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자들의 세상-16화 (16/86)

〈 16화 〉 포식자들의 세상 ­16­

* * *

무의미한 회의를 마치고 나와 루디샤는 집으로 돌아가기 지구군 본부를 나섰다. 총수의 공백 시간이 염려되었던 나는 루디샤에게 혹시 혼자 있는 동안 누구 만난 사람 없냐고 물었지만 딱히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무표정과 친절한 음성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알 길이 없다. 하긴 인공지능 로봇이 나한테 거짓말을 해서 얻을 것은 없다. 애초에 로봇에게 그런 신경을 쓰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다.

멀리서 잠깐만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재수 없는 에프타인이었다. 아직 마음속에서 부를 멸칭이 떠오르지 않는다. 재수 없는 놈이라는 호칭은 길기도 하고 재수 없는 녀석이 한두명이 아니니까 애매하다.

“바로 가시는 겁니까?”

먼 거리를 달려왔지만 숨도 차지 않는 모양이다.

“네.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회의도 끝났고 곧 화성에서 장관 분들이 오셔서 동맹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릴 것입니다.”

“참석해야 한다고 연락이 오면 당연히 참석하겠지만.. 그런 명령은 없었습니다.”

“리튼 소령님 정도면 참석하지 않을까요.”

나 정도면 참석할 수 있지 않냐고? 그러기에는 내 계급이 어중간하지 않나 싶다. 군 별자리들 사이에서 기대주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것 뿐 이다. 한 때 떠들썩 했던 사건의 주인공이었지만 이제 언론도 세상도 시간이 흘러 주목하지 않고 있다.

“옆에 계신 분은...”

에프타인이 루디샤를 보며 물어보았다.

“사촌 동생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군요. 둘이 잘 어울리셔서 저도 모르게 여자친구나 약혼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에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에프타인은 고개를 숙이며 실례했다고 사과했다. 그걸 무표정하게 하니 더 짜증난다. 에프타인과 루디샤, 무표정한 둘이 인사를 나누고 에프타인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리튼 소령님 정도면 지구의 총수님이 아끼시는 분이니까 부를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총수님이 저를 아낀다고요??”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수가 나를 싫어할 이유라면 꽤 있다.

“행사 참석은 저도 에프타인..차관님도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일단 돌아갔다가 공문이라도 떨어지면 그 때 다시 수도로 돌아오겠습니다.”

“그거 아쉽군요. 수도 안내를 좀 부탁 드릴까 싶었는데요.”

“수도.. 페르샤를요? 별 것 없습니다. 넓기만 하고. 원기둥 숲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나한테 관광 가이드를 부탁 하는건가? 어이 없는 제안이었다. 부대로 복귀하면 올 해 하반기 나를 괴롭힌 인물 리스트를 뽑아서 주의 할 생각이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마주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제가 여러 가지 일로 계속 부대에 복귀를 못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리를 지켜야 할 것 같네요.”

부대로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미사일 개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늙은 꼰대가 하는 일이니까 믿을만하기는 하지만 눈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아쉽습니다.”

이렇게 얘기가 끝나고 가는데 에프타인이 또 나를 불렀다. 무표정한 얼굴이 약간 인상을 쓴 것 같다.

“큰일이 났습니다.”

“큰일이요?”

“백칩이나 바이오칩이 없다고 하셨죠? 지금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

“뉴스?”

에프타인은 보기 힘든 물건이라며 얇은 손바닥만한 판을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얇은 선을 판에서 뽑더니 자신의 바이오칩이 들어 있는 손목에 연결했다. 곧얇은 판의 한 면이 빛을 내며 화면이 나왔다.백칩이나 바이오칩이 없는 사람이 없는 요즘 개인에게 송출 되는 방송 화면을 특이하게 생긴 판에 송출 시켜 주는 기기인 것 같다. 복고주의자들에게 잡혀 있었던 곳에서 할망구가 설명할 때 사용하던 그 거대한 기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크기의 차이는 있지만.

화면 내용을 보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화면 안에는 나를 붙잡았던 할망구가 얻어 맞았는지 잔뜩 부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으며 밧줄로 묶여 있었다.

어떤 멍청하게 생긴 놈이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지구는 더 이상의 테러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 우리 지구는 지구의 질서를 파괴하고 죄 없는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셀로아 하린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연설하고 있는 놈이 기억이 났다. 예전에 회의에서 말 더듬던 놈이다. 뭐라고 불렀더라. 멍청하고 말더듬어서 멍말이라고 불렀던가?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기업회의 사람이었던 것은 기억이 났다.할망구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입을 파르르 떨며 움직였으나 소리가 채 나오기도 전에 총들이 발사되었다. 할망구는 그렇게 죽었다. 화면에는 기자양반이 취재를 나가 있었는지 지구를 어지럽혔던 복고주의자의 수장이 죽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기자양반의 말이 한창일 때 에프타인이 방송을 껐다. 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말투로 이야기 했다.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사형이야 언고 받을 만 한데... 공개 처형도 문제는 아니지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에프타인이 무표정하게 물어봤다. 궁금한 것은 맞나?

“요즘 같은 시기에 복고주의자들을 자극해서는 안 됩니다. 금성이 선전포고한 시점이니까요. 만약에 복고주의자들이 이 일을 계기로 전쟁이라도 걸면 전선이 최소 두 개가 되는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복고주의자들이 쉽게 전쟁을 일으킬까요? 금성보다도 전력이 약하다고 생각 됩니다.”

화성놈이 지구 사정에 대해 뭘 안다고 단정 짓는지 모르겠다.

“전력의 강함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신경 쓸 것이 늘어나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되도록 문제될 만한 일은 피하는 것이 좋지 않나요?”

“오히려 문제 거리를 줄인 것 아닐까요?”

“복고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나면 문제가 늘어나는거죠.”

에프타인은 내 대답을 듣고 잠시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에프타인이 말했다.

“저는 지구총수님이 문제 거리를 줄이기 위해 셀로아를 처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리튼 소령님의 의견은.. 중산층까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층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층민들??”

내가 하층민이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지금이야 군인이 되고 사정이 좋아졌지만 유복했던 적은 없다. 고아로 살다시피 했으니까.

“방송에서 보셨겠지만 구경꾼들은 환호를 했습니다.”

“네. 자극적인 구경거리나 제공하며 시민들 기분이나 풀어주는 것이 문제 거리를 줄이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답이겠네요. 하지만 이것은 복고주의자들의 세력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저는 셀로아를 잡고 복고주의자들이 아무런 행동도 못하게 견제 했어야 된다고 봤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죽여버리면 그들이 작정하고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니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히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실 사항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무슨 말씀이시죠.”

“복고주의자들이 거의 20여 년 간 벌여온 테러 행위는 수 많은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네. 사실이긴 합니다.”

“거기서 희생된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가난한 지역의 하층민들, 인공지능 로봇들이 하던 일을 하고 있는, 팔 다리에 중장비를 달고 사는 하층민들이 대부분입니다. 힘들고 거친 일을 할 이유가 사라져서 점점 개조도 소프트하게 받고 있는 중산층이나 상류층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 일이었겠습니다만 복고주의자들이 벌인 범죄들의 대부분은 하층민들이 그대로 받았거든요.”

“흠...”

“그들의 분노는 리튼 소령님이 전혀 모르고 계십니다. 그들은 셀로아가 잡혔다는 소식 당일 죽이라는 의견이 수 백만 건 검색되었을 정도입니다.”

하긴 복고주의자들의 행동 반경은 대부분 하층민들의 주거 지역과 겹쳐 있다. 상대적으로 일을 벌이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 서두른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적어도 복고주의자들의 반응이라도 살펴봐야 했습니다.”

“리튼 소령님의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층민들 사이에서 복고주의자들에 대한 집단 시위 움직임이 여러 건 포착 되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빨리 결정 된 것도 이해는 되지만...”

그보다 에프타인은 왜 저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백칩 시술을 받긴 해야 하나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정보를 얻는데 너무 느리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해왔지만 화성에서 막 건너온 사람이 나보다 지구에 대해 파악이 빠른 것을 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근처 야외 공원에서 소란이 들렸다. 두 남자가 고성방가가 오고 갔다. 정장 차림에 가만히 양손을 관자놀이에 짚고 상황을 관찰하는 사이트맨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방송국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에프타인이 말했다.

“저 사람들 중에 검은 머리 사람이 보이십니까?”

“네?”

뜬금 없이 악에 받혀 소리 지르는 사람을 가리키며 에프타인이 물어 본다. 검은 머리 사람은 젊은이로 짧게 자른 스포츠형 머리, 하얀 피부에 메부리코, 처진 눈, 인상을 쓰고 소리치고 있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완고해 보였다. 그를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중년의 남자였다. 사이트맨에 구경꾼도 많은 것을 보니 무슨 촬영 같은데 저렇게 분위기가 격해져도 되는지 의문이다.

“저 젊은이는 요즘 주목 받고 있죠. 로드카 하디바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 인공지능파의 리더입니다.”

“반 인공지능파라면 들어 봤네요. 복고주의자들도 골치 아픈데.”

로드카라는 젊은이는 몬케르드 대학원 조교다. 무슨 연구를 하다가 맛이라도 갔는지 지구 상에 남아 있는 인공지능을 전부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은 불법이다. 이것은 세 행성이 모두 공통적으로 따르고 있는 룰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지배 받던 시기도 3000년 전이고 점점 느슨해졌다고 해야 할지 세 행성 모두 알게 모르게 인공지능이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화성은 택시가 전부 무인 자동 택시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탑재되어 있다. 지구 같은 경우 미사일 관리가 전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 사람 형태는 아니지만 인공지능 로봇들이 지금 한창 미사일 사정거리를 늘리는 작업 중이다. 금성도 아마 있을 것이다. 자세 하게는 모르지만.

앞에서 논쟁 중인 중년 남자는 이제 와서 인공지능을 다 박살내는 행위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듯 했다. 어떻게 보면 로드카는 법을 원칙대로 철저히 지키자는 입장인 셈이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한 번 들어볼까요?”

전혀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에프타인이 내 팔을 잡고 공원까지 끌고 갔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루디샤도 따라 왔다. 에프타인은 역시 예상대로 힘이 셌다. 그런데 그냥 센 정도가 아니라 저항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셌다. 나도 명색이 군인인데 자존심이 상할 정도다.

다 와서 내가 팔을 뿌리치니 에프타인의 팔이 뿌리쳐졌다. 목적을 달성하고 팔이 뿌리쳐지니 이건 이거대로 열 받는다. 에프타인 마음대로 상황을조종당하는 기분이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내가 정색했다.

“실례했습니다. 그래도 혼자 듣는 것 보다는 같이 듣고 의견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 의견은 저 두 사람의 논쟁을 듣고 싶지 않고 빨리 부대로 복귀하는 것인데요.”

“사과의 의미로 공항 비행선 예약을 해드리겠습니다. 두 명이면 될까요?”

루디샤가 짧게 대답했다.

“저는 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표를 한 개 예약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마지 못해 허락했다. 사실 총수가 회의에 부른다고 부대에 말해 놓은 상태니까 상관은 없지만 내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공원의 로드카와 중년 남자의 논쟁을 듣게 되었다. 공원으로 끌려 오기 전에는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지만 가까이 오니 어느 정도 소강상태가 되어 침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공지능의 가장 큰 죄악은 인류를 완벽한 한 개종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로드카가 말하고 있다. 저게 무슨 개소리일까? 로드카가 계속 말한다.

“과거 인류는 다양한 유전 형질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다양함을 뽐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인공지능의 지배로 인류는 1000년 간 고통 받았습니다. 더구나 사악한 인공지능은 우리 인류를 생체 실험하며 다양한 유전 형질들을 통합하여 단 하나의 객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선택권을, 자유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우리 몸속의 DNA조차 말입니다.”

로드카가 인공지능의 사악함을 말하자 중년 남자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당신이 갑자기 유전자에 대해 왜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3000년 전에 단죄가 끝났고 인공지능의 죄는 무슨 유전자니 뭐니 하는 것을 떠나 인류를 대량 학살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명백합니다. 증명되는 여러 사실을 놔두고 자신의 피해망상적인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서는 안됩니다.”

“사실이 아니라니요? 명백한 사실입니다. 인류가 만약 전염병이 다시 창궐한다면 우리는 모두 죽게 될 겁니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잘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유전자를 단 하나로, 단일 유전자로 통합해 버렸으니까요.”

“그것이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가요. 단일 유전자라니??”

나도 궁금해졌다. 너무 신개념이라서. 로드카는 한숨을 쉬며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과거 인류는 다양한 종이 스스로 교배하며 다양한 유전적 형질을 나누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지었습니다. 여러 질병에 대응했죠.하지만지금은 어떻습니까?”

“뭐가요.”

중년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했단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도 대머리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도 암에 걸리지 않죠. 인공지능이 우리의 세포를,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오히려 좋은 것 아닙니까?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잘해준 몇 안되는 점이라고 생각되는데.”

“넓게 생각해봐도 그럴까요? 인공지능은 능력과 기술이 되면서도 금성과 화성에 테라포밍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더 넓은 외우주로 나가지 않았어요. 왜 일까요?”

“필요 없으니까 안 나가지 않았을까요.”

“아니요. 인공지능의 행동 양식 중 하나는 확률입니다. 만약에 앞으로 이동하는데 사고 날 확률이 계산되면 멈추고 다른 길을 알아 보는거죠. 그들은 우리의 유전적 형질을 하나로 고정 시켜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갔을 때 혹시 있을 외계 생명체나 박테리아 같은 것으로 인해 전염병이 생겨 멸종 당하는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우리는 스스로 질병에 대비할 수 있는 유전의 다양성을 인공지능이 없애버렸기 때문입니다.지구라는 하나의 행성에 우리를 고정 시켜 버렸어요. 그러다가 지구를 정복할 목적으로 인류의 반을 몰살 시켜버렸고요. 이런 극악무도한 인공지능은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남겨두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지금 어딘가에서 돌아가고 있을 인공지능, 프로그램조차 씨를 말려버려야 합니다. 저는 3000년 간 아무도 이 일을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에 회의감마저 듭니다. 하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인공지능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없애버려야 해요. 어차피 인공지능 사용하는 것도 불법 아닙니까? 법을 지켜야죠.”

“아니 무슨..”

중년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이야기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재미있는 논쟁인 것 같습니다.”

크고 침착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또 다른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에프타인이 작게 말했다.

“저분도 유명하신 분이군요.”

전혀 모르겠다. 뭐 하는 사람이지. 에프타인이 그런 나를 이미 읽었는지 새로 등장한 인물을 소개했다.

“카리탈크 스텔리온 페르샤 대학 교수입니다. 논쟁의 달인이죠.”

탈크라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간 것 보니 금성 출신인가보다. 아니면 조상이 금성인이었던가. 예전 지구의 외교관도 이리탈크라는 이름이었다. 그도 예전 조상이 금성인이었으나 지구로 이주하여 지구인이 된 케이스다.

“탈크라는 이름이 들어갔으면 금성 출신이겠네요.”

“6대 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렇습니다. 그래도 카리탈크 교수는 완벽한 지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대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까요. 백칩도 쓰고 있고 성대와 왼팔도 개조 된 상태이고.”

얼핏 보기에는 아무 개조도 안 된 것 같다. 하지만 티 안나게 개조 되었으니 저 사람도 최소 중산층 이상일 것이다. 카리탈크가 말했다.

“젊은이는 이름이..”

“로드카입니다. 요즘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중년 남자가 안 좋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로드카보다 더한 놈이 왔네..”

로드카는 카리탈크를 몰랐는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권했다.

“인간의 유전자가 정말로 단일화 되었는지 궁금하군요.”

“조작된 증거들도 있습니다. 한 때 뉴스에서 난리였죠. 모르셨습니까?”

로드카가 말했다.

“아니. 인공지능은 오랜 실험 끝에 인류의 유전자를 모두 모아 통합 했지만 그것이 인간의 다양성을 없애버렸다는 것이 맞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로 만들었다고요.”

“그렇죠. 하지만 모든 유전자, 염기 서열을 모아 만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모은 것이 어떻게 유전자의 다양성이 훼손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인간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들어 있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대머리라던가..”

“대머리는 병이죠. 지금은 그것이 어떤 기분인지 모르지만 과거 사람들은 심각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필요한 모든 유전 정보를 모으고 그 중 필요 없는 병에 관련된 유전자들은 버린 것입니다. 그런 작업을 단순히 하나의 종 만을 남기고 나머지 종들이 도태되어 인류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외계에서 온 병이면 로드카씨가 말한대로 유전적 다양성이 보장 받아 질병에 다양하게 저항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해도 외계의 병을 정말로 질병에 저항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

잠시 말을 못하던 로드카는 몇 번 반문하다가 카리탈크의 반격에 꼬리를 내리고 의자를 발로 차며 무례하게 퇴장했다. 저렇게 다혈질이면 어디 가서 성공하기는 틀린 것 같다. 카리탈크는 중년의 남자에게 말을 걸자 자신도 바쁘다며 도망쳐 버렸다.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아 이제 가도 되나 싶었는데 에프타인이 카리탈크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교수님.”

방송국 사람들도 구경꾼들도 모두 사라졌다. 우리도 사라지면 완벽했다. 하지만 에프타인은 카리탈크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에프타인을 노려보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소개를 했다. 카리탈크가 웃으며 인사했다.

“화성에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말이 오고 간 뒤 에프타인이 자신의 연락 코드를 주었다. 그들은 한동안 상투적인 겉 치례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나한테 말했다.

“어떻습니까?”

“별 생각 없는데요. 어떻고 자시고 할 게 없네요.”

“흥미로운 인물이지 않습니까? 저 사람도 어떻게 보면 복고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듣기 싫은 단어들만 골라서 하는 재주가 있으시군요?”

내가 말하자 에프타인이 말했다.

“언짢은 단어가 있었습니까?”

내 최대 흥미는 부대로 복귀하는 것이다. 다른 인물에게 흥미 없다. 복고주의자는 이제 듣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에프타인은 복고주의자를 소개까지 해주고 있다.

“그는 철학 교수입니다.”

“철학이 뭔데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생각하는데도 뭐가 필요합니까?”

“철학도 과거 인류의 학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개념으로 스며 들어있죠.”

“왠지 철학이랑 에프타인 차관님이랑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랑은 상관 없지만요.”

“너무 시간을 빼앗은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는 정중하게 사과했다. 진심이 맞기는한가? 미안하다면서 자기 할 일은 다 하는 것 같다. 민폐도 체계적으로 끼칠 타입이다.

나는 에프타인과 헤어진 후 루디샤에게 집에 잘 들어가라고 말했다. 에프타인과 만난 이후 내내 묵묵했던 루디샤가 말했다.

“방금 논쟁은 에프타인이 일부로 보여 준 것입니다.”

“뭐? 그것이 무슨 소리야?”

“뿐 만 아니라 카리탈크 교수와 주인님을 일부로 만나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프타인이 의도적으로 뭔가를 했다는 거야?”

“네. 공원에서 로드카와 카리탈크를 주인님과 일부로 대면 시켰습니다.”

“그걸 너가 어떻게 알아?”

“회의부터 지금 까지의 행동을 토대로 추측해봤습니다.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사고 해보면 인위적으로 주인님과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

무슨 속셈으로 그런 것 일까.

“주인님. 에프타인은 기분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푸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했다. 에프타인은 인공지능 로봇에게조차 기분 나쁘다는 소리나 들은 것이다. 하루 종일 나빴던 기분이 루디샤의 한 마디에 풀렸다. 나는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에프타인이 예약해 준 부대 복귀 행 비행선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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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스 케언– 금성 여자. 28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화성 남자. 49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화성 여자. 36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화성 남자. 41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 화성 남자. 133세. 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

소년 – ?? 남자. 15세. 쓰레기장에 기절해 있었다. 리디스가 구조.

남자친구 – 지구 남자. 30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이름은 리튼 페일. 소령.

97사단 5연대 작전부장.

케테로스 미카드 – 금성 남자. 29세. 금성의 227대 왕

이리탈크 에실 – 지구 남자. 61세. 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 사망.

에더슨 베일렌 – 화성 남자. 84세. 642대 화성 대통령.

바이카 솔 – 화성 남자. 77세. 군부 총사령관. 육해군 총 책임자.

밀런 키웨이스 – 화성 남자. 96세.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피커리우 – 화성 남자. 106세. 내정부 장관.

호터. 페이오스 – 화성 남자. 68세. 치안부 장관.

파루스 데 칼트 – 지구 남자. 151세. 육군 대장.

레실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77세. 지구 92대 총수.

노아드 에실 ­ 지구 남자. 67세. 기업회의 간부.(돼지새끼)

덴슨 미렌 – 지구 남자. 53세. 기업회의 간부.(멍말이)

키들러 롤킨스 – 지구 남자. 106세. 기업회의 간부.(무표정씨)

아리카 베너리아 – 지구 여자. 42세. 뉴레든의 기자.(기자 양반)

다이타르 기란 – 지구 남자. 55세. 육군 중장.

루디샤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금성. 제조일 7757년 7월 23일.

가이론 에드버트 – 지구 남자. 30세. 생선가게 주인.

마리엔느 오센 – 지구 여자. 30세. 전업주부.

리노이 실리스 – 지구 여자. 30세. 중위. 142사단 34연대 21중대 소대장.

빌 시프 – 지구 남자. 60세. 대령. 97사단 5연대 연대장.(큰 바보)

흐라벤 피르시치 – 지구 남자. 소장. 62세. 97사단 사단장.(작은 바보)

안내원 – 지구 여자. 23세. 보험회사 안내원.

네라 울센 – 지구 여자 14세. 실종소녀. 사망.

셀로아 하린 – 지구 여자 119세. 복고주의자 조직의 일인자.(할망구). 사망.

유러스 디클레아 – 화성 남자 32세. 경찰관.

플리사 에토레브 – 금성 여자 38세. 금성군 총사령관.

리어츠 비란 – 금성 남자 78세. 귀족회 대표.

로드카 하디바이스 – 지구 남자 29세. 몬케르드 대학 조교.

카리탈크 스텔리온 – 지구 남자 63세. 페르샤 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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