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자들의 세상-60화 (60/86)

〈 60화 〉 포식자들의 세상 ­60­

* * *

­리튼­

베르비스는 왜 재해대책부장의 자리를 공식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원했을까. 총수는 그 자리에서 확답을 주지 않았다. 화면 너머로 본 것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뭔가.. 총수는 불쾌하고불안해 보였다. 나는 교수와 대화한 끝에 별 뾰족한 수 없이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내가 총수자리를 갈망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순전히 루디샤를 보호하기 위해 서다. 기자 양반과의 혼인도 내 지위와 안전을 보장 받기 위함이었지 총수 자리를 노린 것은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사람 짜증 나게 만드는 그 놈이 이 상황을 만든 것이다. 내가 총수 자리에 오르는 것이 그 놈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인가? 이득이 된다면 어떤 식으로 이득이 되는 것일까. 왜 그 녀석은 나를 총수 자리에 억지로 올리려고 하는 것일까.

그 놈과 같이 다니면서 느낀 점은 별로 좋은 판단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군사적인 조언에서 느낀 것이다. 그 놈(에프타인)은 전략 회의에서 잘못된 판단을 꽤 보여주었다. 성격은 당연히 별로 좋지 않은 주제에 착한 척하는 쓰레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놈은 단순하게 대할 녀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놈이 보여준 행적들은 절대 얕볼 수 없는 것이었다. 경계해야 한다. 일단은 따르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나는 너무나도 불리한 위치에 있다.

몇 일 후 나는 총수를 찾아갔다. 스스로 연락(루디샤를 통해)했다. 총수는 총수실에 나를 들인 후에도 한 참 누군가와 통신하거나 뇌 내 속에 의식이 빠져 식은 땀을 흘리며 업무 처리에 몰두 중이었다. 전후 처리가 생각보다 더 힘든 모양이다.

오랫동안 기다리다 총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전부터 얘기했지만 아주 바빠.”

“예.진심으로 존경스러울정도입니다.”

“?? 뭐라고??”

나의 말에 총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나는 다시 한 번 얘기했다.

“바쁘게 전후 처리를 하고 계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했습니다.”

“어디 아픈가?”

“아니요.. 이제 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총수님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으면 저는 전쟁에서 활약을 못 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지금 바쁘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진심으로 존경심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기업 회의를 잘 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음. 좀 철이 든 모양이군. 아니면 뭐 노리는 것이 있던지. 자네를 쭈욱 생각해보면 전자에 가깝다는 생각은 든다만.”

노리는 것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반응했다.

“노리는 것이라뇨?”

총수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눈을 보여주었다.(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나를 의심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총수는 속마음이 어떻든 대답해주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겠지만 상대방이 갑자기 아양을 떨거나 치켜세우면 부정적인 감정 느낄 각오를 하게. 상급자면 위험한 일 시킬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고 하급자면 뭐라도 뜯어먹으려고 하는 거니까. 물론 리튼 자네는 그런 성격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쨌든 군인들이 보기에는 방금 말한 사람들이 야비하고 눈꼴 시려워 보이겠지만 화를 내거나 불쾌한 티를 되도록 내지마. 얍삽하고 힘없는 놈이 적이 되는 것 만큼 골치 아픈 게 없다네. 흐음.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존경이나 표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존경심이 든 것은 사실이다. 아주 조금이지만. 어쨌든 나는 목적을 말하기로 했다.

“실은 전후 처리에 도움이 좀 될까 싶어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습니다.”

“뭔데?”

총수는 바쁜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내 말에 관심을 가졌다.

“일단 동서남북 지역의 모든 시민들을 안정 시키고 위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구 전 지역을 돌면서 시민들을 위로하면 시민들도 전후 복구에 힘을 보탤 것이고 진척 시간도 빨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물론 총수님이 보냈다고 하면 총수님의 지지도 오를 것이고...”

총수는 기뻐하는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 반응이 없다. 나를 노려 볼 뿐이다. 그러다가 한 마디 했다.

“자네가 생각한 것 맞아?”

“골똘히 생각해 본 결과인데요.”

“흠.”

총수는 ‘흠’이라고 하고는 약간의 시간을 들여 생각했다. 총수는 왼쪽 천장을 곁눈 질로 바라본다. 그리고 곧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내가 자네에게 맡기려고 했던 임무는 다른 거야. 예를 들면 시민들이 아니라 군인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이지.”

“군인들이요?”

“지금 현역 군인들은 모두 노웬의 편에 서있어. 나는 물론이고 기업 회의 또한 이 상황을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우려하고 있지. 더 이상의 전쟁은 안돼. 내전이든 뭐든 다 안돼. 재정 상태가 한계를 넘었어. 어느 정도로 넘었냐 하면.. 또 전쟁이 터지면 이번에는 우리 경제 상태가 화성에 예속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 정도로 한계일세. 그러니 전쟁은 안돼. 플리사에 대한 지원은 전적으로 아크레일에서 투자 형식으로 하는 것이니 상관없지만 그것과 별개로 전쟁은 안돼.”

안돼라는 말을 여러 번 하는 것을 보니 재정 상태가 정말 심각한 모양이다.

“전에멋대로 비용을 나가게 한 일은 죄송..”

내가 사과하려고 말을 하니 총수가 제지한다.

“아냐. 전쟁 중 일 때 비용에 관해서 자네는더 이상 생각도 말도 하지마. 이미 끝난 일이고 지구를 위한 일이었지. 나한테 혼도 충분히 났잖아? 그 건에 대해 자네를 비난할 사람은 없네. 하지만 만에 하나 내전이.. 불만 있는 군인들이 내전을 일으킨다면. 그건 정말 지구가 파멸 되는 길이 될 거야. 그 누구도 아니고 스스로, 가장 지구인 사랑하는 돈, 돈, 코스트로 무너지게 되는거야. 그러니 그것 만은 막아야 해. 내가지구를 멸망 시킨 총수가 될 수는 없다고.”

“그럼 저에게 맡기실 일이라는 것은...”

“음. 노웬을 막을 방도가 없을까? 너무 뭉뚱그려서 맡기는 것 같기는 한데.. 기업 회의나 나나 군에 관해서는 잘 모르기도 하고.. 사실상 유일한 기업회의 쪽 군 전문가는 자네밖에 없기도 해서 방도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지. 조만간 그 건으로 자네를 부를 생각이었어.”

“그랬군요.”

“오늘 온다고 해서 노웬이 이끄는 군인들 문제인가 했더니 자네는 전혀 다른 얘기를 꺼내더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말했다.

“사실.. 노웬 장군은 감정적으로 행동한 시점에서 이미 진퇴양난인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음? 무슨 말인가.”

“노웬 장군도 결국은 군인이죠.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승패에 신경 쓰고.. 효율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장병들의 죽음을 최대한 피하려고 할 거구요.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지구군을 이끌고 지구 상에 있는 금성군에게 싸움을 거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웬 장군도 아주 잘 알고 있을 거에요.”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내전은 없다는 건가?”

“일어나도 걱정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째서지? 좀 겁나게 말하자면 우리는, 지구는 현재 군대가 없는 상태야. 동부에 금성군은 3000만 가까이 식량을 축 내며 아크레일의 지원과 지구 쪽에서 준비하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고 지구 전 군은 노웬과 함께 우리에게 이를 갈고 있는데.. 기업 회의는 이 상황이 걱정 되지 않겠어?”

총수의 걱정에 내가 대답했다.

“먼저 첫째, 노웬 장군은 금성군과 싸우면 패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반란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비장의 수를 발동하면 됩니다. 플리사에게 부탁하면 아주 확실하게 진압해 줄 겁니다. 총수님이 공개 선언 했으니 이제 금성군은 동맹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둘째, 금성군과의 전력차 때문에 만약 금성군이 금성으로 떠나고 난 후, 반란을 일으키면 그것은 명분을 잃은 반란군이 될 뿐입니다. 노웬 장군은 금성과 정전을 무시하고 지구에 있는 금성군을 쳐 부수자를 주장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금성군이 떠나고 일으킨 반란은 첫째 경우보다 더 노웬 장군에게 있어 힘들어 질 겁니다. 명분 없는 반란으로 병사들도 동요할 거고 시민들은 적대할 거고... 그 때는 제가 예비역들을 동원해서 진압하면 됩니다. 병사들은 동요하고 있으니 투항하면 받아준다고 선전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구체적인 작전은 상황이 발생하면 일어난 상황에 따라 작전을 짜야겠지만 기본적인 틀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부 지역에서 본 노웬 장군이 반란을 일으킬 정도로 그렇게 생각 없어 보이는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존경하는 인물이 전사해서 일시적으로 감정적으로 변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단은차라리 자극하지 마시고 그냥 놔두는 것이 났다고 봅니다.”

“흠...”

총수는 나의 긴 대답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총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맞아. 아주 자네 다운 대답이야. 허세가 없는 아주 효율적인 생각. 자네는 지구인다운 허례허식이 전혀 없지. 효율적인 생각을 하다 못 해 효율에 심취한 나머지 과거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들을 동원하며 전쟁을 지휘했어. 이기기 위해 숲 전체를 폭격해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하지를 않나. 미사일을 멋대로 개조 하지를 않나...”

총수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방금 자네의 대답은 아주 자네다운데, 맨 처음 나에게 한 제안은 아무리 봐도 정치적이란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번 묻는데 정말 그게 자네의 생각이야? 사실대로 얘기해 봐.”

“...제 생각이 맞습니다.”

“그래?”

몇 초 지나자 큰 통화 연결음이 들렸다. 곧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삼촌? 무슨 일이에요?”

“어 아리카. 좀 궁금한게 있어서.”

“뭔데요??”

“다름이 아니라 리튼이 전후 지역을 돌며 내 이름으로 시민들을 위로해서, 시민들의 사기를 높이고 싶다고 했는데...”

“??네. 그게 왜요?”

“그거 리튼 생각이 맞는 것 같냐? 혹시 뭐 따로 들은 말이나....”

“삼촌. 지금 제 남편 될 사람을 의심 하는 거에요?”

“응?”

“제 두 귀로 똑똑히 들었어요. 저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했고요. 삼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의심부터 하시는거에요? 리튼씨가 뭔가 다른 걸 노리고 그런 제안을 했다는 건가요? 삼촌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뭐... 의심이라기보다는...”

“와­ 의심이 아니면 뭐에요? 그럼그런 생각도 못 할 놈이라고 생각해서 나한테 확인차 연락한 거에요? 아무리 리튼씨라도 이제 우리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아니다 아니야. 미안해. 끊는다­.”

“삼촌?”

총수는 통신을 끊었다.

“아리카는 저렇게 따지고 들면 피하는 게 상책이야. 자네도 기억해 둬. 괜히 먼저 따졌다고 같이 맞상대 하다가 안 털릴 것도 털릴테니.”

통신을 멋대로 끊은 것도 털릴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내가 기자 양반에게 전후 지역으로 위로 가는 것을 얘기했던가? 어떻게 알고 있었지. 결국 기자 양반의 활약으로 나는 곧 전후 지역으로 위로 파견이 결정되었다.

나는 교수의 집을 찾아갔다.

“어떻게 됐습니까?”

교수가 다짜고짜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물론 허락을 맡았습니다. 곧 준비 되는 대로 서부 지역부터 시작할 겁니다.”

“그거 좋군요. 재해대책부장 제안은 하셨나요? 베르비스도 했으니 선수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제안하셨겠죠?”

“아뇨. 그건 안 했습니다.”

“? 이봐요 리튼씨. 가장중요한 것을 쏙 빼면 어쩌자는 겁니까?”

“아뇨 교수님. 재해대책부장,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무슨 말인지설명해보세요.”

“먼저.. 베르비스가 공개 선언 한 이후로 우리는 재해대책부장을 기습적으로 제안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기습?”

“네 교수님. 힘들 때 제가 도와주겠다고 제안하며 넌지시, 부드럽게, 갑작스럽게 기습 제안을 하면 좀 갑작스럽더라도 좋은 인상이 남아있어 총수는 허락해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베르비스가 공개적으로 엉뚱한 타이밍에 재해대책부장을 시켜 달라고 선언해버리는 바람에 지금 총수는 경계 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겁니다. 며칠 전 공식 석상에서 답변을 거부한 것도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베르비스가 한 방 먹힌 상태에서 제가 똑같은 재해대책부장 이야기를 꺼낸다? 총수자리는 영영 날아가는거죠.”

“음.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상황을 봐야죠. 일단은 지구를 돌며 임무에 충실할 겁니다. 어쩌면.. 재해대책부장에 관해 한 마디도 하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얘기를 안 꺼내면 뭐 어쩌자는거죠? 에프타인님의 약속을 깨겠다고 선언하는겁니까?”

“아뇨... 저도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총수가 먼저 제안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베르비스가 재해대책부장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총수의 의식에 꽤 강하게 남아있으니까 베르비스의 반대편에 서서 총수가 베르비스에 대한 반감으로 재해대책부장 자리를 저에게 제안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싶은거죠.”

“리튼씨 생각은 좋긴 한데 그게 말처럼 쉬울까요?”

“당연히 어렵겠죠. 베르비스 때문에 일만 어려워 진 겁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작전이 하루 만에 뚝딱 나오겠어요 교수님? ...아직 시간은 있으니 좀 상황도 보고 생각도 하면서 지내봐야죠.”

“시간은 넉넉해 보이지만 절대 아닙니다. 우주가 탄생한 이후로 시간은 넉넉했던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쳇 잔소리는. 나는 교수에게 아무 마음 없는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가서 나는 아까 총수에게서 나를 도와준 기자 양반이 생각났다. 나는 기자 양반에게 만나자는 내용을 루디샤에게 부탁했다. 루디샤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주문한 것들을 차례대로 처리했다.

다음 날 기자 양반을 만났다. 약속 장소는 내 집 근처에 고기는 좀 부담 되니 빵 전문점으로 잡았는데 기자 양반이 잡은 장소보다는 허름하고 유명하지도 않은 곳 이었다. 기자 양반은 웃으며 나를 반겼다.

“무슨 일로 저를 불렀을까요? 그리고기분은 좀 어때요?”

“한 결 좋아졌죠. 그보다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 어제요? 뭘요. 그런데 삼촌 이야기를 들어보니 리튼씨... 엄청 바빠지시겠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전 지구를 또 돌아다니게 생겼으니.”

“흠. 뭐 바쁜 남자 싫진 않아요.”

기자 양반은 눈을 감고 커피를 마시며 얘기했다. 커피를 어느 정도 더 마시던 기자 양반은 말을 이어했다.

“결혼식 장소는 제가 알아 놓을게요. 아무래도 준비는 제가 하는 것이 났겠어요.”

“예? 이거 죄송하게 됐군요. 같이 해야 되는건데.”

“제가 상대적으로 한가하니까 제가 하는 거죠. 리튼씨는 결혼식 준비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가 해 놓을게요.”

이렇게 까지 하면 나도 뭔가 기자 양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그럼 결혼식은 제가 전후 지역을 다 돌면 바로 할까요? 전 그러면 될 것 같은데.”

“그건 언제 쯤 이에요?”

“그게.. 전후 지역이 한 두 군데가 아니라서...”

“그럼 오래 걸리겠군요...”

기자 양반은 오히려 더 어두워졌다. 약속 날짜라도 확실히 하면 기자 양반의 마음도 좀 나아질까 했는데 확답을 주기가 애매했다. 완전 역효과였다. 전에 헤어질 때도 굉장히 실망 시켰던 터라 아무리 나라도 마음이 무겁다. 기자 양반은 애써 밝은 척 했다.

“에이!! 나도 명색이 명문디파르트 가문원인데 뜻대로 안된다고 쳐져 있을 수는 없죠!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세요. 삼촌도 좋아하실 거에요. 어차피 지역 돌면 뉴스로 다 뜰텐데요 뭐. 제가 체크하면서 결혼식도 시간에 맞게 준비해 놓을게요.”

“고마워요.”

고맙기는 한데 좀 무섭다. 전 여자친구였던 리디스가 집착하고 재미없고 심심해서 정 떨어지는 타입이었다면 기자 양반은 사채를 땡겨 쓰는 느낌이다. 사채를 못 갚으면 노예 확정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며칠 후 총수는 나에게 정식으로 전후 지역을 돌며 시민들을 위로하는 일을 맡겼다. 직책도 만들어 임명했다. 비록 임시직이지만. 시민 위문 위원장? 지구의 직책 작명은 예전부터 느꼈지만 별로다. 위문이라니 노래라도 불러야 하나. 나도 장교 시절에 여자 가수가 오면 열광하고 그랬는데.

잡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베르비스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나와 대화를 시도 하다니. 곧 험악한 별명으로 불리게 되겠군. 물론 내 마음속에서만 부르는 별명 말이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바쁘군요.”

베르비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띄우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느낌이 영... 짜증남(에프타인)과 같은 과인가? 가식적인 표정의 얼굴 가죽을 한 100겹은 쓰고 있는 듯 하다. 내가 대답했다.

“어쩔 수 없죠. 어쩌다 영웅 취급 받는 바람에요.”

“하하하. 겸손하시군요. 서부사령관님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웅이 맞습니다.”

“그거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서부사령관도 아닙니다. 지휘하는 병사도 없는 그냥 계급만 소장인 군인이죠.”

“글쎄요. 노웬 장군 때문에 다시 큰 일을 맡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전에 엉뚱한 일을 하게 되셔서 괜히 힘만 빼시는 것이 아닐까 걱정됩니다.”

“노웬 장군이면... 아직 모르는 겁니다. 노웬 장군은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예. 저도 리튼 소장님 말씀대로 되었으면 좋겠네요.”

우리 둘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다시 베르비스가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재해대책부장을 맡아 저도 공적을 쌓고 싶었는데 좀처럼 총수님이 답변을 주지 않고 계십니다.”

오... 먼저 본 색을 드러내 주는군. 나도 적절히 모른 척 하며 대답해볼까.

“재해대... 뭐요?”

“아. 잘 모르시나 보군요. 비상시에 강력한 권력이 주어지는 비상직책이라고 할 수 있죠. 재해대책부장. 원래 지진이나 홍수 등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업 회의의 직책인데 역사적으로 한 번이었나.. 옛날에 재해대책부장으로 임명 된 상태에서 총수님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임시로 재해대책부장이 총수자리를 맡았던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재해대책부장은 총수가 직접 기업 회의를 거치지 않고 임명하는 특수직이었거든요. 그만큼 그 당시 상황은 아주 위급했을 겁니다. 물론 지금처럼은 아니겠지만요. 전쟁을 상상도 못하던 시기니까. 그러니까 재해대책부장에 임명되면 지금 시기에는 기업인이 아니더라도 총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거죠.”

음? 뭔가 베르비스의 말이 이상한데?

“네? 그게 무슨...”

내가 의문을 표하자 베르비스가 말했다.

“사실 제가공식 석상에서 대뜸 재해대책부장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총수님께서 그 자리를 경계하게 되셨거든요. 게다가 시민들도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검색도 해봤을 거고. 그러니시민들도 재해대책부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겠죠. 제 발언으로 전 지구인들에게재해대책부장이라는 직책을 인식 시킬 수 있었습니다.”

“으음...”

적당히 받아주자 베르비스는 자신감이 생긴 것 처럼 계속 얘기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재해대책부장은 절대 아무도 올라서는 안 되는 직책입니다. 되는 순간 속에서 끔찍한 욕망이 솟아 오르게 될 테니까요. 예를 들면 내가 총수 자리를 오르고 싶다던가.”

“총수 자리요?”

“네. 재해대책부장이 결정된 상태에서 지금 총수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재해대책부장은 임시총수로 승급이 되거든요. 임시총수는 기존 총수직보다 더 막강하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직책입니다. 기업 회의도 어쩔 수가 없게 되죠. 견제할 수단이 없으니 자칫하면 기존 체제가 붕괴될 위험도 생기고.. 전쟁 이후라 다들 정신도 없을테죠.”

이쯤되면 베르비스는 뭔가 눈치 챈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베르비스를 떠 보았다.

“총수님은 아직 정정하십니다. 연령 상 돌아가실 나이는 아닌데요.”

“예. 저도자연사를 얘기한 것은 아닙니다. 재해대책부장이 총수님을 암살, 독살 등으로 살해한다면 성립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

“그래서 공개 석상에서 재해대책부장을 떠벌린 겁니다. 금성과의 정전 만큼은 아니지만 재해대책부장 이야기도 다들 꽤 동요하더군요. 어쨌든 그렇게 얘기함으로써 아예 아무도 그 자리를 못 앉게 하는 것이 제 목적이었습니다. 총수님도 ‘그 자리’를 경계하게 되었고 효과는 꽤 좋은 것 같습니다.”

아...짜증나...지만 나는 애써 표정을 밝게 유지하며 대답했다.

“아하. 그래서 일부로 얘기하신 거군요. 이제 좀 이해가 되네요.”

“더 이상 지구인으로써 지구의 혼란은 사절입니다. 그렇죠? 서로 지구를 위해 힘냅시다 리튼 소장님.”

“네! 베르비스 회장님.”

베르비스는 따스하게 웃으며 나와 헤어졌다. 나도 힘차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거 완전 지구의 에프타인이네? 속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재해대책부장 자리를 막으면서 그리고 일부로 나에게 접근해서 그 자리를 언급했다. 나를 떠 본 거다. 나와 대화할 구실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나를 일부로 만난 이유다. 나는 총수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승산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10000년 1월 1일 기준.

리디스 케언– 금성 여자. 29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화성 남자. 50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화성 여자. 37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화성 남자. 41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화성 남자. 134세.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사망.

리튼 페일 – 지구 남자. 31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소장. 서부 사령관.

케테로스 미카드 – 금성 남자. 30세. 금성의 227대 왕

이리탈크 에실–지구 남자. 61세.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사망.

에더슨 베일렌 – 화성 남자. 85세. 642대 화성 대통령.

바이카 솔 – 화성 남자. 78세. 군부 총사령관. 육해군 총 책임자.

밀런 키웨이스 – 화성 남자. 97세.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피커리우 – 화성 남자. 107세. 내정부 장관.

호터. 페이오스 – 화성 남자. 69세. 치안부 장관.

파루스 데 칼트–지구 남자. 152세.육군 대장.사망.

레실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78세. 지구 92대 총수.

노아드 에실 ­ 지구 남자. 68세. 기업회의 간부.(돼지새끼)

덴슨 미렌 – 지구 남자. 54세. 백칩업체 파트로브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멍말이)

키들러 롤킨스 – 지구 남자. 107세. 의약업체 크포메디아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무표정씨)

아리카 베너리아 – 지구 여자. 43세. 뉴레든의 기자.(기자 양반)

다이타르 기란–지구 남자. 56세.육군 중장.사망.

루디샤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금성. 제조일 7757년 7월 23일.

가이론 에드버트 – 지구 남자. 31세. 생선가게 주인.

마리엔느 오센–지구 여자. 31세.전업주부.사망.

리노이 실리스 – 지구 여자. 31세. 대위. 142사단 34연대 2중대 중대장.

빌 시프 – 지구 남자. 61세. 대령. 97사단 5연대 연대장.(큰 바보)

흐라벤 피르시치 – 지구 남자. 소장. 63세. 97사단 전 사단장. 동부군 작전부장.(작은 바보)

안내원–지구 여자. 24세.보험회사 안내원.사망.

네라 울센–지구 여자15세.실종소녀.사망.

셀로아 하린–지구 여자120세.복고주의자 조직의 일인자.(할망구).사망.

유러스 디클레아–화성 남자33세.경찰관.사망.

플리사 에토레브 – 금성 여자 39세. 금성군 총사령관.(아줌마)

리어츠 비란–금성 남자79세.귀족회 대표.사망.

로드카 하디바이스–지구 남자30세.몬케르드 대학 조교.남부반란군 대장.사망.

카리탈크 스텔리온 – 지구 남자 64세. 페르샤 대학 철학교수.

피니르 블란 – 지구 남자 63세. 소장. 97사단장.

케리스 모나키아 – 지구 남자 101세. 대장. 국방부 장관.

위실론 크리데인 – 지구 남자 49세. 서부반란군 대장.

클로시아 레턴–지구 여자53세.동부반란군 대장.탈옥수 출신.사망.

메이클 로더슨–지구 남자80세.중장. 142사단장.사망.

바티우스 엘로렌 – 지구 남자 90세. 소장. 13사단장.

지쿠 스톨스–지구 남자62세.소장. 89사단장.사망.

티메로파 키나비치 – 지구 여자 91세. 중장. 제2공군단장.

웰론 와츠 – 지구 남자 49세. 소장. 105사단장.

가니로 루서스 – 지구 남자 61세. 상사. 보급관.

드레이돈 바롤트–금성 남자56세.금성군 제2총사령관.사망.

레시아 로던 – 금성 여자 43세. 대령. 금성군 총사령관 보좌.

로제스 브테르트 – 금성 남자 26세. 일병.

노웬 아스테리사 – 지구 남자 119세. 대장. 100사단장. 남부 사령관.

콜트렘 길린시아–금성 남자61세.대령. 1차 금성군.사망.

카사라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지구. 제조일 5224년 11월 21일.

로민 우세라 – 화성 여자 92세. 주부.

데이번 디클레아 – 화성 남자 30세. 경찰 지망생.

라디아네 키웨이스 – 화성 여자 45세. 영상 제작자.

우티슨 키웨이스 – 화성 남자 42세. 회사원.

게리아 메네스트 – 화성 여자 36세. 마르마스 기업 본사 안내원.

베르나사 키드로–화성 여자89세.마르마스 기업 본사 관리총감.사망.

뤼덴 플리톤 – 화성 남자 74세. 유러스, 데이번의 아버지. 전업주부.

아로디아 맥켄 – 화성 여자 68세. 유러스, 데이번의 어머니. 육상코치.

누마 브레스터– 화성 남자 16세. 쓰레기처리장에 버려져 있던 정체 모를 소년이 아닌 마르마스 기업 회장.

바리넬 벤스 – 화성 남자 40세. 경찰.

소네샤 티르마크 – 화성 여자 38세. 경찰.

리브 팜 – 화성 남자 81세. NP4719 경찰서장.

에셀 볼레스–금성 남자87세.대왕회 대표.사망.

나르카샤 리덴 – 금성 여자 54세. 왕실 전속 요리사.

하이온 벨라티스–금성 남자27세.청년단 대표.사망.

아르티웬 데라일 – 금성 남자 63세. 시민회 대표.

키시르 비웬 – 금성 남자 30세. 사랑호 탐사선 선장.

멜리네스 아나티세아 – 금성 여자 28세. 사랑호 탐사선 부선장.

레세라 카뉘아 – 금성 여자 34세. 향락비즈니스 단체 대표.

네르토 크말리안 – 금성 남자 90세. 귀족회 소속 문화후원당 대표.

트리실 로슨 – 금성 남자 83세. 원수. 귀족회 소속 군인당 대표.

에브리시 티날론–금성 남자92세.대왕회 소속 인권보호당 대표.사망.

세니 라일–금성 여자35세.대왕회 소속 여성당 대표.사망.

나시아나 테드린 – 지구 여자 33세. 준장. 100사단 참모.

가피르트 버셋–지구 남자75세. 3대 범죄 조직 미하트라의 보스.사망.

디몬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89세. 군수업체 아레나스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

조니우스 피론트 – 지구 남자 70세. 전자기기업체 에림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

베르비스 에실 – 지구 남자 48세. 생활용품업체 아크레일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

리테온 기우즈 – 지구 남자 63세. 엘리베이터타워업체 엘리베이터의 회장. 기업회의 간부.

세롤드 아이티리스 – 지구 남자 87세. 브리엣 대표. 기업회의 간부.

코시프 루웬 – 금성 남자 46세. 제6도시 출신으로 이루어진 검은 낫 부대의 부대장. 소령.

지엘 김 – 금성 여자 30세. 검은 낫 부대 소총수. 하사.

가리넬 아웬시프–금성 여자41세.금성군 정보담당관.대령.사망.

다로네프 키바이시치 – 금성 남자 44세. 피아니스트. 플리사 남편.

루베르트 키바이시치 – 금성 남자 2세. 플리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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