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자들의 세상-32화 (32/86)

〈 32화 〉 포식자들의 세상 ­32­

* * *

아침이 되자 바이오 칩이 뇌로 직접 경고음을 보낸다. 적당히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면 나는 적당히 일어난다. 사실 어제 나는 잠을 거의 잘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지하의 도축장이 생각났다. 역겨운 비린내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들, 자신이 화성을 구했다는 자부심에 차 있는 아킬로 회장.

정상적인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던 어제였다. 외교부에서 밀런과 유리치의 에프타인을 둘러 싼 광기 어린 싸움도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고성이 오고 가는 교통사고 현장도 어제의 소름 돋는 풍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는 아버지가 웃으며 아침을 차려준다. 옆에는 누마가 여전히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이제는 여유가 생겼으니 밥을 급히 먹지 않아도 되는데 버릇이라도 들었는지 양손 가득 고기와 빵을 쥐고 입은 쉴 새 없이 음식을 씹고 있다.

보기 흉한 광경이었지만 역겹다 거나 불쾌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아니 나는 지금 그 어떤 것을 보더라도 아무런 감흥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 한다. 어제 마르마스 기업 본사의 도축장을 보면 누구라도 나처럼 될 것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마르마스 기업은 어떠냐. 적응할 만 하냐?”

어제 일을 얘기할 수는 없다.

“아직 완벽히 적응하지는 않았어요.”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다. 나는 너희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해서 마르마스 기업을 별로 신용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 한 거니까 열심히 하거라.”

아니.. 어쩌면 엄마의 판단이 맞은 것 일지도 모른다. 마르마스 기업은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중이다. 누마의 가족 상봉을 도와주겠다는 생각도 사라져버린 채 나는 이 충격적인 사실을 외교부 장관 밀런에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단편적인 부분만 본 것이지만 밀런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심코 식탁의 고기를 보았다. 어제 보았던 소년이나 소녀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자 속에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누마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기와 빵을 입에 넣는다.

화장실에서 볼 것을 다 본 후 누마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어제 일을 토대로 추리를 했다. 누마는 마르마스 기업에서 탈출한 ‘식품’일 가능성이 있다. 나는 아버지에게 속이 좀 안 좋다고 둘러 댄 후 방에서 쉬었다. 조금 진정이 되자 나는 한창 먹고 있는 누마를 불렀다.

누마도 이제 이 집과 나, 가족들이 익숙해졌는지 밥 먹는 것을 멈추고 내 방으로 따라왔다.

“물어볼 것이 있다. 솔직히 대답해 줄 수 있겠니?”

“뭔데요.”

“혹시 너.. 마르마스 기업에 대해 들은 것이 있니?”

단도직입적으로 마르마스 기업에서 탈출했냐고 물어보기보다 들은 적이 있냐고 돌려서 물어보기로 했다. 누마는 알기 힘든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그래도 전보다는 낫다. 대답을 해주었다.

“네.”

“그렇구나. 역시...”

나의 생각이 맞았다. 나는 좀 더 자세히 질문해 보기로 했다.

“들은 사실이 어떤 건데?”

“아킬로 회장의 뒤를 이을 사람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게 누군데?”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거리에서 주워 들었어요.”

“그러냐..”

좀 더 직접적으로 물어볼까? 아직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누마와 신뢰가 많이 쌓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알아야 했다.

“누마. 솔직히 얘기해줄래? 너는 마르마스 기업에서 탈출 한 거니?”

누마는 나를 보았다. 여전히 표정이 없다. 동요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누마는 높낮이가 거의 없는 투로 대답했다. 내가 말했다.

“왜 탈출 한 거니? 누가 괴롭혔어?”

누마의 이야기에 따라 외교부 장관 밀런에게 이야기 해야 하는지 숨겨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바이오 칩은 열심히 제 역할을 하며 누마와 나의 대화를 저장 중이다.

“네. 지루해서요. 곧 돌아갈 거에요.”

“지루하다고? 그래서 해가 바뀔 정도로 거리에서 지낸 거야? 좀 더 결정적이고 섬뜩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이 틀렸니?”

“해가 바뀌었다고 해봐야 3달도 안 됐잖아요.”

“나는 3달 간 밖에서 먹고 자고 하라고 하면 못 해. 불가능이야.”

“익숙해지면 할 만 해요.”

누마의 말이 트인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아직 가출의 이유를 제대로 들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묘하게 누마의 기분이 나빠 보인다.

“왜 가출했는데? 부모님은 누구시고.”

누마가 곧 바로 대답했다.

“지루해서 잠깐 가출한 것 뿐이에요. 부모님은.. 이름을 말한다고 아실지 모르겠네요.”

“경찰이니까 충분히 알 수 있어. 그런데 나중에 얘기해야겠구나.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거든.”

나는 지각을 할 수 없어서(지각만 해도 잡아먹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솔직히 두려웠다) 마르마스 기업으로 출근했다. 베르나스에게 출근 보고를 하고 오늘의 경비 구역을 할당 받았다. 다행히 지하 도축장은 아니고 회사 정문이다. 근무표에서는 내가 오늘 정문 경비만 근무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편해서 좋기는 하지만 건물 안쪽 엘리베이터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침이 삼켜졌다. 엘리베이터 문만 봐도 긴장된다. 점심이 되자 베르나스가 나한테 오며 얘기했다.

“적응은 좀 되었어요?”

“그럭 저럭이요.”

“어제 회장님은 초장부터 신입에게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어요.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어제 본 광경은 마르마스 기업을 대표하는 그런 광경은 아니에요. 싫어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아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마르마스 기업은 훌륭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요. 그러니 너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입 다물고 일이나 하라는 것이다. 허튼 짓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해석해도 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를 전달했다.

일상적이었던 마르마스 기업 근무를 마치고 집에 다시 돌아가 누마를 보았다. 누마는 내가 아침에 했던 질문 때문인지 약간 움츠려 든다. 내가 물었다.

“가출한 이유가 정말 지루해서야? 새로운 자극을 원하기라도 한거야?”

누마가 결국 대답한다.

“도망치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아니 왜?”

여기서 나는 승부를 걸었다. 왜 라고 물어보았다. 누마가 지하 도축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마르마스 기업을 어느 정도 흔들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바이오 칩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 누마의 고백 들은 나에게 저장되고 있다.

“왜냐하면 제가 마르마스 기업의 후계자이기 때문이에요. 그 사실에 나는 질려버렸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게 무슨 의미니?”

“의미라뇨? 말 그대로 제가 아킬로 회장 다음 회장으로 내정된 사람이에요. 아킬로 회장이 죽으면 제가 바로 마르마스 기업을 이끌 사람이라고요.”

“에이. 내가 들은 바로는 실적이 우수한 사람을 후계자로 정한다는데.”

“이번에 회사 내규가 바뀌었어요. 물론 관심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모르고 있겠지만요.”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소년이 어떻게 회장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당연히 누마가 고기가 될 운명이라고 생각해서 탈출한 것이라고 봤는데 좀 더 사정이 있는 것일까? 내가 물었다.

“도망은 혼자 힘으로 한 거니?”

“아뇨. 도와준 사람이 있어요.”

“혹시 누군지 알 수 있을까?”

“유러스 형은 왜 계속 질문만 해요?”

형이라고 불러주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는 없으니 약간의 사실을 더해서 거짓말 하기로 했다.

“그 다름이 아니라 내가 이제는 마르마스 기업의 경비로 취직했기 때문에 좀 회사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그래. 회장님도 탈출한 너를 신경 쓰시더라고. 직접 봤어. 너를 찾느라 엄청 고생하고 계시던데?”

“그런가요. 하긴 제가 필요할 거에요. 원래는 제가 마르마스 기업의 회장이 될 예정이었거든요.”

누마는 나보다 더 거짓말하는 느낌이다. 곧 회사를 물려받는다니? 아킬로 회장은 그럴 낌새가 전혀 없었다. 화성의 언론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럴 낌새라도 있었다면 사람들이 알아차렸을 것이다. 마르마스를 견제할 만한 기업은 없지만 그래도 화성에 기업이 마르마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마르마스 기업의 자리를 노리는 여러 기업들이 이 사실을 알아내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너무 조용하고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누마의 말이 거짓말처럼 보였다.

“곧 이어받는다고 했는데 그게 언제였는데? 정확한 날짜는 정해졌던거야?”

“10000년 1월 1일 제가 취임할 예정이었어요.”

“정말이야?”

지하 도축장도 미칠 노릇인데 누마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이제는 화성에 어떤 것도 믿기 힘들어질 것 같다. 마르마스 기업은 얼마나 많은 비밀들을 아무도 모르게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말했다.

“누마야.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너는 너무 책임감 없이 가출한 것 같다. 아킬로 회장이 애타게 찾는 것도 이해가 가.”

"곧 돌아갈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너무 휘둘렸어요. 마치 회장이 되는 것이 불행한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누마가 후계자라는 사실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일단 누마의 안심과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해가 간다고 했다.그리고 옆에서 누가 탈출을 부추긴 모양이다. 누군가 누마가 회장이 되지 못 하도록 견제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나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알아낼 더 중요한 정보들이 있다.이제는 도축장에 대해 물어 볼 차례다.

“혹시 너가 먹는 고기가..”

“친구들인 것 말인가요?”

“??”

“당연히 알고 있죠. 화성, 지구, 금성에 유통되고 있는 고기의 대부분이 저와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의 고기 인걸요. 아마 지구산 고기가 그나마 동물 고기일 거에요. 소 라던가 돼지 라던가.”

나는 방 의자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알면서 먹고 있었던 거야?!”

“유러스 형. 좀 조용히 하세요.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인데. 들키겠어요.”

“아니. 정말 말이 안 돼서 그러지. 너가 차기 회장이라는 사실도 믿기지 않는데 지하 도축장의 존재와 그 고기의 진실도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다고?!”

“유러스 형. 개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에요. 애초에 살아가라고 만든 존재들이 아니라니까요? 걔들에게 권리가 있다고 보세요?”

“그럼 너는 어떠냐. 너도 고기로 태어난 것 아니야?”

“아니요. 저는 확실하게 후계자로 태어났어요.”

“아킬로 회장의 아들이라도 돼?”

“대충 비슷하네요. 나는 아킬로 회장의 세포로 만들어졌으니까.”

침착하고 당연하다는 반응에 나는 질린 채 말했다.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 고기감 이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냥 속인 거 아닐까?”

“아니요. 저는 확실히 특별 취급 받았어요. 독방이었고 물론 고기 아이들과 같이 놀고 배웠지만 아킬로 회장님도 자주 오셔서 대화하고 그랬거든요.”

“그것이 너가 후계자라는 이유야? 그냥 너가 도망갈 마음이 안 생기도록 잘해준 것일지도 모르는데.”

“믿지 못 하신다면 저도 더 이상 할 말은 없어요. 증거를 제출 할 수도 없으니까요.”

지금도 믿지 못 하고 있지만 말투를 보면 확실히 내가 기업에서 본 아이들과 다르긴 하다. 기존의 아이들과 다르게 어딘가 맹해 보이는 그런 포인트가 없다. 말도 똑부러지게 하는 것 같고.

“이제는 돌아갈 때가 되었죠. 회장님을 너무 걱정 시킨 것 같네요. 형 말이 맞아요.”

누마는 그렇게 말하고 내 방을 나갔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누마의 말을 못 믿겠다. 누마의 주장대로라면 마르마스 기업은 지금까지 있었던 전통적인 후계자 선정 방식을 근본부터 바꿨다는 이야기다.

만약 그렇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아직 어린아이다. 게다가 이번 해 1월 1일에 취임한다고 했으면 누마가 16살에 회장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더욱 믿기 힘든 이야기다.

몇 일이 지나고 지구는 더욱 난리가 났다. 2차 금성군이 들어가 지구 동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뉴스였다. 이 소식을 접하는 화성인들은 저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금성이 좀 더 지구를 혼내주었으면 한다고 얘기 한다.

남의 일이기는 하지만 금성은 단순히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지구의 인간들을 잡아먹으려고 간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써 좀 오싹한 이야기인데 화성 사람들은 오로지 지구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만약 지구가 끝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금성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생각도 이제 접어둬야겠다. 곧 출근 시간이다. 여전히 나는 지하 도축장 견학 이후로 고기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유러스. 어디 아프니? 고기를 또 안 먹는구나.”

“괜찮아요. 요즘 고기가 입에 안 맞아서.”

나는 그런 말을 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뒤를 보니 내 동생 데이번이 내 고기 까지 입에 넣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마르마스 기업에서 몇 일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도축장 경비는 첫 날 이후 두 번을 더 나갔는데 점점 적응이 돼서 이제는 피 비린내도 익숙해져 헛구역질 하는 것도 사라졌다. 이대로 더 적응하면 고기도 다시 먹을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 든다.

“자 이거 드세요.”

“감사합니다.”

베르나스가 갑자기 커피를 준다. 처음에는 그렇게 빡빡하게 굴고 기분나빴던 사람이었으나 친숙해지니 꽤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줄담배와 표정이 다는 아닌 사람이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아킬로 회장을 찬양하는 느낌은 여전히 역했다. 지하 도축장의 역겨움과 비슷한 수준이다.

오늘은 퇴근하면 외교부 장관에게 들를 생각이다.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가 온 것 같다. 누마의 입장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전부 얘기해야겠다. 어쩌면 차기 회장은 누마의 비참한 현실을 버티기 위한 망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으로 누마를 위한 길이라면 현실을 깨닫게 하고 바르게 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외교부 장관은 아주 부자고 옛날에도 노숙자였던 아이를 길러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외교부 장관 밀런에게 누마를 맡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런이 정상은 아니지만 부인은 정상일 수도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 나는 퇴근 준비를 위해 탈의실에 갔다. 옷장에...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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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어딘가 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베르나스가 묶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묶인 채로 몸에 힘을 주며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했지만 밧줄은 단단하게 묶여있었다. 앞에는 아킬로 회장이 혼자 내리쬐는 조명 아래 서 있었다. 분노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베르나스. 너가 설마 누마를 탈출시켰을 줄이야. 배신감이 이만 저만이 아니야.”

베르나스가 범인이었나? 하긴 도축장에서도 반응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었다. 아마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에 누마를 탈출시켰나 보다. 그렇다면 역시 누마는 고기감이라는 이야기겠지. 베르나스는 체념했는지 사실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전 회장님을 말리고 싶었어요.”

“뭐. 이 축산업 말인가?”

“축산업이 아니라 회장님의 엉뚱한 이식 계획을 말하는 거에요.”

“하아.. 너는정말 엉뚱한 곳에서 핀트가 어긋나는구나?”

아킬로는 한 숨을 쉰다. 베르나스가 말했다.

“전 아킬로 회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반인륜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돼요. 아킬로 회장님은 화성의 영웅이지만 영웅이라고 해서 도를 넘는 짓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그 이식 계획은 안전한거에요? 회장님의 생각과 다르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아킬로는 단숨에 베르나스가 묶인 의자로 걸어왔다. 꽤 빠른 걸음이었다. 그리고 총을 베르나스의 복부에 대고 말했다.

“잔소리도 아니고 그냥 짜증 나는 소리일 뿐이야.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더 이상 방해는 사양이야.”

탕탕탕.

총소리가 울려퍼지고 베르나스는 거친 숨을 쉬며 자신의 복부에 나있는 구멍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죽었다. 동공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극도의 공포감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간신히 힘을 짜내며 질문했다.

“회장님..저는 왜...?”

“왜긴 왜야. 밀런이 보낸 쓰레기 주제에.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있지.”

밀런이 보낸 쓰레기? 언제 알아 챈 걸까. 경비는 처음에야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아킬로 회장도 처음엔 다 저런다고 했으니 어색한 반응은 아니었다. 그 뒤로 꽤 성실하게 임했기 때문에 건수가 잡힐 만한 짓도 없었다. 나는 아직 아무런 정보도 밀런에게 않았다. 밀런을 만난 적도 없다.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어둠 속에서 한 명이 더 걸어왔다. 누마였다.

“미안해요 유러스 형. 아무래도 사실을 말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누마.. 너..?”

아킬로 회장이 말했다.

“누마의 가출을 부추긴 것은 베르나스였고 누마를 몰래 보호하며 정보를 캐낸 것은 바로 너! 유러스 자네야. 죽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지? 이것저것 우리 기업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많으니까.”

“잠깐만요! 전 그저 어쩔 수 없이..”

내가 변명을 시작하는데 누마가 아킬로 회장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아킬로 회장은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누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곧 둘은 투명한 타원형 캡슐에 들어갔다.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는 큰 캡슐이다. 그리고 위의 관을 꺼내 머리에 썼다.

“누마에게 들었다. 누마가 후계자라는 사실을 전혀 믿고 있지 않았다며?”

“그거야..누구라도 믿기 힘든 사실일 겁니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버릇없는 녀석. 사람을 너무 의심만 해서는 안돼. 알겠나?”

아킬로 회장은 그렇게 얘기하고 신호를 보내자 캡슐에서 갑자기 엔진 잡음 같은 진동이 나기 시작했다. 이 진동음은 귀에서 웅웅웅 울리면서 나를 괴롭게 했다. 한 동안 소리는 이어지고 곧 소리가 점차 사라졌다. 누마가 누웠던 캡슐이 열렸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야 할 것 아니야.”

누마가 말했다. 연구원 같은 사람들이 와서 타원형 캡슐을 열고 아킬로 회장을 살핀 후 얘기했다.

“전 아킬로 회장님은 사망하셨습니다.”

“그래상관없어.이제 내가 아킬로니까.”

누마가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킬로는 공식적으로 사망으로 처리하고 뒤는 누마가 이었다고 공표하도록 해. 어차피 간부들은 다 아는 사실이니까 혼란은 없을거야. 간부들이 뒷 수습을 해 줄거다. 그리고 이제 나는 누마 브레스터니까 내가 아킬로라고 해도, 다들 나를 누마로 부를 수 있도록.”

“예. 누마 회장님.”

나는 황당했다. 정말 누마가 아킬로인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혼잣말로 물어보자 누마가 말했다.

“멍청하기는. 내가 아킬로라니까. 나의 기억을 누마에게 옮긴거야. 몸은 젊어지고 기억은 그대로인거지. 아직도 이해가 안가?”

그러자 내가 말했다.

“아니..그것이... 기억이 옮겨졌다는 것이 정신도 옮겼다는 이야기인가해서..”

“물론 정신도 옮겼지.”

“그럼 의식은 누마 그대로인 것 맞아? 아킬로 회장의 기억만 이식한 것 아니야?”

“....나는 아킬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누마로 활동 할 거야. 지금은 좀 어색하지만 곧 적응 할 거다.”

“말이 안돼. 내가 보기에 그저 아킬로 회장은 허무하게 죽고 누마만 살아있는 것 같은데. 아킬로의 기억만 옮겨진 누마.”

“닥쳐!! 나는 아킬로야!”

갑자기 누마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미안!! 진정해! 내가 실언 했어. 너는 아킬로야. 아니 아킬로 회장님. 죄송합니다.”

“흥.이미 늦었어. 너는 너무 사람 말을 믿지 못해. 내가 후계자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고 고기감 중 하나로 생각했지? 정말 무례해서 기분 나빴어.”

“그건 누마의 기억이잖아? 너가 아킬로라면 누마의 기억으로 기분 나빠 할 리가 없잖아?”

“....정말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유러스 형.”

“아니 형이라고 부르면..”

나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연구원 한 명이 내 목에 주사를 놓았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어디론가 끌려갔다. 나는 어딘가에 누워있다. 무슨 약을 맞은 것인지 몽롱하고 의식이 흐리다. 눈은 분명 보이는데 막이라도 씌어 진 것처럼 약간 불투명하게 보인다. 천장에는 여러 칼이나 톱들이 매달려 있다.

곧 나의 팔의 일부분이 잘렸다. 고통은 없었다. 조각나고 있는 나의 팔을힘 없이 쳐다보고 있으니 익숙한 칼과 톱의 움직임이 나의 팔을 조금씩 발라 뼈만 남게 되었다. 사람의 몸은 이토록 쉽게 잘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뒤 오른쪽 팔도 다리도 점점 나의 몽롱한 의식처럼 멀어져 갔다.

내가 인식하는 나의 팔 다리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몽롱한 의식은 고통도 없이 그저 나의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바라보게 만들 뿐 이었다. 고통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점점 눈이 감기는 것은 의식할 수 있었다. 팔 다리가 사라지고 피가 빠지면서 점점 눈이 감긴다. 칼과 톱이 내 몸 쪽으로 가면서 무언가를 자르고 집고 꺼냈지만 나는 그저 바라 볼 뿐이었다.

칼과 톱이 내 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장기들을 하나 씩 빼내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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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년 1월 1일 기준.

리디스 케언– 금성 여자. 29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화성 남자. 50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화성 여자. 37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화성 남자. 41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화성 남자. 134세.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사망.

소년 – ?? 남자. 16세. 쓰레기장에 기절해 있었다. 리디스가 구조.

리튼 페일 – 지구 남자. 31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소장. 서부 사령관.

케테로스 미카드 – 금성 남자. 30세. 금성의 227대 왕

이리탈크 에실–지구 남자. 61세.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사망.

에더슨 베일렌 – 화성 남자. 85세. 642대 화성 대통령.

바이카 솔 – 화성 남자. 78세. 군부 총사령관. 육해군 총 책임자.

밀런 키웨이스 – 화성 남자. 97세.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피커리우 – 화성 남자. 107세. 내정부 장관.

호터. 페이오스 – 화성 남자. 69세. 치안부 장관.

파루스 데 칼트–지구 남자. 152세.육군 대장.사망.

레실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78세. 지구 92대 총수.

노아드 에실 ­ 지구 남자. 68세. 기업회의 간부.(돼지새끼)

덴슨 미렌 – 지구 남자. 54세. 기업회의 간부.(멍말이)

키들러 롤킨스 – 지구 남자. 107세. 기업회의 간부.(무표정씨)

아리카 베너리아 – 지구 여자. 43세. 뉴레든의 기자.(기자 양반)

다이타르 기란–지구 남자. 56세.육군 중장.사망.

루디샤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금성. 제조일 7757년 7월 23일.

가이론 에드버트 – 지구 남자. 31세. 생선가게 주인.

마리엔느 오센 – 지구 여자. 31세. 전업주부.

리노이 실리스 – 지구 여자. 31세. 중위. 142사단 34연대 21중대 소대장.

빌 시프 – 지구 남자. 61세. 대령. 97사단 5연대 연대장.(큰 바보)

흐라벤 피르시치 – 지구 남자. 소장. 63세. 97사단 전 사단장. 동부군 작전부장.(작은 바보)

안내원–지구 여자. 24세.보험회사 안내원.사망.

네라 울센–지구 여자15세.실종소녀.사망.

셀로아 하린–지구 여자120세.복고주의자 조직의 일인자.(할망구).사망.

유러스 디클레아–화성 남자33세.경찰관.사망.

플리사 에토레브 – 금성 여자 39세. 금성군 총사령관.

리어츠 비란 – 금성 남자 79세. 귀족회 대표.

로드카 하디바이스 – 지구 남자 30세. 몬케르드 대학 조교. 남부반란군 대장.

카리탈크 스텔리온 – 지구 남자 64세. 페르샤 대학 철학교수.

피니르 블란 – 지구 남자 63세. 소장. 97사단장.

케리스 모나키아 – 지구 남자 101세. 대장. 국방부 장관.

위실론 크리데인 – 지구 남자 49세. 서부반란군 대장.

클로시아 레턴–지구 여자53세.동부반란군 대장.탈옥수 출신.사망.

메이클 로더슨–지구 남자80세.중장. 142사단장.사망.

바티우스 엘로렌 – 지구 남자 90세. 소장. 13사단장.

지쿠 스톨스–지구 남자62세.소장. 89사단장.사망.

티메로파 키나비치 – 지구 여자 91세. 중장. 제2공군단장.

웰론 와츠 – 지구 남자 49세. 소장. 105사단장.

가니로 루서스 – 지구 남자 61세. 상사. 보급관.

드레이돈 바롤트 – 금성 남자 56세. 금성군 제2총사령관.

레시아 로던 – 금성 여자 43세. 대령. 금성군 총사령관 보좌.

로제스 브테르트 – 금성 남자 26세. 일병.

노웬 아스테리사 – 지구 남자 119세. 대장. 남부 사령관.

콜트렘 길린시아 – 금성 남자 61세. 대령. 1차 금성군.

카사라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지구. 제조일 5224년 11월 21일.

로민 우세라 – 화성 여자 92세. 주부.

데이번 디클레아 – 화성 남자 30세. 경찰 지망생.

라디아네 키웨이스 – 화성 여자 45세. 영상 제작자.

우티슨 키웨이스 – 화성 남자 42세. 회사원.

게리아 메네스트 – 화성 여자 36세. 마르마스 기업 본사 안내원.

베르나사 키드로–화성 여자89세.마르마스 기업 본사 관리총감.사망.

뤼덴 플리톤 – 화성 남자 74세. 유러스, 데이번의 아버지. 전업주부.

아로디아 맥켄 – 화성 여자 68세. 유러스, 데이번의 어머니. 육상코치.

누마 브레스터– 화성 남자 16세. 쓰레기처리장에 버려져 있던 정체 모를 소년이 아닌 마르마스 기업 회장.

바리넬 벤스 – 화성 남자 40세. 경찰.

소네샤 티르마크 – 화성 여자 38세. 경찰.

리브 팜 – 화성 남자 81세. NP4719 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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