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포식자들의 세상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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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은 대왕인가? 내가 에셀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명망있는 가문이었을 뿐 아무것도 없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당했다. 마치 대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왕족이지만 시민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던 나에게 귀족이지만 볼레스 가문의 위신을 등에 업고 당당한 태도를 취하며 살아온 그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케테로스님이 왕이 되셔야 합니다.”
이 이갸기를 들은 것이 1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어느 정도 알 것은 알던 나이였기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를 듣자 마자 순수한 뜻으로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좋아 죽는다. 나를 왕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했다.그 당시에는 이미 많은 왕족들이 탈락해버렸을 때이다. 암살, 자격 미달, 범죄 고발, 모함 등 갖은 천태만상들이 벌어진 뒤 플리사가 유력해진 상태에서 에셀은 나를 데리고 왕좌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며 나를 선전했다.
당연히 오래전부터 왕족 가문인 에토레브 가문에 속해있었던 플리사가 평범한 시민이었던 아버지를 둔 나와 신분 상 우위에 있었지만 플리사는 왕좌에 대해 굉장히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몇 번 왕실 모임에서 만나 동생과 누나 사이로 나름 친해진 상태여서인지 플리사는 나와 다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나도 그랬다. 왕이 딱히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열심히 에셀과 의기투합해서 일을 진행 시켰다. 결국 에셀의 대활약으로 나는 왕좌에 올랐다. 그리고 맨 처음 한 일은 아버지의 권유대로 대왕회를 설립해서 자신의 기반을 강화하는 것 이었다. 아니 강화했다는 표현이 옳은 것일까. 생각해보면 에셀만 좋은 결과였을 뿐이다. 80 넘도록 귀족이었을 뿐 백수로 살아왔던 에셀은 나를 왕으로 만들면서 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지자와 함께 여러 비리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비리가 표면화 되면 표면화 된 인물만 잘라내고 에셀은 신기할 정도로 잘 빠져나갔다. 그리고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재산도 지지자들도 점점 에셀에게 모이기 시작했고 기존의 시민회와 귀족회는 대왕회를 견제하기 시작했다.나 역시 에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는 왕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에셀의 출세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왕의 자리는 참 오묘한 것이다. 왕에 오르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책임감이 생기거나 의지가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고 대우하니 점점 화나는 것을 참지 않게 되었을 뿐이었다.
참을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 도전하거나 비꼬면 처벌을 내렸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에셀도, 리어츠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버지에게 사형을 내렸을 때 리어츠는 망설이는 표정으로 뭔가 조언을 했지만 나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가 지겨웠다. 그리고 에셀은 아무 망설임 없이 내 명령에 따랐다. 이것이 내가 리어츠를 가까이하게 된 이유가 되었지만 에셀은 애초에 아버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처형 직전 망연자실한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에셀의 무표정도 마찬 가지다. 나는 그런 에셀에게 섬뜩함을 느꼈다.10년간 참은 것이 용할 정도다. 나는 에셀을 참아내는 것이 한계에 다다랐다.
내가 왕궁으로 출근하려고 정문에 도착했을 때 전처럼 또 다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인권보호당 사람들이었다.
에브리시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하고 있었다.
“금성의 왕은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같은 인간을 고기로 만들어버리고 지구에게 말도 안되는 죄를 뒤집어 씌어서 전쟁을 획책했습니다! 충분히 대화로 해결 가능한 일들을 전쟁으로 지구와 금성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잠깐 어이가 없어서 에브리시의 말을 듣고 있다가 경비병에게 명령했다.
“뭐하고 있습니까. 해산시키세요.”
“예? 대왕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허락 받은 일이라고..”
“어처구니 없군. 누가 허락했습니까?”
“대왕회 대표님께서...”
대왕회 대표, 에셀이다. 자신이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여러 방면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는 중이다. 더욱 열 받는 것은 그 좋은 가치관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내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데모 무리는 일단 내가 왕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내가 가는 길을 확보해 주었다. 나는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무리들을 뚫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내가 문으로 들어가자 에브리시는 다시 연설을 시작하는 소리가 어깨 너머로 들린다.
나는 왕궁으로 들어가자 리어츠부터 찾았다. 리어츠는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죄송합니다 대왕님. 밖의 사람들은...”
“됐습니다. 그보다 이제 슬슬 에셀을 잡아 넣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절차고 뭐고 필요 없잖아요. 에셀이 하고 있는 것을 보세요.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생각보다 에셀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리어츠는 힘이 빠진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2차 금성군을 편성하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네. 에셀의 장악력은 제가 생각하던 것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이미 대왕님과 정부의 의사에 반대할 뿐 아니라 당을 창당해서 금성을 분열 시키는 행위가 있었으므로 체포할 명분은 만들었지만 체포할 사람들이 에셀의 체포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찰들이 에셀의 체포를 거부해요?”
“검사들입니다. 검사들 중에 대왕회 사람이 상당히 포진해 있었습니다. 법정에 세워도 판사 중에 대왕회 파가 없다고 장담을 드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흠 그래요?”
나는 에셀이 지난 10년 간 정부에 꽤 공을 들여 자기 사람들을 채워 놓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표면에 드러났던 비리들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었던 비결을 본 것 같다. 나는 리어츠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른 계획이 있습니까?”
“그 계획이 아직은..”
뒤에서 누가 리어츠를 불렀다.
“대표님!”
“아 여성당 대표군.”
리어츠와 세니는 인사를 나눴다.
“오늘도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따라오세요.”
리어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명령도 있었기 때문인지 세니를 따라갔다. 곤란한 표정을 짓는 것은 맞지만 왠지 싫어하는 것 같지 않은 것은 기분 탓일까. 나는 리어츠에게 실망했다. 리어츠에게 더 이상 이 일을 맡기면 안될 것 같았다.평범한 대왕의 일상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퇴근하기 전에 나는 시민회 대표 드레이돈을 불렀다. 드레이돈이 말했다.
“대왕님. 시민회 대표 드레이돈입니다. 부르셔서 왔습니다.”
“대왕실로 잘 오셨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저는 에셀을 제거 할 생각입니다.”
“아.. 알고 있습니다 대왕님. 대표님(귀족회 대표 리어츠)과 어느 정도 대화했으니까요. 몇 번 대표님의 부탁으로 에셀을 잡을 명분 만들기를 도와드렸습니다.”
“그렇습니까? 사실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 대표님은 일을 진행할 만한 의욕과 패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왠지 끌려 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크음...”
드레이돈이 짧은 탄식을 했다. 그리고 드레이돈은 말을 이었다.
“혹시 저에게 에셀을 잡으라고 명령을 내려주시는 겁니까?”
“잘 봤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구와 전쟁도 그렇고 에셀은 빨리 정리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드레이돈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대왕님. 저는 대표님처럼 대왕님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는 성격은 아닙니다.”
드레이돈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했다.
“계속 말씀해보세요.”
나의 말에 드레이돈이 말을 이었다.
“일전에 말씀드렸던 아르티웬과 하이온의 시민회 대표, 청년당 대표 취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셨으면 합니다.”
리어츠의 반대가 있었지만 나는 이 둘이 청년당과 시민회 대표가 되는 것이 별로 상관은 없다. 그보다 에셀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에셀 처럼 사고만 치지 않으시면 됩니다.”
“저는 자신의 보전을 위해 당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 둘은 금성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길 바랍니다.”
어쨌든 드레이돈이라는 사람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에셀은 가만히 놔두기에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리어츠도 믿기 힘들어진 지금 그나마 영향력 있는 드레이돈을 이용해서 에셀을 제거할 생각이다. 대왕회는 표면적으로 대왕을 지지하는 파이기 때문에 나와 에셀이 한패라고 생각되겠지만 이미 각 단체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나와 대왕회가 분리 된 상태라는 것을 시민들에게는 알릴 필요가 있다. 나는 드레이돈에게 대왕회와 내가 같은 한 패가 아니라는 것도 소문으로 흘릴 것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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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드레이돈에게 에셀을 잡으라는 명령을 내린 뒤 몇 일이 지났다. 2차 금성군 편성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곧 긴급 회의가 있을 예정이다. 나는 그 전에 에셀과 그 일당을 정리하고 편안하게 지구를 원정 보내고 싶었다. 새롭게 시민회 대표가 된 아르티웬과 청년당 대표가 된 하이온은 드레이돈과 나의 기대에 부흥하며 훌륭히 단체를 이끌었고 에셀의 세력인 인권보호당과 여성당을 적극적으로 견제했다.이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2차 금성군의 편성도 방해 받지 않고 순조롭게 끝나가고 있다. 긴급 회의도 곧 열린다. 이 긴급 회의가 끝나면 2차 금성군은 지구로 출격이다. 드레이돈은 긴급 회의 5일 전에 나를 찾아왔다.
“에셀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예.”
드레이돈은 자신이 조사한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드레이돈은 리어츠와 다르게 적극적이고 자신이 나서서 하는 경향이 강했다. 조사 결과를 들어보니 상황은 꽤 심각했다. 청년당과 시민회 대표가 인권보호당은 잘 막고 있었지만 여성당은 예측이 안되는 움직임으로 계속 빈틈을 노렸다고 한다. 특히 리어츠가 애매한 태도로 여성당을 봐주는 사태까지 벌어져서 일이 커졌다.
여성당의 움직임은 젊은 남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반전 주의를 내세워 일부 남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남자들 사이를 분열 시켰고 남자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뺏고(정확히 말하면 기존에 해도 되는 것들을 못 하게 막았다) 여자들에게는 나눠주는 시늉을 하며 여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금성의 여자들은 신기하게도 실질적으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여성당 대표 세니의 지지율은 절대적이었다.
이 갈등이 지구와의 전쟁 따위보다 금성의 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젊은 남성과 여성이 분열되고 중년 남성들, 즉 기성 세대 들이 젊은 여성의 편을 들며 세대 간 성별 간 갈등이 생겨버렸다. 드레이돈이 말했다.
“어쩌면 대표님도 여성당의 편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움직임이 에셀을 견제하기는커녕 여성당 대표 세니와 회담 시간만 길어지고 있습니다.”
드레이돈이 말을 이었다.
“더구나 각계 각층에서 분열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전파와 반전파, 여성과 남성,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 어쩌면 에셀이 노렸던 것은 사회 분란을 야기 시켜서 자신에게 들어오는 공격을 방어할 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얘기를 듣자 내가 말했다.
“시민회 전 대표의 추측은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왕님 말씀대로 에셀이 한 가지 이유로 이런 난리를 치지는 않았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다른 이유라면..?”
“그야 에셀 정도면 왕좌를 노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평소에 담아 두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에셀의 행동을 보면 자신이 왕이 되려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를 처형할 때 아무 망설임 없는 에셀의 그 섬뜩함은 그가 곧 나도 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나를 일시적으로 왕으로 내세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느낌 때문은 아니다. 확신이 드는 행동들이 있었다.지금 에셀이 진행하고 있는 일도 가만히 보면 나와 완벽하게 반대되는 일만 하고 있다. 나는 전쟁을 원하지만 에셀은 평화를 원했다. 나는 통상적인 사회 이념대로 인권을 생각했지만 에셀은 새로운 인권 개념(엄밀히 말하면 과거에 있었던 사상을 몇 개 꺼내온 것에 불과하지만)을 주장하며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물론 에셀이 직접 주장한 것은 아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그는 누군가를 시키고 일이 틀어지면 잘라버렸다. 아마 인권보호당과 여성당도 불리해지면 버릴 것이 뻔하다.드레이돈이 말했다.
“아무리 에셀이라고 해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왕족과 접점이 없는 가문입니다. 한번도 왕족과 혼인이 없었던 가문이에요. 갑자기 에셀이.. 그러니까.. 만약에 왕위에 혹시나 오르게 된다면 시민들이 인정하겠습니까?”
드레이돈의 뒷 말은 하면서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핀 듯 한데..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못 할 말은 아니었다. 예시를 든 것 뿐이니까. 어쨌든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예. 왜냐하면 이제 정상적인 왕족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저와 플리사 뿐 이거든요. 제가 '혹시나' 퇴위 되고 플리사가 '혹시나' 지구에서 죽거나 포로가 되면 남은 왕족은 없습니다. 귀족회 대표인 리어츠는 겸손한 성격이니까 왕위를 탐내지 않을 것이고 유력한 가문이야 많지만 지금 현재 에셀처럼 열심히 활동하며 인지도를 쌓지도 않았어요.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리어츠와 에셀에게 초점이 맞춰질 것입니다. 결과는? 뻔하죠. 앞에 말한 것처럼 리어츠가 왕좌에 오를 생각이 없을테니 정답은 에셀 뿐입니다.”
드레이돈이 말했다.
“대왕님의 의견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표님이 왕좌에 오를 생각이 없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나 참. 이럴 때 귀족회를 견제하는 겁니까. 이제 시민회 대표도 아니시잖아요.”
“견제가 아니라 우려입니다. 대왕님께서는 대표님을 너무 신뢰하고 계십니다. 물론 저에게 일을 돌리신 대왕님의 판단력은 충분히 날카롭다고 생각되지만 대표님도 충분히 의심하셔야 합니다. 물론 저도 의심하셔야 하고요. 왕의 자리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만약 대표가 지금까지 행동들이 전부 연기였다면 좀 무섭긴 하겠네요. 그저 선량하고 충성심 있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요.”
“대왕님이 보시기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같은 대표의 입장에서 리어츠를 상대해보면 만만한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한창 리어츠에 대해 토의하고 있을 때 경비병이 문을 두드렸다.
“대왕님 큰일났습니다... 지금 밖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경비병의 말을 듣고 드레이돈과 함께 뛰어 나갔다. 밖으로 나가 보니 여성당과 청년당이 패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보다는 신체 능력이 좋으니까 당연히 여성당이 일방적으로 맞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지만 여성당은 어디서 고용해왔는지 덩치 있는 남자들로 청년당에게 맞서고 있었다.
“여자들이 언제까지 남자들 때문에 희생 당해야 하냐!”
“대체 뭐를 희생 했다는거냐! 험한 일은 남자들이 다 하고 있는데!”
“남자가 그 정도 일에 죽는 소리 하냐?”
“그럼 너희 여자들은 징징 거리는게 당연한 권리야?”
“우린 너희들과 달라! 화내는 것이 당연해!”
중간 중간 말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하이온이 외쳤다.
“참을 만큼 참았다! 금성을 무너트리려는 여성당을 전부 죽여버려라!”
내가 멀리서 하이온의 외침을 듣고 드레이돈에게 말했다.
“방금 내가 잘 못 들었나?”
“아닙니다. 청년당 대표는 확실히 당원들에게 살인을 종용했습니다.”
“내가 나서서 말릴까요 아니면 그냥 둘까요.”
나의 비상식적인 질문에 드레이돈이 잠시 생각한 뒤 답했다.
“대왕님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흐음. 어떤 생각을 알게 되셨죠?”
“왠지 방금 유혈 사태를 보고 있으니 에셀을 무너트릴 비책이 떠올랐습니다. 대왕님도 혹시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네 바로 그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냥 다시 들어갑시다.”
우리가 돌아간 뒤 청년당과 여성당은 몇몇 사상자를 냈고 경찰이 출동하자 사태는 종결되었다. 하지만 도화선이 되기 충분한 사건이었다. 세니는 연설을 하는데 반 쯤 정신이 나간 듯 보였다.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데 남자들의 폭력성으로 인해 여성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했다. 사상자는 시위에서 최초로 청년당원에게 맞은 여성당원 단 한 명 뿐이고 나머지 사상자들은 여성이 고용한 덩치들과 청년당원들 뿐이었다. 확실히 폭력 시비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말싸움이었다.
하지만 세니는 마치 많은 여자들이 맞은 것처럼 연설했다. 실제로 붕대를 감고 있거나 누워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여자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네트를 통해 송출했다. 현장에서 봤던 사람들은 아니다. 보나 마나 여론을 선동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권보호당 역시 '젊은' 남자들의 폭력성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며 여성당과 같이 움직이는 것을 어필했다.
드레이돈은 나에게 5일 안에 에셀을 정리하고 기분 좋게 2차 금성군으로 참전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은 드레이돈이 2차 금성군 사령관으로 내정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드레이돈은 시민회 대표를 그만 두고 군대에 입대했다. 물론 군인당 대표 트리실의 보증 아래 병사로 시작한 것은 아니고 바로 장교로 임관되었는데 2일 3일 간격으로 진급해서 지금 계급은 소장이다. 장군이 되었으니 사령관직 요건은 갖추어졌다.
드레이돈은 하이온을 나에게 데려왔다.
“이제부터 에셀 토벌작전을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하이온은 험악한 표정으로 서있다. 그는 요 몇 일 간 여성당과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드레이돈이 설명했다.
“지금 에셀은 여성당과 인권보호당을 내세워 반란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에셀의 저택 주변에는 여성당원과 인권보호당원이 모여있습니다. 이미 시민회 대표 아르티웬이 둔기형 무기를 공수해 왔습니다. 시민회와 청년당의 인원들은 무기를 들고 에셀의 저택으로 처들어 가서 일망타진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내가 말했다.
“여론은 어떻습니까?”
드레이돈이 말했다.
“여론은 처음보다 많이 우리에게 기울었습니다. 유혈 사태가 여성당과 인권보호당의 민낯을 들어내게 만든 셈이죠. 그 뒤 있었던 연설도 너무 편향적이라 반발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에셀이 지원아래 여성당과 인권보호당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대중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에셀과 대왕님이 한 편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고요. 지금 에셀이 죽어도 대왕님이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에셀에게 줄 죄목들도 준비해두었습니다.”
“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있습니까?”
“딱히 준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요.”
“아주 좋습니다. 오늘 밤에 실행하도록 하세요.”
하이온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반드시 다 죽여버리겠습니다.”
드레이돈이 하이온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너무 흥분하지마. 쓸데없이 사망자가 나오면 안돼. 목표는 에셀 한 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이온이 과하게 흥분한 것 같지만 에셀을 죽이면 일단 걱정거리 하나 해결이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드레이돈의 보고는 나를 짜증 나게 만들었다.
“죄송합니다 대왕님. 실패했습니다.”
“....왜죠?”
“엉뚱한 사람들이 난입하는 바람에... 하이온이 그만 불리하다고 판단해서 무기를 거두고 철수해버렸습니다.”
“하아...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드레이돈의 설명은 이렇다. 밤에 예정대로 하이온이 시민회원과 청년당원을 이끌고 에셀의 저택에 당도하자 중년 남자들 수 천 명이 난입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여성당에 호의적이었던 사람들로 70세 이상 사람들이었다. 하이온은 빠지라고 했지만 물러서지 않았고 여성당원과 인권보호당원들이 중년 남자들에게 합류하면서 상황이 불리해졌다.결국 하이온은 물러났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에셀은 더욱 경계할 것이고 나와 드레이돈의 관계도 들통나 버렸다. 리어츠가 이 사실을 알자 마자 드레이돈을 내 앞에서 혼냈다. 왜 일을 함부로 진행해서 대왕님을 곤란하게 만드냐는 이야기였다. 사실 내가 허락했기 때문에 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어츠는 드레이돈만 나무랐다. 생각해 보면 중간에 난입한 기성 세대들은 리어츠와 같은 세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리어츠는 세니의 말에 넘어 간 것일까? 원래 리어츠는 신중한 인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일의 진행이 느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 몇 일 동안 일들은 리어츠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에셀은 이것을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권, 반전, 여성권, 전부 리어츠가 좋아할 만 단어들이다. 개인적인 마음의 충족을 위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단어들이다. 만약에 리어츠가 이런 것에 넘어간 것이라면 나는 리어츠를....
리어츠의 갈굼이 끝나자 드레이돈은 침통한 표정으로 대왕실을 빠져나갔다. 긴급 회의까지 4일 남았다. 나는 4일 안에 에셀을 제거해야 한다.
10000년 1월 1일 기준.
리디스 케언– 금성 여자. 29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화성 남자. 50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화성 여자. 37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화성 남자. 41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 화성 남자. 134세. 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 사망.
소년 – ?? 남자. 16세. 쓰레기장에 기절해 있었다. 리디스가 구조.
리튼 페일 – 지구 남자. 31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소장. 서부 사령관.
케테로스 미카드 – 금성 남자. 30세. 금성의 227대 왕
이리탈크 에실 – 지구 남자. 61세. 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 사망.
에더슨 베일렌 – 화성 남자. 85세. 642대 화성 대통령.
바이카 솔 – 화성 남자. 78세. 군부 총사령관. 육해군 총 책임자.
밀런 키웨이스 – 화성 남자. 97세.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피커리우 – 화성 남자. 107세. 내정부 장관.
호터. 페이오스 – 화성 남자. 69세. 치안부 장관.
파루스 데 칼트 – 지구 남자. 152세. 육군 대장. 사망.
레실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78세. 지구 92대 총수.
노아드 에실 지구 남자. 68세. 기업회의 간부.(돼지새끼)
덴슨 미렌 – 지구 남자. 54세. 기업회의 간부.(멍말이)
키들러 롤킨스 – 지구 남자. 107세. 기업회의 간부.(무표정씨)
아리카 베너리아 – 지구 여자. 43세. 뉴레든의 기자.(기자 양반)
다이타르 기란 – 지구 남자. 56세. 육군 중장. 사망.
루디샤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금성. 제조일 7757년 7월 23일.
가이론 에드버트 – 지구 남자. 31세. 생선가게 주인.
마리엔느 오센 – 지구 여자. 31세. 전업주부.
리노이 실리스 – 지구 여자. 31세. 중위. 142사단 34연대 21중대 소대장.
빌 시프 – 지구 남자. 61세. 대령. 97사단 5연대 연대장.(큰 바보)
흐라벤 피르시치 – 지구 남자. 소장. 63세. 97사단 전 사단장. 동부군 작전부장.(작은 바보)
안내원 – 지구 여자. 24세. 보험회사 안내원. 사망.
네라 울센 – 지구 여자 15세. 실종소녀. 사망.
셀로아 하린 – 지구 여자 120세. 복고주의자 조직의 일인자.(할망구). 사망.
유러스 디클레아 – 화성 남자 33세. 경찰관. 사망.
플리사 에토레브 – 금성 여자 39세. 금성군 총사령관.
리어츠 비란 – 금성 남자 79세. 귀족회 대표.
로드카 하디바이스 – 지구 남자 30세. 몬케르드 대학 조교. 남부반란군 대장.
카리탈크 스텔리온 – 지구 남자 64세. 페르샤 대학 철학교수.
피니르 블란 – 지구 남자 63세. 소장. 97사단장.
케리스 모나키아 – 지구 남자 101세. 대장. 국방부 장관.
위실론 크리데인 – 지구 남자 49세. 서부반란군 대장.
클로시아 레턴 – 지구 여자 53세. 동부반란군 대장. 탈옥수 출신. 사망.
메이클 로더슨 – 지구 남자 80세. 중장. 142사단장. 사망.
바티우스 엘로렌 – 지구 남자 90세. 소장. 13사단장.
지쿠 스톨스 – 지구 남자 62세. 소장. 89사단장. 사망.
티메로파 키나비치 – 지구 여자 91세. 중장. 제2공군단장.
웰론 와츠 – 지구 남자 49세. 소장. 105사단장.
가니로 루서스 – 지구 남자 61세. 상사. 보급관.
드레이돈 바롤트 – 금성 남자 56세. 금성군 제2총사령관.
레시아 로던 – 금성 여자 43세. 대령. 금성군 총사령관 보좌.
로제스 브테르트 – 금성 남자 26세. 일병.
노웬 아스테리사 – 지구 남자 119세. 대장. 남부 사령관.
콜트렘 길린시아 – 금성 남자 61세. 대령. 1차 금성군.
카사라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지구. 제조일 5224년 11월 21일.
로민 우세라 – 화성 여자 92세. 주부.
데이번 디클레아 – 화성 남자 30세. 경찰 지망생.
라디아네 키웨이스 – 화성 여자 45세. 영상 제작자.
우티슨 키웨이스 – 화성 남자 42세. 회사원.
게리아 메네스트 – 화성 여자 36세. 마르마스 기업 본사 안내원.
베르나사 키드로 – 화성 여자 89세. 마르마스 기업 본사 관리총감. 사망.
뤼덴 플리톤 – 화성 남자 74세. 유러스, 데이번의 아버지. 전업주부.
아로디아 맥켄 – 화성 여자 68세. 유러스, 데이번의 어머니. 육상코치.
누마 브레스터– 화성 남자 16세. 쓰레기처리장에 버려져 있던 정체 모를 소년이 아닌 마르마스 기업 회장.
바리넬 벤스 – 화성 남자 40세. 경찰.
소네샤 티르마크 – 화성 여자 38세. 경찰.
리브 팜 – 화성 남자 81세. NP4719 경찰서장.
에셀 볼레스 – 금성 남자 87세. 대왕회 대표
나르카샤 리덴 – 금성 여자 54세. 왕실 전속 요리사.
하이온 벨라티스 – 금성 남자 27세. 청년단 대표.
아르티웬 데라일 – 금성 남자 63세. 시민회 대표.
키시르 비웬 – 금성 남자 30세. 사랑호 탐사선 선장.
멜리네스 아나티세아 – 금성 여자 28세. 사랑호 탐사선 부선장.
레세라 카뉘아 – 금성 여자 34세. 향락비즈니스 단체 대표.
네르토 크말리안 – 금성 남자 90세. 귀족회 소속 문화후원당 대표.
트리실 로슨 – 금성 남자 83세. 원수. 귀족회 소속 군인당 대표.
에브리시 티날론 – 금성 남자 92세. 대왕회 소속 인권보호당 대표.
세니 라일 – 금성 여자 35세. 대왕회 소속 여성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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