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자들의 세상-12화 (12/86)

〈 12화 〉 포식자들의 세상 ­12­

* * *

9999년 11월 25일. 나는 외교차관 금성담당에 임명되어 금성의 수도 제17도시에 도착했다. 거대한 엘리베이터 타워의 정문을 나서자 벌써 금성의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다. 그들은 이미 내가 화성의 외교차관 자격으로 온 것을 알고 있었다. 혼자 뚝 떨어져 내심 불안했지만 그들이 이미 연락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화성도 뒤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금성의 수도로 가려고 할 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외교차관! 잠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내가 뒤를 돌아보자 나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플리사 에토레브. 제1왕녀. 계승서열 1위. 금성군 총사령관이다. 플리사는 전형적인 금성인으로 베이지색의 머릿결에 모델처럼 큰 눈, 심해처럼 짙은 푸른 눈동자, 여자 보다 머리하나는 더 있는 큰 키에 좋은 신체 비율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금성의 퍼스트 레이디다.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에 금성에 왔을 때는 모습이 안 보였다. 하긴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군인이다. 어렸을 적 연예계로 권유가 많았지만 처음부터 군인이 목표였다고 한다.

사실 금성왕 케테로스나 지금 내 앞에 있는 플리사나 왕의 자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둘 다 왕족들 중에서도 방계 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1년 전 83대 왕이 죽고 아들들이 권력 투쟁을 벌이다가 전부 실각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왕위 계승자들이 암살 당했다. 이 사실은 신기하게도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나는 외교부에 취직해서 에프타인에게 들었던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에프타인은 언제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얼마나 난장판이었던 사건이었냐면 직계들 중 행실(약탈, 강간, 살인이 기본이었던 인간들이다) 때문에 탈락했던 왕족들을 차마 부르지 못하고 돌고 돌다가 케테로스와 플리사가 후보에 올랐는데 계승서열은 오히려 플리사가 더 높았다. 그러나 금성의 다수의 대신들이 케테로스를 밀었고 결국 케테로스가 왕이 되었다. 플리사는 그 일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권력에 욕심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금성은 지구와 진짜로 전쟁을 할 수나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플리사가 시간을 좀 들이더니 천천히 말했다.

“대왕님이 아직 접견할 준비가 안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마침 제가 알현 차 왔던 상태라 소식을 알려달라고 대왕님께 부탁받았습니다.”

“네? 언제 쯤 접견할 수 있을까요?”

“그건 저도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래 걸리시지는 않을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그전까지 차관님을 호위해 드릴까 합니다.”

호위라기보다는 감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 대왕? 보통 금성왕이라고 부르지 않나. 자기들끼리 높여 부르기로 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플리사는 정말 차원이 다른 인물인 것 같다. 외모, 능력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다. 어렸을 적 뇌내에서나 보던 인물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그녀는 나를 고급 호텔로 안내하고 자신은 옆방에 있겠다고 했다. 내가 방에 혼자가 되자 귀에서 음성이 들렸다.

[혹시 모르니 도청기 수색을 해봅시다.]

“네.”

나는 짧게 그리고 작게 목소리를 냈다. 에프타인의 말에 의하면 소근거려도 잘 들린다고 했다. 나는 에프타인의 지시에 따라 방 구석구석을 살피고 애매할 때는 설명해주었다. 아직 이 상황이 어색하지만 적응해야 한다.

방 수색이 끝나고 에프타인은 별 일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나저나 이 통신기는 정말 금성의 수색에 걸리지 않았다. 금속 같은데 스캔에 전혀 걸리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

“그나저나 오늘 플리사 왕녀를 봤어요.”

[네? 아 그렇군요.]

“솔직히 어릴 적 선망의 대상을 보니 복잡하네요.”

[저라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겁니다. 이해합니다.]

“아, 갑자기 배신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리디스씨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확신하시는 건가요.”

[그럼요.]

이 대화를 끝으로 에프타인은 혹시 모를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지금은 통신기를 꺼두고 케테로스를 만나기 직전에 다시 작동 시키라고했다.

3시간 후 노크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낯선 병사였다. 플리사는 어디 계시냐고 물어보니 나를 방으로 안내한 직후 떠났다고 했다. 하긴 왕족이니까감시일을 직접 하는 것도 웃기다. 병사의 안내를 받아 생전 처음 금성의 왕궁에 들어갔다. 하얀 대리석 벽과 금색의 지붕, 화성과 달리 지구와 비슷한 원기둥 건축양식이 새삼 지구가 금성에 행세한 영향력을 실감시켜 주었다.

왕궁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병사가 말했다.

“절대로 우리를 같은 인간이라거나 인류라거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그..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불안하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들이 생각났다. 금성에 오자마자 가족들을 만났어야 했는데.. 하지만 바로 플리사가 붙으며 이야기를 걸었으니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후회된다. 병사는 이것 저것 주의할 점을 말해주다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정신 차리라고 부탁했다.

“진짜 실수하시면 안됩니다. 차관님. 부탁드려요..”

병사도 뭔가 질린 듯이 얘기한다. 겁먹은 나한테 질린걸까. 외교차관으로써 자격미달인 것 같아서? 아니 부탁드린는다는 말에서 왠지 그 역시 금성왕에게 질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긴 복도를 지나 고급스러운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지난번 회의실이 아닌 왕의 알현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알현실에는 금성왕이 왕좌에 앉아 있었다. 옆에 플리사가 군복을 입고 정면을 응시한 채 서 있다. 그리고 양옆으로 긴 테이블에 대신들이 앉아 있었으며 왕의 정면에 해당하는 반대편에 나의 자리가 있었다. 알현실이라기 보다 청문회같은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리디스씨.]

에프타인은 평범하고 담담하게 격려했다. 하지만 용기가 났다. 케테로스 왕이 말했다.

“지구인의 영원한 친구, 화성인의 외교차관 리디스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약간 비꼬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각오는 했다. 선전포고에 바로 화성은 지구의 영원한 친구이자 동맹이라고 선언했으니까. 하지만 에프타인의 예상이 적중했는지 일단 나를 위압하거나 감옥에 가두거나, 고문을 한다거나 사형에 처 해지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불미스러운 일이 많았음에도 이렇게 환대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왕님.”

“오, 대왕이라고 불러주시는 건가요? 아직 화성에 금성왕의 명칭을 대왕으로 한다고 통보하지는 않았는데. 다른 친구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알아서 그렇게 불러주시는 건가요? 센스는 좀 있으신 것 같군요.”

“기분이 상하지 않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원하신다면 당연히 그렇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흐흐. 꼭 에프타인이 말하는 것 같군요.”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러나 다른 대신이 나 대신 답변해주었다.

“다른 행성에서 온 외교관을 놀리시면 안됩니다 대왕님.”

“이 정도는 상관없잖아. 리디스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개의치 않습니다.”

방금 나 대신 대답했던 사람은 귀족회 대표 리어츠다. 그러자 반대 편에 처음 보는 남자가 대왕님께 예의를 차리라고 했다. 리어츠는 옳은 말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냐며 따졌다. 금방이라도 반대쪽 남자와 리어츠가 싸울 기세가 되자 주변인들이 말렸다. 케테로스가 말했다.

“냅둬. 별로 신경 안 쓰니까. 그래도 손님이 왔으니 나가서 싸우던가.”

그러자 테이블의 왼쪽과 오른쪽이 점점 소란스럽게 다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플리사가 휴대용 권총을 천장에 쏘며 정숙을 외쳤다. 그제서야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정리되었다. 나는 벌써 충격 받았다.

왕은 신하들이 싸우는데 나가서 싸우라고 했다. 총사령관은 정숙 시킨다고 왕 앞에서 권총을 발사했다. 귀족회와 싸운 사람들은 대왕회라고 하는 케테로스 왕 직속 기구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처음 들었다. 원래 금성은 왕과 귀족회, 시민회 이렇게 세 정치 기구가 균형을 유지하는 구조였는데 시민회는 보이지 않고 대왕회라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름만 봐도 왕권 강화가 목적이라는 것은 한눈에 보인다. 그렇다. 금성은 생각보다 훨씬 ‘개판’이었다.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 미안합니다. 리디스씨.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해해주시오.”

케테로스가 나에게 말하자 나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케테로스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화성은 금성과 다시 잘 지내고 싶어서 온 거죠?”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전쟁이 확산되지 않는 것을 화성도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케테로스는 의아하며 말했다.

“그러면 좀 이상한데. 차라리 에프타인이 직접 오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전에 봤을 때부터 꽤 호감이 생겼고 에프타인이 직접 오면 훨씬 효율적으로 일이 진행 될텐데요. 물론 내가 에프타인을 마음에 들어했다는 것을 눈치 못 챘을 것 같지도 않고. 유능하고.”

“에프타인은 지구담당입니다. 따라서에프타인은 저와 같은 시기에 지구로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금성에 올 수가 없었습니다.”

“아하. 지구 비위도 맞추고 우리 비위도 맞추고 양다리 걸치겠다는 말이군요? 이해했습니다.”

[전에 봤을 때보다 말의 조심성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에프타인이 감상평을 했다. 감상평보다 내가 할 말을 말해주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니 ‘하하하’하고 호탕하게 웃고 넘겼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혹시 궁금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화성 대사관님은 예전에 실종되셨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어 유감입니다.”

케테로스는 웃으면서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불편한 기색을 내지 않고 에프타인이 말한대로 위로에 감사드린다고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해야했다. 그리고 대사관 역할을 포함해서 파견된 것이라고 전했다. 케테로스는 흠..이라며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그 후 케테로스는 에프타인의 근황과 에프타인의 여러 일들을 물어 보았다. 케테로스는 왜 이렇게 에프타인에게 관심이 많은거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여러 대화가 있은 후 귀족회 대표 리어츠가 할 말이 있는지 눈치를 살폈다. 동료 대신들은 손을 아래 방향으로 향해 흔들거나 그만두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리어츠는 결국 말한다.

“대왕님!! 화성의 외교관도 오셨으니 한 말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당장 전쟁 선포를 취소하고 그 동안 있었던 일에 사죄해야 합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그 선언도 당장 취소해야 합니다!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단 말입니다!! 불쾌하시더라도 금성이 멸망하는 것을 도저히 두고 볼 수 만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셔야 합니다 대왕님!”

끔찍한 광경을 목격할 것은 기분이 들었다. 케테로스는 말 없이 귀족회 대표 리어츠를 바라보았다. 리어츠에게 큰 소리 치던 대왕회 사람들도 침묵하고 케테로스를 살펴 보았다.

“해보지도 않고 왜 나약한 소리만 하는거야. 그 동안 지구에게 당한 수모를 잊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님. 저도 지구에게 분노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금성이 멸망하는 것보다는 났습니다. 3000년을 이어온 왕성이 이렇게 끝장날 수는 없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차근차근 설명해드리고 대왕님의 마음을 바꿔보겠습니다!”

동료대신들은 눈을 감는다. 리어츠도 각오한 눈빛이다.

“..좋습니다.”

케테로스가 승낙했다.

“진짜 해도 되겠습니까?”

죽을 것을 예감했는지 의외의 사태에 리어츠 본인이 물어봤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혓바닥을 이 자리에서 뽑겠습니다. 두 번은 봐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못 할 것 이라는 생각도 하지 마시고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금성은 지구를 공격할 시기가 아닙니다. 비용 문제가 상당합니다. 지구의 공전 주기와 금성의 공전 주기 상 지금 금성과 지구는 거리가 가깝지 않습니다. 시간과 자원 소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금성의 경제를 파탄 시킬 것입니다. 둘째, 마땅한 공격 루트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우주선은 모두 수송선입니다. 전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병력을 내려 전쟁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는 방법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셋째, 시민들과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 밑으로 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외부에서 연락 오는 소식들은 하나같이 우리들을 식인종, 식인괴물, 짐승자식이라고 부르며 심각한 언어적, 신체적 차별을 당하는 소식들입니다. 이 소식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선전포고 후 대왕님께서는 무려 한 달이나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계십니다. 이런 요소들이 모두의 사기가 바닥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행동을 취하셔도 이미 패색이 짙습니다. 지금은 전면 취소하고 지구와 화성에 용서를...”

“시기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행성 간 거리의 변화로만 따질 문제는 아닙니다.”

케테로스가 리어츠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화성과 금성과 지구는 각각 우주선으로 2주가 걸립니다. 2주 치 거리라서 2주가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행성끼리 멀어지면 우주선이 빠르게 속력을 내고 가까우면 그만큼 느리게 가기 때문에 2주의 시간이 일정하게 지켜진 것입니다. 이것은 행성 간의 약속이나 계약 같은 것을 편리하게 잡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일정을 계산할 수 있으니까요. 기술적인 한계도 있고. 저는 타이밍을 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은 결코 행성의 공전 주기 따위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 간의 타이밍이니까요. 그리고 공격 루트는 이미 다 계획이 끝났습니다. 군사 기밀이라 밝히지 못하겠네요. 그리고 또.. 시민과 병사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고 했습니까? 그것도 마침 해결하게 되겠네요.”

리어츠가 말했다.

“해결이라면..”

케테로스는 곧 군대 거리 행진을 할 것이라고 했다. 군 출정식이었다. 내가 금성에 외교차관으로 온 날에 금성군이 지구로 출정하는 날이었다.

[설마 이 타이밍일줄은...]

에프타인이 말을 흐렸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리디스씨. 여기서 한번 금성왕을 떠보도록 합시다. 전쟁은 불확실한 요소가 많으니까 앞날을 알 수 가 없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세워도 뜻대로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다. 리어츠의 말대로 강화를 맺는 것이 어떤가 하고 물어보는 겁니다.]

?????? 지금 나 보고 여기서 그 말을 하라고???? 죽으라는 이야기야?? 에프타인의 주문에 정신이 빠져나간다. 얘기하면 죽을 것 같았다. 가족 얼굴들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 젊다. 죽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에프타인은 이런 나를 믿고 중책을 맡겼다.

“저...”

내가 입을 열자 모든 사람이 나가다 말고 나를 일제히 보았다. 모든 사람이 나를 보는,도망치고 싶은 분위기다.

“여..여,여..역시 전쟁을 하는 것이 옳..옳은 일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죽을 테고.. 리어츠님 말씀대로 비용 문제라던가.. 그...시간도 많이 지났고 지구도 어쩌면 협상을 바랄지도 모르고...”

다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니..그게....”

케테로스가 말했다.

“외교관으로 오셨으니 뭐라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알겠는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금성이 듣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서 케테로스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엄마.. 나의 동생들 크라딘, 베르쿠스...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리디스씨는 금성이 지구에 패할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객관적으로 보면... 당연히 그..그렇죠....”

“흠. 좋습니다. 플리사.”

“네. 대왕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플리사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리디스씨를 데리고 지구로 원정을 떠나게. 화성에게 금성의 위력을 체험 시켜줘.”

“알겠습니다.”

케테로스는 자신감 있게 말했고 플리사는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이래도 되는 거야?

[거절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케테로스 옆에 붙어있는 것이 목적입니다.]

에프타인의 말이 약간 빨라졌다. 그도당황한 모양이다.

“제가 가는 것은 역시 방해만 되지 않을까요?”

나 역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케테로스 옆에서 말 실수로 죽는 것도 끔찍하지만 전쟁터로 가는 것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전쟁터는 가만히 있어도 운이 없으면 죽을 수 있다.

“왜요. 흥미로운 체험이 될텐데. 아니면 내 옆에 있어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나는 당황했다. 마치 뭐라도 눈치 챈것 처럼.

“아니요! 아닙니다! 가..갈게요! 원정군에 참여하겠습니다!!”

간다고 말해버렸다. 살짝 귀 안에서 에프타인의 한숨이 들렸다. 케테로스가 말했다.

“소리는 치지 마시고 제 제안을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혓바닥을 뽑는 다는 말이 떠올라 죄송하다고 말했다. 왕궁을 떠나 제17도시의 광장에 이미 군인들이 모여 있다. 질서정연 하게 서 있다. 숫자는 아마 선별 된 인원들일테니 이 인원으로만 지구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병사들은 10열 종대로 행진 하기 시작했다. 행진 중간 부분에 케테로스와 플리사, 그리고 억지로 끌려가는 내가 약간 높게 만든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그 뒤로 귀족회와 대왕회 사람들이 따랐다. 더 후위에는 다시 병사들로 가득했다. 행진하는 길 양 옆으로 시민들이 나와 있었다. 환호하고 박수치고 흔한 행진 풍경이었지만 생기가 없었다. 리어츠의 말대로 시민들 모두 사기가 떨어져 불안 해 하는 것 같다.

중간 중간 수군거리는 소리는 ‘승산은 있나’,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지구도 준비가 끝났을 것이다’ 같은 말들이었다. 금성인들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행진은 광장을 출발하여 제17도시의 원기둥 빌딩 사이를 걷고 있었다. 도열해 있는 시민들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 방송이 나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선전포고를 했고 행진도 그렇고 전쟁, 그것도 전력차가 심한 상대에게 이렇게 여유롭게 정석대로 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케테로스이 여유로운 표정은 다른 이들을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었다. 병사들도 애써 좋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나조차 느껴졌다. 정말 이런다고 군인들과 시민들의 사기가 올라갈 것 같지 않다.

플리사를 보았지만 플리사는 별 표정 없이 왕의 옆에 서 있었다. 플리사가 단순히 왕족이라서 총사령관이 된 것은 아니다. 확실히 군재가 있었기 때문에 일찍 부터 군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이다. 어렸을 적 나는 진심으로 플리사를 존경했다. 철없던 시절 플리사의 동생이나 하다 못해 하인이라도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다시 생각하니 창피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리어츠를 말을 걸었다.

“전쟁터에 가게 되어 유감입니다. 차관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전쟁은 그렇다고 해도 인류와 다른 종이라고 선언한 것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지경입니다. 화해할 길을 전부 닫아버렸으니..”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그것 아십니까? 대왕님이 드신 지구의 외교관 이리탈크는 할아버지대만 해도 금성에서 살았던 귀족이었습니다. 즉, 이리탈크는 금성에서 지구로 귀화한, 혈통 상 금성인이었어요. 이리탈크는 200 영웅의 후손인데 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시는지. 거기다 갑자기 지구인, 화성인을 무슨 다른 종 취급하고... 금성, 지구, 화성 할 거 없이 다 피가 섞여 있는 마당에 말입니다.”

리어츠는 침통한 표정을 짓는다. 답답한지 말이 많아진다. 나는 그런 리어츠를 이해했다.

행진 도중 시민 사이에서 한 명이 튀어 나왔다. 병사가 제지하자 이 남자는 꽃을 바치고 싶다고 했다.

“총 반응이 있는데?”

남자를 스캔하던 한 병사가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꽃을 바치겠다고 하던 그는 갑자기 동공이 작아지고 긴장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총을 꺼내 케테로스를 향했다. 수색한 병사는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그의 팔을 잡아 총을 떨구고 제압했다. 케테로스는 암살을 당할 뻔 했다. 순간 행진은 멈췄고 시민들도 혼란스러워하며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이 많은 인파가 도망이라도 치면 밟혀 죽는 사고가 났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시민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케테로스는 차량에서 내려와 총을 주었다.

“누구냐?”

케테로스는 암살미수범의 신원을 물었다.

“나는 평범한 시민이다! 케테로스 너의 폭정을 처단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 식인을 일삼는 만행! 부모님을 반역죄로 죽여버리는 패륜! 불행히 실패했지만 각오는 되어 있다! 죽이던지 고문하던지 마음대로 해라!!”

“음. 시민회냐?”

케테로스가 물었다.

“시민회와는 관련 없다.”

암살미수범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래? 용기가 가상하구나.”

케테로스는 그를 칭찬하고는 총의 탄창을 뺐다. 그리고 총알을 하나 씩 빼면서 말을 했다.

“알고 있나? 총과 총알이 얼마나 오래된 발명품인지. 마치 인간들이 불을 발견한 것만큼, 바퀴를 발명한 것만큼 유구한 역사가 있다. 여러 발명품들이 뒤집어지고 바뀌고 대체되는 와중에 총은 언제나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지.”

케테로스는 총알을 모두 빼고 차량의 본네트에 하나 씩 세워 놓으며 말을 했다.

“이 총은 88식이라고 해서 9988년에 금성에서 보급한 장교용 권총이다. 당연히 시중에 허가된 적 없는 권총으로 일반인이 소지할 수 없는 물건이지.”

케테로스는 총알 하나를 탄창에 끼고 총을 장전했다. 그리고 잠깐 총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의 정체를 알아내는 일에 흥미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 많은 군중들 속에 혼자 나를 죽이려는 용기는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총을 암살자에게 던졌다.

“딱 한 발의 기회를 주마. 그 자리에서 쏴 나를 죽인다면, 오늘부로 네 녀석을 금성의 제85대왕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나를 쏴서 죽이지 못한다면 네 녀석은 제발 죽여달라고 빌게 될 것이다.”

케테로스는 양팔을 벌리고 병사들에게 암살미수범을 막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경우 저 녀석을 왕으로 삼으라고 했다. 귀족들도 시민들도 군인들도 모두 당황해서 왕을 말리지 못하고 암살미수범을 쳐다 볼 뿐이다.

암살미수범은 총을 쥐고 케테로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내,내...내,내 내가 케테로스를 죽이면.. 와..와...왕..금성의 왕...”

그 많은 인원이 모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했다. 그리고 암살미수범의 상태를 보니 왕이 되긴 글렀다. 암살미수범은 부담감 때문인지 흔들리는 손을 잡으며 간신히 쐈지만 허무하게 빗나갔다. 케테로스는 한 숨을 쉬더니 성큼 성큼 암살미수범에게 다가갔다. 암살미수범은 괴성을 지르며 총 자체를 집어 던졌지만 케테로스는 반사신경이 좋은지 코앞에서 총을 손으로 캐치하고 그대로 암살미수범의 머리를 내려쳤다. 암살미수범은 힘없이 쓰러졌고 케테로스는 그의 머리가 박살나서 터질 때까지 사정 없이 총의 손잡이 부분으로 내려 찍었다. 암살미수범의 피를 뒤 집어 쓴 상태로 한 병사에게 말했다.

“이 쓰레기의 시체를 잘게 다져서 하수구로 흘려버려라. 먹을 가치도 없다.”

그렇게 얘기한 케테로스는 다시 차량에 올라 피투성이인채로 피를 닦지도 않은 채 다시 포즈를 취하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행진을 이어 갔다.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지만 정말로 사기가 올랐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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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스 케언– 금성 여자. 28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화성 남자. 49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화성 여자. 36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화성 남자. 41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 화성 남자. 133세. 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

소년 – ?? 남자. 15세. 쓰레기장에 기절해 있었다. 리디스가 구조.

남자친구 – 지구 남자. 30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이름은 리튼 페일. 소령.

97사단 5연대 작전부장.

케테로스 미카드 – 금성 남자. 29세. 금성의 227대 왕

이리탈크 에실 – 지구 남자. 61세. 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 사망.

에더슨 베일렌 – 화성 남자. 84세. 642대 화성 대통령.

바이카 솔 – 화성 남자. 77세. 군부 총사령관. 육해군 총 책임자.

밀런 키웨이스 – 화성 남자. 96세.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피커리우 – 화성 남자. 106세. 내정부 장관.

호터. 페이오스 – 화성 남자. 68세. 치안부 장관.

파루스 데 칼트 – 지구 남자. 151세. 육군 대장.

레실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77세. 지구 92대 총수.

노아드 에실 ­ 지구 남자. 67세. 기업회의 간부.(돼지새끼)

덴슨 미렌 – 지구 남자. 53세. 기업회의 간부.(멍말이)

키들러 롤킨스 – 지구 남자. 106세. 기업회의 간부.(무표정씨)

아리카 베너리아 – 지구 여자. 42세. 뉴레든의 기자.(기자 양반)

다이타르 기란 – 지구 남자. 55세. 육군 중장.

루디샤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금성. 제조일 7757년 7월 23일.

가이론 에드버트 – 지구 남자. 30세. 생선가게 주인.

마리엔느 오센 – 지구 여자. 30세. 전업주부.

리노이 실리스 – 지구 여자. 30세. 중위. 142사단 34연대 21중대 소대장.

빌 시프 – 지구 남자. 60세. 대령. 97사단 5연대 연대장.(큰 바보)

흐라벤 피르시치 – 지구 남자. 소장. 62세. 97사단 사단장.(작은 바보)

안내원 – 지구 여자. 23세. 보험회사 안내원.

네라 울센 – 지구 여자 14세. 실종소녀.

셀로아 하린 – 지구 여자 119세. 복고주의자 조직의 일인자.(할망구)

유러스 디클레아 – 화성 남자 32세. 경찰관.

플리사 에토레브 – 금성 여자 38세. 금성군 총사령관.

리어츠 비란 – 금성 남자 78세. 귀족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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