 알고 있느냐 아니냐 뿐이니까.
개그 센스가 없는 건 별로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내 반응을 어떻게 여긴 건지, 카를라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루비색 눈동자에는 점점 습기가 차오르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까지 간다.
묘하게 가학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습.
솔직히 말해서 이걸 구경하는 게, 조금 전의 되도않는 말장난보다 훨씬 재밌다.
그렇게 울먹이는 카를라를 얼마나 바라보고 있었을까.
쿵! 쿵! 쿵!
주문했던 식사가 도착했다.
“거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나갈 테니까.”
“…넵!”
고개를 마구 끄덕이는 카를라를 뒤로하고, 이곳의 웨이트리스가 가져온 트레이를 받아왔다.
부드러운 식전 빵과, 따뜻한 스프. 양념과 어우러져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스테이크와, 작은 접시에 담긴 디저트까지.
전체적인 식문화는 현대보다 뒤떨어지는 세상이지만, 돈만 있으면 얼마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역시 돈이 최고라니까.
속으로 낄낄 웃으며 트레이를 방 안쪽으로 끌고 왔더니.
“응?”
어째서인지 카를라가 바닥에 무릎 꿇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으라는 게, 꿇어앉고 기다리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이게 뭐지 싶어 바라보는데, 문득 카를라의 시선이 트레이에 고정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슬쩍 빵을 들어 올리자, 이를 따라 카를라의 시선도 따라온다.
빵을 왼쪽으로 흔들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흔들면 다시 오른쪽으로 향하는 카를라의 시선.
“꿀꺽….”
배고픈 건가?
지금껏 잔뜩 위축되어, 히이익 거리던 카를라의 몇 없는 적극적인 반응.
그게 신기해 한두 번 더 흔들다가 주려고 했는데….
“아.”
실수로 놓쳐버리고 말았다.
왼쪽으로 멀리 날아가 바닥에 나뒹구는 빵.
지구에서의 기억 때문일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멀쩡한 음식이 땅에 떨어지면 아깝단 말이지.
그래도 주워 먹을 정도는 아니기에 다시 웨이트리스를 불러, 빵 하나 더 가져와 달라 시키려 했으나.
“자, 잘 먹겠습니다…!”
허겁지겁 네 발로 기어가, 떨어진 빵을 주워 먹는 카를라.
심지어 손도 쓰지 않고, 고개만 처박아 뜯어먹는 중이다.
“허?”
린델하이트 가문은 마도명가로 유명한 고위 귀족일 터.
실제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세한 움직임에 귀족스러운 예법이 묻어나왔잖은가.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뭐란 말인가.
“하읍…음냠….”
네 발로 엎드리고, 엉덩이를 치켜든 채 바닥에 떨어진 빵을 허겁지겁 뜯어 먹는다니.
귀족 영애의 기품은 개뿔, 이래서야 단순한 애완동물이잖아.
아마 이 또한 조금 전의 노예 선언처럼 노예상에게서 주입받은 거겠지.
솔직히 좋다 싫다로만 따지면, 둘 다 음습한 만족감이 충족되는 기분이라 좋긴 하다.
그러나, 이러다 카를라가 진정한 의미로 노예가 되어버리는 건 곤란하다.
아직 배울 게 많으니까.
자연스레 씰룩이는 둥그런 엉덩이를 향해 입을 명령했다.
“카를라. [그 빵 버리고, 식탁에 앉아서 식사해라.]”
“아앗…네헵…!”
***
넓은 방 안에서 말없이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앉혀 놓으니, 조금 전과 달리 완벽한 식사 예절을 선보이는 카를라.
다만 먹는 속도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엄청 잘 먹네.”
“넷? 죄, 죄송합니다….”
“아니, 사과할 일은 아니지. 먹으라고 산 거니까.”
그냥 조금 전의 암캐 같은 모습은 대체 뭐였을까 싶을 뿐이다.
“여기가 고급 여관이긴 해도 린델하이트 가문에 비할 정도는 아니잖아. 그렇게 맛있나?”
“아…그게 실은 최근에 제대로 먹질 못해서….”
“허?”
이게 뭔 소린가 싶어 눈만 깜빡이고 있자니, 카를라가 한참을 우물쭈물 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노예 교육이라는 게 있거든요….”
이어지는 카를라의 말은 내 예상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때때로 자력으로 해제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노예 각인은 유용하지만 완벽한 건 아니다.
당장 명령도 강제가 아니라 심한 강박을 느끼게 하는 것뿐이잖은가.
그러니 미리 노예의 마음을 꺾어둘 필요가 있다. 심지가 약해지면, 단순한 강박도 절대적인 계시처럼 느껴질 테니까.
이러한 밑작업을 보통 교육이라고 표현하는 거고.
노예의 급에 따라 교육 방식이 달라지는데, 대부분의 노예는 폭력과 조교를 적극 활용하여 교육 시킨다고 한다.
외모가 괜찮은 처녀의 경우에는 일부러 처녀는 건드리지 않는다지만…그 외에도 조교할 방법은 많은 것 같으니까.
이 경우에는 단가가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노예 각인조차 새기지 않는다.
대신 좀 혹독하게 교육 시킬 뿐.
“하지만 저는 그…최상급…이잖아요…?”
“그렇지.”
스스로 최상급 노예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카를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이 정성 들여 빚은 것만 같은 아름다운 외모. 뛰어난 마법사로서 갈고 닦은 기품과 지식. 그리고 본래라면 손도 대지 못할 고위 귀족 출신이라는 점.
셋 중 하나라도 있으면 몸값이 훌쩍 뛸 텐데, 카를라는 이 세 가지에 전부 해당하지 않는가.
“어지간한 저택보다 비싼 노예라…평범한 노예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진 않았겠네.”
“마, 맞아요. 저는 조금 특별한 교육을 받았어요.”
때리지도 못하고, 성적인 고문을 가할 수도 없다.
아니, 애초에 그런 쪽엔 익숙해지지 않도록 하는 게 더욱 가치를 높이는 일이겠지.
노예 상인도 결국은 상인. 함부로 상품의 가치를 훼손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 특별한 교육이란?”
“…식사 대신 알약만 줬어요.”
“알약?”
설마 마약이라도 되는 건가? 그건 좀 곤란한데.
나도 모르게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카를라가 허둥대며 말을 이었다.
“이, 이상한 약은 아니에요! 마탑에서 식사 대용으로 만든 거거든요.”
“아, 그거라면 들어본 적 있어. 모험가들이 오지를 탐험할 때나, 높은 경지에 도전하는 기사나 마법사들이 폐관수련 할때 먹는다는 약이지?”
“맞아요. 딱 한 가지 부분이 달랐지만요.”
“그게 뭔데.”
“허기에요.”
“허기?”
이어지는 카를라의 말에 의하면, 본래 비상식량으로 만들어진 만큼 필수 영양소도 풍부하고, 포만감도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카를라가 먹은 약에는 포만감을 느끼는 마법이 빠져있다고 한다.
즉,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끝없는 허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소리.
배가 고파본 사람은 안다. 허기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걸.
거기에 이 모든 과정은 일반 노예들의 조교 과정을 보여주며 시행되었다고 한다.
단순한 채찍질이나 구타 정도였다지만…안 그래도 정신이 약해진 상태인 카를라에게는 그보다 더한 협박은 없었으리라.
일반 노예 눈에는 카를라가 편히 쉬는 것처럼 보일 테니, 그들의 눈총도 견뎌야 했을 테고.
그렇게 천천히 정신을 마모시키다 한계다 싶을 무렵.
그들은 카를라에게 적당히 수치스러운 명령을 내리고, 이를 수행하면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했다.
거부하면? 그럼 또 한동안 알약만 먹는 거고.
노예 선언이나, 네 발로 기면서 밥을 먹는 것도 그때 교육받은 것이라고 한다.
분명 몰락하기 전에는 무서울 게 없던 린델하이트 가문의 영애였을 텐데, 왜 이리 겁이 많나 했더니….
그런 걸 몇 번이고 계속하면 사람이 반쯤 망가질 법도 하지.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걸까.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식기도 내려놓고, 오들오들 떠는 카를라.
포식자 앞의 토끼를 닮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가학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민다.
이러면 안 되는데.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카를라에게는 남자를 충동질하는 뭔가가 있다.
결국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카를라에게 내 몫의 식사를 조금 덜어주었다.
“많이 먹어.”
“가,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한동안 못 먹을 테니까.”
“…헤?”
“식사 통제라. 재밌는 방식이네.”
“…….”
순간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카를라.
천적을 만난 초식동물 같은 모습.
“히끅.”
카를라가 울상을 짓자,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만족감이 퍼져 나간다.
…이래서 원작의 카를라가 그 꼴이 났던 거구나.
괴롭히는 맛이 좋아도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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