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포식자들의 세상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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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타인
오늘은 할 일이 아주 많은 날이다. 플리사의 ‘억지 부탁’을 들어준 후 나는 내가 해야 할 우선 순위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마르마스 기업이 나에 대해 의심하는 생각을 떨어트릴 필요가 있다. 밀런과 유리치가 섣불리 움직이면서 아무래도 누마는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굳이 나를 두 번이나 부른 이유도 아마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먼저 유리치에게 연락을 했다. 유리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나의 연락도 받는둥 마는둥 했다. 대화에 집중을 전혀 못하길래 결국 나는 유리치가 있는 곳까지 가서 직접 얘기해야 했다.
NP4719 경찰서에 도착한 나는 문 앞에 들어서자 바로 서장이 마중 나왔다.
“오랜만입니다 차관님!”
“반갑습니다 리브 서장님.”
“다시 찾아주시니 영광입니다!”
리브 서장은 권력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이는 서장이다. 특히 내가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욱 싹싹하게 굴었다. 물론 밑에 있는 부하들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 하다.
“다들 뭐 하고 있어? 차관님에게 커피라도 한 잔 내와!”
“쯧, 예에.”
한 경찰이 마지못해 커피를 타러 갔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유리치 제1비서가 여기 있나요?”
“아... 예...”
서장이 올 것이 왔다는 듯한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리브서장의 안내를 받은 나는 경찰 한 구석 책상에 단정히 앉아 있는 유리치를 보았다. 그녀는눈을 감고 있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눈을 뜬 유리치는 나를 보자 안 좋은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차관님.. 오셨어요?”
“휴가는 신청하고 여기 계신 겁니까?”
나의 물음에 유리치는 불안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뇨...”
“무단 결근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커피를 타온 경찰이 나와 유리치 몫의 커피를 건냈다. 유리치가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마워요 소네샤 경관.”
“아니에요.. 말씀 나누세요.”
소네샤라는 경관의 지속된 배려로 나는 커피 잔을 든 채 유리치를 밖으로 따로 불러야 했다.
“밖에서 잠시 얘기하죠.”
밖으로 나온 나와 유리치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서 조사에 진전은 있었습니까?”
“... 아니요.”
“음...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지금 이런 수사 활동은 우리 업무가 전혀 아닙니다. 알고 계시죠 유리치씨?”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처음에 저는 밀런 장관님의 막무가내 식 부탁에 질렸었습니다. 칼렌 선배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 이었고...”
“예. 계속하세요.”
“그런데 조사 하다 보니 마르마스 기업은 정말 이상하더군요.”
“어떤 점이요?”
“그게 처음에는 약간.. 비리나 뇌물 등의 정황들이 포착됐어요. 솔직히누구나 있을 법한 일들이니 크게 별 신경은 안 썼는데 그게.. 그게.. 파고들다 보니 점점 수상함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예? 어느 정도길래..”
“일단 현 대통령 각하도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죽은 아킬로 회장과 여러 번 연락한 흔적들이 보였어요.”
“마르마스 기업 쯤 되면 대통령 각하와 연락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에요.”
“그야 그렇죠. 자꾸 밤 시간대에 한다 거나 비밀 암호화 된 코드로 연락하고..”
“? 암호화 된 코드로 연락한 것을 어떻게 포착 하신 거죠?”
“... 실종된 유러스 경찰이 여러 가지 밝혀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지막에는?”
“그는 마르마스 기업이 대단히 잘못 된 무언가를 일반 시민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판매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뭘 판 거죠?”
“그건 저도 모릅니다.”
고기에 대한 정체는 아직 밝히지 못 한 것 같다.
“유리치씨.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지금 일에 손을 떼라고 말씀드리려고 온 겁니다. 자신의 직장에 다시 돌아와 주셨으면 해서요.”
“밀런 장관님도 동의하신 건가요?”
“밀런 장관님은 지금 그 일에 신경 쓰고 계시지도 않습니다. 밀런 장관님 은근히 변덕 심하신 거 유리치씨도 잘 아시잖아요?”
“....”
“돌아오세요. 아니면 꼭 수사를 직접 하셔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경찰이나.. 드레이즌 내정부 장관에게 맡겨야 하는 일 아닐까요.”
“경찰이요? 지금 NP4719 서장 태도를 보고도 그렇게 주장하실 수 있나요. 차관님만 되도 저렇게 설설 기는데.. 게다가드레이즌 장관은.. 마르마스 기업하고 의형제라도 맺은 것 같던데요. 제대로 수사하지 않을 게 뻔해요!”
“진정하세요.그래서... 이렇게 혼자 열심히 하시는건가요? 도대체무엇을 위해서 인가요. 정의? 공정?”
“혼자 하는 것은 아니에요. 데이번씨도 있으니까.”
“데이번이라면 그 덩치 큰 친구 말씀이시군요?”
“네. 덩치 큰 친구죠.”
“실종된 유러스씨가 데이번씨의 형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데이번씨도 자신의 형을 찾고 싶을 거에요.”
“혹시데이번씨가 유리치씨를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 이유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럼..축하 드려도 되는 거죠?”
“푸핫! 예?”
“둘이 사귀는 것 아니에요?”
“그게.. 서로 감정은 있는 것도 같아요.”
“듬직한 남자를 좋아했나 보군요.”
“차관님 저는 도시적이고 세련미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순박 하게 웃으며 저한테 다가온 데이번씨를 보니 마음이 두근거리더군요. 처음에는 데이번씨를 엄청 답답해 했었지만요.”
“그건 물론 유리치씨의 취향도 있겠지만 데이번씨가 노력한 것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닿은 걸 거에요. 순박 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고 하시는 걸 보니 데이번씨가 꽤 노력한 것 같은데요?”
“이런..차관님은 못 속이겠군요. 예. 제가촌스러운 거에 넘어갔나 봐요.”
“하지만 유리치씨. 그래도 이 일에는 손을 떼세요.”
“상관의 명령인가요.”
“우린 군인이나 경찰이 아니에요. 명령은 아닙니다. 그리고 영원히 접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중에 마르마스 기업을 열심히 마음껏 조사하실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제가 그 시간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 유러스씨는 죽었을까요?”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데이번씨가 슬퍼하겠군요.”
“유리치씨가 잘 위로해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유러스가 아킬로에게 죽임을 당한 거라면 아마 유러스는 고기가 되어 화성 시민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 뱃속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런 이야기까지 유리치에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리치는 나의 설득을 받아들여 외교부로 돌아갔다.
해야 할 일 두 번째는 호터 치안부 장관을 찾아가는 일이다. 금성인의 소재 파악과 활용 때문이다. 호터는 원래도 중요한 일을 하는 장관이지만 최근 발생했던 폭동을 전부 진압하면서 정계에서 입지가 꽤 올라간 인물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나에게 중립적인 입장이라 나에게 아주 유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강직하고 개인 원한을 공적인 일에 까지 대입 시키지 않는 나름대로 공정함을 가진 사람이다.
“갑자기 어쩐 일입니까.”
호터는 공격적이지도, 친근하지도 않은 투로 대답했다. 치안부에 찾아 온 나는 호터에게 둘이서만 이야기할 공간을 마련 해 달라고 부탁했다. 호터는 꺼림직 해 하면서도 내 부탁대로 자리를 마련했다.
“요즘 힘드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시비 걸려고 온 것은 아니시죠?”
“그럴리가요. 지금 흔들리는 치안은 당연히 금성인들의 소재 파악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혹시... 알아내신 것이 있나요?”
“아쉽지만 그건 아닙니다.”
“인사말 이었습니까? 좋다 말았군요.”
“처음 화성에서 소요 사태가 벌어진 것은 화성인들이 금성인들을 공격하면서부터죠?”
“그렇죠. 치안부 장관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그런 짓은 화성의 시민들이 어리석었다고 밖에 할 수 없겠네요. 화성과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행위였어요. 여기 금성인들은 전쟁을 일으킨 금성왕과 아무 관계도 없었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사회에 혼란만 가중 된 거죠. 그전부터 금성인에 대한 안 좋은 시위가 빈번해서 불안하긴 했지만..”
“제 비서도 금성 출신이라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그때는 다행히 제가 옆에 있어서 도움을 줄 수 있었어요.”
“저런! 큰일 날 뻔 했군요!”
호터는 나의 말에 반응을 해주었다. 나는 호터에게 물었다.
“제가 지구에 가있는 동안 두 번째 사태가 일어난 겁니까?”
“아 그렇죠. 잘 모르시겠군요? 화성인과 금성인이 서로 충돌했죠. 그 때는 금성인들도 악에 받혀 있던 상태였으니까요. 저는 금성인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군요. 그래도 정보가 빨리 들어올 수 있어서 금방 진압했습니다. 양 측 주동자를 잡는데 성공했어요.”
“인명피해는 없었나요?”
“있었죠. 뿐만 아니라 재산 피해도 있었습니다. 양쪽 다 일단 불 지르고 시작 하더라고요. 짧은 시간이라고 별 일 아닌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당시에는 꽤 심각했습니다. 이런 야만적인 행위가 자주 일어나는 행성도 아니었으니 시민들이 받은 충격도 상당했고요.”
“그랬군요. 그 후 금성인들이 모두..”
“예. 갑자기 다 사라져버렸어요. 덕분에 화성 시민들, 특히 수도에 있는 시민들은 모두 불안에 떨고 있어요.”
화성의 수도 BC003에 금성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 사라졌으니 불안할 만 하다.
“짐작 가시는 데는 없는 건가요?”
“있을 리가 없죠.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주동자들과 지나치게 폭력을 행사한 실행범들은 다 잡힌 마당에 그들이 숨을 이유가 없는데.”
“흠...그렇군요...”
“? 그런데 차관님이 이 일에는 왜 관심을 보이는 겁니까.”
“외교부에 은근히 금성인 출신들이 많습니다. 다들 걱정하고 있거든요.”
“아 정말입니까? 그들에게 소재를 물어볼 수는..”
“그들도 당연히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겠죠. 그러면 모든 금성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겠군요.”
“예. 대부분 금성인이 실종 된 겁니다. 그리고 이런 대형 사건은 다른 장관들이라도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차관인 저도 걱정이 되는군요.”
“흥. 과연 그럴까요? 화성 요직에는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장관님들 투성이라서요. 특히 드레이즌 장관은 어느새 인가 마르마스사에 착 달라 붙어서 아주 기고 만장 해 있습니다. 진짜 못 봐주겠더군요.”
“이해합니다.”
“어휴 더 얘기해 봐야 남 흉이나 보는 못난 놈이 되는 거지 뭐. 제 생각에는 이 이야기는 그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름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성인들을 발견하면 장관님이 담당하셔야 할 테니까요.”
“아 그렇겠군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밀런 장관님은 참 든든하시겠습니다. 내 차관도 좀 이렇게 적극적으로 뭔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는데!”
“하하 치안부 차관님도 나름 노력하고 있을 겁니다.”
운은 띄었다. 호터가 금성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잘 알았다.이제 금성인들을 발견하면 호터에게 이양 하면 된다. 호터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금성인을 보호할 것이다. 그리고 호터를 금성인을 보호하는 대표로 이미지를 심어둘 생각이다.이제 다음에 할 일은 금성인을 찾는 것이다. 사라진 금성인들은 어떻게 감쪽같이 사라졌을까. 스스로 사라진 것이 맞는 것일까. 나는 다음 날 복귀한 유리치와 칼렌을 불러 앞으로의 방침을 전달했다.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만 두 분은 저와 같이 사라진 금성인들의 수색을 맡아주셔야 합니다. 어제 제가 호터 장관님과 따로 만나서 얘기를 했습니다. 필요하면 치안부 쪽에서 인원을 파견해 줄 겁니다.”
“마르마스 기업 조사 다음은 실종자 수색입니까? 요즘 들어 나는 내가 왜 외교학과를 나와 외교부에 취직했는지 모르겠습니다.이럴 줄 알았으면 부전공으로 경찰학과 쪽이나 들어 둘걸.”
“선배. 비아냥 거리지 말고 좀 끝까지 들어봐요.”
“하하하 칼렌씨의 불만은 저도 이해합니다. 사실 요즘 같은 시기에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미 지구와 금성은 제가 지구에 있으면서 양측 다 적당히 대화를 해 놓은 터라 외교적으로 무언가 시도할 일이 없거든요.”
“그럼 보통 휴식 하지 않나요...?”
“죄송하게 됐습니다만 부득이하게 우리가 맡게 되었네요.”
“이것도 장관님이 기분 내킨다고 명령 하신 건가...”
칼렌은 밀런을 들먹이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밀런은 이번 일과 아무 상관없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더 얘기해봐야 구차해 질 뿐이다. 거짓말은 되도록 안 하는 편이 현명하다. 밀런이 시켰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이번 일은 내가 생각해서 진행 하는 일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나는 직접 치안부에 연락해 인력 지원을 부탁했고 호터는 이를 수락해 주었다. 그 뒤 나는 땅 속을 신경 써서 찾아봐야겠다는 말을 했다. 칼렌이 말했다.
“땅 속을 어떻게 찾죠?”
“땅 속이라고 하니까저는 짚이는 이야기가 있긴 해요.”
칼렌의 물음에 유리치가 대답하자 칼렌이 유리치를 보며 물었다.
“들은 게 뭔데??”
“그러니까 화성 땅 속에는 버려진 유적지 같은 것이 꽤 있다는 이야기요.”
“그래? 그럼 역사 학자들이 가만히 놔두지는 않았을텐데?”
“그냥이야기니까요. 다른 이야기는대통령께서 땅 속 탐지를 금지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난 왜 죄다 처음 듣지?”
내가 껴 들었다.
“소문일 뿐입니다. 저도 자세하게, 확실한 사실이라고 들은 바는 없네요. 게다가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면 굳이 땅 속을 볼 필요가 없잖아요.”
“하긴.. 화성은 얇은 금속판으로 덮혀 있는 상태니까. 땅 속으로 들어갈 방도도 없겠네요.”
유리치가 나의 말에 수긍하자 칼렌이 말했다.
“아니 그러면 땅 속을 어떻게 탐색하죠? 금속판을 잘라내야 하나?”
“화성을 전부 둘러 쌓고 있지만 군데 군데 땅속으로 들어 갈 구멍은 남겨두었습니다. 선조들도 그 정도 융통성은 가지고 있었거든요.”
칼렌의 의문에 내가 대답하자 유리치가 한 소리 했다.
“선배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창피할 정도로 모자란 척하세요.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요?”
칼렌은 하기 싫은 일을 맡으면 멍청한 척 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니까 그는 이 탐색 임무가 매우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칼렌은 내가 외교부에 처음 들어오고 얼마 안 있어 들어왔으니까 칼렌 하고는 꽤 오랫동안 같이 일한 셈이다. 그래서 그의 버릇이나 행동 패턴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칼렌과 나는 서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같이 오래 활동했는데 이런 경우도 꽤 특이한 편일 것이다.
땅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큰 구멍은 수도에서 200km 쯤 떨어진 곳에 있다. 큰 반구가 덮혀 있는데 대부분 그냥 고대 구조물 같은 것으로 인식하거나 발전소로 알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지금까지 주목을 받지 못 한 곳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곳으로 금성인들이 숨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냈다. 여러 외진 곳, 더러운 곳의 청소를 도맡아 한 금성인들이라면 화성인들도 모르는 구조물을 오히려 잘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큰 반구의 딸린 사다리를 타고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가자 그 위에는, 사람 두 명 정도 들어갈 만한 수동으로 열 수 있는 원 모양의 문이 있었다. 그 쯤에서 나는 유리치를 퇴근시켰다. 유리치가 미안해 하며 말했다.
“저... 실은 오늘 약속이 있어서..”
나는 유리치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데이번과 약속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나는 군말 없이 유리치를 퇴근 시켰다. 칼렌도 어느 정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 별 말은 없었다. 과연 그 둘이 평범하게 데이트를 할까. 아니면 나 몰래 마르마스 기업에 대해 조사하는 데이트를 할까.
유리치를 보내느라 약간 시간이 지체 된 후 나와 데이번, 그리고 치안부에서 파견 온 7명의 인원을 이끌고 반구 꼭대기의 원형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밑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사다리가 뻗어 있었다.
“가다가 사다리가 도중에 끊겨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럼 다시 올라가면 그만 입니다. 제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칼렌이 겁먹는 분위기를 조성하자 내가 아무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치안부 인원 두 명에게 조명을 비추게 부탁하고 먼저 내려갔다. 그 뒤 칼렌이 뒤따랐고 나머지 7명도 내려갔다. 맨 뒤 두 명이 조명을 비추었다. 물론 조명을 아래로 비춰도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10분은 내려갔을까. 바닥이 어스름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위를 보고 소리쳤다.
“바닥이 있습니다! 안심하고 내려와도 됩니다!”
나의 외침에 칼렌 외 7명은 모두 바닥에 내려왔다. 내려 온 후에는 전원이 개인 조명을 들고 여기 저기 비추며 자신이 있는 곳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칼렌이 말했다.
“이곳은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에요?”
“그러니까.. 땅 밑으로 들어갈 입구라고 할 수 있죠.”
“지금이 그럼 땅 속인가요?”
“아니요. 거대한 반구의 1층 일 겁니다. 그러니까 여긴 지상 1층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창문도 없고... 뭘 알 수가 없네.”
“그렇죠. 낮인지 밤인지 구분도 안 될 거에요. 오로지 여긴 입구 역할 만 하는 곳 입니다.”
“유적을 보호하려고 만든 건가? 그럼 땅 속 유적은 사실이란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실제로 고대 공장 같은 곳도 발견되었었고... 고대에는아직 화성에 대기가 없었죠. 그래서 유적지는 지상에서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에 땅 속에 지어진 고대 시설들일 겁니다. 그러니까 엄청 오래되었다는 이야기죠.”
“대기가 없던 시절이면 테라포밍도 전이라는 말이군요?”
“예. 소수광부들만이 금속이나 광물을 찾아 화성을 돌아다니던 시절이죠. 화성에 정부도 없던 시절이요.”
“지상에 짓기 어려워서 땅 파고 그랬나?”
“글쎄요... 금성에 유적지들은 지상에 있다고 합니다. 광부들 휴식처로 쓰이던 곳 등이 있죠. 화성이 금성보다는 환경이 온화한 편이었으니까 지상에 지을라고 하면 못 지을 것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왜 땅 속에...”
“글쎄요?그들만의 사정이 있었겠죠. 화성의 지상에 건물 짓는 것이 불법 이었다던가. 우리는 알 수가 없죠.”
“그럼 이 반구도 고대에 만들어진 거에요?”
“아뇨. 이 반구는 약 3000년 전 화성 테라포밍 때 우리 선조들이 만든 겁니다. 땅 속에 유적을 발견하고 두고두고 조사하라고 문을 만들어준 거죠. 문제는 화성 정부가 땅 속 유적지 조사를 불법으로 규정해서 그렇지.”
“왜요? 아니 그보다.. 차관님은 어떻게 허가를 받은 거죠?”
나와 칼렌의 대화는 칼렌이 예리한 곳을 찌르며 잠시 중단됐다. 나는 약간의 시간을 두고 대답했다.
“치안 문제는 위급하니까 대통령 각하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더 이상 화성의 시민들이 불안해 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왜 우리가치안부나 내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겠습니다.일이 끝나면 보상금을 드리겠습니다. 아 물론 여러분들도요.”
나는 뒤에 치안부 인원들을 보며 말했다. 치안부 사람들은 환호했다. 환호 소리가 제법 크게 메아리가 울려서 다들 순간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지하로 내려갈 입구를 찾았다. 한 치안부 인원이 소리를 쳤다.
“여깁니다! 발견한 것 같아요!”
그가 발견한 곳으로 가보니 평평한 바닥과 달리 혼자 이음새가 문 모양으로 나 있었다. 칼렌이 말했다.
“이거.. 손잡이가 없는 것을 보니 자동문이겠죠?”
“그렇군요.”
내가 수긍하자 뒤에 한 치안부 사람이 얘기했다.
“여는 버튼이 없네요. 아니 그보다 애초에 바닥에 자동문이 있으면 부주의하게 빠져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자동문이면 안 되지 않나요?”
“Open”
나는 치안부 사람의 말을 듣고 문을 대고 Open이라고 얘기했다. 모두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문은 나의 말에 반응해 서서히 양쪽으로 열렸다. 문이 열리자 문 안에는 또 긴 사다리가 어둠 속으로 펼쳐져 있다.
“옵 뭐라구요?”
칼렌이 묻자 내가 답했다.
“그냥 알고 있던 고대어 하나 말해봤습니다. 다행히 통했네요.”
“무슨 뜻인데요?”
“열리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허... 차관님은 고대어를 어떻게 아시는 거죠.”
“네트에 빠져 살다 보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 차관님도 네트에 빠져 있던 그런 시절이 있었나 보군요?”
칼렌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질문하자 내가 대답했다.
“전 그런 시절이 별로 부끄럽다고는 생각 안 합니다. 다들 내려갑시다. 혹시 모르니 무기는 사용하기 편하게 준비해두시고요.”
“쳇. 차관님은 정말 옛날이나 지금이나 농담이 먹히지를 않는군요.”
“한결같은 사람 이라고 말해두죠.”
나의 대답에 칼렌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나를 따라 바닥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탔다.
10001년 1월 1일 기준.
리디스 케언– 금성 여자. 30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화성 남자. 51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화성 여자. 38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화성 남자. 42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화성 남자. 135세.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사망.
리튼 페일 – 지구 남자. 32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소장. 서부 사령관.
케테로스 미카드–금성 남자. 31세.금성의227대 왕.사망.
이리탈크 에실–지구 남자. 62세.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사망.
에더슨 베일렌 – 화성 남자. 86세. 642대 화성 대통령.
바이카 솔 – 화성 남자. 79세. 군부 총사령관. 육해군 총 책임자.
밀런 키웨이스 – 화성 남자. 98세.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피커리우 – 화성 남자. 108세. 내정부 장관.
호터. 페이오스 – 화성 남자. 70세. 치안부 장관.
파루스 데 칼트–지구 남자. 153세.육군 대장.사망.
레실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79세. 지구 92대 총수.
노아드 에실 지구 남자. 69세. 기업회의 간부.(돼지새끼)
덴슨 미렌 – 지구 남자. 55세. 백칩업체 파트로브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멍말이)
키들러 롤킨스 – 지구 남자. 108세. 의약업체 크포메디아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무표정씨)
아리카 베너리아 – 지구 여자. 44세. 뉴레든의 기자.(기자 양반)
다이타르 기란–지구 남자. 57세.육군 중장.사망.
루디샤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금성. 제조일 7757년 7월 23일.
가이론 에드버트 – 지구 남자. 32세. 생선가게 주인.
마리엔느 오센–지구 여자. 32세.전업주부.사망.
리노이 실리스 – 지구 여자. 32세. 대위. 142사단 34연대 2중대 중대장.
빌 시프 – 지구 남자. 62세. 대령. 97사단 5연대 연대장.(큰 바보)
흐라벤 피르시치 – 지구 남자. 소장. 64세. 97사단 전 사단장. 동부군 작전부장.(작은 바보)
안내원–지구 여자. 25세.보험회사 안내원.사망.
네라 울센–지구 여자16세.실종소녀.사망.
셀로아 하린–지구 여자121세.복고주의자 조직의 일인자.(할망구).사망.
유러스 디클레아–화성 남자34세.경찰관.사망.
플리사 에토레브 – 금성 여자 40세. 금성군 총사령관.(아줌마)
리어츠 비란–금성 남자80세.귀족회 대표.사망.
로드카 하디바이스–지구 남자31세.몬케르드 대학 조교.남부반란군 대장.사망.
카리탈크 스텔리온 – 지구 남자 65세. 페르샤 대학 철학교수.
피니르 블란 – 지구 남자 64세. 소장. 97사단장.
케리스 모나키아 – 지구 남자 102세. 대장. 국방부 장관.
위실론 크리데인 – 지구 남자 50세. 서부반란군 대장.
클로시아 레턴–지구 여자54세.동부반란군 대장.탈옥수 출신.사망.
메이클 로더슨–지구 남자81세.중장. 142사단장.사망.
바티우스 엘로렌 – 지구 남자 91세. 소장. 13사단장.
지쿠 스톨스–지구 남자63세.소장. 89사단장.사망.
티메로파 키나비치 – 지구 여자 92세. 중장. 제2공군단장.
웰론 와츠 – 지구 남자 50세. 소장. 105사단장.
가니로 루서스 – 지구 남자 62세. 상사. 보급관.
드레이돈 바롤트–금성 남자57세.금성군 제2총사령관.사망.
레시아 로던 – 금성 여자 44세. 대령. 금성군 총사령관 보좌.
로제스 브테르트 – 금성 남자 27세. 하사.
노웬 아스테리사 – 지구 남자 120세. 대장. 100사단장. 남부 사령관.
콜트렘 길린시아–금성 남자62세.대령. 1차 금성군.사망.
카사라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지구. 제조일 5224년 11월 21일.
로민 우세라 – 화성 여자 93세. 주부.
데이번 디클레아 – 화성 남자 31세. 경찰 지망생.
라디아네 키웨이스 – 화성 여자 46세. 영상 제작자.
우티슨 키웨이스 – 화성 남자 43세. 회사원.
게리아 메네스트 – 화성 여자 37세. 마르마스 기업 본사 안내원.
베르나사 키드로–화성 여자90세.마르마스 기업 본사 관리총감.사망.
뤼덴 플리톤 – 화성 남자 75세. 유러스, 데이번의 아버지. 전업주부.
아로디아 맥켄 – 화성 여자 69세. 유러스, 데이번의 어머니. 육상코치.
누마 브레스터– 화성 남자 17세. 쓰레기처리장에 버려져 있던 정체 모를 소년이 아닌 마르마스 기업 회장.
바리넬 벤스 – 화성 남자 41세. 경찰.
소네샤 티르마크 – 화성 여자 39세. 경찰.
리브 팜 – 화성 남자 82세. NP4719 경찰서장.
에셀 볼레스–금성 남자88세.대왕회 대표.사망.
나르카샤 리덴 – 금성 여자 55세. 왕실 전속 요리사.
하이온 벨라티스–금성 남자28세.청년단 대표.사망.
아르티웬 데라일 – 금성 남자 64세. 시민회 대표.
키시르 비웬 – 금성 남자 31세. 사랑호 탐사선 선장.
멜리네스 아나티세아 – 금성 여자 29세. 사랑호 탐사선 부선장.
레세라 카뉘아 – 금성 여자 35세. 향락비즈니스 단체 대표.
네르토 크말리안 – 금성 남자 91세. 귀족회 소속 문화후원당 대표.
트리실 로슨 – 금성 남자 84세. 원수. 귀족회 소속 군인당 대표.
에브리시 티날론–금성 남자93세.대왕회 소속 인권보호당 대표.사망.
세니 라일–금성 여자36세.대왕회 소속 여성당 대표.사망.
나시아나 테드린 – 지구 여자 34세. 준장. 100사단 참모.
가피르트 버셋–지구 남자76세. 3대 범죄 조직 미하트라의 보스.사망.
디몬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90세. 군수업체 아레나스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
조니우스 피론트 – 지구 남자 71세. 전자기기업체 에림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
베르비스 에실 – 지구 남자 49세. 생활용품업체 아크레일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
리테온 기우즈 – 지구 남자 64세. 엘리베이터타워업체 엘리베이터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
세롤드 아이티리스 – 지구 남자 88세. 브리엣 대표. 기업회의 간부.
코시프 루웬 – 금성 남자 47세. 제6도시 출신으로 이루어진 검은 낫 부대의 부대장. 소령.
지엘 김 – 금성 여자 31세. 검은 낫 부대 소총수. 하사.
가리넬 아웬시프–금성 여자42세.금성군 정보담당관.대령.사망.
다로네프 키바이시치 – 금성 남자 45세. 피아니스트. 플리사 남편.
루베르트 키바이시치 – 금성 남자 3세. 플리사 아들.
모레드 루플 – 지구 남자 51세. 국가주의자 반란군 수장.
빌레누 핀터 – 금성 남자 54세. 노동조합 대표.
알타로크 바로인 – 금성 남자 21세. 이등병.
수라 아르네츠 – 금성 여자 25세. 상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