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자들의 세상-33화 (33/86)

〈 33화 〉 포식자들의 세상 ­33­

* * *

나는 대왕이다.

늦은 아침에 여유를 부리며 일어나자 옆에 시종이 문안 인사를 올린다. 나는 적당히 대답하고 식사 준비를 물었다. 시종은 평소처럼 맛있는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호화로운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는 도중 리어츠를 만났다. 리어츠가 문안 인사를 올리며 오늘의 일정을 말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식당으로 갔다, 리어츠는 뭔가 더 할 말이 있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 하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물러났다.

식당에 도착하자 빵과 고기, 싱싱한 야채 샐러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옆에는 영양 캡슐 2알이 고급스러운 접시에 놓여 있다. 나는 고기를 한 점 입 안에 넣자 만족스러운 맛이 입과 뇌를 거치며 퍼졌다.

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자 어느 새 나타난 전속 요리사 나르카샤가 인사를 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뛰어난 음식 솜씨입니다.”

“대왕님께 칭찬을 듣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르카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30세 전후의 인간 남성의 허벅다리 살을 구어 보았습니다. 이번에 소스도 개발해보았는데 입안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아 아주 적당히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소스도 달콤하고 좋습니다.수고하셨어요.”

나와 나르카샤가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데 대왕회 대표 에셀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대왕님.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플리사님 께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까? 들어오라고 하십시오.”

곧 플리사가 들어왔다. 플리사가 정중히 인사했다. 내가 잠깐 눈치를 주자 에셀과 나르카샤가 고개를 숙이며 나갔다. 나는 플리사에게 말했다.

“지구침공일이 결정되었어. 누나를 총사령관으로 결정했고.”

플리사가 대답했다.

“그래? 뭐 예상했던 일이지만. 둘만 있으니까 바로 말을 놓는구나?”

“언제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편하게 누나처럼 대하라며?”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지만 그런 큰 결정을 동네 식료품 심부름 나가는 것처럼 말하지는 마. 기운빠지잖아.”

“알았어. 알았다고.”

플리사와 리어츠는 아마 내가 대왕 자리에 앉은 후 가장 많이 잔소리를 늘어놓은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그들의 충성심과 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가끔 귀찮다. 그런 점에서 나르카샤는 내 말에 복종하는 착한 친구다. 맛있는 식사는 덤이다.플리사가 물어 보았다.

“지구에서의 공작은 어때?”

“역시 복고주의자들이 가장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가 지구에 들어가면 안에서 호응해 줄 거야.”

“지구에는다른 세력도 있나?”

“꽤 많던데?”

“그래?어쨌든 알겠어. 너가 내린 명령에 따르도록 할게.”

“그래.고마워 누나.”

플리사는 인사를 하고 식당에 나갔다. 넓고 호화로운 공간에 나는 나 혼자 맛있는 식사를 여유롭게 먹고 있다. 텅 빈 공간에 나 혼자. 왕이 되고 10년. 명칭도 대왕으로 바꾸고 이것 저것 금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 공허함 만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역시 왕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하루 벌어 먹고 사는 그런 소시민이 어울린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행복에 겨운 소리라고 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왕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는 별로 믿음직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연히 왕족과 결혼하게 됐고 내가 태어나면서 왕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지만 당연히 공식적인 인정일 뿐 실제로 왕족들은 아버지와 나를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방금 나간 플리사도 방계 중에 방계라서 다른 왕족들이 무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웃긴 일이다. 권력과 인연이 없어야 정상인 나와 플리사가 한 명은 왕이 되고 한 명은 군부 이인자다. 이렇게 된 것에는 기존 왕족들의 어처구니 없는 뻘짓들과 궁중 암살 사건들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에게 있어서 이런 결과는 불행일 것이고나와 플리사에게도 좋은 결과는 아니다.

나도 그렇지만 플리사도 딱히 군인으로 출세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나와 플리사의 공통점은 하고 싶은 일도 별로 없는데 책임은 한가득인 자리를 억지로 떠안고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리어츠가 나를 찾아 왔다. 13번째 탐사선 준비가 끝나고 선장과 부선장을 만나 용기를 복 돋아 주라고 권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의 첫 스케쥴이라고 말했다.이 탐사 프로젝트는 나와 리어츠가 기획 한 것으로 지구와 화성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새로운 행성에서 새로운 금성인들의 삶을 찾아주고자 진행했다.

나는 다른 행성의 테라포밍이 인류의 기술력 부족이 아니라 의지가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리어츠는 내 명령에 따라 탐사선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가끔 무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인류가 살만한 가까운 행성을 알아보고 돌아오는 것으로 했는데 지금은 아예 거기서 사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왜냐하면 돌아올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운 행성 후보라도 기존 우주선으로는 시간 상 한계가 있다. 그래서탐사선의 출력을 최대한 높여 놓고 예비 연료도 충분히 비축해두고 예정된 행성으로 갔다가 오는 것을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탐사선이 돌아오지 못했다. 이 탐사선 실종 사건들 중 제대로 밝혀진 것은 4차 탐사선이다. 운석과 4차 탐사선의 운석 충돌인데 어떻게 부딫혀서 폭파 된 것인지 지금도 밝히지 못했다. 7차 탐사선부터 나와 리어츠는 우주를 너무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8차 탐사선부터는 탑승자에게 충분히 말해 주었다. 가면 돌아올 수 없다고. 그곳에서 살면서 금성인으로써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러 유전자 정보들을 같이 동봉해서 보냈다. 이 일을 13회 째 맞이하고 있다.

이번 탐사선의 이름은 사랑호. 선장과 부선장이 직접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사랑호,내가 딱히 그들의 작명 센스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알현실의 의자에 앉아 있자 13번째 탐사선의 선장과 부선장이 들어왔다. 젊은 남녀였다.

“가면 돌아올 수 없습니다. 각오는 되어있으시겠죠?”

내가 말했다. 리어츠는 너무 직설적으로 말한 것 아니냐며 나지막하게 얘기했지만 나는 들은 채도 안 했다. 선장이 얘기했다.

“저는 키시르 비웬이라고 합니다. 지구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왔습니다. 이런 기회를 얻게 얻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왕님. 대왕님의 질문에 답해드리면 우리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금성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아마 우리의 ‘후손’들이 금성인과 다시 만날 일은 먼 훗날, 어쩌면 1000년 단위로 먼 훗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금성인들이 우리가 세운 터전에 오실 것을 기다리겠습니다.”

옆에 여자 부선장이 이야기했다.

“자기야. 후손이라니 민망하게~ 킥킥.”

둘이 애정 어린 장난을 치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둘은 연인사이인가?”

“앗. 죄송합니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키시르가 미안해하자 내가 말했다.

“아니. 불쾌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물어 본 것이오.”

키시르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예. 우리는 곧 결혼 할 사이입니다. 결혼식은 사랑호에서 둘이서만 할 것 같습니다.”

“둘만의 결혼식이 될 거에요 대왕님.”

여자 부선장이 신나서 대답한다.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남달라 보였다. 리어츠가 ‘어흠’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한 소리 했다.

“대왕님 앞이니 자중하시오. 둘이 시시덕 거리는 것을 대왕님 앞에서 꼭 해야 합니까?”

“죄..죄송합니다!”

키시르와 여자 부선장이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소리쳤다. 내가 그런 리어츠를 제재했다.

“됐습니다. 별로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둘 다 그만하시고.. 그보다 부선장의 소개는 듣지 못 했습니다만.”

“죄송합니다. 저는 멜리네스 아나티세아라고 합니다. 저 역시 지구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멜리네스가 자기 소개를 하자 리어츠가 말했다.

“탐사선은 자동으로 항로를 설정했으니 알아서 갈 것입니다. 이번 탐사는 미지의 행성에 생명들을 어떻게 뿌리내리게 할 것인가를 목표로 잡았기 때문에 생명공학을 전공한 젊은이에게 맡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와 관련 된 더 많은 전공자들을 붙일 생각이었습니다만...”

리어츠가 말 끝을 흐렸다. 알고 있다. 전쟁을 하기 위해 금성의 모든 재원을 군사력에 투입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더 이상 탐사선에 쓸 금성의 여력은 없다. 따지고 보면 다른 은하계로 탐사선을 보내는 것은 지구와 화성의 패악질에서 벗어나고 싶은 금성인들의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첫 탐사선의 이름도 소망호였다. 우리 금성인들처럼 지구인, 화성인들과 연을 끊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빌어먹을 지구, 화성은 우리를 이렇게까지 몰아놓고 탐사선을 보내기 시작하자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고 있다며 비웃는 중이다. 그런 비웃음도 이제는 끝이다. 우리를 더 이상 비웃지 못하게 만들 셈이다. 훌륭한 선전포고도 끝났다. 그 후 시간이 꽤 흘렀지만 이제 실행에 나설 때가 되었다. 잠시 흥분했다. 이제 잠시 생각을 접고 본업으로 돌아가자.

“탐사 프로젝트는 당신들이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인 만큼 훌륭히 임무를 수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앞으로 키시르 선장과 멜리네스 부선장을 만날 일은 없게 되겠지만 자신들이 금성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결혼을 축하 드립니다.”

“대왕님! 정말 감사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키시르와 멜리네스가 감격하며 물러났다. 오후의 사소한 일정을 마치고 오자 플리사의 보고가 들어왔다. 화성에서 갑자기 외교 차관을 보냈다고 한다. 지금 호텔에 구류 중인데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지금 화성과 대적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럴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화성의 외교 차관과 대면하기로 했다. 어차피 화성의 외교부는 우리와 관계가 좋다. 화성 외교부 장관 밀런, 에프타인과 친분도 있으니 그들의 체면도 살려 줄 겸 만나기로 했다.

화성의 외교차관을 보자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화성의 외교 차관은 금성인이다. 한 마디로 우리를 떠볼 생각으로 보냈다는 느낌이다. 외교부의 저의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우리가 지구를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 줄 정도로 신뢰를 보냈는데도 이런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는 화성인들도 지구인들처럼 전부 잡아먹어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할 뿐이다.

어쨌든 심술이 난 나는 외교 차관을 전쟁터로 보내버렸다. 화성의 외교 차관은 어리버리하게 굴다가 전쟁터로 플리사가 끌고 갔다. 나는 눈을 감고 엘리베이터 타워에서 날아가는 우주선 무리들의 중계를 감상하다가 리어츠의 부름에 눈을 떴다.

“무슨 일입니까?”

“지구에 우주선을 보내고, 전쟁 준비도 일단락 된 시점입니다. 그리고 탐사선 프로젝트도 이제 마무리가 되었죠. 정말 훌륭히 대왕님의 책임을 다하고 계신다고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리어츠는 나를 칭찬했다. 나는 리어츠의 이런 행동에 대해 알고 있다. 나를 갑자기 칭찬하며 띄우는 행동은 그 뒤에 내가 싫어할 만 일을 보고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무슨 일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대왕님. 불미스러운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둘 다 대왕님께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그러자 곧 날씬하고 이쁜, 그러면서 옷차림이 야한 여성이 들어왔다. 나는 한눈에 봐도 그녀가 제2도시에서 온 것을 알았다. 저런 차림의 여성들의 직업은 뻔하고 대부분 향락 사업의 중심지 제2도시에서 살고 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는 제2도시 향락비즈니스의 대표, 레세라라고 합니다. 지금 제2도시에서 일하는 수 많은 여성들이 재정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기에 지원을 부탁 드리고자 알현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향락 비즈니스 대표. 사창가 창녀들의 조합을 나름 품위있게 표현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그러니 ‘향락 비즈니스’라는 말로 따로 부르고 있고 그녀들이 요즘 밀고 있는 단어다.금성에서 향락 비즈니스는 주요 산업 중 하나로 금성 재원의 3분의 1이 그녀들의 가랑이 사이에서 나오고 있으니 무시할 만한 사람들은 아니다. 덕분에 전쟁도 가능한 것이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혹시 전쟁 때문입니까?”

“예. 맞습니다 대왕님. 물론 대왕님도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만 우리의 주요 고객 층이 지구인과 화성인 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전포고로 인해 우리의 수입은 한 없이 추락 중입니다. 아니 추락수준이 아니라 그냥 수입이 없습니다. 수입이 증발해버렸습니다.금성인들은 우리 사업과 연이 없으니까요.”

그렇다. 아이러니 하게도 향락 비즈니스는 금성이 유일하게 합법인데 돈 많은 지구인과 화성인들이 줄기차게 사용하고 정작 돈 없고 가난한 금성인들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전쟁으로 행성 간의 교류가 끊긴 지금 그녀들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많이 힘드시겠죠. 금성도 지금 넉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지원을 한 번 하겠습니다.”

“한 번으로 부족합니다. 우리 뿐 아니라 보통 금성인들에게도 지원금을 하사해주셔서 제2도시에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전쟁 중에 그런 쪽으로 돈을 쓰게 할 수는 없습니다. 힘든 것은 물론 이해하고 있습니다. 2차, 3차도 여유가 나오면 지원 드릴테니 이만 물러가십시오.”

레세라는 어설프지만 경제의 활성화를 생각했던 모양인데 지금은 때가 아니다. 리어츠가 따라가서 뭔가 몇 마디를 더 하고 어깨를 토닥이며 보냈다. 잘 달래서 보낸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레세라를 돌려보내고 다음 알현할 인물이 들어왔다. 꽤 건장한 남성인 그는 안광이 빛나고 자신감에 차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왕님. 저는 드레이돈 바롤트라고 합니다. 현재 시민회의 대표입니다.”

시민회는 내 편이기는 하지만 다루기 힘든 단체다. 말썽의 중심이라고 해야 할까. 귀족회는 속으로는 역겨운 생각들을 일삼아도 겉으로는 점잖은 척이라도 하는데 시민회는 달랐다. 폭력적인 시위에는 항상 시민회가 중심이었다. 불만을 꼭 무언가 부수면서 표출해야 직성이 풀리는 과격한 녀석들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예 대왕님. 다름이 아니라 저는 이제 시민회 대표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인물이 시민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나는 귀찮음이 샘솟았다. 그래도 질문했다.

“그렇습니까? 시민회에는 자체적으로 투표권이 보장되고 있습니다. 투표로 뽑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나는 드레이돈이 싫다. 몇 년 전인가 금성인들에게만 적용되는 포식자 법을 반포, 적용했는데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인물이다. 포식자 법은 인간고기를 좀 더 잘 뜯어 먹기 위하여 이빨을 뾰족하게 개조하는 시술을 의무화하는 법인데 이 드레이돈이 결사 반대 했었다. 그때 리어츠가 무엄하다고 드레이돈을 혼내면서도 기뻐하는 얼굴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리어츠는 인간을 먹는 것 자체를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귀족회의 대표 리어츠를 믿는다. 나는 살면서 리어츠 만큼 선량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시궁창 같은 환경에서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잘 안다. 우주를 통틀어서 리어츠만큼 선량한 사람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가끔 내 의견에 너무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 알현과 다르게 리어츠가 적극 개입했다.

“이보게 드레이돈. 지금까지 각 대표들이 발을 맞추며 잘 이끌었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대표를 사임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무슨 사정이 있는 건가?”

드레이돈이 리어츠를 보며 말했다.

“전쟁이 났으니 시민은 시민의 의무를 다 해야 합니다. 시민회 대표로 편안하게 시민관 안에 틀어박혀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이번 전쟁에 참전하고 싶습니다. 금성인들을 얕보고 무시하는 지구인에게 잘못을 깨닫게 해주고 싶습니다.”

드레이돈의 말은 진심인 것 같다. 지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표정이 사나워진다. 금성인 치고 지구인에게 불만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리어츠를 보았다. 리어츠와 눈이 마주쳤다. 리어츠도 잠시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드레이돈에게 말했다.

“사임을 수용하겠습니다. 그럼 투표는 언제로 할까요? 후보들이 입후보도 해야 할 것이고 선거 유세도 해야 하고.”

“아닙니다. 대왕님.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갑자기 사임하는 저도 전쟁 중이니 이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실은 대왕님께 건의 드리고 싶은 내용은 이번에 시민회의 대표를 제가 찍어둔 사람으로 교체해 주십사 해서 이렇게 대왕님을 찾아 뵙는 것입니다.”

리어츠가 화를 내며 말했다.

“뭐라고? 이봐 드레이돈! 자네에게 실망했네! 자네 마음대로 후임을 임명하겠다니? 그것 월권 행위 아닌가?! 후계자 지명은 금성 왕족들의 고유 권한이야! 시민회를 지금 드레이돈 자네 것으로 사유화 시키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닌가?!”

“오해이십니다. 리어츠님. 제 아들을 임명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생각한 후임은 저와 완전 남남입니다. 다만 그의 뜻과 포부가 시민회에 어울리기에 이렇게 제안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서 드레이돈씨가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요?”

“예 대왕님. 아르티웬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청년단 대표로 하이온을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청년단 대표까지? 드레이돈 자네...”

리어츠가 다시 한 소리 하려고 하자 내가 말렸다. 그리고 드레이돈에게 질문했다.

“둘 다 어떤 사람입니까? 믿을 만 합니까?”

“네. 원하신다면 직접 만나 뵙게 해서 대왕님께서 판단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둘 이 대왕님의 기준을 잘 통과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그 둘도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귀찮아졌다.

“드레이돈씨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니 알겠습니다. 시민회와 시민회 소속 청년단의 대표는 드레이돈씨의 의견대로 하겠습니다.”

리어츠가 다가와서 말했다.

“대왕님. 그렇게 되는 대로 일을 처리하시면 안됩니다. 3000년 간 이어 내려온 법이..”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그것은 드레이돈의 말이 맞습니다.”

“예. 하지만 지금 시민회의 일은 전쟁과 무관한 일입니다. 원칙대로 해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드레이돈이 직접 전쟁에 참가하니까 아주 관련 없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드레이돈이 개인적으로 전쟁에 참가하는 것인데 왜 시민회의 대표를 뽑는 것에 드레이돈의 입김이 작용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일은 완전히 따로 봐야 하는 일입니다.”

나는 리어츠의 의견에 동의하기로 했다. 내가 드레이돈을 보며 말했다.

“전쟁에 참가하겠다는 드레이돈씨의 의기는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원칙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나는 시민회와 청년단 대표를 투표로 정하도록 명령하는 바입니다. 그 이상의 말은 받지 않겠습니다.”

드레이돈이 말했다.

“대왕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네요.”

드레이돈은 인사를 하고 나갔다. 표정을 보면 실망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다른 수가 있거나 아니면 그냥 찔러본 것이거나 그런 모양이다. 왕이 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상대방이 나를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뭐라 할 수 없겠지만 나를 보는 눈빛은 언제나 비슷했다. ‘어떻게 나올까?’ 이 부담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나를 볼 때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는 사람은 두 사람 정도다. 리어츠와 플리사. 리어츠는 마치 내 아버지라도 되는 것처럼 나에게 애정을 보이고 있다. 내가 엉뚱한 짓이라도 하는 것 같으면 불안해 하며 걱정하는 것이 잘 드러나는 사람이다. 플리사는 그냥 사촌 동생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이도 그렇고 누나 뻘인 사람인데 그냥 동생 보는 듯한 눈빛이다. 무관심한 그 눈빛이 오히려 나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내가 처음 왕 후보에 올랐을 때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케테로스가 누구야?’ 였다. 왕족 끝머리에 간신히 입성한 나를 보고 사람들은 플리사로 기울었지만 그 때는 없었던 대왕회의 수장 에셀이 나를 강력하게 지원했다. 명망 있는 귀족인 에셀은 부유했던 모양이다. 돈으로 많은 귀족과 시민단체들을 포섭해서 나를 왕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대왕회를 창설했다.

여기까지 보면 에셀은 나를 왕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지만 그 뒤 행보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그는 ‘어떻게 나올까’ 눈빛의 대표격인 사람이다. 언제나 나에게 안건을 제시하거나 칭찬하거나 인사를 건낼 때 나를 시험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물어보면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 그리고 요즘 들리는 소문으로는 에셀이 끊임없이 부정부패를 일삼고 자기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에셀은 조만간 손 봐줘야 하는 인물일 것이다.

이런 무의미한 의심이나 하고 있다. 이것이 왕의 자리다. 왕위에 오른지 10년 간 누군가의 잘못을 따지고 누군가의 평가를 애써 외면하면서 모른 척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 와중에 지구인의 무시는 덤이다. 이리탈크라는 외교관은 금성인을 조상으로 둔 주제에 금성에 오기만 하면 사건 사고를 끊임없이 일으키고 다니며 공분을 샀다. 이정도면 금성인에 대해 잘 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금성인들이 열 받을지 연구하고 있나 싶을 정도다.

나는 리어츠에게 명령해서 에셀에게 사람을 붙여 두었다. 반역 모의라도 했으면 그대로 잡아 들일 예정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을 붙인 시점에서 에셀은 자중하는 것인지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그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이것 조차 에셀이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나는 내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짐을 느꼈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은 처음에는 쉽다. 하지만 그 의심을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게 되면 자신의 영혼이 피폐해져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플리사에게 몇 년 전인가 왕의 자리에 대해 말하면서 플리사가 되는 것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 플리사의 말이 인상 깊었다.

“하기 싫어. 왕 같은 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도 모르게 웃었지만 플리사도 진짜 왕이 하기 싫은 모양이다. 나도 하기 싫은데.

“대왕님. 무언가 더 하실 일이 있으신가요? 오늘의 일정은 끝났습니다.”

귀족회 대표 리어츠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 잠시 생각에 빠졌네요. 그만 들어가 보세요.”

“예.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리어츠는 먼저 갔다. 내가 잠시 리어츠를 불렀다.

“잠깐만요 리어츠. 에셀에 대한 정보는 뭐 나왔습니까?”

리어츠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눈을 감고 바이오 칩으로 몇 가지 체크를 하더니 나한테 다가와 소근 거렸다.

“아직은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밝혀 내서 대왕님의 걱정을 씻겨 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리어츠 역시 에셀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싫어한다기보다 요즘 에셀의 존재가 부담이 되고 있고 이상한 짓이라도 할까 봐 미리 가지를 치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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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년 1월 1일 기준.

리디스 케언– 금성 여자. 29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화성 남자. 50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화성 여자. 37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화성 남자. 41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화성 남자. 134세.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사망.

소년 – ?? 남자. 16세. 쓰레기장에 기절해 있었다. 리디스가 구조.

리튼 페일 – 지구 남자. 31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소장. 서부 사령관.

케테로스 미카드 – 금성 남자. 30세. 금성의 227대 왕

이리탈크 에실–지구 남자. 61세.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사망.

에더슨 베일렌 – 화성 남자. 85세. 642대 화성 대통령.

바이카 솔 – 화성 남자. 78세. 군부 총사령관. 육해군 총 책임자.

밀런 키웨이스 – 화성 남자. 97세.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피커리우 – 화성 남자. 107세. 내정부 장관.

호터. 페이오스 – 화성 남자. 69세. 치안부 장관.

파루스 데 칼트–지구 남자. 152세.육군 대장.사망.

레실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78세. 지구 92대 총수.

노아드 에실 ­ 지구 남자. 68세. 기업회의 간부.(돼지새끼)

덴슨 미렌 – 지구 남자. 54세. 기업회의 간부.(멍말이)

키들러 롤킨스 – 지구 남자. 107세. 기업회의 간부.(무표정씨)

아리카 베너리아 – 지구 여자. 43세. 뉴레든의 기자.(기자 양반)

다이타르 기란–지구 남자. 56세.육군 중장.사망.

루디샤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금성. 제조일 7757년 7월 23일.

가이론 에드버트 – 지구 남자. 31세. 생선가게 주인.

마리엔느 오센 – 지구 여자. 31세. 전업주부.

리노이 실리스 – 지구 여자. 31세. 중위. 142사단 34연대 21중대 소대장.

빌 시프 – 지구 남자. 61세. 대령. 97사단 5연대 연대장.(큰 바보)

흐라벤 피르시치 – 지구 남자. 소장. 63세. 97사단 전 사단장. 동부군 작전부장.(작은 바보)

안내원–지구 여자. 24세.보험회사 안내원.사망.

네라 울센–지구 여자15세.실종소녀.사망.

셀로아 하린–지구 여자120세.복고주의자 조직의 일인자.(할망구).사망.

유러스 디클레아–화성 남자33세.경찰관.사망.

플리사 에토레브 – 금성 여자 39세. 금성군 총사령관.

리어츠 비란 – 금성 남자 79세. 귀족회 대표.

로드카 하디바이스 – 지구 남자 30세. 몬케르드 대학 조교. 남부반란군 대장.

카리탈크 스텔리온 – 지구 남자 64세. 페르샤 대학 철학교수.

피니르 블란 – 지구 남자 63세. 소장. 97사단장.

케리스 모나키아 – 지구 남자 101세. 대장. 국방부 장관.

위실론 크리데인 – 지구 남자 49세. 서부반란군 대장.

클로시아 레턴–지구 여자53세.동부반란군 대장.탈옥수 출신.사망.

메이클 로더슨–지구 남자80세.중장. 142사단장.사망.

바티우스 엘로렌 – 지구 남자 90세. 소장. 13사단장.

지쿠 스톨스–지구 남자62세.소장. 89사단장.사망.

티메로파 키나비치 – 지구 여자 91세. 중장. 제2공군단장.

웰론 와츠 – 지구 남자 49세. 소장. 105사단장.

가니로 루서스 – 지구 남자 61세. 상사. 보급관.

드레이돈 바롤트 – 금성 남자 56세. 금성군 제2총사령관.

레시아 로던 – 금성 여자 43세. 대령. 금성군 총사령관 보좌.

로제스 브테르트 – 금성 남자 26세. 일병.

노웬 아스테리사 – 지구 남자 119세. 대장. 남부 사령관.

콜트렘 길린시아 – 금성 남자 61세. 대령. 1차 금성군.

카사라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지구. 제조일 5224년 11월 21일.

로민 우세라 – 화성 여자 92세. 주부.

데이번 디클레아 – 화성 남자 30세. 경찰 지망생.

라디아네 키웨이스 – 화성 여자 45세. 영상 제작자.

우티슨 키웨이스 – 화성 남자 42세. 회사원.

게리아 메네스트 – 화성 여자 36세. 마르마스 기업 본사 안내원.

베르나사 키드로–화성 여자89세.마르마스 기업 본사 관리총감.사망.

뤼덴 플리톤 – 화성 남자 74세. 유러스, 데이번의 아버지. 전업주부.

아로디아 맥켄 – 화성 여자 68세. 유러스, 데이번의 어머니. 육상코치.

누마 브레스터– 화성 남자 16세. 쓰레기처리장에 버려져 있던 정체 모를 소년이 아닌 마르마 스 기업 회장.

바리넬 벤스 – 화성 남자 40세. 경찰.

소네샤 티르마크 – 화성 여자 38세. 경찰.

리브 팜 – 화성 남자 81세. NP4719 경찰서장.

에셀 볼레스 – 금성 남자 87세. 대왕회 대표

나르카샤 리덴 – 금성 여자 54세. 왕실 전속 요리사.

하이온 벨라티스 – 금성 남자 27세. 청년단 대표.

아르티웬 데라일 – 금성 남자 63세. 시민회 대표.

키시르 비웬 – 금성 남자 30세. 사랑호 탐사선 선장.

멜리네스 아나티세아 – 금성 여자 28세. 사랑호 탐사선 부선장.

레세라 카뉘아 – 금성 여자 34세. 향락비즈니스 단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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